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금 휘게를 몰라서 불행한가 - 정작 우리만 몰랐던 한국인의 행복에 관한 이야기
한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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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마치 전생의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오래 전 덴마크 연구소에서 계약직으로 일했던 기간이 있었는데, 세계 최고로 깔끔하고 안전하고 예의바른 나라들이라는 북유럽에 대한 일반적 이미지만 있던 나는, 무척이나 이상적인 동료들에도 불구하고, 책임감있는 어른이라면 해서는 안 되는 일, 계약파기를 하고 탈출하듯 떠나온 기억이 있다. 11월에 들어서자 해가 뜨지 않았다. 11시쯤 세상이 희뿌옇게 되다가 2시쯤 깜깜해졌다. 그동안에도 실내에서는 항상 조명을 켜두어야 한다. 여러 불특정 정신 예민증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말 그대로 나는 11월에 들어서면서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급기야 어느날은 죽을 것같은 공포에 통곡을 하고 짐을 쌌다.

 

이 책 제목의 '휘게'는 평생이 걸려도 덴마크어를 배울 수 없을 것같은 확신을 가진 내게도 그 정서가 잘 전달되던 단어이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그 단어는 한국에 수입되면서 미디어상품으로 한층 더 세련되고 부정확하게 유통되기 시작했다.

 

개인이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어 지친 나머지 차라리 '나 자신을 바꾸자'고 전향을 하고 궁여지책으로 찾아낸 방법들은 시대별로 늘 있어왔다. 한동안 불어닥친 인도여행과 명상, 요가도 그 중 하나이고, 현재에 가장 가까운 것은 소확행과 욜로 라이프스타일일 것이다.

물론 웃을 일 없는 일상이 이어지는 것보다는 찾을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작은 행복들과 자구책들을 가능한 많이 자주하고 거기서 힘을 얻는 일에는 아무런 불만이 없다. 실제로 나도 거의 매일 짧은 시간이지만 그런거 없나, 자연스럽게 찾게도 된다. 하지만, 얼마나 부지런히 소확행과 욜로를 실천하는가는, 적어도 나와 내 주변 지인들의 경험으로는, '지속되는 행복'과 크게 상관이 없을 분더러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치 상처가 계속 낫지 않고 악화되는데 제일 마음에 드는 밴드를 사서, 아이 예뻐라, 기분이 좋아지네, 하고 바르는 느낌이랄까.

이딴 식으로 싸잡아 비판을 하려고 글을 시작한 건 아니고, 이토록 뭔가 아는 척 투덜거려도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나 실질적 노력엔 게을렀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렇더라도 계기란 개인별로 다 다른 것이라, 체력과 열정이 매일 더 사그라드는 내게 언제쯤 가동할 에너지로 그 계기가 다가와줄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동안에 속은 시원했다, 부분적으로는 포기하고 싶었던 사고에 다시 힘을 보태줘서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쉽고 간명하고 확실하고 분명한 표현으로 도움을 주고자 하는 이들이 있어 그 사실에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

 

허황되거나 구태의연하거나 젠체하는 내용은 없다. 행복하고 싶었으나, 싶으나, 도무지 그럴 계기가 없는 분들이 읽어보면 좋겠다 싶다. 곧 한가위 연휴, 모드 무탈하시고 평안하시고, 가능하면 누군가는 소원성취를 하는 시간이길 바란다.

 


언제까지 모를 것인가. 학교에서 안 가르쳐주면 영원히 모를 수밖에 없는가.(중략) 알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어떻게든 알게 되어 있다. 나에 대해 모르고 행복해지는 법을 모른다면 배우면 된다.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말이다. 행복해지는 법은 널리고 널렸다. 왜 배우지 않고 못 배웠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행복할 수 없다고만 할까. 17

 

내가 배운 것들로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가 힘들다면 새로운 것을 배우면 된다.(중략)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는 많은 조건을 갖고 있고, 만약 없다면 현재를 바꿀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면 사실상 행복해질 일만 남은 게 아닐까. (중략) 가만히 있어서 달라지는 상황은 없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찾아오는 행복은 없다는 사실이다. 20

 

인생은 이벤트 위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27

 

인생의 본질은 삶을 유지하는 것에 있다. 사람들은 자연 재해나 전쟁, 불행한 사고가 있지 않은 담에야 인간에게 부여된 기대수명만큼 삶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 것 같다. 29

 

돈은 중요하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돈을 추구해야 한다.(중략) 돈이 목표라면 돈을 추구하는 것이 행복이 아닐 이유가 없다. (중략) 그리고 목표로 한 돈을 벌지 못했다고 인생에 실패했거나 불행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 도니다. 당장 원하는 만큼의 돈이 수중에 없다고 해서 그만한 돈이 생길 때까지 인생의 모든 날을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행복해질 일은 영원히 없을 테니까. 행복에 돈은 중요하지 않다는 명제는 이 경우에만 타당하다. 138

 

불만은 행복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더 행복하고 싶다는 의미다. (중략) 달관 세대 운운하는 것은 청년들에게 더 행복하지 말라고 주문하는 것이나 같다. 달관 세대에 대한 예찬이란 어차피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나 느끼면서 꿈도 희망도 갖지 말고 그렇게 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포기를 당연하게 여기지 말자. 포기에서 오는 안도감을 행복이라 착각하지 말자. 그런 깨달음은 없다. 143

 

살면서 꼭 해야 하는 포기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누군가는 힘들이지 않고 충족했던 것들을 포기하라고 가르치는 건 무책임하고 비열한 짓이다. 나는 ‘어차피’라는 말을 대단히 싫어하는데 ‘어차피’라는 말은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소확행은 우리가 살아가야 할 나날에 잠시의 활력소가 되는 정도면 충분하다. (중략) 하지만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은 목적에서 나온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살아야 할 이유를 준다. 163

 


행복하고 싶다는 우리의 욕망에는 뭔가 중요한 것이 빠져있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이다. 나는 행복하고 싶은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나는 그 상태가 되고 싶은가? 나는 왜 그 상태가 되어야 하는가? 나는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가? 그전에 나는 누구인가? 208

 


내려놓으면 여유가 생긴다. 그동안 무언가를 붙잡고 있던 힘과 시간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중략) 하지만 내려놓기 전까지는 매달려보는 경험도 필요하다. (중략) 내려놓는 지혜를 발휘할 때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때까지 할 수 있을 만큼 힘을 내 본 다음이다.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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