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양미술 순례 창비교양문고 20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 창비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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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는 반동을 부른다 . 진보와 반동은 손을 잡고 온다 . 역사의 흐름은 때로 분류奔流 가 되지만 , 대개는 맥빠지게 완만하다. 그리하여 , 갔다가 되돌아섰다가 하는 그 과정의 하나하나의 장면에서 , 희생은 차곡차곡 쌓이게 마련이다. 게다가 , 그 희생이 가져다 주는 열매는 흔히 낯두꺼운 구세력에게 뺏겨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 헛수고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런 희생없이는 , 애시당초 어떠한 열매도 맺지 않는
것이다 . 그것이 역사라는 것이다 . 단순하지도 직선적이지도 않다 .
(서경식/나의 서양미술 순례/창비/p91에서)


'옥중서한집(야간비행)' 을 쓰신 서준식님의 동생이 서경식입니다 . 일전에 구입해놓고 못
읽던 책인데 크기가 작아서 문득 손에 들었더니 읽어지더군요 . 그는 스무 살 시절에 한국
에 유학생으로 간 두 형이 감옥에 갇히는 바람에 그 뒤 20 여 년을 형 들 옥바라지하는 일
로 보내게 됩니다 . 외세다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그는 미술에 특별한 취미가 있었던 것
도 아닌데 부모가 돌아가신 1983년에 허탈해하는 여동생과 함께 벨기에 뷔르셀을 기점으로
1990 년까지 프랑스 , 스페인, 독일 , 이탈리아 , 미국, 캐나다 같은 곳으로 미술관과 박물관
순례를 합니다 . 물론 여비가 넉넉지 않아 늘 춥고 피곤한 상태지만 그는 서양의 명화들을
보며 자신의 가족사와 가족이 그렇게 되기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조국의 처지
를 생각해봅니다 .
누구나 찬탄해 마지않는 그림들을 보고도 그는 그것을 민족사 혹은 가족사의 관점에서 바라
봅니다. 그 유명한 스페인 쁘라도 미술관을 둘러보고도 그는 그림에 막연히 경도되기 보다
는 식민제국을 거느렸던 스페인 무적함대의 16 세기를 돌아보며 제국의 오만함을 반추해봅
니다 . 그림이(혹은 예술이 ) 보여주는 경지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기도 합니다 . 그의 결론은
...위대한 예술이란 동시에 위대한 선전물이다 ..(p81)인 것 같은데 맞다고 생각합니다 .
당시엔 영화를 누렸던 레온보나같은 화가가 지금은 이름조차 남아있지 않은 걸 보고 역사
에 있어서 수구의 퇴영이란 당연한 귀결이라고 느끼기도 하지요 .

*캄뷰세스왕의 재판(헤랄드 다비드)을 보고 아버지의 죽음을 떠올리는 작자의 고독하고 힘
겨웠던 젊은 날과 삶을 다시 생각해보는 가을이 될 것입니다 . 개인적으로 누리고 싶은 행
복을 조국의 권력자들이 함부로 휘두른 칼날에 난도당한 서형제의 한스러움, 그러나 그것이
학문 혹은 인권운동으로 거듭나는 것을 보고 다시금 기운 내서 살아가야겠다는 결심을 해
봅니다. 전망이 반드시 밝은 것은 아니지만 역시 오늘을 살아낼 책임이 저에게는 있으니까
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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