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열심히 보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12월 중순.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기분 처지고 오그라들어 어깨 목이 굳어진 채 보냈다.
고등학교 담임 선생이 떠오른다. 선생님 하면서 뭐가 제일 힘드세요? 우리들이 말 안 듣는거요?
아니.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잘 지내기가 제일 힘들어.
뭐든 꽤나 적극적이고 털털했던 남자였는데, 그런 말씀하신 걸 듣고 놀랐던 게 잊히지 않는다.
이제는 확실히 그 마음 알겠다. 맞다. 그게 가장 어렵다. 나도.
Anyway. 현실을 자신의 현실로 받아들여야지.
피할 수 없다면 다른 선택을, 다른 실천을 해야 한다.
느낌표로 한 해를 마감하고 싶었지만, 물음표로 마감하는 기분이다.
이 물음표. 계속 답을 찾아봐야겠다.
2012년 읽었던 책들 중 나만의 베스트 소설을 추리면서 마음도 추슬러야겠다.
논픽션은 이미 썼던 대로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과 『벤투의 스케치북』 두 권만 선택하련다.
내게 더 중요한 것은 픽션.
파씨의 입문, 황정은
- 백의 그림자, 파씨의 입문을 읽은 후 이제 내게 한국 여성 소설가는 둘뿐. 황정은 & 김애란.
고요한 집, 오르한 파묵
- 값싸게 빛나는 표면 아래 낮게 가라앉은 어둠.
호프만의 허기, 레온 드 빈터
- 호프만이 움켜쥔 상자, 그 사소한 구원은. 여기까지 뻗어있다.
잉글리시 페이션트, 마이클 온다치
- 동그랗게 몸을 만 사람들, 동그랗게 눈물을 모으는 사람들.
미겔 스트리트, V. S. 나이폴
- 눈웃음 지으며 옛일을 회상하다 문득문득 차가워지는 심장.
몬스터 콜스, 시본 도우드/패트릭 네스
- 목멘 울음.
지상의 노래, 이승우
- 욕망은 그래서 슬픈 것. 그럼에도 욕망은 기쁜 것. 징허다 정말.
나비의 무게, 에리 데 루카
- 차라리 아르페지오였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 피할 수 있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피할 수 없다고 해서 피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올바른 선택인지는 알 수 없지만 책임 있는 행동은 할 수 있다.
통역사, 수키 김
- 멀찌감치 서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주목하기란 쉽다. 관찰자 시점이 주인공 시점이 되기는 어렵다. 좋은 소설은 항상, 우리를 어려운 길로 인도한다.
올해는 이 열 권의 소설이 나만의 베스트.
2013년.
열망하는 것이 없다면 열망하는 것을 찾기를, 열망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기를, 방법을 찾았다면 마침내 이뤄내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