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갈리아의 딸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지음, 히스테리아 옮김 / 황금가지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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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에요, 여보 ? 난 턱수염에 삼푸를 잔뜩 묻혔는데'
'전화, 전화 갖다 줘'
'안돼요. 거품이 온 집안에 아 떨어질 거예요'
'씻고 말려, 빌어먹을 !'
잠깐 침묵이 흘렀다. 브램은 초조하게 테라스 문 쪽을 보았다.
'루스?'
'응'
'설명서에 오 분 동안 그대로 두어야 한다고 써 있어요. 지금 헹구면 턱수염은 모두 꼬불꼬
불하게 될 텐데 난 내일 모닝 커피 모임에 가야 한다구요'
브램은 고개를 흔들었다. 하느님 어머니 ! 어떻게 그런 일이 중요할 수 있나. 맨움들이란 !
하지만 그녀는 미용사가 손질한, 늘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크리스토퍼의 곧은 턱수염
이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49 쪽

세상을 어느 정도 살다보면 남녀 혹은 부부 사이가 '뜯어먹고', '먹여 살리고 ','등쳐 먹고사
는' 관계가 되기도 하나보다 . 남녀 혹은 부부가 경제 능력에 있어 동등하지 않을 때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 그런 등식이 성립하기도 하는지 때때로 그런 표현을 마주치게 된다 . 그
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물론 웃자고 하는 소리겠지만 듣는 사람으로서는 민망할 따름이다
. 나는 늘 남녀 혹은 부부란 서로를 친구로 대접해야지 소유 혹은 의존의 개념으로 대할 때
갑갑해진다고 생각한다 .

'이갈리아의 딸들' 은 1941 년 노르웨이(그 피요르드 해안을 늘 보고 싶어했는데~)에서 태
어난 교사 출신 작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작품이다. 1977년에 영어로도 번역된 이 책은
1996 년에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네 명의 여성에 의하여 한국어로 번역되어 선보였다 .

이 책을 읽기 전에 우리는 먼저 낯선 몇몇 용어들을 익혀야 한다 . 이갈리아라는 이 나라
는 아마도 평등주의 (egalitarian)+유토피아(utopia)의 합성어 일거라고 한다 . 이 나라에서는
여성을 움wom이라고 부르고 남성은 맨움manwom으로 부른다 . 아내는 여전히 wife지만
남편은 housebound^^ 로 불린다 . 여성들은 자신에게 정자를 제공한 아이아버지에게 '부성
보호'를 지명할 수 있으며 맨움은 부성보호를 받기 위해 다달이 행정관서에 가서 피임약을
먹고 사인을 받아야 한다 . 여성에게 피임이란 없는 나라다 . 이 나라에서는 하느님아버지
godfather란 어휘 대신 도나제시카-하느님어머니 란 말을 쓴다 .젊은 미혼맨움은 maidman
이라 불리며 움은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당당히 젖가슴을 내밀고 다니는 대신 맨움은 페호
peho로 페니스를 받쳐야만 하는데 자신의 페니스가 큰 것을 몹시 부/끄/러/워/한다 .그래서
메이드맨들은 망사페호, 레이스페호, 리본페호 따위를 장만하고 움들이 그 페호를 들춰주기
를 가슴 두근거리며 기다린다 .

이 나라에서는 물론 맨움이 강간을 당한다 . 성행위시에는 당연히 움이 성욕을 느껴 맨움
을 끌고 가야 자연스러우며 맨움은 움이 원치 않는 임신을 시킬 수 없다 . 왜냐면 부성보호
를 받을 수 없으므로 . 그러니까 움이 원하여 임신을 하면 맨움은 감사히 생각하여 일체의
하찮은 직업(이갈리아에서는 대부분의 고위직은 움들이 차지한다 . 맨움은 가사나 청소나
임금이 적은 일들밖엔 할 수 없다 . 농사짓는 것도 물론 움이다 )을 관두고 육아에 충실해
야 하고 맨움들끼리 만나 모닝커피를 마시며 무심한 아내들을 흉보고 머리 손질을 하며 대
머리가 되면 가발을 써서 어떻게든 움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쓴다 .
소녀움들은 월경을 하게 되면 생리대를 뻗쳐들고 환호성을 지르며 메이드맨들에게 '늬들은
영원히 생리를 할 수 없는 가여운 존재들이야~ ' 라고 외친다 . 맨움들은 바다(농업, 어업이
주요산업임)로 나갈 수 없으며 자기가 원하는 직업을 갖기 힘들기에 어떻게든 아양을 떨어
움에게 선택되면 움들의 사회적 계층으로 편입 가능하다 . 그러기 위해 맨움들은 '꽃이 달
린 페호와 옅은 파스텔색의 쉬폰드레스'를 입고 메이드맨무도회에서 움들에게 찍히기를 고
대한다 . 성관계는 물론 움이 주도하며 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부성보호를 받지 못해 평
생 노총각으로 살아야 한다 .

이 책을 읽으면 처음에는 지금 우리 사회를 통째로 패러디 한 것이 우숴죽겠다가 나중에는
우리 여성이 이렇게 살아왔던가 싶어서 분노하다가 끝에는 눈물나는 지경이 된다 .
그리하여 루스브램의 하우스바운드 크리스토퍼는 아들 페트로니우스에게 부성보호를 받지
말라고 충고한다 . 크리스토퍼는 다리설계사가 되고 싶었던 꿈을 접고 아이 셋을 키우며
일과 일방적인 섹스밖에 모르는 루스브램에게 충실하게 사는 게 넌더리가 났던 것이다 . 이
것은 아마도 많은 여성들이 느끼는 (노르웨이고 미국이고 분단 한국이고를 구분하지 않고
동일하게 ) 자아에 눈뜨는 과정일 것이다 . 타자로 살아온 맨움들은 맨움해방주의(맨움도 움
이 가진 것과 똑같은 권리 , 권력, 기회를 가져야 하며 ,평등을 얻기 위해서는 현재의 상황
이 변해야 한다는 정치적 신념. 이것에 근거한 사회운동 )를 부르짖으며 페호를 불태우는
행사를 한다 . 우리의 자지는 좀 더 자유로워야 한다고 외치다가 결국 구속되는 수모를 겪
기도 하지만 ^^

결국 ...여성 역시 한 사람의 귀중한 존재로 인정받기를 원한다는 것을 이문열은 이해할
수 있을까 ?('선택'에서 보여준 그 무지한 여성 찬양 ^^)내 딸을 위하여 단언하건대 여성은
남성 우위에 있을 필요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여성은 남성에게 아양을 떨 필요도 없
으며 남성의 노동에 무임승차하여 얻어먹을 궁리도 집어치우는 게 좋다 . 의존이나 아양은
다 학습된 것이다 . 어미들은 부디 딸들에게 '남자를 뜯어먹고 살라 ' 고 가르쳐서는 안될
것이다 . 여성은 신갈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 '가 아니다 . 경제적 종속은 신분과 권리의
종속과 등치 될 수밖에 없다 . 가부장 사회가 가르치는 성역할이란 함정에 빠져서도 안 된
다 . 남자아이들이 공기를 하면 불알 떨어진다고 야단치고 여자아이들이 축구를 하면 '기집
애가 별 걸 다한다 ' 고 혀를 차는 어미들은 반성해야 한다 . 딸이 둘이면 '딸딸이아빠' 라고
비웃고 아들을 낳으면 '목욕탕에 함께 가서 좋다' 는 아비들을 다시 본다 . (나에게 왜 겨우
딸 하나 낳고 그만 뒀냐고 이제라도 아들 낳으라고 권한 당신들을 다 기억한다^^)딸 낳은
어미에게 '아들 못잖게 키우라' 는 말도 덕담이라고 하는 저 빛나는 남아선호사상의 신봉자
들은 언제부터 아들이 인간을 재는 기준이 됐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볼 일이다 .여자
애가 회장이 됐다고 요즘은 계집애들이 더 설친다고 은근히 비아냥거린 그 에미들을 경멸한
다 ^^아들 낳을 때까지 해보겠다고 낙태를 여덟 번이나 시키면서 피를 한 양동이나 쏟았다
는 친구 시누이의 무지함을 개탄한다 . (그러고 아들을 낳았는데 안 먹어도 배부르다나 ?
그러면서 위의 세 딸은 그냥 멕이고 고등학교나 시키고 말겠다나 -.-;;)그리고 그들에게 아
들 낳을 것을 종용한 시에미와 줏대없는 서방( 남편의 낮은 말 ^^)과 그들 모두를 그렇게
학습시킨 이 가부장 사회를 성토한다 . (그래봐야 눈 하나 깜빡 하겠냐만 )

그런데 나는 아직도 전승이 아닌 학습된 여성성에 굴복하고 산다 . 목소리 큰 여성에게 조
용하라고 주의 주며 다리 벌리고 앉는 딸에게 조신하지 못하다고 야단친다 (이갈리아에서
움들은 아이를 낳고 집에 돌아와 사흘 밤낮을 술 마시고 떠들며 막 산다 ^^) 그뿐이 아니다
. 여성은 깔끔하고 날씬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요리를 못하는 가정부인은 용서받을 수 없다
고 농담한다 .나는 이것을 내 딸에게 은연중에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할 것이다 .
자, 여자란 무엇인가 ?

" 그로한테서 부성보호를 받으면 안 된다 , 페트로니우스 ! 삼십 년
간, 아니면 네가 버틸 수 있는 한 , 하루 스물 네 시간 꼬박, 처음부터 끝까지 고달프고 힘
든 일이라구 ."
그는 잔을 비우고 다시 채웠다 .
"그리고 만일 세세한 부분까지 아내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스물 네 시간 내내 일하지 않는다
면 ,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비난 뿐이야 . 페트로니우스! 만일 내가 너라면 , 지금 ...만일
내 입장이라면 ,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거야 . 가정과 아이에 대한 꿈은 집어치우고
내 자신을 찾고 싶어 ."-311 쪽

" 나도(브램에게 ) 몇 번 맞았단다 . 페트로니우스! 그리고 그때마다
그 사실을 감추려고 화장을 더 짙게 해야 했단다 . 게다가 그녀는 가장 가슴 아픈 이유로
나를 때렸지 . 대개는 내가 다른 움과 바람을 피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어 . "-313 쪽


" 나는 우리 사회가 동성애적인 움들을 위한 거대한 운동장일 뿐이라
고 생각해요 .서로 장난치고 시합하고 싸움하고 , 서로서로 존경하고 , 서로를 키워주는 운
동장 말이예요 . 반면 맨움은 집안에 갖혀 지내거나 , 가장 더러운 직업을 떠맡거나 , 팔루
리아(남성동성애자구역)로 보내지죠 . 움들이 아름다운 요트와 움 전용 클럽과 회사에서 ,
스포츠 경기장에서 그들의 신성한 자매애를 추구하고 그것에 집착하는 동안에 말이에요 .
그래서 신체적으로 동성애자인 것과 정신적으로만 동성애자인 사이에는 별 차이가 없다구
요 . 왜냐면 내게는 움들이 서로 사랑하고 맨움을 경멸하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모두 동성
애자로 보이기 때문이예요 . " -314 쪽

맨움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통된 경험이 매우 많다는 것을 느꼈다 . 맨움의 몸에
대해서 가지는 부끄러움. 페니스와 음낭을 가지고 있다는 부끄러움. 왜 음낭 (shame bags)
이라고 불리는 걸까 ? 새 단어를 찾아야만 하지 않을까 ? 가슴이 없고 보기 좋은 허벅지와
엉덩이를 갖지 못했다는 부끄러움. 월경을 하지 않는 데 대한 부끄러움. 털이 났다는 부끄
러움과 털이 나지 않았다는 부끄러움. 턱수염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느끼는 부끄러움. 대머리
라는 부끄러움. 사춘기 때 목소리가 기묘한 저음으로 갈라지고 , 아이였을 때 가졌던 듣기
좋고 정상적인 목소리를 잃어버린 부끄러움. 밤에 사정하는 부끄러움. 아이를 낳을 수 없다
는 부끄러움. 부끄러움, 부끄러움, 부끄러움.
움에게 털이 안 난다고 해서 , 왜 맨움의 털 난 가슴을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 움은 어디
에 나건 상관없이 자신의 털을 자랑스러워하는데 , 맨움은 왜 그럴 수 없는가 ? 이 부끄러
움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그들은 또 다른 계획을 세웠다 (주*맨움해방주의자들의
계획)
-321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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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갈나무 투쟁기 - 새로운 숲의 주인공을 통해 본 식물이야기
차윤정.전승훈 지음 / 지성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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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늘 자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
우리에게 고기를 주는 동물, 우리에게 식량을 주는 열매에 대해 애정을 표현해왔다 .
이 책은 신생아 도토리가 어미 신갈나무로부터 떨어져 나와 곤두박질 치며 멀리 멀리 아주
먼 곳으로 굴러가면서 삶을 시작하는 얘기로부터 100세에 (상징적인 나이) 삶을 마감하기까
지를 신갈나무의 시선으로 그린 것이다 .

숲에 간다 .
숲에 가고 싶다 .
숲에서 그 아름다운 나무들이 가진 끈질긴 생명력과 눈물겨운 투쟁기를 읽다보면 나 역시
어느 날 나무처럼 그렇게 분해되어 세상의 먼지가 되리라는 걸 예감한다. 그리하여 오늘 내
가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그 모든 사랑과 욕망이 허수였다는 걸 깨닫게 된다 .

나무란 처음 발을 내린 곳에서 생을 이어가는 운명이다 .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겸허한 자
세가 우주를 이어간다. 그러니 제발 나무를 그대로 내버려 두어달라.그것이 사랑이다 .

<...몸의 어디에도 치명적인 조직을 만들지 않는 것 , 그리고 어디서나 새로이 시작할 수 있는 복병을 배치하는 것 , 이거야말로 나무가 오랜 세월 지구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기
본 힘이다- 92 쪽 >
<...신갈나무는 더이상 잎에 투자하지 않는다.물론 공로는 인정하지만 우선 정리해야 할 것이 잎이다 . 나무는 예우 차원에서 벌어지는 구차한 미련의 결과들이 얼마나 비효율적이며 또한 복잡한 부패의 고리를 만들어내는지 잘 알고 있다 .
신갈나무는 단호히 더이상의 미련은 갖지 않는다.그래서 엽록소도 만들지 않는다.가련한 노병은 초록을 잃어버리고 그래서 엽록소도 만들지 않는다 -105 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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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양미술 순례 창비교양문고 20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 창비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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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는 반동을 부른다 . 진보와 반동은 손을 잡고 온다 . 역사의 흐름은 때로 분류奔流 가 되지만 , 대개는 맥빠지게 완만하다. 그리하여 , 갔다가 되돌아섰다가 하는 그 과정의 하나하나의 장면에서 , 희생은 차곡차곡 쌓이게 마련이다. 게다가 , 그 희생이 가져다 주는 열매는 흔히 낯두꺼운 구세력에게 뺏겨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 헛수고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런 희생없이는 , 애시당초 어떠한 열매도 맺지 않는
것이다 . 그것이 역사라는 것이다 . 단순하지도 직선적이지도 않다 .
(서경식/나의 서양미술 순례/창비/p91에서)


'옥중서한집(야간비행)' 을 쓰신 서준식님의 동생이 서경식입니다 . 일전에 구입해놓고 못
읽던 책인데 크기가 작아서 문득 손에 들었더니 읽어지더군요 . 그는 스무 살 시절에 한국
에 유학생으로 간 두 형이 감옥에 갇히는 바람에 그 뒤 20 여 년을 형 들 옥바라지하는 일
로 보내게 됩니다 . 외세다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그는 미술에 특별한 취미가 있었던 것
도 아닌데 부모가 돌아가신 1983년에 허탈해하는 여동생과 함께 벨기에 뷔르셀을 기점으로
1990 년까지 프랑스 , 스페인, 독일 , 이탈리아 , 미국, 캐나다 같은 곳으로 미술관과 박물관
순례를 합니다 . 물론 여비가 넉넉지 않아 늘 춥고 피곤한 상태지만 그는 서양의 명화들을
보며 자신의 가족사와 가족이 그렇게 되기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조국의 처지
를 생각해봅니다 .
누구나 찬탄해 마지않는 그림들을 보고도 그는 그것을 민족사 혹은 가족사의 관점에서 바라
봅니다. 그 유명한 스페인 쁘라도 미술관을 둘러보고도 그는 그림에 막연히 경도되기 보다
는 식민제국을 거느렸던 스페인 무적함대의 16 세기를 돌아보며 제국의 오만함을 반추해봅
니다 . 그림이(혹은 예술이 ) 보여주는 경지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기도 합니다 . 그의 결론은
...위대한 예술이란 동시에 위대한 선전물이다 ..(p81)인 것 같은데 맞다고 생각합니다 .
당시엔 영화를 누렸던 레온보나같은 화가가 지금은 이름조차 남아있지 않은 걸 보고 역사
에 있어서 수구의 퇴영이란 당연한 귀결이라고 느끼기도 하지요 .

*캄뷰세스왕의 재판(헤랄드 다비드)을 보고 아버지의 죽음을 떠올리는 작자의 고독하고 힘
겨웠던 젊은 날과 삶을 다시 생각해보는 가을이 될 것입니다 . 개인적으로 누리고 싶은 행
복을 조국의 권력자들이 함부로 휘두른 칼날에 난도당한 서형제의 한스러움, 그러나 그것이
학문 혹은 인권운동으로 거듭나는 것을 보고 다시금 기운 내서 살아가야겠다는 결심을 해
봅니다. 전망이 반드시 밝은 것은 아니지만 역시 오늘을 살아낼 책임이 저에게는 있으니까
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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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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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린 소설을 처음 읽었다 . 아니, 염소를 모는 여자를 읽었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지 않았
다 . 도대체 염소는 뭐람...그런 생각을 하고 지나쳤던 것 같다 .
이 소설을 읽은 까닭은 기혼녀인 한 친구가 홀연히 찾아온 늦은 연정에 몸살을 앓으면서 자
기가 읽어보았더니 어떻더라고 하기에 도서관에서 빌려 손에 들었던 것이다 . 나 역시 한
때 자연스럽지 못한 연사를 겪었지만 (믿거나말거나^^)이건 단순히 연사 혹은 불륜이라기엔
껄끄러운 삶의 방식이었다 .

어디에서 보니 이렇게 써있다

불륜의 뒤에야 “처음으로 머리 끝까지 피가 운반되는 신선한 생기”를 느끼는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의 주인공 미흔도 그렇다. 그들은 자신을 얽어매고 있는 생의 관습
적인 틀, 일상이라 불리는 올가미를 풀어던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가출’하려 하거나 ‘탈
주’한다.

듣기 좋으라고 그렇게 썼지만 나는 이 주인공 여자 미흔이 왜 그렇게 살아야 했는지 명쾌하
게 이해할 수 없었다 . 미흔은 평온하게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와 함께 살다가 어느 날 남편
이 외도를 한 사실을 알게 된다 . 그러니까 미흔의 일탈은 남편의 외도로부터 시작된 셈이
다 .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으로부터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고 그 상처를 껴안고
있다가 기회가 되니 그 역시 불륜에 발을 디뎠다는 얘기다 . 나 역시 결혼 경험이 있었던
여성이지만 남편이 바람을 폈다고 해서 그걸 수삼년이나 껴안고 우울증에 시달리며 아무것
도 (!이것이 문제다 ) 하지 않고 식물처럼 살아간다는 게 좀 기이했다 . 이 소설 속에는 가
정 밖에 모르던 여자가 남편의 외도를 계기로 (물론 단순한 외도라기 보다는 상대 처녀가
임신, 낙태까지 했다고 집으로 찾아와 모멸을 주었다-한 마디로 '싸이코'인데 남자들은 바람
을 피울 때 그럴 염려가 있는 여자들은 좀 피하는 게 좋겠다 -.-;;들키지 않을 상대를 고르
라^^) 자기 삶 전체를 돌아보고 자기 삶이 어리석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 내가 보기엔 그
여자가 남편을 뜨겁게 사랑해서 배신감을 느꼈다기보다는 자신에게 찾아온 예기치 않은 불
행에 대해 대처할 능력이 없는 정신적으로 허약한 여자라고 느낀다 .


부부가 살면서 둘이서 정조를 지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이란 그렇지 않다 . 잡은
고기 먹이주느냔 남성도 있고 훔친 사과가 맛있다는 남성도 있으며 남의 떡이 커보인단 남
성도 물/론/ 있다 . 그거야 성의 취향이니 누가 뭐랄 수가 없다 . 여성도 마찬가지다 . 지금
사십대 여성들이야 아무래도 남편 아닌 남자와 살 섞는걸 부도덕하다고 생각하도록 교육받
고 살았지만 젊은 처자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 미용실 교양지를 다 믿을 순 없겠지만 기혼
녀들도 남자친구 정도는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며 실제로 남자친구 혹은 애인과 혼외정사 경
험이 있다고 고백하는 드물지 않다고 한다 .뭐 가장 공평한건 '스와핑' 일 수도 ^^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의를 환기하고 지나가야겠다 . 부부 한 쪽이 한 쪽의 성에 대해서
혹은 애정에 대해서 지루함을 느끼거나 관심이 없어졌을 경우도 반드시 정조를 지켜야 하는
냔 문제다 . 그건 아주 개인적인 문제이므로 타인이 왈가왈부할 필요는 전혀 없다 . 다만 이
소설에서 주인공의 남편은 '사고 ' 같은 것이었다고 항변하는데 아내는 그걸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 그리하여 식물처럼 살다가 이주해간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내가 보기엔) 전문 작
업꾼^^인 남자를 만나 열정적으로 몰두하게 된다 . 그러니까 주인공 여자도 남편의 외도를
이해해야 할 시점에 다다른 것이다 . 그러나, 전혀 남편을 이해한다는 기미가 없다 . 주인공
은 주인공 나름의 색다른 연애를 할 뿐이다 (불륜이라고 쓰고 싶지 않다!)
아내의 연애와 남편의 연애는 전혀 별개의 것이며 아내는 남편이 외도를 하지 않았더라도
그 우체국 남자에게 운명적인 사랑을 느꼈을 것이다 . 왜냐면 그토록 멋진 남자니까 -.-;;

나는 이 소설을 읽고 ..전경린이 왜 이 소설을 썼는지 생각해보았다 . 그리고 과연 이렇게
사는 여자들이 이 땅에 몇 % 나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 개연성이 없는 이야기면 신선하기
나 하던지 발상이 전아하던지 아님 지구 끝까지 둘이 가서 산화해버리던지 (둘이는 교통사
고를 당해 망신만 당하고 헤어지게 된다)

더 이상한 건 ...나는 그 여자가 왜 그 우체국 남자에게 매달리는지 료해^^가 가지 않았다 .
그냥 연애전문가라면 들키지 말고 만나던가 그 생애 단 한 번뿐일 고귀한 사람이라면 좀 참
던가 늦게 만난 사랑에 대한 깊은 아픔이라면 때를 기다리던가 (기다려봤자 결국은 지루해
지는 경우가 많지만 -.-;;)아니면 법적 절차를 밟아 뭐 어떻게 하던가 .

평자들이 혹은 식자들이 이 소설을 어떻게 말하는지는 모른다 . 다만 내가 읽어보았을 때
연애에 무지 서투른 여자가 밥 먹고 살기가 힘들지 않아서 공연히 일 한 번 저지르다가 들
킨 이야기가 아닌가 싶을 따름이었다 . 이 철저히 반(反)일상적인 여자에 대해서 연민을 느
끼며 이 여자는 나 같은 여자를 만나 한 열 번 정도 웃고 떠들면 우울증이 치료되지 않았
을까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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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 그 해 여름 사계절 아동문고 56
김정희 지음, 강전희 그림 / 사계절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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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근리 ,그해 여름을 읽고

 

4년 전 ,은실이가 핏물로 갈증을 달래던 그 노근리 굴 근처 에 가 본적이 있다 . 경부선이 지나가던 철로 밑 터널...벽과 천장에 난 총탄 자국을 누군가가 페인트 스프레이로 표시를 해 놨다 . 그때만 해도 노근리 문제를 입에 올리기 꺼리던 시기였다 . 정말 미군들이 우리 양민들을 불러내 이렇게 총질을 해댔단 말인가, 속으로 치밀어 오르던 눈물을 참느라 이를 악물었다 . 이게 있을 수도 있는 일인지 지금도 나는 잘 모르겠다 .

은실이는 순박한 소녀다 . 이웃에 좋아하는 오빠가 있고 가족은 화목하다 .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가족들은 이 전쟁에 대한 상식도 정보도 없다 . 그런데 어느 날 미군들이 이 마을 사람들을 소개시켰다. 마을 주민들은 그저 시키는 대로 집을 비우고 노근리로 갔다 . 그리고 굴속에서 총알 세례를 받았다 . 나오지도 못하게 하고 아무런 변명도 해명도 없이 몇 날 며칠 그들을 학살했다 . 어른, 아이, 여자, 노인, 아무런 기준도 없었다 . 그것은 지옥이었다 . 은실이는 그 상황을 겪었다 . 그 해 7 월에.
문제는 왜 그랬나 ? 하는 점이다 .

왜 그랬을까 ? 우리나라 어떤 사람들은 왜 그런지는 몰라도 지난 일은 거론하지 말고 돈이나 벌어 잘 살자고 한다 . 돈을 벌어 잘 사는 건 나쁘지 않다 . 나도 돈을 벌러 다니며 잘 살고 싶다 . 하지만 지난 일을 그냥 잊자는 말은 가해자나 피해자와 상관없는 사람들이 할 말이 아니다 . ‘ 잊자’ 는 말은 용서하는 말이어야 하며 이 말은 은실이와 그 가족들이 아니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 은실이는 그 굴속에서 총알 세례를 받았으며 몇 날 며칠 시체에서 풍기는 악취를 견디며 핏물을 마시며 구더기를 씹어 먹었다 . 사십 대 어른인 나도 감당할 수 없을 악몽을 십 대 여자 아이가 겪어야 했다 . 이런 일을 ‘잊자’ 고 말하는 사람들은 바보이거나 인면수심이다 .

우리나라가 그동안 겪은 많은 고난 가운데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것들이다 .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같은 전란 와중에 외국 적군에게 당하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세금으로 운영되는 군대나 경찰이 국민을 학살하는 것은 절대로 풀 수 없는 ‘공포 호러 미스테리’다 . 뿐만 아니라 우리를 도와주러 왔다는 연합군이 500여 양민을 모아놓고 무차별 난사를 했다는 게 기록에도 나온다 .

“역사를 증언하는 작전일지가 발견됐다. 미국국립문서보관서에 있는 미 제1기병사단 5기병
연대에서는 다음과 같은 6.25 참전 작전일지가 담겨 있다.

[1950년 7월 26일 01시 35분 5기병연대 2대대장이 연대장에게]

"우리 대대 근처에 있었던 주민들 50여명이 산에서 나아 후방으로 갔다. 일부는 소달구지를
끌고 갔다. 그들은 아무런 무장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사격을 하지 않았다.
그들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즉시 답변을 요구한다."

[1950년 7월 02시 00분: 연대장이 2대대장에게]

"소달구지와 함께 가고 있는 주민들을 포위하라. 반복한다. 그들을 포위하라."

["반복한다. 그들을 포위하라"]

이 작전일지에는 그 후 주민들의 '운명'에 관한 보고가 나타나 있지 않다. 포위한 피난민들
을 어떻게 하였는지 생략된 채 다른 사항들만 채워져 있다.
그러나 이 작전일지는 그들의 존재 자체를 미군의 문서 속에서 확인했다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

이런 일들을 어린 은실이가 기억하고 있다 . 어린 은실이는 친구와 언니, 엄마, 동생이 이유 없이 죽은 걸 잊지 못하고 해마다 7 월이 오면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이 자료에는 50 여명이라고 나오지만 사실은 500 여명이며 은실은 이 사실을 확연하게 기억하고 있다 . 도대체 누가 이런 일을 조용히 잊자고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 알 수는 없지만 이 사실이 밝혀지면 좋을 게 없는 사람들과 이런 사실에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는 사람들 일 것이다 .

과거를 밝힌다는 것은 다시는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 과거를 복기하는 것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잘못됐으며 잘못을 어떻게 풀어가겠다는 말과 한 가지다 . 이 동화는 아이들이 읽기에는 끔찍하다 . 심성이 여린 아이들은 이 동화를 읽고 악몽을 꿀 수도 있다 . 하지만 이런 역사적 과오가 진실이며 이 진실 속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지 발견한다면 이 동화는 아주 훌륭한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 .

은실아!네 상처를 어떻게 하면 치유할 수 있겠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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