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음악가의 음악 이야기 - 개정판 마음이 쑥쑥 자라는 세상 모든 시리즈 2
유미선 지음, 최상훈 그림 / 꿈소담이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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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모두 20개의 유명한 고전 음악과

그 음악을 작곡한 작곡가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보통은 딱딱하고 재미없다고 여기는 고전음악에 관해서

이 책을 읽고나면 그 인식이 달라진다 . 클래식이

더 재미있고 가요보다 훨씬 유익한 것 같다고 느끼면 다행이다 .

이 책에는 흔히 소녀들이  피아노 소곡집에서 쳐 보았던 곡들도 있고

학교에서 배웠던 곡들, 많이 들어 보았던 곡도 있다.

그 중에서 운명 교향곡이 제일 흥미롭다 .

운명 교향곡은 베토벤 작곡 음악이라는 걸 누구나 안다 .

베토벤은 운명이 자신에게 찾아온다고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운명 교향곡의 맨 앞부분을 ->다다다, 다 - 다다다, 다->

이렇게 노크를 하며 들어오는 것처럼 표현하였다.

루트비히 반 베토벤.

베토벤은 20세 전후해서 귓병을 앓았는데, 30세가 되어서는

완전히 듣지 못할 정도로 병이 악화되었다. 음악가로서는

너무나도 치명적이었다. 그러나 베토벤은 소리는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도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귀를 듣지 못 하면서도 작곡 활동을 했는데

그 때 만든 곡이 바로 유명한 운명 교향곡이다.

나는 모차르트도 좋아한다 . 음악가들의 음악을 들어보면

자기만의 색깔이 있다. 모짜르트는 밝고 명랑하다.

예를 들어 베토벤의 음악은 대체로 장중하고 진지하다.

난 어둡고 비극적인 걸 좋아한다 . 하지만 밝고 명랑한 것도

좋아 모짜르트도 좋아했다. 그런데 다른 음악가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니까 멋지고 밝은 음악을 작곡한 훌륭한 음악가들도 많았다.

소년 , 소녀들이 이 책을 읽으면 음악과 작곡가의 설명을

동시에 알 수 있어 더욱 유익할 것이다 .

최근에 끝난 ‘베토벤 바이러스’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음악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 나도 불멸의 연인이나

카핑 베토벤을 통해  암울한 삶 속에서 열정과 천재성으로

그 나름대로는 행복한 삶을 영위한 베토벤을 사랑하게 되었다 .

실제로 작곡가들은 우아하고 고결하게 살지는 못했다 .편하게

앉아서 듣는 사람이 즐겁지 창작하고 익히는 음악가들은 모두

고통을 겪어야 한다 .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위대하고

예술가는 고귀한 존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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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 사계절 1318 문고 38
박상률 지음 / 사계절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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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해 5 월 , 나는   어떤 은행 영등포지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

어느 날 , 고향에 다녀 온 광주상고 출신 환이란 신입행원이 놀란 가슴을 진정 못하고 말했다 .

- 광주는 난리예요 . 전쟁이 난 것 같아요 .




그런데 사람들은 별 충격 없이 그 말을 받아들였던 것 같다 . 당시에 전두환이 집권을 하고 사람들은 대통령부인이 전에는 ‘연희동 빨간바지’ 였다더라, 그런 루머에만 관심을 보일 뿐이었다 . 그것은 아마도 검열 받던 미디어에 대한 불신으로 더 이상 언론에 대한 신뢰가 가치 없다고 여겼던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그냥 세속적 삶에 지쳐서 모든 언어가 모래처럼 흘러내렸던 건지도 모른다 .




그 당시 방송이나 신문에서는 정말 그렇게 말했다 . 광주에 불순분자가 선동해 난동을 부리고  있다고 . 그래서 우리 귀신 잡는 해병이 투입되어 그들을 진압하고 있으니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고 .....

아마도  나처럼 서울이나 경기 출신 시민들은  전라도 사람들이 불만이 많아 김대중을 대통령 시키려고 그러나보다고  혀를 두드렸던 것  같다 .




그런데  당시에 광주의 어느 지하도에서  “영균” 이가 총에 맞아 죽었던 것이다 .  착하고 사려 깊으며 근면한 영균이가 ‘이름없는’ 존재로 죽어갔다 . 영균이는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 지나 알고 있었을까 ? 그 순하고 가여운  청년이 새 운동화와 새 바지를 입고   총에 맞는 순간은 호강하고 살아온 육십대의 그 세월에 맞먹게 안타깝고 가슴 저미는 사건이다 .  영균이는   부지런히 일하고 공부해서 대학 졸업장도 받고  좋은 데 취직해서 동생을 보살피고 어머니 월산댁을 잘 모시고 싶었다 .  그러나 그 ‘힘든 날’ 이후로 영균은 이 지상에서 가졌던 그 짧으나 짧은  삶 전체를 관통하는 서러움으로 혼이 되어 버린 것이다 .




도대체 이런 어이없는  죽음에 대해 이 원통한 죽음에 대해 누가 책임을 지고 있는 건지 묻고 싶다 . 영균의 죽음은 가난하고 착하게만 살았을 월산댁과 역시 형처럼 살아갈  동생의 살아있는 죽음을 예고하는 셈이다 . 다른 어미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월산댁은  호의호식 못 시켜준 영균의 죽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 혼을 놓고 사는 게 월산댁에게는  훨씬 말이 되는 상황인 것이다 .나는 월산댁이 그렇게 넋을 놓고 철물점으로 학교로 영균을 찾아다니던 심정을 100% 이해 한다 . 만일  착하고 가엾게 산  어린 딸이 그렇게 비명에 갔다면 더구나 그것이 자국의 군대에 의한 사살이었다면 제 정신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내지 못 했을 것이다 . 




가끔 사람들이 이제 지나간 일은 잊고 경제에 힘써야지 이 정권은 왜 그렇게 과거사에만   매달려있느냐는 불평하는 걸 듣는다 . 나는 이 정권이 경제에도 당연히 힘써야하지만 이런 정도로 과거사를 해결하는 걸로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 한다 . 도대체 누가 이 가여운 영균이, 또 “영균이들”의 넋에게 답변을  해줄 수 있단 말인가 ? 무엇 때문에 아무 죄 없는 시민들에게 총을 쏘고 명예를 짓밟았는지 시원한 답변을 하지 않은 채 가해자들 혹은 방관자들이 과거를 잊자고 말해서는 안 된다 .

이 책을 읽으면서  영균이 걸어갔을 그 뜨겁고 혼란한 광주 금남로 시내, 그리고 그 시내와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무등산이 떠올랐다 . 그때 무덤을 파서 영균의 관 속에 썩고 있는 아들 시신을 보고 혼절한 월산댁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가슴이 먹먹해진다 . 그 어머니는 어떻게 살아갈까 ? 그 어머니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왔을까 ? 해마다 5 월이 되면 그 어머니들은 어떻게 그 꺼멓게 썩은 가슴을 쓸어내릴까 ? 그 어머니들은  통장에 29만원 밖에 없다는  도살자 얼굴이 텔레비전 화면에 비치면  어떻게 견뎌낼까 ?   만지기도 아까운 그 죄 없는  자식을  폭도로 몰아 살육한 사람들은 도대체 누가 처벌받았다는 건지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 그래서 그냥 사회책에 적힌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영균과  월산댁을 통해 육성으로 만나는 작품이라고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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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도시에 갔다가 돌아오면 늘, 안정감을 느낀다 . 익숙해서 그렇기도 하지만깨끗하고 조용한 도시다.  특별한 아름다움은 아니지만 수원은 오래된 품격을 가진  도시라고 느낄 만하다 .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76 년에는 확실히 조용한 도시였다 . 76 년 무렵엔 20 만이던 인구가 이제는  100만이나 되었고 토박이 보다는 이주해 온 사람들이 더 많은 도시가 되었다 . 하지만 특별히 수원을 떠나고 싶다거나 수원이 사람 못살 데라고 느낀  적은 없다 .




우리 아버지 고향은 개성이다 . 아버지가  한국전쟁 때 폭격을 피해 남하해서 수원에 자리잡은 건 ‘10 전투 비행장’ 에 일자리를 잡아서라고 들었다 . 물론 그 당시 일자리가 번듯한 게 있을 리 없고 미군부대 식당  종업원 즉  하우스보이 노릇을 했다고 한다 .  그리고 이제나 저제나 고향에 돌아가기를 기다리던 아버지는  다시는 고향땅을 밟아보지 못한 채 7 년 전 돌아가셨다 .  수원 서민병원 병실에서 .  그리고  아주대병원 영안실에서 장례를 치르고 연화장 납골당에서 개성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으시다 .




나는 수원에서 40 년 넘게  살았다 . 대학 다닐 때와 결혼 뒤 잠시 이천에서 산 것을 빼 거의 수원살이를 한 셈이다 .   지금은 화성이 세계 문화유산이라고 여기를 답사하는 사람도 생겼지만 (!) 내가 어렸을 때 화성은 그냥 놀이터였다 . 나는 어린 시절 줄곧 북수동 , 신풍, 장안동에서 살았다 . 최근에 화서동 아파트로 입주를  했지만 돌아가신 어머니 소망대로 성안에서만 산 셈이다 (!) 어머니는 어쩐 일인지 사람은 반드시 성안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에 서문 근처 신풍동과 장안동에서 살았을 때는 서문이 우리들 놀이터였다 . 




지금은 옹색하게도 느껴지는 동네지만 그때는 자연 환경이 좋은  놀이터였다 . 그때는 누구나 서문 위에 올라가서 놀곤 했다 .아니면 공심돈에서 누가 목매달아 죽어서 귀신이 나온다고 가슴 두근거리며 들여다 보기도 했다 .  아이들은 서문 누각 위에서 내려오는   계단 난간을  미끄럼처럼 타고  내리는 놀이를 하곤 했다 . 바로 밑에 동생 란이가 세 살 때인가, 하루는   난간을 미끄럼타고 놀던 란이가 미끄럼을 시작하자마자 균형을 잃고 굴러 떨어졌다 . 그런데 서문 근처 바닥은 넓적한 자연석으로 모자이크되어 깔려 있었는데 거기 바로 떨어졌으면 머리가 깨져 죽었을 것이다 . 그런데 당시는  그 근처에  솜틀집이 있었다  .때마침    솜틀집 주인이 서문 누각 계단 아래에  나무 반자(문짝)을 펴놓고 거기에 튼 솜을 펼쳐놓고 말리곤 했다 , 다행히 란은 펴말리던 솜 뭉치위에 떨어졌다 . 그래도 머리 어디에선가 피가 흘렀다 . 나는 놀라서 란을 흔들다가 마침 동네 미용실에서 고데를 하던 어머니를 찾아  뛰어갔다 . 어머니는  “ 엄마! 란이가 서문에서 떨어졌어요!” 하는 비명을 듣자 머리에 고데를 하던  한지 조각을 그대로 붙인 채 내달아왔다 . 어깨에 두른 분홍색 케이프가 황금박쥐  망토처럼 펄럭거렸다 .




어머니는 동생 란을 안고 도립병원까지  울면서 뛰어갔다 .  당시에 도립병원은 지금 행궁자리에  경기 간호전문학교와 함께 있었는데 그 오른쪽엔 경찰서 건물이  있었다 .  어머니가  동생 란을 안고 서문서부터 지금 제일교회자리인 도서관을 거쳐 법원자리였던 선경도서관 앞을 거치고 신풍학교 앞을 거쳐 도립병원까지 뛰어갈 때 나는 동생이 죽을까봐 그리고 그 애가 죽은 다음  동생 제대로 데리고 놀지 못했다고 혼날까봐 가슴 조이던 공포를 기억한다 . 119 구급차가 없었던 건지 거기에 연락할 수단이 없었던 건지 아무튼 인간 구급차 어머니는  피 흘리는 딸을 안고 뛰었다.




그리고 동생은 다행히 죽지는 않았지만  열 살이 되어보아야 사람이 될지 알 수 있다는 의사 진단처럼 입이 짦고 마른데다 약하고  암기력 부족한 아이로 자랐다 . 하지만 그냥저냥  중학교에 다니고 고등학교는 멀찌감치 영신여고를 다녀서 그때  추락 경험이  아무래도 두뇌활동에  일종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하는 짐작을 하게끔 했다 .  평준화가 되기 전 당시 영신여고는 학업보다는 자유로운 청소년기를 보내는 학생들이 선택하는  학교였다 .병약한 란을  유달리 사랑하던 아버지는 영신학교 덕분에 우리 둘째딸이 ‘고녀’를 졸업했다고 좋아하시곤 했다 . 내 동생이 영신여고 1회 졸업생이었다 .




3 학년 때부터 화홍문 근처 북수동에 살았는데 거기서 화홍문과 북문 , 성벽은 우리들 놀이터였다 . 68 년 무렵에 화홍문에는 깨끗한  물이 흘렀고 68 년에 태어난  막내 동생 기저귀를 화홍문에서 흘러내리는 수원천 물에 빨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 어머니는 양력 12 월에 지금은 없어진 김종훈 산부인과에서 서른아홉 노산으로 아기를 낳았다. 서울서 해산구완을 오신 이모님이 빨래방망이를 꽂고 엄마와 아기 빨래가 든 빨래 함지를 이고 화홍문 아래로 가셨다 . 나는 눈길을 걸어 그 뒤를 따라갔는데  그다지 춥지는 않았다 . 빨래돌을 찾아 자리 잡고 앉아  어머니  개짐을 물에 헹구니 붉은 핏물이 물에 흩어지며 흘러가던 기억이 선연하다 . 




그때는 여름이고 겨울이고 많은 부녀자들이 빨래함지를 이고 나와 거기서 빨래를  했다 . 여름이면 아이들이 거기서 멱을 감고 장마통엔 화홍문 일곱 수문이 미어지도록 수량이 넘쳤다 . 우리는 그곳을 ‘냇갈둑’ 라고 불렀는데  어느 핸가는 홍수가 나서  냇갈둑 제방이 넘칠까봐  사람들이 모두 나와 서서 구경하던 게 떠 오른다 . 설마 그 냇갈둑이 무너질 거라곤 생각안했다. 그러나   평이한 나날을 보내던 아이들이 뭔가 새로운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내가 다니던 신풍학교 근처가 지금은 상전벽해가 된 것을 본다 .   지금 우체국 맞은 편 자리가 70 년대 당시엔 시외버스 터미널이었다 . 용인에 사는 고모님댁에 가기 위해 거기서 시외버스를 타곤 했는데 그 터미널 화장실 냄새가 지금도 기억난다 .  가뜩이나 비위가 약한 나는 버스에서 내리면 멀미가 나서 곧 토하고 싶은데 화장실에 가면 버스 매연 냄새에 잘 씻겨내려가지 않은 오물 냄새가 아주 복잡한 구성으로 어린 내 속을 복대겼다 . 나는 거기서 실컷 토하고 입가심도 제대로 못한 채 터미널 옆 낚시점과 그 근처 점포들 풍경을  보며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 그런데 수원서 오랜 산 친구들도 터미널 얘기를 하면 잘 기억하지 못한다 . 그건 내가 만들어낸 기억일까 싶기도 하지만 우체국 옆 동아약국 이층에 있던 동아치과에 갈 때마다 터미널 냄새를 아주 오래 기억하던 걸 보면 조작된 기억은 아닐 것이다 .




신풍학교가 곧 헐릴 거라는 소문을 들었다 . 그래서 동창들이 반대를 한다는 둥 남창학교랑 통합을 한다는 둥 바람이 실어온 소문들이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 어린 시절에 낙남헌을 교무실로 이용하던 일도 있는데 시대에 따라 모든 게 달라질 것이다 . 나와 내 동생들과 내 딸까지 졸업한 신풍학교가 없어지면  좀 서운 할 것이다 . 그처럼  넓어보이던 운동장과 소풍날과 운동회날만 비가 오게 하던 이무기 전설어린  느티나무도  베어버릴 것이다 . 운동장 가에 선 은행나무가 가을이면 아름다운  황금빛 은행잎을 떨구던 기억도 소멸 될 것이다 . 그러나 모든 걸 인력으로 막을 수는 없고 어떻게든  달라질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담에 내 딸에게 혹은 내 딸 자식들에게 들려줄 수원 이야기는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




어디를 가더라도 누가 ‘어디 사람’ 이냐고 물으면 나는 ‘수원 사람’ 이라고   대답한다 . 그리고 깨끗하고 조용한 도시라고 , 한 번 와 보시라고 한다 . 그리고  누구나 이 도시에 한 번 와보면 참, 조용하고 깨끗하구나 하는 인상을 받을 거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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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소년 표류기 비룡소 클래식 15
쥘 베른 지음, 레옹 브네 그림, 김윤진 옮김 / 비룡소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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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소년 표류기는 굉장히 오래된 책이다.

체어맨 기숙사에 다니는  소년 15명은 여름방학을 맞아 배를 타고

여행을 가려고 했다. 허나 순조롭지 못했다 .소년들은 잠에서 깨자마자

자기들이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에서 조난당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중에서 선배 격인 도니펀, 브리앙, 고든은 안간힘을 써서

슬로기 호를 어느 땅에 닿게 했다.




소년들은 배에 남아있는 화약이나 총을 이용해 사냥도 하고

보트를 타고 섬 조사도 했으며 나중엔 예전에 한 프랑스인이

살다가 죽은 오두막도 발견한다. 소년들은 그 오두막을 이용하여

집을 만들었고, 견습선원 모코는 맛있는 요리도 해주는 따위로

로빈슨 크루소와는 차원이 다른 풍족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들은 드디어 어른 2명을 찾게 된다.

그들의 이름은 '케이트'와 '에번스'였다. 그들은 아이들을 살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소년들도 어른들과 힘을 합쳐 섬에 들어온 못된 해적들을

물리치고 자랑스럽게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15소년 표류기가 주는 교훈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질 좋은 교육을 받아도, 협동심, 응용력 등을 섬에서 배운  소년 15명은

도시에 있는 또래의 아이들보다 좀 더 어른스럽고 성숙해져있다는 것이다.

확실히 지금 시대에서 보면 이 책의 내용은 어이없을 정도로  비현실적이다 .

하지만 120년 전에 만든 이 책이 지금까지 유명하다는 것은 보는 사람들마다

느끼는 바가 비슷하다는 얘기가 아닐지 .

'질서, 열정, 용기가 있다면 어떤 위험한 상황도 극복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지금에도 유효한 교훈이다.

요즘 뉴스나 시사를 보다보면 대학시험에서 떨어지거나 성적이

나쁘다고 자살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은 포기를 한 것이다.

용기와 열정을 가져보지도 못한 채... 이걸 개선할 방법은 무엇일까 ?

그들이  열정과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지 못했던 걸까 ?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고 하는 말도 있지만

입시 제도가 문제인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공시족이나 고시족들이  아무리 용기와 지혜를 가져도

누군가는 시험에서 실패하고 도태된다 . 아, 그렇다 . 문제는

서바이벌이 없는 사회라는 점이다 .

'난 할 수 있다'라고 다짐하며 도전한다 해도 신이 있다 해도 

도와 줄 방법은 한정되어 있다 .

이 책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복잡한 난관에 부딪쳐도 희망을 가지고

서로 협동하여 살아남았고, 주변에 있는 도구들을 사용해 생활을 하는

응용력 또한 대단하다. 언제 죽을지, 언제 탈출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살길을 찾기 위해 처음 와보는 섬을 탐험하고, 선배들은 후배들을 교육시키는

따위로 공동체 생활을 강조했다 . 그거는 좋다 .

로빈슨쿠루소와 가장 큰 차이라면 로빈슨은 혼자이고 15소년들은 단체라는 것.

로빈슨은 얼마나 외로우면 앵무새를 교육시켜 사람 말을 하게 하지 않던가?

그에 비해 15명의 소년들은 서로 회의도 하고 스케이트 경주, 눈싸움도 하면서

그 나름대로  신나게 지낸다 .

공통점은 로빈슨이나 15명의 소년들이나 희망을 잃지 않았으며

주변 사물들을 이용할 줄 아는 지혜도 발휘했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열정, 용기를 가지고 있다면 살 길이 열릴 거라는 전망을 가져야 한다 .

외딴 섬에서 친구들을 다 죽이고 살아남는 게임보다는 인간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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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마티아 문지아이들 69
로베르토 피우미니 글, 체코 마리니엘로 그림, 이현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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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러나 마티아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생각을 하지않았다.

여전히 살아계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함께 모험을 한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점점 작아진다 . 그래서 나중에는 할아버지는

너무 작아져서 마티아의 몸속에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마티아는 집에 다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나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걸 보고 , 그렇게 이야기의 끝이 난다.

어린 마티아가 늠름하게 할아버지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무척이나 성숙하다 .

단, 한 가지 정확한 것은 정말 슬프다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당연히 슬프겠지. 우리 어머니, 아버지 다 돌아가셨는데 당시에는 슬펐다 .  그러나 그걸

아이들이 안다는 것은 어쩐지 조심스럽다 . 그러나 마티아는 그걸 자연스럽게 깨달아간다 .  할아버지가 작아지고, 또 작아져서 마티아의 몸속에 들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슬프면서도 아름답다 .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가 영원히 나오시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이들이 존재와 소멸에 대해 깨달아가도록 하는 이 동화는 그래서 사랑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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