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정치는 왜 퇴보하는가 - 청년세대의 정치무관심, 그리고 기성세대의 정치과잉
안성민 지음 / 디벨롭어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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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9년 대한민국정치와 청년을 주제로 빅데이터를 살펴 보면 어떤 단어들이 나올까. 고령화, 양극화, IMF 키즈, 번아웃, 착취, 아웃사이더, 박탈감, 비혼, 저출산, 개인주의자, 수저계급론, 불평등, 올드보이, 워라밸, 프레임논쟁, 노답, 정치혐오, 세대갈등, 가짜뉴스, 청년보수화, 금수저, 내로남불, 니트족, 일하지않는국회, 결함있는민주주의, 노오력?

 

헬조선이란 용어가 난무할 때, 나는 대한민국의 상황보다도 그것이 청년들의 발화로 자신들의 상황을 표현한다는 점이 두려웠다. 절망과 포기, 그리고/그래서 분노. 특히 얼마 전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에게 협박 편지와 새의 사체를 보낸 이전 대학생 운동권 리더의 소식을 접하고 여러 의미로 몹시 안타깝고 착잡한 마음이 더했다. 혐오와 폭력이 만연하고 절망이 가득한데 정상적인 정당한 방법이 찾아지지 않는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분노는 대부분 원인 제공과 상관없는 이들이나 더 약자들에게 쏟아진다.

 

'Personal is political!' 이 오래된 구절을 꺼내지 않더라도 우리의 일상사는 거의 모두 정치와 관련이 있다. 기본 권리도 의무도 입법도 사법도 행정도 모두 정치권에서 다루는 직업들이니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청년문제'가 이렇게 '헬' 상황인 것 역시 청년들을 위한 정치적, 법적, 제도적, 사회적 해법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수치까지 정확히는 몰랐는데, 이 책에서 제공하는 세부내용들과 수많은 도표들을 따라가면서 몰랐던 팩트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우선 1%의 청년 정치지분을 가진 이들의 총 유권자 수는 35.7%이다. 극단적 불공정과 부정의가 아닐 수 없다. 소수정당차별배제보다 더하다. 즉, 기성세대는 청년들 몫의 정치지분을 모조리 선점/독점/특혜/이익갈취를 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저자가 밝히는 원인과 결과, 대안들을 함께 짚어 보다보면 기성세대로서 달아오르는 얼굴을 어찌해야할 지 모르겠다.

 

이처럼 청소년 참정권을 바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는데도 왜 실현은 이토록 더딘 걸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기성세대가 청소년들에게 참정권을 준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숨김없이 그대로 말하면 자신들이 가진 알량한 권력을 다른 누군가에게 나눠주고 싶지 않은 이기적인 심리 때문이다. 132

 

우리 사회에서 청년으로 살면서 온갖 청년 문제를 경험한 당사자들이 나서야 한다. 지금까지 청년 정치는 생색내기용이었을 뿐 그 실효성 및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이 없었다. 아무 권한이 없는 청년대표들은 당내에서 거수기 역할만 한다. 그들이 과연 청년대표로서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었던가? 또한 세대를 구분하는 기준도 변화하는 세대에게 맞게 새로이 마련해야 한다. 노년층을 몇 세까지 보아야 하는지, 청년층을 몇 세대로 구분해야 하는지 정확한 기준을 세우고 노년층과 청년층 사이의 중년층도 재정의해야 한다. 140

 

과거 모 정당의 청년비례대표 관련 기준을 마련하는 회의에서 만 35세 이하로 낮추자는 안이 운영위원회에 두 차례나 상정되었지만 만 40세 이상의 운영위원들이 일부러 불참했기에 아예 상정조차 못했다고 한다. 146

 

40대는 청년층과 기성세대 사이에 낀 충간자라 어떠한 결정을 내리건 간에 자신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세대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윗세대를 지지하자니 자신의 자식 세대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까 걱정이고, 그렇다고 후배 세대를 지지하자니 몇 년 뒤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칠까봐 두려워한다. 그렇기에 정치적 영향력과 관심이 가장 큰 세대임에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심각한 갈등 요인인 ‘성장과 분배’ 문제에 어떠한 의견도 내지 못한다. 176

 

처음 나는 이 책이 정치판 기득권자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주를 이룰 것이라 짐작했지만, 문제의 주된 원인제공자인 기성세대의 위험한 역할과 그 안에서 겨우 버티거나 그마저도 힘들어하는 청년들의 고된 생존이야기들이 많았다. 그야말로 고구마를 쌓아 놓고 물 없이 계속 먹어야 하는 기분이 들었다. 기성 정치판의 작태들은 구태여 다시 고발 내용을 담고 싶지가 않다. 기득권언론이든 사회유통망이든 그야말로 폭발 직전까지 넘쳐나고 채워지는 것이 노상 그런 이야기들이니. 그러나 살아 가기위해서는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필요하다. 이 책에서도 마지막 파트에서 대한민국의 미래와 청년정치의 방향을 제시한다.

 

많은 청년이 어른이 되었다는 해방감에 기뻐하기보다는 갑작스럽게 어른이 되었음에 적잖이 당황한다.27

 

하지만 꿈을 이루게 될지라도 결국에는 역설적으로 개인의 삶을 가장 피곤하게 하고 때로는 포기하게끔 하는 것 역시 직장이다.41

 

대한민국의 미래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저 병들어가고 있다.55

 

그들의 공통된 이유는 단 한 가지, 자신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 대해 걱정하는 마음이었다.132

 

이럴 때는 살아온 시간만큼 자연스럽게 쌓인 지혜가 없어 할 말이 없다는 점이 늘상 안타깝고 부끄럽니다. 어지간히 수행을 거듭하지 않는 한, 살아보면 안다. 나 또한 있기를 바라고 믿었던 '어른'이 되는 일이 '성인'이 되는 일에 버금가는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냥 나이만 들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4년 생, 어쩌면 청년 막바지에 이른 저자가 잔인할만큼 '기회를 박탈당한' 청년들을 위해 이토록 공들여 절절한 변론서를 썼다는 점이, 자신의 문제를 가장 잘 아는 '청년 당사자'가 나서서 바꿔야 한다는 해법의 희망이고 격려이고 연대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정치를 혐오하는 데에서만 그치면 절대 안 된다. 이러한 인식이 지속된다면 대한민국은 더는 희망이 없게 된다. 아무리 지긋지긋해도 정치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을 심판하고 일하게 해야 한다. 이러한 국민의 의무를 이행하고 권리를 찾지 못한다면,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강탈당하는 것이랑 다를 바가 없다.173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가 하루 빨리 온전히 청년들의 몫이 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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