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는 내 친구가 언제나처럼 반듯하고 올곧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하지만 평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무언가가 그에게서 나가버린, 내가 전혀 모르는 무언가가 그를 둘러싼 모습이었다. 나는 그가 눈을 감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눈을 뜨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눈은 무엇을 바라보지 않았고, 볼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다. 그냥 멍하니 자기 속을, 아니면 아주 먼 곳을 향했다. 그는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는데 숨조차 쉬지 않는 것 같았다. 입은 목재나 돌로 깎아놓은 듯했다. 얼굴은 창백하여 마치 돌처럼 한결같이 파리한데 갈색 머리카락만이 살아 있는 모습이었다. 두 손은 자기 앞 의자 위에 놓여 있었는데, 돌이나 과일 같은 물건처럼 고요하고 생명이 없이 파리하고 움직임이 없었지만, 힘없이 느슨하게 풀린 것이 아니라 감추어진 강인한 생명을 감싼 단단하고 좋은 껍질 같았다.

 

그 모습에 몸이 떨렸다. 그가 죽었구나! 생각하고 하마터면 큰 소리로 말할 뻔했다. 하지만 그가 죽지 않았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마법에 사로잡힌 듯 그 얼굴, 그 돌 같은 창백한 마스크에 눈길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나는 느꼈다. 저게 데미안이다! 그전의 모습, 나와 함께 걷고 이야기할 때의 그는 절반만 데미안이었다. 이따금 어떤 역할을 하고, 거기 적응하고, 좋은 마음에서 함께하는 절반의 데미안이었다. 진짜 데미안은 지금의 모습, 돌로 된, 태고를 간직한, 짐승과 같은, 돌과 같은, 아름답고 차가운, 죽어 있으면서 동시에 들어본 적 없는 생명으로 은밀히 가득 차 있는 저런 모습이었다. 그를 에워싼 이 고요한 공허. 이런 에테르와 별의 공간, 이 고독한 죽음!

 

(데미안, 헤르만 헤세, 안인희, 문학동네. 80page)

 

 

데미안의 이 문장들을 읽다가 며칠 전에 읽었던 책은 도끼다』의 햇살의 철학, 지중해의 문학편에서 본 한 문장이 떠올랐다. 나는 한 알의 사과로 파리를 놀라게 하리라 폴 세잔. 인용한 문장의 데미안이 있는 자리에 폴 세잔 정물화의 사과를 놓는다면 어떨까?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았다. ‘감추어진 강인한 생명을 감싼 단단하고 좋은 껍질’, ‘돌로 된, 태고를 간직한, 짐승과 같은, 돌과 같은, 아름답고 차가운, 죽어 있으면서 동시에 들어본 적 없는 생명으로 은밀히 가득 차 있는…’ 폴 세잔의 정물화를 보고 번개를 맞은 듯 했던, 내가 느낀 말 못할 감응을 싱클레어가, 헤세가 정확하게 표현해내고 있었다. 바로 직전에 박웅현의 이 책을 읽은 덕분에 금세 떠올릴 수 있었다. 해결하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던 오랜 수수께끼를 푼 듯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책은 도끼다』 전체에 대한 내 느낌은 묘하다. 프란츠 크로머의 괴롭힘으로부터 구해준 데미안에게 배은망덕할 수 밖에 없었던 싱클레어의 심정이랄까? 여덟 편의 강의는 너무 세세하고 친절해서, 밑까지 다 닦아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레미제라블, 톰 후퍼 감독

 

자베르 경감은 혹 사랑을 하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장발장을 꼭 잡으리라 다짐하는 노래에서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병적인 사랑.

 

새로운 발견은 에포닌이었다. 내 짧은 레미제라블상식에는 없던 여인. 영화에서 유일하게 감정이입 할 수 있었던 인물. 다른 영화나 소설이었다면 너무 전형적이어서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캐릭터지만 레미제라블에서는 달랐다.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사랑 노래 사이사이의 그녀 목소리는하아. 안타까움의 한숨을 내쉴 수 밖에..

 

바리케이트 장면에서 모두가 함께 부른 “Do you hear the people sing?”. 뭔가 뭉클하게 하는 게 있어. 정말 오랜만에 청계천 8가 미치도록 듣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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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열심히 보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12월 중순.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기분 처지고 오그라들어 어깨 목이 굳어진 채 보냈다.

고등학교 담임 선생이 떠오른다. 선생님 하면서 뭐가 제일 힘드세요? 우리들이 말 안 듣는거요?

아니.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잘 지내기가 제일 힘들어.

뭐든 꽤나 적극적이고 털털했던 남자였는데, 그런 말씀하신 걸 듣고 놀랐던 게 잊히지 않는다.

이제는 확실히 그 마음 알겠다. 맞다. 그게 가장 어렵다. 나도.

Anyway. 현실을 자신의 현실로 받아들여야지.

피할 수 없다면 다른 선택을, 다른 실천을 해야 한다.

느낌표로 한 해를 마감하고 싶었지만, 물음표로 마감하는 기분이다.

이 물음표. 계속 답을 찾아봐야겠다.

 

2012년 읽었던 책들 중 나만의 베스트 소설을 추리면서 마음도 추슬러야겠다.

논픽션은 이미 썼던 대로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벤투의 스케치북』 두 권만 선택하련다.

 

내게 더 중요한 것은 픽션.

 

 

파씨의 입문, 황정은

- 백의 그림자, 파씨의 입문을 읽은 후 이제 내게 한국 여성 소설가는 둘뿐. 황정은 & 김애란.

 

   

고요한 집, 오르한 파묵

- 값싸게 빛나는 표면 아래 낮게 가라앉은 어둠.

 

호프만의 허기, 레온 드 빈터

- 호프만이 움켜쥔 상자, 그 사소한 구원은. 여기까지 뻗어있다.

 

잉글리시 페이션트, 마이클 온다치

- 동그랗게 몸을 만 사람들, 동그랗게 눈물을 모으는 사람들.

 

미겔 스트리트, V. S. 나이폴

- 눈웃음 지으며 옛일을 회상하다 문득문득 차가워지는 심장.

 

몬스터 콜스, 시본 도우드/패트릭 네스

- 목멘 울음.

 

지상의 노래, 이승우

- 욕망은 그래서 슬픈 것. 그럼에도 욕망은 기쁜 것. 징허다 정말.

 

나비의 무게, 에리 데 루카

- 차라리 아르페지오였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 피할 수 있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피할 수 없다고 해서 피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올바른 선택인지는 알 수 없지만 책임 있는 행동은 할 수 있다.

 

통역사, 수키 김

- 멀찌감치 서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주목하기란 쉽다. 관찰자 시점이 주인공 시점이 되기는 어렵다. 좋은 소설은 항상, 우리를 어려운 길로 인도한다.

  

올해는 이 열 권의 소설이 나만의 베스트.

 

 

 

2013.

열망하는 것이 없다면 열망하는 것을 찾기를, 열망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기를, 방법을 찾았다면 마침내 이뤄내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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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1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1 2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3-01-01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책장에 꽂힌 그러나 아직 읽지 않은 호프만의 허기를 살짝 노려봤어요. 아 나는 이 좋다는 책을 언제 읽지? 하고 말예요. 저도 2012나만의 베스트 하고 싶었는데 막상 하려니 귀찮아져서 포기했지 뭡니까! 위 목록에서 통역사를 만나 무척 좋아요. 우리 2013년 한 해도 잘 지내봐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희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dreamout 2013-01-02 00:02   좋아요 0 | URL
저도 레미제라블과 위대한 유산은 좀 많이 노려보고 있어요. ㅎㅎ
저보다 훨씬 많이 읽는 다락방님이 베스트 올리셔야 하는데~~ ^^
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다락방 2013-01-01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성탄절과 복된 새해 맞으시기를 에미 로트너가 빌어 드립니다. Merry Christmas and a Happy New Year from Emmi Rothner

(이건 그냥.....)

dreamout 2013-01-02 00:02   좋아요 0 | URL
ㅎㅎㅎ

이진 2013-01-01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정은과 김애란 둘 다 더없이 멋진 글을 쓰는 작가들이죠...
[파씨의 입문] 곧, 정말 곧 읽어야 겠습니다 ㅎㅎ
2013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dreamout 2013-01-02 00:03   좋아요 0 | URL
^^
소이진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Jeanne_Hebuterne 2013-01-03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싶음과 빗겨간 무엇의 간극.
사이를 채울 수 없는 푸른 공기 같은 것.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그런 책이었어요.
결말의 느낌이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dreamout 2013-01-03 22:20   좋아요 0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여섯 개의 수 - 마틴 리스가 들려주는 현대 우주론의 세계 사이언스 마스터스 11
마틴 리즈 지음, 김혜원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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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경이롭고, 우주를 알고자 하는 인간 의식의 본능성은 경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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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이 세 번째다. 완전 정례화되어 버렸어

올해. 2011년 보다 한 30여권 적게 읽었는데, 더더군다나 소설은 더 줄었다. 읽지 못한 만큼 구입한 책도 줄어야 하는데 그건 또 아니어서, 서가에 점점 읽지 못한 소설만 늘고 있다. 내년에는 더 과감해지리라. 미치도록 읽든지 구입을 확 줄이든지 아니면 갖고 있는 안 읽은 소설들을 방출하든지. 좀더 명확하게 입장을 정리해야겠다. 그런데 구입을 확 줄일 수 있을까? 꽤 많은 좋은 소설들이 첫사랑처럼 덧없이 휙 지나가버린다. 그때 못 잡으면 끝. 나중에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돈 되는 책들에만 점점 더 혈안이 되어가는 출판계를 볼 때, 인연이 되었을 때 바로 데려오는 게 아직까지는 안심이 된다. 하아. 하루에 한 권 책을 읽어나갔던 니나 상코비치가 부럽기만 하다.

 

 

 

야만스러운 탐정들

심지어 연초에 열린책들 게시판에 문의를 했다. “볼라뇨의 다른 책들은 안 나오나요?” 생전 출판사에 그런거 문의해 본적 없는데.. 이 소설을 읽고 싶어서였다. 2666』도 땡기지만.. 그래도 이 소설이 더 궁금했다. 올해 구입한 소설 중, 최고의 득템 만족감. 그런데 사놓고 보니 또 손이 안 가서 다른 책들만 기웃거렸다. 조속한 시일 내에 꼭 읽어야지. 지금 뉴욕타임스 북섹션에 들어가면 볼라뇨의 작품에 대한 새로운 리뷰가 올라온 것을 볼 수 있다.

 

인생 사용법

뿌듯하다. 재출간을 몹시 기대했던 터라 나오자마자 바로 구입했다. 허나, 두께가하지만 2013년엔 꼭 읽으리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스완네 집 쪽으로

득템 만족도 베스트 쓰리 중 마지막. 국일미디어 버전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스완네 집 쪽으로를 갖고 있었다. 헌데 올초에 라면을 끓인 후 밑받침을 쓴다는 게 그만그 책이 손에 잡히는 바람에.. 눌었고 국물 배었고.. 하여간 그래서 서가 모퉁이에 던져 놨다. 마침 새 번역이 나와서 옳다구나 싶었다. 오프 서점에서 책 표지를 보니 배송을 통해 사는 건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프에서 샀다. 서가에 꽂혀 있는데 아직 비닐 포장도 걷어내지 않고 그대로 있다. 먼지 안 쌓여서 좋네. 이제 비닐 포장된 책은 읽을 때까지 그냥 내버려 둬야겠다.

 

적절한 균형

올해 『그토록 먼 여행』이 나온 후에야 나는 로힌턴 미스트리를 알게 됐다. 먼저 출판된 대표작으로 이 책이 있었다. 보니까 리뷰도 엄청 많이 올라와 있던데, 내가 왜 몰랐지? 하는 자책을 하며 바로 구입. 블로그를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는데, 모두들 반응이 굉장했다. 역시 내년으로 독서는 넘기지만 꼭 읽어볼 생각. 인도 땅은 소설의 배경으로 엄청 끌리는 곳이니까.

 

원숭이와 게의 전쟁

30여 페이지를 읽은 현재.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의심하지는 않는다. 여태 읽어본 요시다 슈이치는 뒤에 가서 꼭 한 펀치 날리는 작가였으니까.

 

사건

현재 독서중. 지독한 사랑 그리고 정치. 가 주제인 듯 하다. 『부서진 사월』과 같은 묵직함을 전해 줄 수 있을지 기대를 갖고 계속 읽어봐야지.

 

P세대

동시대의 러시아 작가가 누가 있더라.. 러시아는 19세기와 20세기 초까지만 내 독서 지도에 등장할 뿐. 이후 주목할만한 작가가 떠올랐나 보다. 사회주의 몰락 이후라는 주제 말고, 그냥 세상이 바뀐 후사람들이 어떻게 적응하며 살게 되는지 그게 궁금하다.

 

파저란트

지금 읽고 있다. 연말까지 다 읽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빅토르 펠레빈의 P세대가 99년에, 이 책 파저란트는 95년에 출간되었다. 자본주의 세상으로 바뀐 후 독일과 러시아에서는 어떤 비슷한 일들이 생겼는지. 연달아 읽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더 나이트

살다 보면 시니컬한 반응들이 무의식적으로 툭툭 튀어 나온다. 의분이라고 생각한다. 이상이 높아서라고 생각한다. 한 수 배우는 마음으로 읽겠다.

 

브이 포 벤데타

몇 해 동안 우리가 얼마나 분노에 쌓여있었는지 새삼 떠오른다. “와 남 니하단 War Nam Nihadan” – 누군가를 살해하려면, 시체를 묻은 다음 그 위에 꽃을 심어 시체를 숨기라. 라는 뜻의 페르시아 표현이라고 한다. 슬라보예 지젝은 『멈춰라, 생각하라』에서 지배이데올로기의 일차적 과제는 이러한 사건들의 진정한 중요성을 무효화시키는 것이었다. 언론의 지배적인 반응이야말로 정확히 와 남 니하단이 아니었던가? 언론은 이 사건들(월스트리트 점령, 아랍의 봄, 노르웨이의 총기난사 사건 등)의 급진적인 해방 잠재력을 말살하거나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을 교묘히 은폐한 후, 그 파묻은 시체 위에 꽃을 가꾸었다지금 뉴스를 보면 희망을 얘기한다. . 그거야말로 언론이라고 불리는 광고유통사들의 와 남 니하단이 아닌가? 선거 결과를 진정 행복한 마음으로 지켜본 이들은 부의 피라미드 꼭대기 1%의 인간들뿐이었을 것이다. 99% 1%에게 다시 진 것이다.

 

바베트의 만찬

행복한 만찬이 그립다. 마음으로도 몸으로도 추운 이 때. 이자크 디네센의 이 소설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줬음 좋겠다. 겨울이 가기 전에 읽어야지.

 

바덴바덴에서의 여름

생각해보니 신기한 일이다. 수전 손택을 많이 읽어본 것도 아닌데, 그녀가 소개해 준 책들은 내 비행의 궤도를 알게 모르게 수정하고 있다. “만일 당신이 영혼을 단련하고 당신의 감각과 호흡에 더 넓은 지평을 제공하고 싶다면, 바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리플리 1. 재능 있는 리플리

민음사에서 하이스미스의 단편집이 나온 후에, 곧 이 책도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기다렸는데.. 한참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다른 출판사지만, 이제라도 나오니 반갑기 그지없구나.

 

압살롬, 압살롬!

이승우의 『지상의 노래』에 나오는 다말과 압살롬 이야기에 반해서 포크너의 이 소설을 구입했다. 그런데 지난주에 보니 문학동네에서 포크너의 또 다른 대표작인 『소리와 분노』가 예약판매에 들어간 것을 알게 됐다. 당연히 구입할 예정. 이 소설을 먼저 볼지 아니면 소리와 분노를 먼저 볼지 모르겠다. 아니. 둘 다 사놓기만 하고 끝끝내 2013년을 그냥 보내버리면 어떡하지?

 

작은 것들의 신

가끔 지나치게 늦은 것 아닌가하고 느끼게 만드는 책들이 있다. 아룬다티 로이의 이 소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고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해 왔던 책인데 이제서야 구입했다. 번역된 부커상 수상작 전 작품을 다 읽어볼 계획을 잡았다. 내년에는 꼭 읽어야지.

 

영국 남자의 문제

아무래도 번역 제목이 좀 불만이다. 그냥 핑클러 퀘스천이라고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작은 것들의 신』보다는 늦게 읽을 것 같다.

 

뉴로맨서

안철수 때문에 산 것은 아닌데, 안철수 영향이 전혀 없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오시이 마모루의 걸작 『공각기동대』에 흠뻑 빠졌었다. 이 소설이 그 애니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알고 있어서 예전부터 관심 갖고는 있었는데. 멋진 출마 선언문을 기회로 이 참에 구입.

 

넙치

『안녕 다정한 사람』의 10명의 저자 중 한명인 요리사 박찬일이 어디에선가 추천한 책이다. 어디서 봤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요리와 여자가 어떻게 세상을 바꿨는지를 보여준다고 했던가.

 

잃어버린 낙원

실은 세스 노터봄의 여행기 『산티아고 가는 길』이 더 끌렸다. 하지만 소설가는 모름지기 먼저 소설을 읽어봐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구입.

 

아버지 죽이기

『살인자의 건강법』을 아주 진지하게 읽었다. 오랫동안 잊어왔는데, 이 소설을 계기로 다시 좀 만나볼 생각.

 

천국의 수인

『바람의 그림자』는 내 서가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꽂아둔 책들 중 하나다. 허나 『천사의 게임』은 그렇지 않았다. 세 번째 소설은 어떨지 모르겠다. 리뷰 건수를 보니 많은 사랑을 받은 것 같진 않던데. 그래서 그런지 사놓고도 선뜻 읽어볼 생각이 나질 않네.

 

솔로몬 왕의 고뇌

로맹 가리. 보다는 에밀 아자르.에 끌리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인다. 나도 거기에 속한다. 아직 『자기 앞의 생』만 읽었는데, 에밀 아자르의 이름으로 출판된 소설은 다 읽어 보고 싶다.

 

달팽이 식당

50여 페이지를 읽고 멈춘 상태. 그야말로 모든걸 들고 먹튀한 남자친구. 부들부들. 세상에 이런 놈이 제일 나쁘다. 목소리마저 안 나오게 된 여주인공이 다시 엄마의 집으로 돌아간 뒤 식당을 차린다는 내용인데, 그때 왜 읽기를 멈췄는지는 기억이 안 나네..

 

행인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은 몇 권을 갖고 있는데도 손이 잘 안 간다. 가라타니 고진이 자신의 본명을 고진(행인)으로 바꾼 사연을 어느 책에서인가 읽고 이 소설을 구입했다. 시작은 이걸로 하고 싶다.

 

두 도시 이야기

번역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들었지만, 그래도 기쁜 마음으로 읽어볼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Bleak House』와 더불어 가장 궁금했던 소설이다. 읽고 좋으면 『위대한 유산』을 다음으로 읽어야지.

 

파우스트

펭귄클래식코리아에서 출판된 책으로 다시 샀다. 두 종류의 번역본을 갖게 되었다. 비교해서 읽은 뒤 한 종류만 남길 생각이다. 다른 번역본이나 판본이 나올 경우에 욕심이 생겨 모두 사는 경우가 가끔 생기는데, 나는 결국 하나만 남기고 모두 치워버리는 편이다. 집중력이 분산되는 느낌이 들어서.

 

죄와 벌

옛날옛날 한 옛날에 범우사에서 출판된 책으로 처음 읽었다. 그러다가 열린책들에서 전집을 샀을 때, 범우사 책은 헌책방에 팔았다. 이제 민음사 버전의 『죄와 벌』을 샀으니 둘 중 하나도 보낼 생각. 그런데 열린책들에서 나온 죄와 벌은 전집이라.. 이빨이 빠지면 별루인데. 으음..

 

개들조차도

민음사 모던클래식이 고맙다.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을 읽고 존 맥그리거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인기가 별로 없어서 후속 작품들이 번역될 수 있을까 우려했었다. 이후 『너무나 많은 시작』과 이 책까지도 나와 주어 반갑기 그지 없었다. 몇몇에게만 살짝 알려주고 싶은 작가다. 존 맥그리거는.

 

수비의 기술

100여 페이지 읽다가 멈춤. 왜 멈췄는지 정확한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앞으로 전개될 내용이 안타까워서였던 것 같다. 내용 전개가 너무 드라마 같아서 그랬는지도

 

인생 수정

2011년 구입한 책 중 읽지 않은 소설 베스트를 쓸 때도 조너선 프랜즌의 『자유』를 올렸는데철푸덕. 그 작품도 읽지 않고 또 다른 작품을 사 버렸다. 아우.

 

그레이스

역시.. 아직 『눈먼 암살자』도 못 읽었는데

 

7년의 밤

2000년 이후 출판된 한국 소설 중 가장 재미있는 소설 두 권중 하나. 라는 얘기를 듣고 샀다. 천명관의 『고래』는 2005년에 구입해서 지금 먼지만 먹고 있는데이 책을 읽을 날이 온다면 『고래』와 연이어 쭉 읽어볼 생각.

 

종이로 만든 사람들

전에 이레 출판사에서 좀 더 큰 판형으로 나왔던 것을 기억한다. 출판사 이름도 바뀌고 판형도 작게 해서 새로 나왔다. 페이지를 열어보면 상당히 파격적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내용도 그럴까? 아마 그렇겠지. 기대.

 

좀비

조이스 캐롤 오츠라면, 『사토장이의 딸』이나 『블론드』를 먼저 읽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얇으니까. 먼저 읽게 될 가능성이 높겠다.

 

알레프

민음사에서 전에 황병하 번역으로 『알렙』이라고 냈었다. 보르헤스 전집 중 하나였는데, 송병선 번역은 어떨지 새로운 기대를 갖고 읽어보련다. 너무 오래되어 내용도 기억도 안 나니까.. 처음 읽는 셈 치고.

 

위키드

『위키드』는 왠지 가벼움 느낌이 들어 별로 살 마음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책에선가 그레고리 머과이어의 작품 세계에 대해 짧은 해석을 읽었는데, 그게 인상적이었다. 그리 가벼운 작품이 아니었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고 그래서 구입. 친구는 딸과 뮤지컬도 봤는데, 아이들이 보기엔 좀 어려워 보였다고 평을 하더라. 그 말이 소설에 대한 신뢰감을 좀 높여주었다.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느끼하게 생겼다. 작가 얼굴 보고 책을 사지는 않지만 아예 영향이 전혀 없다고는 말 못하게 생겼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새엄마 찬양』에서 그림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줘서.. . 생긴 것과는 다르구나(?). 하고 느꼈다. 이 소설. 내용이 상당히 파격적이던데, 컨디션 좋을 때 읽어 보고 싶다.

 

달의 궁전

폴 오스터와는 좀 미묘하다. 뉴욕 3부작은 명작이다. 『우연의 음악』은 지루해서 읽기 힘들었고, 『보이지 않는』도 대단치는 않았다. 상당히 대중적이었던 『브루클린 풍자극』 덕에 폴 오스터를 다시 찾게 되었다. 모든 것들이 가물가물해졌다. 새롭게 도전해 봐야겠다.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

더 커다란 담론도 중요하지만, 여전히 나는 하나의 개인이다. 소설에서 내가 느끼는 어떤 종류의 즐거움은 역사, 사회, 가족 보다는 나 스스로에 대한 것들이 훨씬 크다.

 

슬픈 짐승

에로틱. 에 끌려 샀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위대한 개츠비

아마 내가 처음 읽었던 위대한 개츠비는 소담출판사에서 나왔던 것 같다.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학 도서관에서 빌려 봤기 때문이다. 봄이었다. 화창한 날. 서가에서 빼내어 읽기 시작했는데, 멈출 수가 없는 거다. 그래서 빌려와서 그날 다 읽었다. 그런 책이 그 즈음에 한 권 더 있었는데 그건 『호밀 밭의 파수꾼』이었다. 두 권을 비슷한 시기(아마도 행복한 시기?)에 읽어서 그런지 지금껏 아주 좋아한다. 이번에 문학동네 버전으로 다시 구입. 번역가가 그 김영하던데 어떨지.

 

클링조르를 찾아서

20세기 현대 물리학을 소설에서 만날 수 있다. 가끔 이렇게 이야기 자체가 아니라 다른 것이 주 목적이 되는 소설을 읽고 싶을 때가 생긴다.

 

오토픽션

가네하라 히토미의 『뱀에게 피어싱』을 처음 얼핏 읽었을 때,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가 떠올랐다. 그래서 멈칫. 시간이 흘렀다. 이 소설로 재도전해보련다. 

 

드리나 강의 다리

겨울이 지나 봄이 막 올 때 즈음. 계절이 건너 뛸 때. 그런 때 읽으면 좋겠다.

 

화산 아래서

베수비오 화산 비탈에 너의 도시를 세워라. 니체의 말이 떠오른다. 니체의 그 말과 이 소설의 제목이 관계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위로 받지 못한 사람들

가즈오 이시구로 또한 민음사 모던 클래식 덕에 계속 구입하게 된다. 『창백한 언덕 풍경』도 이번에 나왔던데. 다음 주문에 포함시켜야겠다.

 

비행운

황정은의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를 읽으려고 꺼내 놨다. 비슷한 시기에 비행운을 읽으면 더 재미있겠다.

 

가나

첫 번째 단편 「떠떠떠, 떠」를 읽다가 멈췄다. . 더 읽을 수가 없었어. 감정이 요동칠 것 같았다. 이거 좀 상태 괜찮을 때 읽어야겠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워싱턴 스퀘어

헨리 제임스의 『여인의 초상』도 번역되어 나왔다. 워싱턴 스퀘어도, 여인의 초상도 읽어 보고 싶다. 이 작가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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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12-26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정이 요동칠 것 같았다는게 궁금해서 저는 『가나』를 읽어봐야겠어요. 올해 사둔건 아니지만 저도 『드리나 강의 다리』책장에 꽂아둔지 한참 됐어요. 책장 앞에 서서 볼 때마다 으음, 드리나 강의 다리 읽어야 되는데, 하고 생각하곤 하죠.
저는 『사토장이의 딸』사두고 안읽고 있어요. 그래서 좀비는 살 생각도 못하고 있다능. ㅋㅋ

존 맥그리거는...누구죠? 검색해봐야겠어요. 흐흐.

dreamout 2012-12-27 22:08   좋아요 0 | URL
사서 쌓아놓기만 하고 있는 책들을.. 2013년도에는 좀 많이 읽어서 소화시키고 싶어요. 매년 이렇게 쌓여만가니 좀 부담되네요. 이젠. ㅋ
존 맥그리거는..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 의 저자죠. ㅎㅎ
제목이 아주 좋아요...

samsuni76 2012-12-30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언제 올리나했어요~^^읽은 책중 베스트도 올려주실건가요?

2012-12-30 1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2-12-31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reamout님 전에 추천해주신 <검은책>은 아직도 못 읽었어요. 그리고 인사드리러 왔어요. 이 페이퍼 잘 읽었어요. 지름신도 부르고 초인처럼 웅크리고 책 읽어야지 불끈! 하게 되는 페이퍼라서 애써 외면중이에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일부터는 더 좋은 글 많이많이 엄청 많이 부탁드려요^^

dreamout 2012-12-31 23:48   좋아요 0 | URL
^^
감사합니다. 아이리시스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어릿광대의 나비
엔조 도 지음, 김수현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1.

작가? 뜨개질? 악기? 그게 무엇이 되었든 무언가를 자유자재로 갖고 놀 수 있는 사람은 늘 부럽다. 팀 버튼 전시회에 가서 「빈센트」라는 짧은 애니메이션을 봤는데,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인 7살 빈센트는 그 또래 아이들이 보는 동화는 안 보고 에드거 앨런 포를 탐독한다. 팀 버튼 자신의 어린 시절을 나타냈다고 하는데.. 전시된 수많은 드로잉과 완성된 작품들을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이 남자. 팀 버튼. 에드거 앨런 포를 제대로 갖고 놀았구나. 하고 감탄하게 된다. 그런데 에드거 앨런 포의 세계관을 가져왔으되 똑같지는 않다. 그가 그린 캐릭터들은 어딘가 귀여운 데가 있다. 신체의 일부분이 엄청 과장되어 있는 그의 캐릭터들은 푸동푸동 솜인형처럼 꼭 껴안아주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20대 여성들이 여기저기서 꺅꺅거린다. . 정말 귀여워. 피칠갑한 괴물 캐릭터를 보면서 그런다.

 

오늘 아침 이불을 뒤집어쓰고, Andy McKee의 「Rylynn」에 꽂혀 유튜브 동영상을 계속 돌려 보았는데, 역시나.. 기타를 갖고 노는 모습이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 소설의 저자에게서도 이 두 아티스트와 비슷한 점이 느껴진다. 저자에게는 아마도 언어가 그 놀이 대상일 텐데언어를 적재적소에 잘 사용하는 보통(?)의 놀이 말고, 언어의 구조와 논리를 마치 레고조립하듯 갖고 노는 기술. 그게 보통이 아니다.

 

2.

앞과 뒤가 같은 모양인 자수는 세계적으로 종류가 꽤 있지만 요즘 들어 앞뒤로 다른 모양이 나타나는 자수는 놓을 수 없을까 흥미가 생겼어요. 그냥 모양을 바꾸기만 하는 건 할 수 있어도 그것뿐이 아니라 어떤 미묘한 구속이랄지 틀이랄지 규칙 같은 게 있을 것 같아서요. 머리보다 몸에 넣어 버리는 편이 빠르니까요.”

 

두 편의 중편에 나타나는 많은 중의 하나가 모로코의 페즈(Fez)에 자수를 배우러 가서 한 이 말의 결과가 이 소설이다. 언어의 미묘한 구속, , 규칙 같은 것을 갖고 논 결과. 이런 소설이 나온 것. 많은 현대 소설처럼 이 소설도 이야기의 요약은 무의미해 보인다.

 

3.

중요해 보이는 것은

자수를 할 수 있음으로써 생성되는 것은 이야기나 캐릭터, 이 소설을 좋아하게 될 독자는 아니라는데 있다. 작가 자신. 나 자신.

생성되는 것은 라고 지칭되는 소설 속 누군가가 아니라 이쪽의 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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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3 2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24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