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 (영화 원작 소설) - 완역, 1·2권 통합 걸 클래식 컬렉션 1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공보경 옮김 / 윌북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드디어 [작은 아씨들]이다. 걸 클래식 시리즈 중 마지막이며, 968쪽이란 기쁘고 설레는 분량의 훌륭하고 감동적인 새 번역서이며, , 세라, 하이디 모두 부족함이 없지만, 걸 클래식이란 호명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모두 여성작가, 모두 여성 번역가들, 모두 여성인 서문 작성자들, 여성 표지 디자이너, 모두 여성 편집자들. 보석보다 아름다운 여성 고전 선집이다.

 

어릴 적 어떤 식으로든 이들을 만나 무엇이든 느끼고 생각해본 추억이 없는 이들이나, 소위 성인이 되어 내용을 알게 된 독자들은 달리 느끼겠지만, 나는 이 선집이 어린 시절 잃어버린 소중한 보물을 기적처럼 찾게 된 것에 버금가는 감동적인 조우이다. 창밖의 한기로부터 완벽하게 보호받으며 달콤한 향기가 온 집안에 퍼진 듯이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매일 반복되는 세월에 머물 수 있을 듯한, 그 걱정과 염려 없던 시절을 한 번 더 살아 보고 싶다는 환상과 상상을 호명한다.

 

목차를 보며 기억을 떠올려 보자니 마치 청교도 사상가의 전형처럼 검소하고 바르고 강인했던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의 의견을 잘 따르던 자매들이 떠올랐다. 어려서는 작가에 대해 알 생각을 못했는데, 이번에 제대로 알게 되면서 작가에 대해서도 작품 못지않은 여러 생각이 들었다, 루이자 메이 올컷 자신이 청빈하고 엄격한 청교도 집안에서 자란 점. 첫째 메그처럼 가정교사로 일한 것, 남북전쟁 당시 간호사로 근무한 것, 1868년 출간 전후 시기는 여성에게 직업이 허락되지 않고 결혼과 육아만이 삶의 옵션이었던 것, 넷째 에이미는 실제 화가였던 동생이 모델이라는 점 등이다. 그 중에서도 루이자 메이 올컷의 어머니는 그 시절에 드물던 사회운동가로서, 여성의 참정권, 노예 해방과 교육에 관심이 많았으며, 딸인 루이자 메이 올컷에게 글쓰기 재능이 있으니 셰익스피어같은 작가가 될 것이라 격려했다고 한다. 여성이 대학에도 진학하지 못하고, 투표권도 없던 그 시절에.

 

그런 교육의 힘이었을 것이다. 여성운동, 노예해방운동, 금주운동들이 전개되던 그 시절에 올콧 작가가 라는 캐릭터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신비롭고 존경스러운 원동력은. 뚜렷한 꿈이 있고, 몰입할 수 있는 재능이 있고, 살짝 지나치지만 솔직하고 두려움 없이 용감한 캐릭터. 이기적이지 않고 가족에겐 사랑과 헌신을 아까지 않지만 자신의 꿈도 포기하지 않는 현명한 캐릭터. 지금에도 누구나 되고 싶은 캐릭터 중 하나일 것이다. 바로 얼마 전에 제일 좋은 친구에이런 말은 소용없겠지만 좀 영리하게 살아.란 문자를 받았는데, 대고모가 에게 세상 영리하게 살라고 가르치는 장면이 있어 재밌고 짠했다.

 

선물 없는 크리스마스가 무슨 크리스마스야.”

첫 문장이 예전 그대로이다. 마음이 설레고 떨리고 반갑다.

   

나는 더 이상 네 자매 중 한 사람에게 자신을 동일시하지는 않는다. 그 시절은 지나갔다. 대신에 이 작품이 건네는 이야기들이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더 많이 들린다. 어린 시절과는 비교도 안 되게 지금의 나의 고민의 스펙트럼이 넓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그 중 일부는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새겨듣지 못할 지도 모른다.

 

너희가 짊어져야 할 작은 짐에 대해 조언을 해줄게. 때로는 짐이 버거울 때도 있겠지만, 짐은 우리에게 유익한 거야. 짊어지는 방법을 깨달으면 점점 가볍게 느끼게 돼. 243

 

솔직하게는 이런 말에 여전히 조금은 화가 나고 섭섭하다. 그런 마음 배경은 그저 짐을 지고 싶지 않다, 라는 것이다. 그래도 하기 싫은 일을 마냥 하지 않겠다고 펑펑 울며 거부하면 되는 시절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살아간다는 것은 운이 좋아야 때론 가벼운 짐을 지는 일이란 것을, 대부분은 버거운 짐을 지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도 버텨봐야 하는 일이 다반사라는 것을 안다. 서글프다.

 

늙어서 관절이 굳을 때까지,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하는 날까지 계속 뛸 거야. 나를 철들게 하려고 재촉하지는 마, 언니. 사람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는 없잖아. 나는 최대한 오래 아이로 살고 싶어.” 312

 

어린 시절이었지만 나도 최대한 오래 아이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제대로 된 어른이 되는 법을 모르겠다. 아마 늙어갈 테지만 성장은 못하는(grow old, not grow up) 인간으로 마무리할 것 같다는 비통한 예상이 매일 더 확실해진다.

 

조는 자신이 천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글이 잘 쓰일 때면 모든 것을 잊고 몰입했다. 결핍도 근심도 좋지 않은 날씨도 의식하지 않고 상상 세계 속에 안전하고 행복하게 들어앉아 작가에게는 현실과 다름없는 상상 친구들과의 삶을 즐기며 희열을 느꼈다. 그럴 때면 잠도 오지 않고 식욕도 동하지 않았다. 그렇게 행복한 몰입의 순간이 찾아올 때면 밤낮이 짧게 느껴졌고, 결실을 맺지 못해도 매 시간이 너무나 소중했다. 523

 

우리가 읽고 싶어. 우리를 위해 뭐든 써보렴. 세상 사람들은 신경 쓰지 말고 시도해봐. 분명히 너한테 도움이 될 거고 우리도 즐거울 거야.” 843

 

어쨌든 다시 만난 작은 아씨들에서도 역시 의 이야기가 가장 궁금하다. 생계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서 행복하게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은 와 같은 이들은 참 부럽다. 어찌된 일인지 젊은 날의 결심과는 달리 직업은 자아실현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직장인들처럼 나 역시 행복하지 않았다. 집보다 공항에서 더 자주 식사를 해야 했던 워크숍 강의들도, 늘 바쁘고 오랜 기간의 출장들이 많아 세 달 동안 집에 오 일 정도 밖에 들어오지 못한 기업체 일도, 그게 싫어서 9-6타임터널을 반복하던 공사의 무사태평일도, 한국사회 우리가 남이가의 조직생활이 도저히 적응불가능해서 선택한 프리랜서도 모두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게 세월은 멀어지며 흘러갔고 에이미의 열정은 사라지고 베쓰처럼 소심한 마음과 아픈 몸이 남았다.

 

그래서 1868년부터 오늘날까지 150년이 지나도록 수없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현실의 수많은 들을 응원하고 싶다. 오늘날의 는 아마 작은 아씨들의 가난한 것 빼고는 운이 좋은 보다 훨씬 더 힘겹게 살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시대를 뛰어 넘어 두려움 없이 소신껏 살아가는 의지가 되는 어머니도 없을 수 있고, 힘들 때마다 기꺼이 곁을 내어 주고 할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주는 자매들도 없을 수 있고, 혈육만큼 친밀하고 솔직하게 오래 사귈 수 있는 친구도 한 동네에 없을 수 있고, 무엇보다 오롯이 나만의 공간으로 방해받지 않고 즐겁고 행복하게 몰입할 수 있는 다락방도 없을 수 있다.

 

다시 읽은 작은 아씨들은 내가 기억하던 것보다 훨씬 성숙하고 강인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캐릭터들이다. 150년이란 세월이 무색하다. 그야말로 little이란 수식어는 little한 내 인생에나 어울리는 말로 남은 기분이다. 개인의 삶과 가족의 관계, 자신의 바람과 사회적 시선 이런 것들이 내 삶에선 완벽한 불협화음을 이루고 있다. 각각의 고민의 해답은 언제나 숨은그림찾기에 감춰져 있는 것처럼 명쾌한 적이 없다. 이런 우울한 감상을 늘어 놓다보니, 우리 집 10대들은 어떻게 읽어 내는지 몹시 궁금하다. 어쨌든 그래도 나는 이 새로 단장하고 환골탈태한 고전의 무게감이 사랑스럽다. 적어도 그거 하나는 확실한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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