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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아기념도서관을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국립중앙박물관의 『Art Across America 전』을 보고 나서 오후 2시쯤 됐을 때. 그런데 마음이 또 금세 바뀌어서 그냥 돌아오고 말았다. 젊은 나이에 하늘나라로 간 딸을 기리기 위해 도서관을 짓기로 결심한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애끓는 부정과 도서관이 자리 잡을 터(서대문형무소 뒤)의 역사를 아울러 감안하여 도서관을 설계한 건축가, 그리고 ‘우리 동네에 도서관이 생겨 너무 좋지만 그래도 진아 양이 살고 도서관이 없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며 건물 짓는 1년여 동안을 담은 사진과 함께 쪽지를 남몰래 전달한 동네 주민 분. 짧은 이야기지만 가슴을 울린다.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은 성산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리는 기념관이다. 이 부분을 읽을 때 홍대입구역 부근에 있었다. 검색해보니 성산은 청기와예식장 방향으로 조금만 더 쭉 가면 나오는 곳이었다. 홍대입구역을 그렇게 뻔질나게 다녔는데, 처음 알았다. 이곳도 조만간 찾아가 봐야겠지.
봉하마을 묘역에 관한 이야기 또한.
스웨덴의 우드랜드 공동묘지(스코그스키로코가든), 간디의 묘 ‘라즈 가트’, 종묘. 에서 영감을 받아 승효상이 설계한 故노무현 대통령의 묘.
비극은 간혹 운명을 뛰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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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과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읽는 방법』, 히로세 준의 『봉기와 함께 사랑이 시작된다』를 제프 다이어의 『지속의 순간들』과 함께 읽으니, 제프 다이어 산문의 호흡이 셋과 확연히 다름을 알겠다. 다른 셋이 알레그로라면, 제프 다이어는 안단테나 아다지오다. 다른 셋이 스타카토라면(특히 히로세 준의 문장이), 제프 다이어의 산문은 레가토다. 번역문인데도 그런 것이 느껴진다. 천천히 음미하며 읽고 싶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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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 존 싱어 사전트, 프레데릭 레밍턴, 다니엘 가버, 조지아 오키프, 잭슨 폴록, 차일드 하삼의 그림들이 특히 인상 깊었다. 미국 건국 초기의 그림들은 거의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했지만, 20세기에 다다르자 이제 뭔가 이해가 되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만 그랬나 싶었는데 함께 간 친구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프레데릭 레밍턴과 다니엘 가버, 차일드 하삼은 이번 전시회를 통해 처음 접한 화가들이다. 특히 다니엘 가버의 <<태니스>>는 어두운 톤의 주변에 전시된 그림들과 달리 화창하고 마냥 행복한 느낌이어서, 보는 내내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화가가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물씬 풍겨, 이 전시회의 하이라이트라고 말해도 되겠다. 존 싱어 사전트의 작품 두 점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테크니션이라는 말은 들었는데 크지 않은 작품이었지만, 한 눈에. 역시. 하는 감탄이 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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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는 봉사활동으로 아이들과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글래디에이터. 함께 간 삼십여 명의 우리 애들(?)은 안 그랬는데, 한 칸 건너 내 오른쪽 자리에 앉은, 엄마와 아이 둘, 특히 그 중 사내아이는 너무 리액션이 크고 내내 입으로 중계(?)를 하는 통에 영화에도 집중이 안되고 잠도 못 자는(?) 이중고에 시달렸다. 리액션은 제발 집에서 예능 프로그램 볼 때나 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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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처음으로, 냉이된장국을 직접 끓였다. 된장양념을 넣고 팔팔 끓이다가 감자, 양파, 고추, 두부, 느타리 버섯을 넣고, 마지막으로 냉이를 넣고 조금 더 끓인 뒤 먹어봤더니, 와. 거의 엄마 솜씨다. 직접 끓여보라며 레시피를 알려 준 친구가 중요한 건 된장이라며, ‘다담’을 넣으라고 조언해줬다. 슈퍼에 가보니 다담 냉이된장찌개 양념이 있더라. 일 점 몇 퍼센트(에계~!) 냉이성분이 포함된 제품이 못 미더워 냉이를 듬뿍 넣어 만들었더니 정말 거의 예전 엄마의 맛. 요즘 애들은 된장찌개를, 마치 내가 짜장면을 짜파게티로 기억하듯 브랜드로 기억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좀 심란해졌지만. 어쨌든 자주 해 먹을 것 같다. 요즘 먹은 것들에 내심 불만이 쌓였는지 냉이된장국을 먹고 나니 기분이 몇 단계는 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