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초등학생, 나는 공자랑 논다
조희전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4월
평점 :
품절
내 세대는 흔하진 않지만 그래도 어렸을 적 동몽선습이나 천자문을 배우는 기회가 있던 시기였다. 취학 전 큰 소리로 따라 읽은 동몽선습은 취학 후 전혀 다른 형식과 내용의 교육을 받으면서 곧 그 내용을 잊어버렸고, 천자문은 ‘천지현황’부터 아리송하기 시작해서(하늘이 왜 검다는 거지?) 책 전체를 아우르는 일관된 주제를 파악하기가 난해한 책이었고, 서너 번 시도는 했으나 결국 ‘천자’를 다 알기 전에 완전히 포기하곤 다시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 후로도 가끔 접하게 되는 고전에서 ‘충’, ‘효’ 이데올로기가 너무 강조되는 내용들은 드러내지는 못해도 마음에서 본질적으로 거부하거나 포기하는 결과를 양산해서, 어릴 적 고전에 대한 경험과 인상이 그다지 유쾌하거나 유익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다 시기가 늦어진 것이 후회가 될 만큼 고전의 매력과 가르침에 대해 감탄하고 존경하게 된 시기는 대학원 시절, 문사철 친구들과 함께 한 고전읽기 모임에서였다. 공자가 세계 4대 성인 중 한 명이라는 것은 정보로서만 알고 있었지만, 성인들의 가르침과 관련 서적들이 종교로 믿는 마음이 강한 경우가 아니라면, 현실에서 상식적으로나 학문적으로 그다지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내용들이 아니란 생각에 내게는 권위가 없었다.
그런데, <논어>는 전혀 다른 분류의 서적이었다. 문장이 단아하고 깔끔하고 가르침이 담백한 것은 저자 공자를 닮은 점일 것이다. 그러나 그 가르침의 내용과 깊이는 촌철살인에 잘 어울리는 통찰과 결기를 담고 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놀라고 감동하고 존경하게 되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변에 <논어>는 읽어 보면 참 좋을 것이라고 소심한 추천을 건네곤 했다.
다른 고전은 결과적으로 실패인 듯하다. <맹자>는 결국 끝까지 읽지 못했고, <주역>은 이해가 불가능했다. 내 개인의 역량이고, 혹시 세월이 더 지나면 언젠가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논어>에 한한 한, 내 애정은 변함없거나 더 늘어날 것이고, 추천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좋은 것은 일찍 접할수록, 널리 알리고 나눌수록 더 좋으니, 우리 집 꼬맹이들에게도 권해 보았다. 중국어회화는 재밌어 해도 한자는 피카소보다 더 어려워하니, 한자가 없는 <논어>책 소문을 듣고 그 시작으로 삼았다. 그런 중에도 글쓰는 것, 필사는 좋아라 하니 필사도 가능한 한글로 따라 읽고 쓸 수 있는 책이라 딱 적합했다.
위대한 사람이 되라고 스스로의 열등감을 후벼 파는 것도 아니고,
고루한 훈육을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선생과 제자란 어떻게 서로 존중해야 하는지,
즐겁게 배운다는 것은 무엇인지 느끼게 해주고,
그러다 보면 자신의 처지에 맞는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고,
당장은 현실적 도움을 찾진 못해도 마음속에 보석처럼 빛날 감동을 받을 수도 있는 그런 경험이 되기를 바란다.
단기성과, 혹은 어떤 분야든 소위 ‘한방’이 인생을 결정하는 극단적 시험/결과/성과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2,5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르침들이 전해 내려올 수 있었는지, 어떻게 끝없이 감동을 줄 수 있는지, 그런 것들을 경외와 경애의 마음으로 느껴 가면 좋겠다.
아이들이 따라 쓰는 옆에 앉아 있다 보니, 다시 <논어>의 원문을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음에는 나도 필사의 대열에 합류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