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력
우지 도모코 지음, 정선우 옮김 / 안그라픽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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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호기심 생기게 만든 기획력. 하나 거의 충족되지 않은 호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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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친 표현들은 소설을 읽을, 참조하기 좋은 것들인 것 같아 메모해 둔다.

『경험주의와 주체성』을 일관(一貫)하지는 못했지만, 이해 여부와는 관계없이 호기심을 계속 불러일으키는 책이라는 점은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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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도덕적인 것이 우리의 본성이 아니라 우리의 본성 속에 있는 것이 우리의 도덕이다.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중요한 흄의 관념들 중 하나는, 인간은 이기적인 것 이상으로 훨씬 편파적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기주의가 모든 활동의 최종심급이라고 주장하면서 스스로를 철학자나 좋은 사상가로 여긴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다. “재산의 가장 큰 몫을 아내의 기쁨과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내놓으면서 자기 자신의 씀씀이와 사교를 위해서는 최소한의 돈만 남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는가?

사실, 인간은 언제나 무리의 인간, 공동체의 인간이다. 가족, 친구, 이웃, 이런 것은 페르디난트 퇴니에스가 말하는 공동체의 유형에 앞서 존재하는 범주들로서, 흄에게는 이것들이 공감의 자연적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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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베르그손이 말하듯 습관은 본성에 속하지 않지만 습관을 들이는 습관은 본성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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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체성이라는 관념에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내용은 매개(mediation)초월(transcendence)이다. (중략) 요컨대 믿는 것발명하는 것, 이것이 주체를 주체로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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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경험주의는 의미의 철학이 아니라 상상력의 철학이다. 우리는, “주체는 어떻게 주어진 것 안에서 구성되는가?”라는 물음이 상상력은 어떻게 하나의 인식능력이 되는가?”라는 의미임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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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습관들, 다름 아닌 습관들 라고 말하는 습관들이다.

 

 

 

위험하게 단순하라! 이 책의 슬로건.

 

오늘 월스트리트저널 한국판에서 「겁쟁이들의 무기는 복잡함」이라는 글을 봤다. 이 책의 슬로건과 정확히 일치한다. 하지만 물론, 단순함. 간결함 등은 복잡성과 뗄래야 뗄 수 없다. 복잡성이 결여된 단순성은 유치하기 쉽다. 절충이 아니라, 유연한 긴장 또는 긴장된 느슨함 같은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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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겐 참 멋진 약점이 있다. 완전히 똑 같은 카피를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점이다. 존경하는 나의 영웅들과 완벽하게 똑같아 질 수 없는 바로 그 지점에서 나만의 색깔이 드러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진화하는 것이다.

 

 

『사치는 어떻게 생각할까?』의 슬로건이 이 책에 고스란히 적용된 느낌이 든다.

똑같아 질 수 없는 바로 그 지점’. 우리가 얼굴에 철판 깔고 최고로 잘 훔치기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에 대해, 복잡한 생각들이 떠올랐지만 생각하는 시간에 그냥 행동하는 게 낫지 않겠냐. 라고 다시 한 번, 내 습관에 주의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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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아말리아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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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 사표를 내고, 집과 가구를 매각하고, , 가방, 핸드폰을 없애고, 은행계좌를 폐쇄하고, 세 대의 피아노까지 헐값에 팔고, 안 이덴은 북 역을 통해 고속열차를 타고 떠난다. 이전의 자신에게 영원한 안녕을 고한다. 북 역(Gare du Nord).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의 원제목이 Gut Gegen “Nord”wind 였다. 안 이덴이 파리 북 역(Gare du “Nord”)을 통해 긴 탐색-여행을 시작하는 것은 그래서 무언가 적절해 보였고, 당연하게 여겨졌다.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주인공은 두셋의 연쇄된 우연을 휘감아 충동적으로 자신의 자리를 떠났다. 그 충동의 여파는 커서, 한동안 나는 짐을 꾸린 가방을 방 한쪽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었다. 안 이덴의 결정은 충동적이었을지 몰라도, 그녀가 북 역(Gare du Nord)에 도달하기까지는, 도주선에 서기까지는. 나지막해진 얼굴과 숱한 불면, 이제는 잠잠해진 눈물을 겪고 나서였다. 철저한 준비를 마친 후였다. 소설 분량의 3분의 1을 소모할 정도의 심리적 에너지가 쓰인다. 그것은 우리가 이전의 나를 떠나기 위해서는 완전범죄를 노리는 킬러처럼 엄밀해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했다.

 

파리를 떠나 브뤼셀, 티에넨, 마스트리흐트, 라나켄, 뒤렌, 프리부르, 투틀링겐, , 엥가딘, 몬차를 거쳐 나폴리로 간다. 그리고 나폴리만() 맞은편 이스키아 섬에 도착한다. 이 여정을 지도에 그려보면 ?처럼 보인다. 북으로 가다가 방향을 돌려 우회해서 기다란 이탈리아 반도의 중간에 위치한 나폴리까지가 ?의 굽어진 상단 부분을, 그리고 이스키아 섬? 하단의 점(.) 같아 보였다. 유럽지도에 그려진 커다란 물음표. 떠남의 본질적 의미와 새로운 삶의 불확실성. 안 이덴에게도 독자인 나에게도 다행히, 그 물음표 하단의 점인 이스키아는 은밀한 기쁨이 느껴지는 경이로운곳이었다.

 

다른 무엇보다 시()는 각자의 의식과 감성이 원하는 장소의 중심에 주관성을 부여할 수 있다.’ 철학자의 여행법에서 미셸 옹프레는 이렇게 말한다. 안 이덴이 이스키아와 이스키아의 빌라 아말리아에 주관성을 부여하는일은 맞아, 결국 그녀 자신의 시를, 음악을 짓는 일이었다. 그녀는 의식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굼펜도르프를 찾고 있었다. 오스트리아 빈 바로 옆의 자치도시였던 이곳에 하이든의 오두막이 있었다고 한다. 그곳을 하이든은 자신의 영혼이 통째로 들어있어서, 일단 안에 들어가면 작곡의 확신이 생겨난다고 했다지. 자신의 몸이, 자신의 영혼이 가장 살아 숨쉴 수 있는 장소. 굼펜도르프. 안 이덴의 굼펜도르프는 이탈리아 나폴리만의 맞은편 이스키아 섬의 빌라 아말리아였던 셈. 이처럼 구체적인 지명이고 장소인 이유는 모든 사랑은 구체적이고 강렬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에미와 레오가 이메일을 통해 서로를 구체화시키듯, 그레고리우스가 포르투갈 작가 프라두와 리스본을 세세하게 알아가듯이. 그렇게.

 

 

엄마와의 이별, 어린 레나와 줄리아와의 인연은 몹시 아프다. 뼛속까지 아프다. 그럼에도 소설을 읽는 내내 세세하게 살아나는 감각의 결을 느꼈다. 기쁨의 음악이었다. 내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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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3-04-01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장바구니로!!!! 저 최근에 드림아웃님게 땡투하고 산 책이 3권이나 된답니다,,,그래서 되도록이면 드림아웃님 서재에 오면 안 되는데,,,,,즐찾브리핑에 뜨면 젤 먼저 달려오게 되는;;;;ㅎㅎㅎㅎㅎㅎㅎ

dreamout 2013-04-01 22:56   좋아요 0 | URL
^^

다락방 2013-04-01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장바구니로!!!! 2

저는 지난번에 파스칼 키냐르의 책을 읽고 난해하다고 생각했던 경험이 있으면서도 또 집어 넣었네요. 흣

dreamout 2013-04-01 22:58   좋아요 0 | URL
파스칼 키냐르의 책 중에서 가장 소설다운 책이예요. 전통적인 범주로 볼 때 말이죠. 아마 난해하다고 생각은 안 하실듯. ^^

테레사 2013-04-05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림아웃님 로마의 테라스를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것보다 더소설다운 소설인가요?

dreamout 2013-04-06 01:10   좋아요 0 | URL
으음. 아마도요. 개인적으로 느끼는 바는 다르겠지만, 더 소설답다고 얘기해도 될 것 같습니다. ^^
 

 

 

 

료타르는 바로 서사적 시간의 종언이야말로 존재의 신비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이고, “존재의 증대로 귀결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서사적 시간의 종언이 지니는 허무주의적 측면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한다. 시간 연속체의 해체로 인해 실존은 극단적으로 취약해진다. 영혼은 끊임없이 죽음의 위협에, 끔찍한 허무에 노출된다. 왜냐하면 영혼을 죽음에서 빼내어줄 사건은 어떤 지속성도 없기 때문이다. 사건들 사이의 간격은 죽음의 지대가 된다.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그 중간의 시간에 영혼은 무기력 상태에 빠진다. 존재에 대한 기쁨은 죽음의 공포와 뒤섞인다. 환희의 순간 뒤에는 우울, 존재론적 우울이 따른다. 존재의 깊이는 동시에 존재의 절대적 빈곤이다. 그러한 존재에게는 거주의 공간이 전혀 없다. 그 점에서 료타르는 하이데거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료타르가 말하는 존재의 신비는 오직 거기 있음의 신비일 뿐이다. (시간의 향기. 91~92)

 

 

 

이 짧은 책에서, 그는 지난 『피로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다른 철학자의 견해를 재해석하고 반박하기도 지지하기도 하면서 글을 써 나간다. 긴장하는 마음으로 읽다가 글 쓰는 이가 글의 소재로 삼은 다른 저자와 어떤 관계일 때 좋은 글이 나오는가?’ 하는 생각이 들고부터 독서가 흥미로워졌다. 대표적으로 위에서 인용한 「천사의 시간」 장에서의 료타르, 「행진의 시대에서 난비의 시대로」 장에서의 지그문트 바우만, 「역사의 속도」 장에서 보드리야르의 사상을 소개하고 그 사상의 한계 등을 논하는 글들은 독자인 나에게 뭔가를 던져주고 있었다. 부딪치는 와중에 반짝거리는 것들이 출몰한다. 통찰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이때 그의 시선은 이들 철학가와 거의 동일한 높이다.

 

그에 비해 그가 낮은데 위치해 있어서, 올려다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철학가/작가는 하이데거와 프루스트다. 그런데 이 글들에서 나는 별로 향기를 맡지 못했다. 알고 있던 것들을 확인해 주는 정도의 글.

 

마지막으로 한나 아렌트에 대해서는 상당히 단호하다. 그가 이 책에서 스스로 옹호하는 가치(머뭇거림, 느긋함, 기다림, 자제)를 저버리는 듯한 리듬이고 어투다. 책 전체를 볼 때, 한나 아렌트를 카운터 파트너로 삼은 마지막 장 「사색적 삶」은 불협화음에 가까웠다. 얕잡아 보는 뉘앙스가 풍긴다.

 

너무 올려다보거나(우러러보거나) 내려다보는(얕잡아보는) 상대가 아니라, 비슷한 눈높이에서 약간 올려다볼 정도의 상대를 다루기. 읽기 즐거운 글을 낳는 좋은 방편인 듯. 독서도 마찬가지.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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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아기념도서관을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국립중앙박물관의 Art Across America 을 보고 나서 오후 2시쯤 됐을 때. 그런데 마음이 또 금세 바뀌어서 그냥 돌아오고 말았다. 젊은 나이에 하늘나라로 간 딸을 기리기 위해 도서관을 짓기로 결심한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애끓는 부정과 도서관이 자리 잡을 터(서대문형무소 뒤)의 역사를 아울러 감안하여 도서관을 설계한 건축가, 그리고 우리 동네에 도서관이 생겨 너무 좋지만 그래도 진아 양이 살고 도서관이 없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며 건물 짓는 1년여 동안을 담은 사진과 함께 쪽지를 남몰래 전달한 동네 주민 분. 짧은 이야기지만 가슴을 울린다.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은 성산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리는 기념관이다. 이 부분을 읽을 때 홍대입구역 부근에 있었다. 검색해보니 성산은 청기와예식장 방향으로 조금만 더 쭉 가면 나오는 곳이었다. 홍대입구역을 그렇게 뻔질나게 다녔는데, 처음 알았다. 이곳도 조만간 찾아가 봐야겠지.

 

봉하마을 묘역에 관한 이야기 또한.

스웨덴의 우드랜드 공동묘지(스코그스키로코가든), 간디의 묘 라즈 가트’, 종묘. 에서 영감을 받아 승효상이 설계한 노무현 대통령의 묘.

 

 

비극은 간혹 운명을 뛰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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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과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읽는 방법』, 히로세 준의 『봉기와 함께 사랑이 시작된다』를 제프 다이어의 『지속의 순간들』과 함께 읽으니, 제프 다이어 산문의 호흡이 셋과 확연히 다름을 알겠다. 다른 셋이 알레그로라면, 제프 다이어는 안단테나 아다지오다. 다른 셋이 스타카토라면(특히 히로세 준의 문장이), 제프 다이어의 산문은 레가토다. 번역문인데도 그런 것이 느껴진다. 천천히 음미하며 읽고 싶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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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 존 싱어 사전트, 프레데릭 레밍턴, 다니엘 가버, 조지아 오키프, 잭슨 폴록, 차일드 하삼의 그림들이 특히 인상 깊었다. 미국 건국 초기의 그림들은 거의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했지만, 20세기에 다다르자 이제 뭔가 이해가 되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만 그랬나 싶었는데 함께 간 친구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프레데릭 레밍턴과 다니엘 가버, 차일드 하삼은 이번 전시회를 통해 처음 접한 화가들이다. 특히 다니엘 가버의 <<태니스>>는 어두운 톤의 주변에 전시된 그림들과 달리 화창하고 마냥 행복한 느낌이어서, 보는 내내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화가가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물씬 풍겨, 이 전시회의 하이라이트라고 말해도 되겠다. 존 싱어 사전트의 작품 두 점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테크니션이라는 말은 들었는데 크지 않은 작품이었지만, 한 눈에. 역시. 하는 감탄이 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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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는 봉사활동으로 아이들과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글래디에이터. 함께 간 삼십여 명의 우리 애들(?)은 안 그랬는데, 한 칸 건너 내 오른쪽 자리에 앉은, 엄마와 아이 둘, 특히 그 중 사내아이는 너무 리액션이 크고 내내 입으로 중계(?)를 하는 통에 영화에도 집중이 안되고 잠도 못 자는(?) 이중고에 시달렸다. 리액션은 제발 집에서 예능 프로그램 볼 때나 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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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처음으로, 냉이된장국을 직접 끓였다. 된장양념을 넣고 팔팔 끓이다가 감자, 양파, 고추, 두부, 느타리 버섯을 넣고, 마지막으로 냉이를 넣고 조금 더 끓인 뒤 먹어봤더니, . 거의 엄마 솜씨다. 직접 끓여보라며 레시피를 알려 준 친구가 중요한 건 된장이라며, ‘다담을 넣으라고 조언해줬다. 슈퍼에 가보니 다담 냉이된장찌개 양념이 있더라. 일 점 몇 퍼센트(에계~!) 냉이성분이 포함된 제품이 못 미더워 냉이를 듬뿍 넣어 만들었더니 정말 거의 예전 엄마의 맛. 요즘 애들은 된장찌개를, 마치 내가 짜장면을 짜파게티로 기억하듯 브랜드로 기억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좀 심란해졌지만. 어쨌든 자주 해 먹을 것 같다. 요즘 먹은 것들에 내심 불만이 쌓였는지 냉이된장국을 먹고 나니 기분이 몇 단계는 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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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3-17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냉이된장국을 직접 끓이시다니, 와- 엄청 근사해요, 드림아웃님!!

dreamout 2013-03-17 22:19   좋아요 0 | URL
방금 전 다락방님 글에 댓글 달고 왔는데. ㅎㅎ

다락방 2013-03-17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쓴 시간도 그렇고 우린 같은 시간대에 여기 있었나봐요.
:)

dreamout 2013-03-18 21:21   좋아요 0 | URL
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