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산책 연습
박솔뫼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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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날씨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죽을때까지 기억하고 싶은 ‘수미’와 지금 어떤 시간 속에서 살고 있는가를 생각하며 떠올려 보고 무언가를 쓰고 있으며, 쓸려고 하는 작가 ‘나’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펼쳐진다.

기후가 변화하고 동물이 사라지는 지구의 끝이 가까워질 때, 이제는 내가 갖고 싶은 미래가 돌이킬 수 없는 과거로 여겨질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쓰게 만들었을까?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별거 없는 흔한 일상들을 다 담아내기 위해 쉼표를 찍을 시간도 부족한 듯 적어 내려간 것처럼, 다소 줄줄이 이어지는 글이나 의식의 흐름대로 흐르는, 적고 있는 당사자만이 알 것 같은 이야기와 감정들이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다소 복잡하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했다.

누군가의 뚜렷한 기억 속 한 장면이 담긴 묘사가 내게는 갑자기 어디선가 튀어나온 듯한 당혹스러움으로 물음표를 만들어 냈다.
등장인물들의 연관성과 책 내용을 파고들듯이 들여다보는 순간, ‘왜 자꾸 딱 떨어지듯 명확하게 모든 걸 알고 넘어가려고만 하지?’라는 생각이 드는거다. 한 치 앞도 모르는 내가 말이다.

책 제목처럼 산책을 하듯이, ‘그냥 따라가보자’ 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한줄 한줄 읽어내려 갈수록 의식하면서 끄집어 내려 애쓰지 않아도 ‘나’의 일상 속 떠올려지는 그 ‘기억’에서 ‘절실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 이유 때문인건지 뻥 뚫린 고속도로 같은 시원함은 없지만 잘 읽혔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초반에는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읽어냈다. 고속도로의 쾌속질주 보다 궁금함을 자극하며 군데군데 둘러볼 수 있는 국도에서의 운전을 더 좋아하는 나의 취향도 반영 되어 거리를 좁혀 나갈 수 있었다.

책의 절반 이상을 읽고 어느 정도 가까워짐을 느낀 후, 다시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혼란과 복잡함의 이유가 되었던 것들이 전부 사라졌음을 느꼈다. 확실하게.
그 순간들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기록하기 위함은 아닐까 하는 ‘이해하는 마음’으로 들여다보니 점점 익숙해지면서 오히려 간절함이 더해져 진심으로 다가온 것이다.


수미와 나.

이 두 인물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그들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있다면 바로 1982년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수미는 방화사건과 관련되어 교도소에 들어 갔다가 출소한 ‘윤미언니’와 한동안 집에서 같이 머물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둘은 함께 광주를 가게 된다. 어린 수미는 윤미언니를 염려하는 마음과 함께 도무지 평범한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 그녀가 불안하기만 했을 것이다.

다른 시대 속 ‘나’는 우연히 부산에 한 목욕탕에서 알게 된 ‘최명환’이라는 중년여성을 통해 집을 구하고,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글을 쓴다. 이 최명환은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을 목격한 인물이다. 그녀에게 그 시절 부산의 대해 자세히 듣게 된다.


이 책은 성인이 된 수미와 그녀의 친구 정승의 대화로 시작하여 어린시절의 ‘수미’와 ‘윤미언니’의 이야기, 그리고 다른 시대의 ‘나’와 그 주변 인물들과의 일상을 담는다.
그리고 다시 첫 장면 수미와 정승의 대화로 끝이 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시간의 흐름속에서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이라는 걸 느끼게 한다.

(P. 18) 과거의 사람들이 가져오려 애쓰던 미래는 여전히 미래로 여겨지고 내가 그리는 미래도 미래에는 다시 되살리고 싶은 미래가 될 것이다. 원하는 미래를 그리고 손으로 만져보기 위해 어떤 시간을 반복해야 할까. 나는 그것을 우선 어디에 써두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나’의 모습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 일상들을 적어내려간다.
사람들은 보통의 하루를 얼마나 ‘의미’를 두고 바라볼까?
미래의 삶에 지금 이 보통의 하루가 존재할지 장담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감정의 기복이 느껴지지 않았던 ‘나’는 음식 앞에서는 사뭇, 밝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이따금씩 다른사람 같아 보였다.
느낄 수 없었던 ‘생기’가 반갑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하고 뭐, 그랬던 것 같다. 사람이 일어나서 먹고 자고 하는 것이 기본적인 일상의 모습이라 큰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될지 모르겠지만 어딘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확실한 사람의 사랑이 필요했던 그녀에게 그 허기진 마음을 ‘음식’이 채워주는 것 같아서다.

(P. 60) 더 크고 확실한 사람의 사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것을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원하는 것과 어딘가 어긋난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런 끝없는 사랑을 받고 싶었다.


기차역에서 들리는 방송소리와 크게 들리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비해 열차소리는 큰 소리로 들리지 않는 것을 느끼며 ‘나’는 옛날 기차를 떠올린다. 미문화원에 불을 붙인 이들이 조사를 받던 곳이 부산역 인근이였고, 그 때는 귀를 먹먹하게 할 만큼 기차소리가 매우 컸다고 한다.

(P. 177) 대공분실은 ‘내외문화사’라는 출판사 간판을 달고 있었다. 그곳은 출판사가 아니지만 출판사 였어도 늘 기차 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어떻게 원고를 볼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중략) 내외 문화사라는 그곳에서 부림 사건 관련자들과 미문화원 방화 사건 관련자들을 비롯한 부산지역의 민주화 운동 관련인사들이 조사를 받았다고 하는데 조사를 받았다는 것은 고문을 당했다는 뜻이 된다. 기차 소리는 고문을 하는 소리와 고문을 당하는 소리를 지운다.


보통의 일상 그 속에서도 발길이 닿는대로 천천히 ‘산책’하듯이 세상을 들여다 보며 눈에 들어오는 사람, 건물, 풍경속에서 ‘과거’를 떠올리며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아픔을 느끼고, 고통을 기억해주는 따뜻함이 좋았다.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첫 발걸음을 시작하며 읽었기에 나에게는 표현의 강도가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였지만, 그럼에도 소란스럽지 않은 그 덤덤함이 마음을 더 일렁이게 했던 것 같다.

‘나’는 1982년 미문화원에 불을 붙인 그들의 영혼을 느끼고 기억한다. 그리고 과거 구석구석을 폭력으로 지배하는 만행으로 ‘침묵’하게 만드는 자들을 향해 독재없는 민주주의를 외쳤던 1980년 광주 사람들을 떠올리며 지나간 과거로 흘려 보내지 않고 희생자들의 영혼에 숨을 불어 넣었다.
올바르고 불의를 외면하지 않는 어른이 되길 바랬던 ‘윤미언니’의 다짐과 닮은 ‘나’의 모습이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자신보다 조금 더 나이 많은 윤미언니를 바라보며 그녀의 미래와 자신의 미래를 예상해 봤던 ‘어린수미’에게 그리고 바르고 이웃을 생각하는 어른, 많은 것을 배우는 어른이 되게 기도를 했던 ‘윤미’에게 지금의 ‘나’는 뚜렷한 무언가를 보고 싶었을 이들에게 꼭 좋은 어른만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1982년 그 시간을 겪고, 바라봤었던 이들의 미래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 확신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은 마음을 담아 차곡차곡 써 내려간게 아닐까.

수미와 윤미의 마음을 잘 이해하며 써 내려간, 그리고 써 내려갈 지금의 ‘나’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몰두하며 무언가를 찾아내고자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나’ 역시도 살아보지 않은 미래를 위해 지금 더 잘 살아내고자 하는 의지를 다짐해보는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P. 91)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 와야 할 것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지금에서 그것을 지치지 않고 찾아내는 사람들은 이미 미래를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와야 할 것들에 몰두하고 사람들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찾아내고자 하는 이들은 와야 할 것이라 믿는 것들을 이미 연습을 통해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생하게 빛을 내던 기억들도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희미해질 때가 있다. 지금은 당연한 이 현재의 모습들이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미래에 존재하고 있다면, 그 때는 떠올려봐도 잊혀져서 결국 흔적도 없어질 미래의 과거이자 현재가 되는 오늘일거란 생각이 들어 마음이 너무 슬프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하여 항쟁했던 희생자들은 제자리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사랑하는 사람들의 곁을 떠났다.

그들은 무엇을 본 것일까.
그리고 무엇을 위해 외친 것일까.

보고자 하는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싸웠던 그들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떠올리며, 나 역시도 내가 그리는 미래를 위해 민주주의를 외치는 사람들 편에 서서 무엇이라도 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그리고 당장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그 날, 우리가 그리던 미래를 현재로 끌고 와 살아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P. 153) 다른 시간을 살 수 있었다. 미래를 살고 와야 할 것을 살아낸다면 미래를 기억이 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을 미래를 기억이 되도록 살아가고 있을 때 어느 날 그것이 보인다면 그럼에도 그것은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은 아니고 새로운 미래로 우리 앞에 벌어지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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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살 차이나는 우리 언니랑 나는 다른 면이 참 많다.
한 뱃속에서 나왔다는 것은 분명한데...

나는 어차피 벌어진 일이라면 해결방안을 생각하고 현실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해보는 편이고, 언니는 피할 수 있었던 상황이 벌어진 것의 대해서 속을 끓여대면서 불타는 감자가 되어 이와 같은 사태가 또 벌어질지 아닐지도 모를 앞날을 끌고 와서 속을 또 부글부글 끓인다. (언니에게도 ‘사정’은 있을 것이다)

나는 ‘죽고 사는 일 아니면 너무 속 끓이면서 살지마’인거고 언니는 ‘조심해서 나쁠게 없다’라는 거다. (언니의 말도 맞지만 불타는 감자가 아예 터질 것 같은 얼굴로 ‘조심’이라는 단어를 운운하니 나는 그녀의 정신건강이 더 염려되는 것이다)
여러가지 지난 일들을 통해 나는 언젠가부터 평화로움이 깨지는 것을 극도로 예민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나는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불행한게 싫은거다.
‘통증’을 덜 느끼길 바라는 마음으로.
물론 나는 안심시키기 위해 내뱉은 말들이 있으니 해결방안을 바쁘게 찾는 남모를 고충은 있지만 그래도 빨리 안정적인 상황을 만들어 주는 것이 불타는 감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안타까움에 비하면 훨씬 낫다.

약간의 불신을 갖고는 있었지만 여러 번 검사를 해도 같은 결과가 나온 것도 그렇고 나는 확실히 ISFJ-T 가 맞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겠다.

다름을 이해하면서 서로를 보듬고 살아 나가는게 또 가족이니까. 이런저런 생각하며 또 이렇게 하루가 지나간다.


(P. 52) 만약 우리의 모든 순간이 우리의 모든 현장이 사진으로 기록된다면 우리는 더 잘할 수 있을까. 찍히는 것에 익숙해져 어쩌면 어느 순간부터는 찍힌다는 것을 잊게 될지도 모른다.

(P. 91) 시간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와야 할 것들에 몰두하고 사람들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찾아내고자 하는 이들은 와야 할 것이다 믿는 것들을 이미 연습을 통해 살고 있을 것이라고.


요즘은 박솔뫼 작가님의 <미래 산책 연습>을 읽고 있다.

읽는 동안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봤을 때의 감정이 떠 올랐다. 잔잔하게 자신의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 사이사이 어딘가 모르게 사연이 있을법한 행동이나 등장인물에게서 느껴지는 표정들이 궁금증을 자아낸다. 뚜렷하고 확실한 사실을 알려주지는 않지만 알 것도 같고, 아니여도 상관없는.

그냥 멍하니 따라다니게 되는 그런 감정을 느꼈다.
알아주길 바라고, 알려지길 원하는 느낌이 하나도 없다.
그렇게 느낀 이유 중에 하나는 내가 1982년에 발생한 부산‘미 문화원 방화사건’을 몰랐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그들의 트라우마를 내가 알지 못 했기에 손에 잡히는게 없었던게 아닌가 싶다. 바로 이 사건을 검색하고 들여다보니 이 책 속에 등장인물들이 더욱 입체감 있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도레미파솔라시도 중에 ‘미’이상은 소리 내지 않을 것 같은 잔잔함. 그런데도 그 안에서 외로움과 절실함이 느껴져서 딱히 엄청난 친절함이 느껴지지 않는 글인데도 마음이 간다.
자신의 삶을 살면서 굳이 의식 하지 않아도 묻어 나오는 과거를 떠 올리고, 그렇게 과거를 떠 올리다 보니, 바통을 이어받듯 현재의 내가 존재하고, 그러다 지금의 내 모습을 통해 미래를 가늠해 보기도 하는.

딱 절반을 읽은 상태인데 요란스럽지 않으면서도 살아나가는 ‘강인함’이 은은하게 풍겨지는 등장인물을, 나는 조용히 따라가고 있다.


앗참,
책에 맛있는 거 많이 나온다.
치킨, 도넛, 수육, 오향장육, 빵 등등......
쩝쩝박사는 흐뭇하다.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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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스스로를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며 걸었다. 그렇게 나와 비슷하지만 내가 아닌 사람들을 그리워하면서 곧 사라질 사람들이 된 것처럼 스스로를 여기며 걸었고 나는 그런 식으로 살아왔다는 생각 그러나 나에게는 그것이 늘 때로는 그것만이 생생했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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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 와야 할 것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지금에서 그것을 지치지 않고 찾아내는 사람들은 이미 미래를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와야 할 것들에 몰두하고 사람들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찾아내고자 하는 이들은 와야 할 것이라 믿는 것들을 이미 연습을 통해 살고 있을 것이라고.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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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라이크 미 - 흑인이 된 백인 이야기
존 하워드 그리핀 지음, 하윤숙 옮김 / 살림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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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악의 근원인 인종차별 속에서도 안분지족하며 살아야 하는게 마땅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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