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na's Kitchen 요나의 키친
고정연 지음 / 나비장책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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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마음에 들어서, 왜 이 책 요리 사진들이 맘에 드는 걸까.. 하고 잠깐 생각해 봤다. 실은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 느낀걸 테지. 요리 사진은 어렵다. 내 경우엔 인물사진 보다 더 어렵다고 늘 생각해 왔다. 차가운지 더운지, 불고기 같은 육류인지 오이나 토마토 같은 것을 마요네즈 등에 버무린 샐러드인지. 식당인지 부엌인지. 카메라 색온도 조절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원하는 사진은 굿바이다. 아주 잘 찍은 요리 사진이다. 저자가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어서 그런 걸까? 그건 모르겠지만. 요리의 온기와 질감 표현뿐 아니라 구도 또한 뛰어나다. 피사체를 프레임 안에 가득 담아서인지 아주 먹음직스럽다. 이 사진들이 더 마음에 든 이유는 그릇과 테이블셋팅이 조연으로 충실하다는 데 있다. 최근의 음식 잡지에 실린 사진들을 보면 요리가 주인공인지 테이블셋팅이 주인공인지 모를 정도로 뒤죽박죽인 게 많다. 핵심은 요리여야 한다. 그릇과 테이블셋팅에 지나치게 치중하면 주인공인 요리는 파라핀으로 밀랍 된 것처럼 죽어 보인다. 입맛이 확 달아난다. 행복감도 싹 가셔진다. 68페이지의 차나 마살라 탄두리 치킨 버거 사진이나 54~55페이지의 칠리 빈 파스타 사진 등을 보면 군침이 돈다. 아주 행복한 기분이 든다.

 

모든 책은 성장이거나 성숙이다. 그런데 요리 책은 행복이다. 그걸 느끼고 싶어서 요리 책들을 요즘 좀 샀다. 계속 봐줘야 할 듯. 일단 이 책은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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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12-18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게 말씀하신 그 책이로군요! 방금 미리보기로 조금 봤어요. 저는 요리를 잘 하지도 못하고 뭔든 만들기만 하면 요리가 메롱이 되어버리는데 그래서 요리에 관심 없는데, 음식 사진을 보는건 왜이렇게 좋을까요. 이 책 저도 한 번 봐야겠어요. 흣.
:)

dreamout 2012-12-18 20:22   좋아요 0 | URL
저도 음식 솜씨는 꽝인데.. 잘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기도 하고, 음식 사진 보는게 마냥 좋기도 하고.. ㅎㅎ

라로 2012-12-18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는 요리책을 무조건 좋아하는 사람인데 왜 이 책을 몰랐을까요!!! 당장 보관함에 담아갑니다. 늘 좋은 책 소개 감사드려요~~.^^

dreamout 2012-12-18 20:24   좋아요 0 | URL
레시피를 읽으니 저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요리더라구요. ㅎㅎ
요리책 좋아하고 음식 잘 하시는 분들은 괜찮을 듯 해요~ ^^

samsuni76 2012-12-23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리책이라니 정말 의외!!^^진짜 요리책이에요?

2012-12-23 2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만의 베스트 책을 매년 꼽는다.

틀림없이 이 책은 올해 읽은 논픽션 중 최고다.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과 더불어.

 

 

'저항의 본령은 어떤 대안, 좀 더 공정한 미래를 위한 희생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아주 사소한 구원이다. 문제는 이 사소한 이라는 형용사를 안고 어떻게 시간을, 다시 살아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책을 읽어가면서 '사소한 이라는 형용사를 안고 다시 살아가고 있을' 사람들과의 연대의식을 느꼈다. 그래서 영화 《26년》을 봤다. 보고 나서 후반부를 읽었는데, 152페이지에 새로운 독재자들의 얼굴에 대한 연구. 라는 글에서 북반구 독재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며 실린 드로잉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영화 《26년》의 '그놈'과 똑같이 생겼다. 그놈을 보고 그린 것 아닐까 싶을 만큼 흡사하다. 이 초상화를 제외하면 모두 아름다운 것들과 사람들을 드로잉 하고 있다. 아룬다티 로이와 마르코스 부사령관 같은 이들, 체호프와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케테 콜비츠 같은 익숙한 이름들뿐 아니라 박물관에서 만난 미술품을 안내하는 멋진 할머니 아만다, 무엇이든 수리할 수 있는 기술을 가졌지만 아내의 알츠하이머병은 어찌해 볼 수 없는... 노인 루카, 크메르루즈 때문에 고국 캄보디아를 떠날 수 밖에 없었던 다발성 관절염을 앓는 여성... 생물학적인 것과는 상관 없이 우리의 먼, 먼 사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

 

모든 문장을 필사하고 싶을 만큼.

벤투(스피노자)와 존 버거의 만남이 빚어낸,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그러나

누구에게라도 말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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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막연하게 알고 있던 실존주의 개념이 깔끔하게 정리된 기분이다.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여기저기 찾아 헤매던 것들이 이제서야 하나하나 눈에 보인다. 수렴되고 있다. 꽤 오래 전부터 내가 찾아 읽었던 책들 중 마음에 들었던 것들은 모두 어떤 경향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올해 부쩍 깨닫고 있다. 실존(Existence), 역설(Irony).

 

 

 

 

 

우연한 기회에 다음소프트의 부사장인 저자의 강의를 들었다. 빅데이타. 라는 흐름이나 기술을 볼 게 아니라 사람을 봐야 한다는 메시지가 임팩트 있었다. 강의를 들어서인지 두 번 읽는 기분이 들었다. 걸 그룹들의 이미지에 대한 분석, 명품 화장품과 저가 화장품, 여드름과 한의원의 상관관계, ‘아이들이라는 언급이 늘어남과 동시에 판매가 급증한 아이패드 사례, 핸드백 브랜드의 소비자 인지 지도, 주류별 안주 연관도 등등. 빅데이타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더라도 혹할 만한 사례가 소개되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읽고 보니 가치투자에 대한 책이었다. 참조할 만 하지만.. 역시 너무 선언적이고 추상적인 언급에 머문다. 켄 피셔의 3개의 질문으로 시장을 이기다』가 투자에 관한 인사이트로는 이 책보다 나은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으로는 더 읽을 가치가 있다고 느껴진다.

 

 

 

 

 

 

 

 

 

 

 

 

 

 

고흐 인 파리 전에서 가장 맘에 든 작품 탕귀 영감. 

고흐의 옐로우를 기대하고 갔는데, 옐로우는 아를르 시절에 집중되었는지... 파리에서는 많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이 작품은 눈길을 사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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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인의 여행자가 각자의 기획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가장 부러운 이는 호주로 와인 투어를 다녀온 은희경과 런던에 가서 에일을 실컷 마시고 돌아온 장기하. 맥주 마니아 온다 리쿠의 여행기가 떠오르네. 와인은 모르겠고 맥주 투어는 꼭 한 번 가봐야지.

 

 

 

사랑이 무엇인가요?

사랑은 대상을 이상화하는 게 아니죠. 모든 진정한 연인은, 한 여성이나 남성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 대상을 이상화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 누군가가 온갖 실수를 저지르는 데다 어리석고 다른 좋지 않은 면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사람은 당신에게 절대적인 존재가 됩니다. 삶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모든 게 된다는 뜻이죠. 당신은 불완전함 자체에서 완전함을 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이렇게 배워야 합니다. 진정한 생태학자는 이 모든 것을 사랑합니다. 진정한 생태학자라면 이 모든 것을 호의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진정한 생태학자는 완벽한 정원, 완벽한 환경 등을 두려워할 겁니다. 그런 건 악몽이죠.

 

 

지젝이 생태를 말하는 한 단락이다. 코넬 웨스트의 진리와 아비탈 로넬의 의미, 콰메 앤서니 애피아의 세계시민주의, 주디스 버틀러와 수나우라 테일러의 상호의존. 은 특히 좋다. 불온 이라는 단어도 산책 이라는 단어도 좋다. 우리는 좋아하는 단어들을 수집하고 체득하여 사용할 수 있다. 그 중 사랑 이라는 단어만큼 진부한 것도 없지만 사랑 이라는 단어처럼 지속적으로 이성과 감성을 자극하는 단어 또한 드물다. 불온한 산책자를 읽으며 맨발로 산책하는 기분을 느꼈다. 납작하게 죽어 있는 듯 보였던 발바닥이 아직도 생생히 살아있더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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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11-21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림아웃님, 안녕.

dreamout 2012-11-22 21:02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도 안녕. ^^

댈러웨이 2012-11-21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 다정한 사람>은 필진이 흥미롭네요. 그중 장기하가 젤루 눈에 띄는 걸요. ㅎㅎ

dreamout 2012-11-22 21:03   좋아요 0 | URL
글은 김훈이 제일 인상 깊었어요.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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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목에 빗대어 내 심정을 표현하자면 이렇다. ‘실패할 줄 뻔히 알면서도 리뷰를 쓴다.’

오에 겐자부로의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를 읽고서 리뷰를 적을 때도 똑같은 심정이었다. 분석할만한 것들. 즉 형식적인 요소들이 작품 전반에 뒤엉켜 있으면 어디서부터 실타래를 풀어야 할지.. 막막해진다.

 

하나 확실한 것은 기억. 회한. 등에 대한 얘기는 더 이상 할 것이 없다는 거다.

 

 

2.

작가가 처음에 얘기하듯 나도 특별한 순서 없이떠오른 것들을 적어 나가야겠다.

 

독자를 배제한 상태에서 소설의 서사에만 주목한다면, 충격적 진실은 세가지 정도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신뢰할 수 없는 화자(두 통의 편지로 드러난), 두 번째, 수재였지만 결국 그 또래 남자애들이 그랬듯 그랬던 화자의 친구 에이드리언(그의 드러나지 않은 행동은 토니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으리라는 예감), 세 번째는 에이드리언의 아들 에이드리언의 엄마가 누구인지. 그 중 세 번째 진실 때문에 책을 다시 읽으려고 한다면 이는 이 소설을 미스터리로 간주했다는 의미다. 서사 내에서의 결론(ending)에 방점을 찍은 경우다.

 

독자를 서사와 엮어 생각하면 이 소설을 보는 관점이 많이 달라진다. 피에르 바야르의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처럼. ‘진범은 따로 있다.’ 라는 독자만의 망상적 독서를 한다면 이 소설은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실상, 앞의 미스터리적 결론은 굉장히 부실하다. 이 소설을 다시 읽는다고 해서 누가 엄마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정확한 증거를 찾을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독자는 이 소설을 한 번 읽고서 알게 된 그 결론(ending)에 고착화 되어 다시 읽을 때 그 증거만 찾게 될 것이다. 물론 독자는 분명히 자신만의 증거를 찾게 될 것이지만 또한 당연하게도 그 증거는 진짜 증거가 될 수 없다. 왜냐면 그것은 사후 자기합리화 된 증거이기 때문이다. 패러독스에 빠질 수 밖에 없다.

 

 

3.

소설의 전체 구조는 러셀의 크레타 사람 패러독스를 따르고 있다. 크레타 섬 주민이었던 에피메니데스가 모든 크레타 섬 주민들은 거짓말쟁이다.’라고 진술했다던 그 패러독스 말이다. 이 이율배반은 자기 언급(Self-reference)’의 논리적 모순을 극명히 보여준다. 소설은 모두 토니의 진술이다. 그런데 토니는 정말 믿지 못할 화자다. 그렇다면 우리는 결론(ending)을 믿을 수 있는가?

 

러셀이 현대에 다시 부각시킨 거짓말쟁이 패러독스는 힐베르트 프로그램과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까지 이어지는 20세기 초 수리논리학의 장쾌한 여정의 출발점이었다.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불완전성 원리는 이런 느낌이다. 어떤 체계 안에는 그 체계를 유지하는 기본 전제(공리)가 있는데, 그 전제는 체계 안의 논리로는 참인지 거짓인지 증명할 수 없다는 것. 이 소설을 빗대 말한다면 소설의 화자인 토니가 소설의 결론에 이르러 진실을 드러내지만 그게 진실인지 거짓인지 여부는 이 소설 안에서는 밝혀질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델의 불완전성 원리가 던져주는 빛은.. 그러한 한계 속에서도 수학과 논리를 펼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건 이중의 의미를 지닌다. 한 사람의 평생을 CCTV나 기타 등등의 기술을 이용해 전부 기록한다고 해도 그 사람에 대해 이렇다. 라고 말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살아야 하고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 또 하나는 이런 것. 현대 소설의 모든 것이라고 말해도 과히 틀리지 않은 리얼리즘. 그 한계는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얼리즘 소설을 써 나갈 수 있고 써 나가야 한다는 점. 다만, 그 한계는 분명히 인식한 상태에서 작품을 완성해 나가야 한다는 것. 반스가 말하고 싶어한 어떤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4.

소설의 전체 구조를 더 단순히 말하자면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기 보존 능력이 있다는 토니의 자기 진술과 요점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제3자가 토니에게 충고했던 말 간의 간극. 또한 제3자가 토니에게 충고했다는 요점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말. 그 말 또한 진짜로 제3자가 한 말인지 아닌지. 그 부분까지 생각한 간극. 이 간극들의 집합(무한을 포함한 칸토어의 집합 개념과 같은)이 이 소설이라고 말이다.

 

 

5.

간극. 은 그저 내 생각이지만, 반스의 소설을 일관(一貫)하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플로베르의 앵무새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진실(이것임. Haecceity)에 근접도 못했음을 자괴하는 화자. 아무리 사랑해도 사랑하는 대상은 타자이고, 영원히 다가갈 수 없는 간극이 나와 너 사이에 있음을 생각했다.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에서는 쓰여진 것과 실제 일어났던 일 사이에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간극이 있음을 느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무엇과 무엇 사이의 간극인가. 나와 나 사이의 간극. 나 라고 생각한 나와 진짜 나와의 간극. 그 간극 또한 영원히 메워질 수 없음을 말해주는 듯 하다. 반스는 일관된 주제를 아주 집요하게 탐구하고 있다.

 

 

6.

이 소설은 또한 리얼리즘 소설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올해 읽은 정영문의 소설과 다른 측면에서 이 소설 또한 리얼리즘 형식의 한계, 거짓, 구태, 독자와의 공모.. 등에 대해 저항한다. 형식적인 측면에 이처럼 공을 들인 작품을 노년에 썼다는 사실은오에 겐자부로가 노년에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를 집필한 이유와 같을지도 모른다. 롤링 스톤스가 데뷔한지 50년이 되었다지. 뭐랄까.. 오에도 반스도 늙기 싫은 거다. 잊혀지기 싫은 거다. 사그라지기 싫은 거다.

 

 

7.

토니의 편지는 자기 실현적 저주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렇다면 그가 쓴 글(바로 이 책)은 무엇이 될 것인가? 그건 분명한데, 소설이 된다. 그렇다면 그가 소설을 쓴 의도는 무엇인가? 회한에 젖은 자기 반성인가? 아니면 또 다른 자기 보존의 발로인가? 아니면 이 소설 전체가 평생에 아무런 대단한 일도 벌이지 않고 혼자 쓸쓸히 늙어 죽어가는 이가 다른 사람의 관심을 받고 싶어 끄적거린 완전한 허구인가. 이 모두이기도 하지만 남은 하나의 가능성이 더 있다. 독자에게 영향을 끼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독자로 하여금 반성하게 하고, 성찰하게 하고, 회한에 젖게 함과 동시에, 독자를 끌어들여 공범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독자는 어느 순간 그를 두둔하게 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그 순간 독자는 심정적 공범이 된다. 토니는 자주 증거라는 말을 쓴다. 그가 법정의 피고인석에 선다면, 그리고 스스로를 변론하기 위해 이 글을 내보인다면, 이것은 또 다른 자기기만적 행위가 되어 버릴 것이다. 그런데 그럴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체호프였나소설에 권총이 등장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발사되어야 한다고. 그는 이 책을 썼고 그가 법정에 선다면 당연히 이 소설은 변호인 측의 증거로 제출될 터다. 심정적 공범이 된 독자는 그에게 합당한 형벌을 내리지 못하는 온건한 배심원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런 식의 생각이 내 머리 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편지든, 소설이든 쓰여진 모든 것들은 읽는 이들을 자기 구속에 빠트리게 할 가능성이 있다. 게임이론에는 비협조적 게임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죄수의 딜레마가 대표적인데.. 자기 구속적 행동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자신의 이익과 부합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뿐이다. 결론에서 토니는 자기 보존의 본성을 얼마나 깨트렸나? 토니가 이 소설을 쓴 진정한 의도는 무엇인가? 자기 반성인가. 아니면 또 다른 자기 보존의 발로인가. 알 수 없다.

 

 

8.

나 또한 요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서사는 패러독스이고, 독자는 딜레마에 빠진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맞다. 그래서 뭐 어쨌다는 말인가. 그는 그런 등장인물이다. 토니의 그런 꼴을 보고 거기서 교훈을 얻어도 좋고, 논리적 구조 안에서 헤매도 상관없다. 더 중요해 보이는 것은 이렇다. 오이디푸스도 죄를 저질렀다. 부친을 살해했고, 근친상간을 했다. 모두 모르고 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 책임을 졌다. 토니는 결과는 어떻게 될지 전혀 몰랐지만 자기가 한 짓을 모르지는 않았다. 단지 잊어버렸다. 그럼 그는 어떤 벌을 받아야 하나? 첫 번째는 이것. 잊어버렸다는 사실. 그 자체다. 그는 자기기만에 빠진다. 그것 자체가 벌이다. 자기기만에 빠져 시간을, 삶을 허비했다. 그리고 늙어 결국 혼자가 되어 버리고 만다. 그래서? 결론(ending)은 뻔하다. 중요한 것은 결론이 아니다. 결론에 대한 센스다. 예감했다면 달리 행동할 수 있지 않았을까.

 

 

9.

피에르 바야르의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를 따라 덧붙여 소설을 써 나갈 수도 있다. 토니는 베로니카와 헤어지고 나서 섹스를 나눴다고 했다. 별것 아닌 일처럼 얘기하지만, 그건 데이트 강간이었으리라. 베로니카가 그렇게 말한다. 강간이나 마찬가지였다고. 그럼 이렇게 내 나름대로 소설을 써도 될지도 모르겠다. 토니가 베로니카를 강간했고, 베로니카는 그 충격으로 한동안 섹스를 두려워하게 된다. 에이드리언은 그때 베로니카와 사랑을 만들어 가는 초기였다. 그러한 시기에 남자를 두려워하게 된 그녀는 스킨십을 꺼려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아마 에이드리언을 실망시켰을 것이다. 실망의 상처와 20대의 들끓는 욕망에 이끌려 다른 여성(에이드리언의 아들의 엄마)에 욕망을 풀어 버리고 만다. 라는 식의.. 구태의연한 드라마 식으로 말이다. 어찌됐든 소설의 여백을 독자는 얼마든지 채울 수 있다. 독자가 조금만 더 상상의 나래를 편다면 아마 훨씬 드라마틱한 얘기를 꾸밀 수 있겠지.

 

 

10.

제목엔 Sense가 들어가 있는데, 너무 같잖은 Think만 한 기분이 든다. 여전히 나는 요점을 파악 못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요점을 모르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의 한계는 생각하며 살아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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