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엽충 - 최지운 장편소설
최지운 지음 / 밥북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오늘 읽은 사설에 ‘청년팔이’를 하지 말라는 청년들의 엄중한 논조가 있어서, 앞으로는 조금 더 숙고한 후 뭐라도 얘기를 해야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적어도 너무 쉽게, ‘무슨 무슨 세대’라고 퉁치듯 일반화하고 한 바구니에 집어넣은 짓은 경솔하게 하지 말아야겠다 싶다. 명명이 없어진다고 청년들의 현실이 바뀌거나 좋아질 리는 없지만, 한편으로는 청년 세대의 고민과는 상당히 멀어진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세대이기에 정말 오랜만에 청년 이야기를 다룬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기회였다.

 

순전히 운이 좋아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입장에 처해본 적이 없어, 취업의 절박함을 극한으로 느낀 적은 없지만, 경제적 독립이 정신적 독립을 보장한다,는 생각이 20대가 되고 바로 생겼기 때문에, 취업은 ‘당연한 일’로 여기고 실제로 꽤 애를 쓰기도 했다. 그런 경험이 공감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주긴 하지만, 전공이 다르고 세대가 다른 점은 이야기를 읽어갈수록 차이점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되는 결과로 이끌었다.

 

이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취업을 간절히 바라나 취업이 불가능해서 학교에 남아 있는 입장이고, 나는 사실 진학을 거듭해서 학교에 남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으니, 아니 더 정확하게는 학교에 남기로 선택한 것이었으니 ‘랩’이라고 표현되는 공간에 대한 정서와 주변 인물들 - 특히 후배들 - 과의 관계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읽기 전에는, 취준생 혹은 꿈을 이루고자 오랜 기간 애쓰는 고달픈 인물들을 무려 고생대부터 살아온 화석들과 연관하여 명명하고 소개하는 방식이 새롭고 독특하고 흥미롭다고 생각했는데, 읽을수록 마음이 불편해졌다. 아무리 생물사에 한 획을 긋는 대표적이고 유명한(?) 화석들이라 해도 살아있는 살아가는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인물들을 이미 멸종한 그리고 멸절된 죽은 사체의 증거인 화석들과 연관 짓다니 마음이 어둡고 무거워졌다. 작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어쩐지 현실보다 더 무시무시한 명칭이란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더 마음이 안타까웠던 것은 랩이 남아 있는 졸업생 선배들을 그런 명칭으로 부르는 대학생들의 형편이다. 그들 역시 무한 경쟁과 바늘귀 통과에 버금가는 ‘성공’ 기회를 잡아야하는, 그래서 드물게 있는 지원과 기회 앞에서 배려와 양보 따위는 상상할 수도 없는 멍청한 짓이라는 절박한 일상을 보낸다. 당연히 마음이 강퍅해지고 언어가 날카로울 수밖에 없다.

 

우리 집에도 벌써 청소년들이 있으니, 어쩌면 내가 안심하는 것보단 더 빨리 가족들이 소위 ‘청년 취업과 실업’이란 문제에 당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수많은 전공들과 수많은 다른 선호와 취향들을 가진 이들의 취업 보장 해법은 무엇일까......

 

작가의 의도는 비교적 확실하다. 자신과 주변인들의 모든 경험들을 가져 와 다 섞어서 버무린 듯한 현실에 충실히 기반을 둔 분위기가 다수이고, 그토록 현실의 문제점을 선명하게 드러내주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위로와 위안과 희망을 보여 주는 일, 그래서 다 읽고 나니 이의 없이 함께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마지막으로 기우일 것이란 생각은 들지만, 그렇다고 이 이야기가 우울하고 진지하고 서글픈 분위기는 아니다. 사회 현실을 이야기하고 픈 작가들이 의례 그렇듯, 풍자적이고 희극적인 스케치가 바탕이 된 내용들을 유려하게 개인의 이야기들로 가져와, 우리 사회의 아이러니와 불합리함을 개개인의 인간관계의 모습들로 생생하게 보여주는 가독성이 큰 이야기이다.

 

* 피카레스크식 구성이 무엇인가 했는데, 다 읽고 나니 뜻밖에 그런 구성이 이 소설의 특징들 중 하나를 이룬다는 점에 동의한다. 에피소드들을 엮는 작가의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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