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만지는 아이를 보는 서로 다른 시선
한송이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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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을 읽고 짐작한 것과는 달리,

이 책은 달팽이를 만지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서로 다른 시선이 형성되는 여러 통로들과 그 과정에서의 의미부여,

그리고 그로 인한 변화와 사적/공적 파급 영향에 대한 언급이

주가 되는 책이다.

누구나 삶을 살고 누구나 이런저런 경험을 하기 마련인데,

어떤 경험들은 이렇게 정리되어 출판물로 정리되고 태어난다.

간혹 비슷한 경험에는 더 많은 공감을 느끼며 그 노고를 나누는 일에 감사한다.

 

대한민국은 상당히 진지한 지배철학이 대다수 시민들의 삶에 크건 적건 영향을 미치는 독특한 사회이다. 나는 비교적 크게 영향을 받은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 속하며 살아 왔기 때문에, 큰 의심을 품을 줄 몰랐고, 그래서 살면서 또 다른 영향들 또한 큰 소리를 내며 부서지고 받아들이는 격렬한 경험들을 하게 되었다. 그 진지함을 대표하는 질문 중의 하나가 모든 행위와 존재의 의미를 찾는 일이다.

 

유학 시절, 지도 교수들 중 한 명이 날 좋은 저녁, 야외에서 식사를 함께 하며, 마치 농담인 듯 질문을 던졌다. “meaning of life만 고민 말고, life of meaning”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라고 했다. 이 질문에 대해 이 책의 작가는 산뜻하면서도 최상의 긍정적인 결론을 내린다덕분에 나도 오랜만에 그 한때를 그립고도 분명 행복하게 반추해 보았다.

 

10년 동안 타지에서 생활하면서, 산다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였다.(...) 내가 중요하게 여긴 가치들은 내가 있는 곳을 떠나면 더 이상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7


한 세기를 다 살고 나서도 인생을 무의미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할지라도 난 의미를 찾는 일을 멈출 순 없다. 다만, 행복에 집착하는 행위가 행복을 느끼는 것을 방해한다는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의미에 대한 집착을 조금은 내려놓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삶의 의미, 일의 의미, 여행의 의미, 사랑의 의미가 좀 없으면 어때... 그래도 난 삶이 좋은걸. 17

 

유학을 떠나기 전,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되면서, 나는 "이제 모든 사회운동은 저절로 끝이 날 것이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볼 수 있고, ‘다른 사회는 어떤 대안을 현실화할 수 있었나직접 보고 배운다면, 더 이상 우리끼리 결론 없는 소모적 싸움은 안 해도 될 것이다.”라고 진심으로 희망을 가졌다. "몰라서 그렇지 알면 우리가 뭐가 모라자서 왜 못하랴! 신난다! 세계평화의 도래다!" 그런 희망을 가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변화가 눈에 띄지 않았다. ‘해외여행은 내가 이상적으로 그렸던 개안의 여행이 아니라, ‘해외관광의 붐으로 몸집을 늘렸고, 씁쓸하게도 한동안 싹쓸이 해외쇼핑범주 안에 머물렀다. ‘소비의 쾌락과 미덕은 적수 없이 위세를 떨쳐 나갔다.

 

경험을 소비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기쁨은 소유가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기쁨에 비해 더 오래 그리고 더 강하게 영향을 준다고 하지만(최인철, <프레임>)(...) 타 문화에 대한 존중과 열린 마음을 배우고, 인류가 남긴 아름다운 문화유산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여행이라는 경험의 소비가 물질의 소비와 다를 게 뭐 있을까?(...) 남들과 다른 특별한 경험을 하기 위해 과하게 하는 경험의 사치가 내 인생에 어떠한 의미를 줄 수 있을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수는 있다. 21


여행을 포함한 다양한 경험의 소비가 그저 일회성 소비에 그치거나, 너무 과도한 사치가 되지 않고, 우리의 삶을 성숙하게 하고, 우리의 마음을 열리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여행을 통해, 개개인이 자유와 행복을 느끼는 동시에 세계가 서로를 이해하고 하나가 되는 멋진 세상이 되기를 꿈꾼다. 21

 

그 후 나는 다른 사회의 삶의 방식을 보고 배우는일에 대한 일말의 기대도 남겨 두지 않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달랐다. 역시 긍정에 희망을 더한 글을 남겨 두었다. 읽다 보니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회고록도 아닌데 자꾸만 이런 비교 방식으로 책을 읽어 나가게 된다.

 

과정이 중요하다. 무슨 일을 하든지 과정을 무시한 결과는 참사를 낳는다.(...) 결과도 종요하다.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으나,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그 방법은 폐기처분된다.(...) 결과가 좋으면 과정이 미화가 된다. 그 모든 실패와 실수들이 성공으로 가기 위한 배움의 단계로 둔갑한다. 저게 뭐냐며 손가락질 받았던 모습들이 갑자기 너무 멋있고 개성 있는 특별한 모습으로 승화된다.(...) 과정에 충실하면서도 좋은 결과를 낸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이 두 가지 모두 포기할 수 없다. 우리의 인생을 걸어 볼 만하다. 47

 

그러고 보면 나는 늘 이런 이들이 부러웠다. 인생길이 명확하게 보이는, 정리된 이들. 문사철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던 자연과학도였던 나는, 눈 먼 과학을 하는 오류 정도는 피해가고자 온갖 우려와 꾸지람을 들으면서 한 때 진지하게 철학을 전공한 적이 있다. 그러나 지도 교수의 최초의 충고처럼, 배우면 배울수록 할 수 없는 일들만 늘어갔다. 그러다 보니, 위의 예문의 저자처럼, ‘인생을 걸어볼 만한 일같은 건 찾지 못했다. 그 이유에는 과정결과에 대한 사회철학적 담론을 통해 누적된 토론의 무게만으로도 가히 숨쉬기가 어려운 학계의 사정도 포함되어 있다. 과거의 결심과 지금의 나에 대해 마구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살다가 산뜻하고 명쾌한 세계관을 가진, 그에 따라 사는 이들을 만나면, 늘 얼마간 부러움이 마음에 번진다.

 

이 책의 저자 한송이 교수는 생각하며 사는 일의 거의 전 방위에 걸쳐 다독이며 의견을 개진한다. 그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위안을 받기도 하고, 재밌게 웃을 수도 있고, 가끔은 벅차게 놓아버린 일들이 상기되어 상당히 마음이 욱신거리기도 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얼마나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을 실천하고 있는가? 우리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일치하고 있는지 생각해 본적 있는가? 93

 

이런 대목들이다. 그러다 절대선과 자유처럼 거대 담론을 방문하기도 하고, ‘화를 내는 나만의 좋은 방법을 개발하는 것은 인간의 행복지수에 영향을 미친다(107)’는 당장 필요한 조언에 이르기도 한다.

 

그러다 책을 덮고 나면, 결국 작가든 독자이든, 쓰든 읽든 그 모든 만나는 행위들이 서로 격려하며 살아가자는 그런 토닥토닥이라는 느낌이 남는다.

 

달팽이를 만지는 아이를 보는 서로 다른 시선,이 존재할 때 어떻게 현명하게 조율해야 하는지, 그런 현실적인 고민이 실재해서 반가웠던 제목의 이 책은, 저자가 공들여 올려 준, 늘 파랄 것만 같은 하늘과 그 모든 사진들을 보며 한 숨을 쉬어 가는 휴식을 대신 전해 주었다.

 

구체적인 고민은 인생 전반에 대한 자세와 대비가 있다면,

그때그때 구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으리란, 그런 조언이었을까.

 

아무튼 는 악의와 탐욕이 배제된 서로 다른 시선들

더욱 많아지길 바란다.

 

그 반대급부로 전체주의적 사고와 유행이 제발 사그라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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