시베리아에 간 복돌이
오진혁.오인구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 번의 긴 여행이 아니라 해마다 겨울에 가족들과 긴 여행을 계획하고 떠난다는 건 단지 ‘자유로운 영혼’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가이드가 따로 있어서 선정, 준비, 일정, 통역 등을 모두 대리해주는 경우가 아니라면, 준비 과정은 언제나 설렘보다 지난하고 힘이 많이 드는 부분이다. 이것도 많이 하면 느는 능력 중 하나일지 모르겠지만, 혼자 가는 같은 여행지가 아니라면 경험치가 큰 의미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여행을 마치고 와서 책을 만드신다니!

 


몇 해 전 친구네 가족들이 시베리아횡단열차 여행을 하고 와서 ‘우리는 새롭게 진정한 가족이 되었다’고 지치도록 자랑하는 것이 신기하고 부러워서, 우리 집 꼬맹이가 조금 만 더 자라면 우리도 떠난다!라고 호기롭게 생각만 한 것이 여러 해 전이다. 구체적 조사도 준비도 계획도 전무하다.

 


한 때는 지구 반 바퀴쯤 돌아다녔다며 공항 식사와 이동이 넘 지겹다는 둥 하면 살았는데 어느덧 해야 할 이유보다 안 해도 되는 이유가 핑계가 더 많아진다. 젊었고 홀홀단신 아니면 젤 좋은 친구와 함께 하는 속편한 여행이었지만 여행의 고단함을 아는 나로서는, 휴양지도 아니고 가족 동반을 매년 하는 이분들이 보통 분들이 아니실거라 생각해서 이제 평균 체력도 안 되는 나는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요일과 시간별로 기록된 목차를 보고, 도움을 넘어 카피할 부분이 있을까 하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책을 열었다. 나이를 가리키는 숫자가 무거워질수록 무엇이든 기회를 삼아 용기를 그러모을까 하는 생각이 많아진다.

 


아빠와 엄마는 차를 마시면서 차창을 바라봅니다.
“엄마, 아빠, 뭐가 보여? 깜깜한데.”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보고 있어. 엄마는, 이거 너무 하고 싶었어!” 71

 


“달리는 횡단열차에서 자작나무와 눈 덮인 벌판을 계속 달려가는 이 순간, 책을 보고 k를 마시는 경험을 우리 가족들이랑 꼭 해 보고 싶었어요!” 76

“학교 공부 못지않게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공부야. 비록 결과가 바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경험에 투자하는 것은 인생을 가장 멋지게 살아가는 방법 중에 하나라고 엄마는 믿어.” 85

“복돌아, 아빠는 깨어 있을 때 우리가 정차하는 기차역을 모두 밟아 보고 싶어. ‘우리가 언제 다시 시베리아 한복판을 지나가는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말이야.” 162

 


“앞에 다가올 일을 예측하지 못하고, 그저 역방향으로 달리는 기차를 타고 있는 것처럼 주어지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인생인 것 같아.” 197

“인생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기억하고, 좋든 싫든 간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항상 오늘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열심히 살자.” 198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나에게 허락된 사적 공간인 내 집은 제일 소중한 공간이다. 내 허락 없이는 타인이 침범할 수 없는 유일한 공간. 그런데 왜 이런 공간인 집을 잠시라도 떠나는 여행을 간절하게 바라는 사람들도 늘 이렇게 많은 것일까. 왜 여행을 가기로 결정하고 여행을 가는 걸까. 여행을 ‘통해’ 뭔가 다른 것을 얻기를 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여행 자체가 목적인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탐험과 여행에 대한 욕구가 크고도 오래 지속된 편이고, ‘여행가’란 직업이 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고 분노하고 억울해했으며, 이왕 운 좋게 지구에서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가능한 지구를 많이 보고 죽자는 생각에 열심히 다녔고(하지만 30개국 30일과 같은 형식의 배낭여행은 내 기준에서의 여행과 너무 괴리가 커서 해본 적이 없다), 다음 생이란 게 있다면 철새로 태어나도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여행에 대한 애정과 관심에도 불구하고 생각해보니 다른 사람들이 여행 다니는 이유나 경험에는 특별한 관심이 없었는데, 8살 복돌이가 작성한 여행기라서 그런지 마치 누군가의 일기를 오래 읽은 듯한 새로운 경험을 했다. 남의 여행이야기도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고, 생각보다 더 생생한 간접 경험의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베리아횡단열차여행, 상당히 오랜 세월 내 계획에 등장해서 사라지지 않고 있고 엉덩이 통증을 무릅쓰고라도 동경하는 여행 방식 중 하나였는데, 어쩌면 가능하지 않겠구나 하는 쓸쓸한 생각이 들 무렵 이 여행기를 읽게 되어 헛헛한 마음이 3분의 1쯤은 채워진 느낌이다. 투덕투덕거리는 따끈따끈한 이야기들로.

 


이제는 열차 옆 칸에서 만나 얼굴을 익힌 여행 동료들인 것같은 느낌의 복돌이네 가족이 건강하게 새로운 겨울마다 늘 행복하게 새롭게 즐겁게 여행을 경험하고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