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갈리아의 딸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지음, 히스테리아 옮김 / 황금가지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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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에요, 여보 ? 난 턱수염에 삼푸를 잔뜩 묻혔는데'
'전화, 전화 갖다 줘'
'안돼요. 거품이 온 집안에 아 떨어질 거예요'
'씻고 말려, 빌어먹을 !'
잠깐 침묵이 흘렀다. 브램은 초조하게 테라스 문 쪽을 보았다.
'루스?'
'응'
'설명서에 오 분 동안 그대로 두어야 한다고 써 있어요. 지금 헹구면 턱수염은 모두 꼬불꼬
불하게 될 텐데 난 내일 모닝 커피 모임에 가야 한다구요'
브램은 고개를 흔들었다. 하느님 어머니 ! 어떻게 그런 일이 중요할 수 있나. 맨움들이란 !
하지만 그녀는 미용사가 손질한, 늘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크리스토퍼의 곧은 턱수염
이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49 쪽

세상을 어느 정도 살다보면 남녀 혹은 부부 사이가 '뜯어먹고', '먹여 살리고 ','등쳐 먹고사
는' 관계가 되기도 하나보다 . 남녀 혹은 부부가 경제 능력에 있어 동등하지 않을 때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 그런 등식이 성립하기도 하는지 때때로 그런 표현을 마주치게 된다 . 그
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물론 웃자고 하는 소리겠지만 듣는 사람으로서는 민망할 따름이다
. 나는 늘 남녀 혹은 부부란 서로를 친구로 대접해야지 소유 혹은 의존의 개념으로 대할 때
갑갑해진다고 생각한다 .

'이갈리아의 딸들' 은 1941 년 노르웨이(그 피요르드 해안을 늘 보고 싶어했는데~)에서 태
어난 교사 출신 작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작품이다. 1977년에 영어로도 번역된 이 책은
1996 년에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네 명의 여성에 의하여 한국어로 번역되어 선보였다 .

이 책을 읽기 전에 우리는 먼저 낯선 몇몇 용어들을 익혀야 한다 . 이갈리아라는 이 나라
는 아마도 평등주의 (egalitarian)+유토피아(utopia)의 합성어 일거라고 한다 . 이 나라에서는
여성을 움wom이라고 부르고 남성은 맨움manwom으로 부른다 . 아내는 여전히 wife지만
남편은 housebound^^ 로 불린다 . 여성들은 자신에게 정자를 제공한 아이아버지에게 '부성
보호'를 지명할 수 있으며 맨움은 부성보호를 받기 위해 다달이 행정관서에 가서 피임약을
먹고 사인을 받아야 한다 . 여성에게 피임이란 없는 나라다 . 이 나라에서는 하느님아버지
godfather란 어휘 대신 도나제시카-하느님어머니 란 말을 쓴다 .젊은 미혼맨움은 maidman
이라 불리며 움은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당당히 젖가슴을 내밀고 다니는 대신 맨움은 페호
peho로 페니스를 받쳐야만 하는데 자신의 페니스가 큰 것을 몹시 부/끄/러/워/한다 .그래서
메이드맨들은 망사페호, 레이스페호, 리본페호 따위를 장만하고 움들이 그 페호를 들춰주기
를 가슴 두근거리며 기다린다 .

이 나라에서는 물론 맨움이 강간을 당한다 . 성행위시에는 당연히 움이 성욕을 느껴 맨움
을 끌고 가야 자연스러우며 맨움은 움이 원치 않는 임신을 시킬 수 없다 . 왜냐면 부성보호
를 받을 수 없으므로 . 그러니까 움이 원하여 임신을 하면 맨움은 감사히 생각하여 일체의
하찮은 직업(이갈리아에서는 대부분의 고위직은 움들이 차지한다 . 맨움은 가사나 청소나
임금이 적은 일들밖엔 할 수 없다 . 농사짓는 것도 물론 움이다 )을 관두고 육아에 충실해
야 하고 맨움들끼리 만나 모닝커피를 마시며 무심한 아내들을 흉보고 머리 손질을 하며 대
머리가 되면 가발을 써서 어떻게든 움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쓴다 .
소녀움들은 월경을 하게 되면 생리대를 뻗쳐들고 환호성을 지르며 메이드맨들에게 '늬들은
영원히 생리를 할 수 없는 가여운 존재들이야~ ' 라고 외친다 . 맨움들은 바다(농업, 어업이
주요산업임)로 나갈 수 없으며 자기가 원하는 직업을 갖기 힘들기에 어떻게든 아양을 떨어
움에게 선택되면 움들의 사회적 계층으로 편입 가능하다 . 그러기 위해 맨움들은 '꽃이 달
린 페호와 옅은 파스텔색의 쉬폰드레스'를 입고 메이드맨무도회에서 움들에게 찍히기를 고
대한다 . 성관계는 물론 움이 주도하며 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부성보호를 받지 못해 평
생 노총각으로 살아야 한다 .

이 책을 읽으면 처음에는 지금 우리 사회를 통째로 패러디 한 것이 우숴죽겠다가 나중에는
우리 여성이 이렇게 살아왔던가 싶어서 분노하다가 끝에는 눈물나는 지경이 된다 .
그리하여 루스브램의 하우스바운드 크리스토퍼는 아들 페트로니우스에게 부성보호를 받지
말라고 충고한다 . 크리스토퍼는 다리설계사가 되고 싶었던 꿈을 접고 아이 셋을 키우며
일과 일방적인 섹스밖에 모르는 루스브램에게 충실하게 사는 게 넌더리가 났던 것이다 . 이
것은 아마도 많은 여성들이 느끼는 (노르웨이고 미국이고 분단 한국이고를 구분하지 않고
동일하게 ) 자아에 눈뜨는 과정일 것이다 . 타자로 살아온 맨움들은 맨움해방주의(맨움도 움
이 가진 것과 똑같은 권리 , 권력, 기회를 가져야 하며 ,평등을 얻기 위해서는 현재의 상황
이 변해야 한다는 정치적 신념. 이것에 근거한 사회운동 )를 부르짖으며 페호를 불태우는
행사를 한다 . 우리의 자지는 좀 더 자유로워야 한다고 외치다가 결국 구속되는 수모를 겪
기도 하지만 ^^

결국 ...여성 역시 한 사람의 귀중한 존재로 인정받기를 원한다는 것을 이문열은 이해할
수 있을까 ?('선택'에서 보여준 그 무지한 여성 찬양 ^^)내 딸을 위하여 단언하건대 여성은
남성 우위에 있을 필요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여성은 남성에게 아양을 떨 필요도 없
으며 남성의 노동에 무임승차하여 얻어먹을 궁리도 집어치우는 게 좋다 . 의존이나 아양은
다 학습된 것이다 . 어미들은 부디 딸들에게 '남자를 뜯어먹고 살라 ' 고 가르쳐서는 안될
것이다 . 여성은 신갈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 '가 아니다 . 경제적 종속은 신분과 권리의
종속과 등치 될 수밖에 없다 . 가부장 사회가 가르치는 성역할이란 함정에 빠져서도 안 된
다 . 남자아이들이 공기를 하면 불알 떨어진다고 야단치고 여자아이들이 축구를 하면 '기집
애가 별 걸 다한다 ' 고 혀를 차는 어미들은 반성해야 한다 . 딸이 둘이면 '딸딸이아빠' 라고
비웃고 아들을 낳으면 '목욕탕에 함께 가서 좋다' 는 아비들을 다시 본다 . (나에게 왜 겨우
딸 하나 낳고 그만 뒀냐고 이제라도 아들 낳으라고 권한 당신들을 다 기억한다^^)딸 낳은
어미에게 '아들 못잖게 키우라' 는 말도 덕담이라고 하는 저 빛나는 남아선호사상의 신봉자
들은 언제부터 아들이 인간을 재는 기준이 됐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볼 일이다 .여자
애가 회장이 됐다고 요즘은 계집애들이 더 설친다고 은근히 비아냥거린 그 에미들을 경멸한
다 ^^아들 낳을 때까지 해보겠다고 낙태를 여덟 번이나 시키면서 피를 한 양동이나 쏟았다
는 친구 시누이의 무지함을 개탄한다 . (그러고 아들을 낳았는데 안 먹어도 배부르다나 ?
그러면서 위의 세 딸은 그냥 멕이고 고등학교나 시키고 말겠다나 -.-;;)그리고 그들에게 아
들 낳을 것을 종용한 시에미와 줏대없는 서방( 남편의 낮은 말 ^^)과 그들 모두를 그렇게
학습시킨 이 가부장 사회를 성토한다 . (그래봐야 눈 하나 깜빡 하겠냐만 )

그런데 나는 아직도 전승이 아닌 학습된 여성성에 굴복하고 산다 . 목소리 큰 여성에게 조
용하라고 주의 주며 다리 벌리고 앉는 딸에게 조신하지 못하다고 야단친다 (이갈리아에서
움들은 아이를 낳고 집에 돌아와 사흘 밤낮을 술 마시고 떠들며 막 산다 ^^) 그뿐이 아니다
. 여성은 깔끔하고 날씬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요리를 못하는 가정부인은 용서받을 수 없다
고 농담한다 .나는 이것을 내 딸에게 은연중에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할 것이다 .
자, 여자란 무엇인가 ?

" 그로한테서 부성보호를 받으면 안 된다 , 페트로니우스 ! 삼십 년
간, 아니면 네가 버틸 수 있는 한 , 하루 스물 네 시간 꼬박, 처음부터 끝까지 고달프고 힘
든 일이라구 ."
그는 잔을 비우고 다시 채웠다 .
"그리고 만일 세세한 부분까지 아내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스물 네 시간 내내 일하지 않는다
면 ,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비난 뿐이야 . 페트로니우스! 만일 내가 너라면 , 지금 ...만일
내 입장이라면 ,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거야 . 가정과 아이에 대한 꿈은 집어치우고
내 자신을 찾고 싶어 ."-311 쪽

" 나도(브램에게 ) 몇 번 맞았단다 . 페트로니우스! 그리고 그때마다
그 사실을 감추려고 화장을 더 짙게 해야 했단다 . 게다가 그녀는 가장 가슴 아픈 이유로
나를 때렸지 . 대개는 내가 다른 움과 바람을 피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어 . "-313 쪽


" 나는 우리 사회가 동성애적인 움들을 위한 거대한 운동장일 뿐이라
고 생각해요 .서로 장난치고 시합하고 싸움하고 , 서로서로 존경하고 , 서로를 키워주는 운
동장 말이예요 . 반면 맨움은 집안에 갖혀 지내거나 , 가장 더러운 직업을 떠맡거나 , 팔루
리아(남성동성애자구역)로 보내지죠 . 움들이 아름다운 요트와 움 전용 클럽과 회사에서 ,
스포츠 경기장에서 그들의 신성한 자매애를 추구하고 그것에 집착하는 동안에 말이에요 .
그래서 신체적으로 동성애자인 것과 정신적으로만 동성애자인 사이에는 별 차이가 없다구
요 . 왜냐면 내게는 움들이 서로 사랑하고 맨움을 경멸하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모두 동성
애자로 보이기 때문이예요 . " -314 쪽

맨움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통된 경험이 매우 많다는 것을 느꼈다 . 맨움의 몸에
대해서 가지는 부끄러움. 페니스와 음낭을 가지고 있다는 부끄러움. 왜 음낭 (shame bags)
이라고 불리는 걸까 ? 새 단어를 찾아야만 하지 않을까 ? 가슴이 없고 보기 좋은 허벅지와
엉덩이를 갖지 못했다는 부끄러움. 월경을 하지 않는 데 대한 부끄러움. 털이 났다는 부끄
러움과 털이 나지 않았다는 부끄러움. 턱수염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느끼는 부끄러움. 대머리
라는 부끄러움. 사춘기 때 목소리가 기묘한 저음으로 갈라지고 , 아이였을 때 가졌던 듣기
좋고 정상적인 목소리를 잃어버린 부끄러움. 밤에 사정하는 부끄러움. 아이를 낳을 수 없다
는 부끄러움. 부끄러움, 부끄러움, 부끄러움.
움에게 털이 안 난다고 해서 , 왜 맨움의 털 난 가슴을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 움은 어디
에 나건 상관없이 자신의 털을 자랑스러워하는데 , 맨움은 왜 그럴 수 없는가 ? 이 부끄러
움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그들은 또 다른 계획을 세웠다 (주*맨움해방주의자들의
계획)
-321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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