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검정 고무신
노형욱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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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모님과 차분히 앉아 부모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생각보다 없었다. 간혹 한 두 개, 상황에 맞게 알게 된 에피소드들은 있었지만, '인생통사'를 듣고 알고 이해하는 기회는 놀랍게도 간과되며 살아왔다. 생각해보니 참, 이상한 일이다. 내가 기억하는 시간만큼만 기억하는 이들에 대해서, 그 외의 다른 시간에서 다른 존재로도 분명 살아온 이들에 대해서, 어째서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잘 알고 있다고, 혹은 다 알 수 있다고 막연히 믿을 수 있덨던 것일까. 그건 역지사지도 가능하다. 부모님 역시 자식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바라보실 수 있지만, 24시간 평생 밀착해서 같은 경험을 나눈 경우가 아니라면, 그렇지 않은 부분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아마 그 '갭'이 우리 모두가 때로는 지독한 외로움과 슬쓸함을 맛봐야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로 소통을 해야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할 수 없고 이해받지 못한 부분들을 보듬으며 성장하는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아빠의 검정 고무신]이란 책을 받고 목차를 먼저 보았다. 저자의 어린 시절이 이토록이나 많은 추억들로 가득한 것이 너무나 부러웠고, 그런 추억들을 잊지 않고 글로 재생시켜 책을 만든 점 또한 부러웠다. 가끔 그런 이들이 있다. 그다지 길다고 할 수 없는 시간의 경험을 녹이고 재탄생시켜서 출판물로 세상에 내보이는 재능있는 이들.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도 모두 다 현재의 내 안에 남아 있거나 새로운 나를 구성한다고 믿고는, 대부분 흘려 보내고 마는 나로서는, '결실'을 유형화시켜 내는 이들이 한참 부럽기만 하다.

[아빠의 검정 고무신]은 '아빠'라는 호칭이 있지만, 저자가 내 '아버지'를 연상시키진 않는다. 오히려 나와 연배가 더 가까운 편이다.​ 한편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생각조차 기회조차 없었던 그런 경험들을 하며 성장하셨다는 점이 신기하고도 흥미로웠다. 모든 가정, 모든 개인의 이야기는 각각 다른 것이 당연하지만, 내가 기억을 제대로 못해서인지, 예를 들어 '뱀을 잡아 용돈을 마련한다거나','전기가 처음 들어 온 날'과 같은 에피소드들은 동화 이야기처럼 들렸다.

 

이런 연통 난로 위에 쌓아 둔 도시락들! 초등학교 때 급식을 한 나로서는 그야말로 이야기로만 전해 들은 허기지는 추억이다. '급식'은 즐겁고 행복한 기억이 아니었다. 선생님들이 완식을 하지 않고 남기는 것을 엄격히 지켜보고 있었고, 때로는 먹기 싫은 것을 꾸역꾸역 먹어야하는 '근본주의적'이고 '폭력적인' 시대였으며, 수요일마다 나눠주던 단팥빵과 소보로빵으로 인해 나는 아직도 그 두 종류의 빵을 자발적으로 사 먹지 않는다.


정말 반가웠던 '스카이콩콩' 그야말로 한동안 푹빠져 있었던 듯하다. 까맣게 잊었는데, 그야말로 기억소환의 기쁨을 톡톡히 느꼈다. 그리 경쟁적이지 않는 성격이라 친구들과 내기를 하거나 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정말 매번 신이 났다. 그러다 어느 새 녹슨 그 스카이콩콩은 어떻게 되었는지, 배웅을 한 기억이 없어 새삼 쓸쓸하다. 그나저나 저자의 말대로, 삽으로 스카이콩콩을 타는 방법도 있었다니! 역시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조선 나이키' 기발한 작명이다. 시의적절하게 마침 일본제품 불매운동의 시기, 나는 아직까지 신어보지 못해 추억이 없는 '검정 고무신', 이왕이면 검정색 하나, 흰색 하나 장만해 보고 싶다. 어느 계절에 가장 편할 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내게도 기분 좋은 추억들이 생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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