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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 그 해 여름 ㅣ 사계절 아동문고 56
김정희 지음, 강전희 그림 / 사계절 / 2005년 9월
평점 :
-노근리 ,그해 여름을 읽고
4년 전 ,은실이가 핏물로 갈증을 달래던 그 노근리 굴 근처 에 가 본적이 있다 . 경부선이 지나가던 철로 밑 터널...벽과 천장에 난 총탄 자국을 누군가가 페인트 스프레이로 표시를 해 놨다 . 그때만 해도 노근리 문제를 입에 올리기 꺼리던 시기였다 . 정말 미군들이 우리 양민들을 불러내 이렇게 총질을 해댔단 말인가, 속으로 치밀어 오르던 눈물을 참느라 이를 악물었다 . 이게 있을 수도 있는 일인지 지금도 나는 잘 모르겠다 .
은실이는 순박한 소녀다 . 이웃에 좋아하는 오빠가 있고 가족은 화목하다 .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가족들은 이 전쟁에 대한 상식도 정보도 없다 . 그런데 어느 날 미군들이 이 마을 사람들을 소개시켰다. 마을 주민들은 그저 시키는 대로 집을 비우고 노근리로 갔다 . 그리고 굴속에서 총알 세례를 받았다 . 나오지도 못하게 하고 아무런 변명도 해명도 없이 몇 날 며칠 그들을 학살했다 . 어른, 아이, 여자, 노인, 아무런 기준도 없었다 . 그것은 지옥이었다 . 은실이는 그 상황을 겪었다 . 그 해 7 월에.
문제는 왜 그랬나 ? 하는 점이다 .
왜 그랬을까 ? 우리나라 어떤 사람들은 왜 그런지는 몰라도 지난 일은 거론하지 말고 돈이나 벌어 잘 살자고 한다 . 돈을 벌어 잘 사는 건 나쁘지 않다 . 나도 돈을 벌러 다니며 잘 살고 싶다 . 하지만 지난 일을 그냥 잊자는 말은 가해자나 피해자와 상관없는 사람들이 할 말이 아니다 . ‘ 잊자’ 는 말은 용서하는 말이어야 하며 이 말은 은실이와 그 가족들이 아니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 은실이는 그 굴속에서 총알 세례를 받았으며 몇 날 며칠 시체에서 풍기는 악취를 견디며 핏물을 마시며 구더기를 씹어 먹었다 . 사십 대 어른인 나도 감당할 수 없을 악몽을 십 대 여자 아이가 겪어야 했다 . 이런 일을 ‘잊자’ 고 말하는 사람들은 바보이거나 인면수심이다 .
우리나라가 그동안 겪은 많은 고난 가운데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것들이다 .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같은 전란 와중에 외국 적군에게 당하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세금으로 운영되는 군대나 경찰이 국민을 학살하는 것은 절대로 풀 수 없는 ‘공포 호러 미스테리’다 . 뿐만 아니라 우리를 도와주러 왔다는 연합군이 500여 양민을 모아놓고 무차별 난사를 했다는 게 기록에도 나온다 .
“역사를 증언하는 작전일지가 발견됐다. 미국국립문서보관서에 있는 미 제1기병사단 5기병
연대에서는 다음과 같은 6.25 참전 작전일지가 담겨 있다.
[1950년 7월 26일 01시 35분 5기병연대 2대대장이 연대장에게]
"우리 대대 근처에 있었던 주민들 50여명이 산에서 나아 후방으로 갔다. 일부는 소달구지를
끌고 갔다. 그들은 아무런 무장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사격을 하지 않았다.
그들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즉시 답변을 요구한다."
[1950년 7월 02시 00분: 연대장이 2대대장에게]
"소달구지와 함께 가고 있는 주민들을 포위하라. 반복한다. 그들을 포위하라."
["반복한다. 그들을 포위하라"]
이 작전일지에는 그 후 주민들의 '운명'에 관한 보고가 나타나 있지 않다. 포위한 피난민들
을 어떻게 하였는지 생략된 채 다른 사항들만 채워져 있다.
그러나 이 작전일지는 그들의 존재 자체를 미군의 문서 속에서 확인했다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
이런 일들을 어린 은실이가 기억하고 있다 . 어린 은실이는 친구와 언니, 엄마, 동생이 이유 없이 죽은 걸 잊지 못하고 해마다 7 월이 오면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이 자료에는 50 여명이라고 나오지만 사실은 500 여명이며 은실은 이 사실을 확연하게 기억하고 있다 . 도대체 누가 이런 일을 조용히 잊자고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 알 수는 없지만 이 사실이 밝혀지면 좋을 게 없는 사람들과 이런 사실에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는 사람들 일 것이다 .
과거를 밝힌다는 것은 다시는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 과거를 복기하는 것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잘못됐으며 잘못을 어떻게 풀어가겠다는 말과 한 가지다 . 이 동화는 아이들이 읽기에는 끔찍하다 . 심성이 여린 아이들은 이 동화를 읽고 악몽을 꿀 수도 있다 . 하지만 이런 역사적 과오가 진실이며 이 진실 속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지 발견한다면 이 동화는 아주 훌륭한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 .
은실아!네 상처를 어떻게 하면 치유할 수 있겠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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