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 21
가라타니 고진 지음, 송태욱 옮김 / 사회평론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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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작품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바위 위에 서서 안개 바다를 보고 있는 한 남자를 볼 때, 느껴지는 감정. 세상의 험하고 거친 파도를 꿋꿋이 헤쳐 나갈 것 같은 단독자의 모습과 한없이 외로워 보이는 그저 한 남자의 모습. 두 개의 이미지가 겹쳐져 결국 내 안에 작은 신화로, 아우라로 각인된다.

가라타니 고진의 이 책은 칸트의 철학을 지팡이 삼아 일본의 전후 전쟁책임 문제를 다루고 있다. 칸트의 윤리는 칸트식의 자유 개념이 그 핵심에 있다. 가라타니 고진은 먼저 ‘구조’를 인정한다. 세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로서의 인간. 설사 지금부터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 살아도 과거 내가 배운 것들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서의 인간 말이다.

그런 구조 하에서 우리의 자유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에 칸트를 빌려 고진은 말한다. 자유는 구조를 배제하고(괄호치기 하고) 사물과 삶을 대하는 태도다. 즉 당위다.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해 내가 손해를 보고 사회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외로워지더라도 나는 자유로워져야 한다.

마치 니체의 ‘위버맨쉬’ 같다.

딱딱하고 어쩌면 너무 거창하기도 한 칸트의 자유개념은, 그러나 내가 아는 자유로운 사람들, 거창하거나 딱딱하지 않은 소로우나 조르바에게 너무 잘 어울리는 말이다. 자유의 당위를 어깨에 짊어야 할 무거운 짐으로 여기지 않고 자전거 마냥 여기는 자세. 그런 것이 나에게는 필요하다.

페달을 밟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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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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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첫째, 이미 명확히 알고 있었던 것들
1. 자유시장이라는 것은 없다.
3. 잘 사는 나라에서는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을 많이 받는다.
5. 최악을 예상하면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
8. 자본에도 국적은 있다.
9. 우리는 탈산업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10. 미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아니다.
12. 정부도 유망주를 고를 수 있다.
13.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14. 미국 경영자들은 보수를 너무 많이 받는다.
17. 교육을 더 시킨다고 나라가 더 잘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19. 우리는 여전히 계획경제 속에서 살고 있다.
20. 기회의 균등이 항상 공평한 것은 아니다.

둘째. 생각해 보지 않았거나 관심이 별로 없었던 것들.
4.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
6. 거시 경제의 안정은 세계 경제의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7. 자유 시장 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는 거의 없다.
11. 아프리카의 저개발은 숙명이 아니다.
15.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 나라 사람들보다 기업가 정신이 더 투철하다.
16. 우리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도 될 정도로 영리하지 못하다.
21. 큰 정부는 사람들이 변화를 더 쉽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22. 금융시장은 보다 덜 효율적일 필요가 있다.
23. 좋은 경제 정책을 세우는 데 좋은 경제학자가 필요한 건 아니다.

셋째. 미리 더 명확히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2. 기업은 소유주 이익을 위해 경영되면 안 된다.
18. GM에 좋은 것이 항상 미국에도 좋은 것은 아니다.

셋째 분류가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그래도 현재의 주류 경제시스템에 대한 저자의 반박에는 공감이 많이 되어 쉽게 수긍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의 실천에 있어서는 조심스럽게 접근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저자도 교육이 경제적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데는 매우 회의적이라면서도 개인의 삶의 질이라든가 하는 부분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말로써, 경제적 목표만이 아닌 다른 목표도 중요함을 인정하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나도 정치적 이유(즉 정치적 목표)로 저자의 해법들 중 일부에 대해선 도리도리 할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그가 이 책에서 의도하는 것은 경제시스템에 대한 정부의 계획/실천에 힘을 실어 주자는 것인데, 이를 실제 환경에서 적용할 때에는 오히려 개인의 자유가 억압된다든가 민족주의가 극성을 부린다든가 정계와 재계의 야합이 더 심화된다든가 아니면 공무원들의 부정부패가 만연해 진다든가 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우려가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미 과거에 우리가 겪어왔던 것들.. 지금도 여전히 문제가 있는 것들 말이다. 정치적으로 보면 저자의 주장은 권력을 부자들에게서 관료 쪽에 더 몰아주자는 것으로도 들린다. 시민들한테는 그 놈이 그 놈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우려가 안 들 수가 없다. 현재의 정경유착 수준으로 볼 때 더욱 더 말이다.

이런 문제가 최소화 되려면 결국 먼저 또는 동시에 정부(및 정치권)가 정의로워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대부분의 국민/시민이 그 정부의 정의로움을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다른 이해자 집단도 정부, 재계와 대등하거나 거의 어느 정도는 비등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저자도 얘기했듯 ‘기회의 균등’이라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피땀을 흘려 투쟁한 결과로 성취한 것들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해 많은 선진국들에서의 그런 대안집단(대표적으로 노조)의 힘은 이미 많이 쇠퇴한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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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인데, 새벽에 눈을 떴다. 12시 넘어 잤는데, 주말에 이러기는 정말 오랜만이다. 잠이 더 올 것 같지도 않아…

최근에 읽은 소설들, 평가에 인색한 편이지만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었던 다섯 권에 대해 몇 가지 더 써 보고 싶어서,

내 스타일, 이라고 말할 뭔가가 있긴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섯 권 중 내 스타일에 딱 맞아 이 저자의 다른 작품이 나온다면 두 말 없이 바로 사겠다고 생각한 것은 존 맥그리거의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이다. 현재(Present). 인지과학 관련된 책에서 얼핏 읽은 게 0.2초라고 했던가 0.02초라고 했던가. 우리가 인지하는 점(point)으로서의 최소 시간은 그 정도의 시간이라고 하던데, 이 소설은 나를 그 ‘현재’에 ‘현존’할 수 있게 해 줬다. 자전거를 탄 것 마냥 또는 서두르지 않는 걸음으로 그래도 약간 빠른 보폭으로 걷는 것 마냥 현재의 시간을 제대로 살게 해 준다. 또 몇몇 눈에 띄는 새로운 시도조차 이상하게 보이지 않고, 형식미랄까. 그런 것도 맘에 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스타일이라고 한 이유는 아마도 존 맥그리거가 그리는 세계가 내가 선호하는 철학적 바탕에서의 세계와 일치하거나 비슷하기 때문이겠지.. 절대악도 절대선도 없고, 각각의 진지함과 가벼움이 있고, 화창함과 소나기가 있고, 일상과 기적이 섞여있다고 생각하는 것.. 뭐랄까. 하여간에 그런 것.

다섯 권 중 가장 어두운 책은 뭐였을까. <<로우보이>>도 어둡고 <<부적>>도 어둡고 <<찌꺼기>>도 어둡다. <<부적>>은 그래도 그나마 밝은 측면이 있었으나, <<로우보이>>와 <<찌꺼기>>는 모두… 그래도 하나를 꼽자면 어쩔 수 없이 톰 매카시의 <<찌꺼기>>를 들 수 밖에 없다. 같은 ‘이상 증세’라도 <<로우보이>>의 그것은 ‘동정’을 품을 수는 있는 것이었지만, <<찌꺼기>>는 그럴 수 없었다. <<찌꺼기>>의 주인공 성향은 <<이방인>>의 뫼르소와 거의 정반대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래도 공유하고 있는 것이 있어 보인다. 뭐랄까.. 아주 어두운 쪽으로 기운 뫼르소 라고 할까. 그런 느낌을 받았다. 미칠 듯이 한쪽으로 편향되어 사람을 홀리게 만드는 어둠을 만들어낸다. 기절할 것 같은 세계관.

<<부적>>은 무엇보다 그 ‘꿈틀거림’이 기억난다. 늪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는 것마냥. 혼란스러운 와중에 느끼는 존재의 어쩔 수 없는 꿈틀거림. 그렇게 피동적인 듯 느껴지지만 그런데도 ‘뱀’이 느껴졌다. 난 그것이 좋았다. ‘뱀’이 느껴졌다는 사실 자체가. 아마,, 우리 문학에서의 ‘풀잎’의 상징과 분명히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엄연히 완전히 다른 이미지로서의 ‘뱀’. 초반에 혼란스럽지만 점차 가닥을 잡아가는 꿈틀거림을 느끼면서부터 로베르토 볼라뇨의 <<부적>>은 내 마음에 와 닿았다.

존 레이의 <<로우보이>>는 일단 그 목소리. ‘로우보이’의 목소리가 사람을 잡아 끈다.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사춘기 소년. 정신분열증과 성적욕망을 그려내고 있지만,, 무엇보다 그 목소리를 목소리답게 만드는 것은 ‘소명’, 자기의 삶에도 어떤 ‘의미’가 틀림없이 있으리라는,, 그걸 구현하려는 의지. 그 ‘소명’이 안쓰럽게도 보였다가, 그 안쓰럽게 본 나의 시선에 얽혀있는 편견을 깨닫게 되는 순간. 아.. 하고 결국 그런 한숨도 아니고 감탄도 아닌.. 그런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이들 블랙에 가까운 스펙트럼의 세 권 소설과 반대편에 제프리 무어의 <<아무 일도 없었고, 모든 일이 있었던>>이 자리한다. 앞의 네 권이 관념적인 일면이 있다면, 물론 제프리 무어의 이 작품도 그런 측면이 없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훨씬 감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경험에 바탕을 뒀다고 말해야겠지. 찰스 디킨스. 디킨스적 세계다. 물론 디킨스 보다는 밝지만.. 그래도. <<로우보이>>에서도 도주하는 리얼한 움직임이 나오는데 아주 진지한데 반해, 제프리 무어에서의 움직임은 실수할 것 같은 예감을 품은 움직임이고 그래서 재미있고 웃음지을 수 있는 그런 움직임이다. 말장난은 짜증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즐길 수 있는 정도. 무엇보다 이 소설이 앞의 네 권과 다른 것은 이성 간의 ‘사랑’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두근두근. <<찌꺼기>> 주인공이 <<로우보이>>보다 더 어둡게 느껴지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서른 나이 즈음의 주인공이 전혀 ‘성적 욕망’을 비치지 않는 다는 것도 한 몫 한다. 제프리 무어의 이 작품은 다섯 권 중 유일한 연애소설이다. 다섯 권 중 주변의 사람들에게 그나마 권할 수 있는 소설. 나머지 네 권을 권했다간 글쎄.. 하여간. 쉽게는 권하지 못하지. 아마, 참.. 이해 못할 취향이라고 여겨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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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꺼기
톰 매카시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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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끝으로 갈수록 더해지는 밀도로 인해, 있는 힘껏 밀어내는 기분으로 읽어나갔다. 점점 더해지는 재연의 규모와 주인공이 재연에 몰입하는 정도에 비례하여 독자인 나도 어느덧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이다. 주인공, 주인공의 병참 비서라 할 수 있는 나즈, 저자 톰 매카시, 그리고 독자인 나 이렇게 넷이 4인5각으로 골인지점을 향해 엄청나게 밀어붙이는 모습이 마치 극장에서 공연을 보듯 그렇게 보였다.

2.
그 몰입의 마지막, 소실점은 한 마디로 ‘미친’ 것이다. 집중력을 어마어마하게 높여 마치 포뮬러1 머신들의 어마어마한 속도 속에서 드라이브를 하는 선수의 그것과 같은 지경이다. 그 속도를 견딜 수 있는 시간은 한계가 있고 주인공은 그 한계를 넘는다. 그리고 정말 흔해 빠진 말이지만 정말 흔하지 않는 의미에서 ‘미친’다. <<미쳐야 미친다>>의 긍정적 미침이 아니다. 거의 공포스런 미침이다.

3.
우연한 사고로 얻은 엄청난 보상금으로 그가 한 일은 ‘재연’을 위해 장비를 갖추고 사람들을 부리는 일이었다. 명령을 하는 것. 자신만을 위해 타인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 그것은 그가 재연을 되풀이 함으로써 자기 몸에서 생성되는 오피오이드(아편 같은 호르몬)로 인한 황홀감 만큼이나 아마도 그를 빠뜨렸던 것 같다. 증폭제로서 기능하는 부, 권력.

4.
제목 <<찌꺼기>>의 원 제목이 <<Remainder>>인데, 소설은 정말 이 낱말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되풀이하고 확장하고, 요리조리 기가 막히게, 존재론적으로, 윤리적으로, 법률적으로, 경제적으로, 미학적으로 사용한다. 잉여, 물질, 얼룩, 벽에 난 금, 조각에서 덜어내야 하는 부분, 나머지, 리시두얼 등등 수 많은 낱말이 결국 Remainder로 귀일한다. 파리지옥에 걸려든 것처럼, 어느새 우리는 숨을 멈추고 공포에 휩싸인다.

주인공이 ‘재연’을 시작할 때부터 소설은 굉장해진다.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여 찌꺼기를 걸러내고 ‘진짜’에 이른다는 아이디어와 그 반복의 ‘의미’를 ‘혼자만’ 안다는 것이 얼마만한 미친 어둠을 만들어내는지..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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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문학.판 시 2
이성복 지음 / 열림원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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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 무섭다. 로베르토 볼라뇨의 <<부적>>을 읽다 나온 여러 시인들 중 파울 첼란의 시를 보고 싶어 네이버를 검색했더니 이성복의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이 검색되었다. 무슨 일로 이성복의 시집에 파울 첼란이 검색되었는지 들춰보니 이성복이 그가 읽은 해외 시인들의 시에 자신의 목소리를 덧붙여 내고 있었다.

마침 나는 나의 글에 불만 갖고 있는 참이어서, 총알배송으로 얼른 받아보았다. 그리고 읽었다. 그리고 아, 시인들의 시어들은 참.. 남다르긴 하구나 하는 것과 아, 글쓰기의 방향의 종잡을 데 없음이 차라리 자유로구나 하는 걸 느꼈다.

읽은 책에 말을 걸기는 결국 내가 살고 있는 세계와 내가 거처하고 있는 나라는 세계에 대한 자유스런 종잡을 수 없는 카오스 속 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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