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인데, 새벽에 눈을 떴다. 12시 넘어 잤는데, 주말에 이러기는 정말 오랜만이다. 잠이 더 올 것 같지도 않아…

최근에 읽은 소설들, 평가에 인색한 편이지만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었던 다섯 권에 대해 몇 가지 더 써 보고 싶어서,

내 스타일, 이라고 말할 뭔가가 있긴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섯 권 중 내 스타일에 딱 맞아 이 저자의 다른 작품이 나온다면 두 말 없이 바로 사겠다고 생각한 것은 존 맥그리거의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이다. 현재(Present). 인지과학 관련된 책에서 얼핏 읽은 게 0.2초라고 했던가 0.02초라고 했던가. 우리가 인지하는 점(point)으로서의 최소 시간은 그 정도의 시간이라고 하던데, 이 소설은 나를 그 ‘현재’에 ‘현존’할 수 있게 해 줬다. 자전거를 탄 것 마냥 또는 서두르지 않는 걸음으로 그래도 약간 빠른 보폭으로 걷는 것 마냥 현재의 시간을 제대로 살게 해 준다. 또 몇몇 눈에 띄는 새로운 시도조차 이상하게 보이지 않고, 형식미랄까. 그런 것도 맘에 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스타일이라고 한 이유는 아마도 존 맥그리거가 그리는 세계가 내가 선호하는 철학적 바탕에서의 세계와 일치하거나 비슷하기 때문이겠지.. 절대악도 절대선도 없고, 각각의 진지함과 가벼움이 있고, 화창함과 소나기가 있고, 일상과 기적이 섞여있다고 생각하는 것.. 뭐랄까. 하여간에 그런 것.

다섯 권 중 가장 어두운 책은 뭐였을까. <<로우보이>>도 어둡고 <<부적>>도 어둡고 <<찌꺼기>>도 어둡다. <<부적>>은 그래도 그나마 밝은 측면이 있었으나, <<로우보이>>와 <<찌꺼기>>는 모두… 그래도 하나를 꼽자면 어쩔 수 없이 톰 매카시의 <<찌꺼기>>를 들 수 밖에 없다. 같은 ‘이상 증세’라도 <<로우보이>>의 그것은 ‘동정’을 품을 수는 있는 것이었지만, <<찌꺼기>>는 그럴 수 없었다. <<찌꺼기>>의 주인공 성향은 <<이방인>>의 뫼르소와 거의 정반대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래도 공유하고 있는 것이 있어 보인다. 뭐랄까.. 아주 어두운 쪽으로 기운 뫼르소 라고 할까. 그런 느낌을 받았다. 미칠 듯이 한쪽으로 편향되어 사람을 홀리게 만드는 어둠을 만들어낸다. 기절할 것 같은 세계관.

<<부적>>은 무엇보다 그 ‘꿈틀거림’이 기억난다. 늪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는 것마냥. 혼란스러운 와중에 느끼는 존재의 어쩔 수 없는 꿈틀거림. 그렇게 피동적인 듯 느껴지지만 그런데도 ‘뱀’이 느껴졌다. 난 그것이 좋았다. ‘뱀’이 느껴졌다는 사실 자체가. 아마,, 우리 문학에서의 ‘풀잎’의 상징과 분명히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엄연히 완전히 다른 이미지로서의 ‘뱀’. 초반에 혼란스럽지만 점차 가닥을 잡아가는 꿈틀거림을 느끼면서부터 로베르토 볼라뇨의 <<부적>>은 내 마음에 와 닿았다.

존 레이의 <<로우보이>>는 일단 그 목소리. ‘로우보이’의 목소리가 사람을 잡아 끈다.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사춘기 소년. 정신분열증과 성적욕망을 그려내고 있지만,, 무엇보다 그 목소리를 목소리답게 만드는 것은 ‘소명’, 자기의 삶에도 어떤 ‘의미’가 틀림없이 있으리라는,, 그걸 구현하려는 의지. 그 ‘소명’이 안쓰럽게도 보였다가, 그 안쓰럽게 본 나의 시선에 얽혀있는 편견을 깨닫게 되는 순간. 아.. 하고 결국 그런 한숨도 아니고 감탄도 아닌.. 그런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이들 블랙에 가까운 스펙트럼의 세 권 소설과 반대편에 제프리 무어의 <<아무 일도 없었고, 모든 일이 있었던>>이 자리한다. 앞의 네 권이 관념적인 일면이 있다면, 물론 제프리 무어의 이 작품도 그런 측면이 없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훨씬 감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경험에 바탕을 뒀다고 말해야겠지. 찰스 디킨스. 디킨스적 세계다. 물론 디킨스 보다는 밝지만.. 그래도. <<로우보이>>에서도 도주하는 리얼한 움직임이 나오는데 아주 진지한데 반해, 제프리 무어에서의 움직임은 실수할 것 같은 예감을 품은 움직임이고 그래서 재미있고 웃음지을 수 있는 그런 움직임이다. 말장난은 짜증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즐길 수 있는 정도. 무엇보다 이 소설이 앞의 네 권과 다른 것은 이성 간의 ‘사랑’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두근두근. <<찌꺼기>> 주인공이 <<로우보이>>보다 더 어둡게 느껴지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서른 나이 즈음의 주인공이 전혀 ‘성적 욕망’을 비치지 않는 다는 것도 한 몫 한다. 제프리 무어의 이 작품은 다섯 권 중 유일한 연애소설이다. 다섯 권 중 주변의 사람들에게 그나마 권할 수 있는 소설. 나머지 네 권을 권했다간 글쎄.. 하여간. 쉽게는 권하지 못하지. 아마, 참.. 이해 못할 취향이라고 여겨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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