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 사계절 1318 문고 38
박상률 지음 / 사계절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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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해 5 월 , 나는   어떤 은행 영등포지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

어느 날 , 고향에 다녀 온 광주상고 출신 환이란 신입행원이 놀란 가슴을 진정 못하고 말했다 .

- 광주는 난리예요 . 전쟁이 난 것 같아요 .




그런데 사람들은 별 충격 없이 그 말을 받아들였던 것 같다 . 당시에 전두환이 집권을 하고 사람들은 대통령부인이 전에는 ‘연희동 빨간바지’ 였다더라, 그런 루머에만 관심을 보일 뿐이었다 . 그것은 아마도 검열 받던 미디어에 대한 불신으로 더 이상 언론에 대한 신뢰가 가치 없다고 여겼던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그냥 세속적 삶에 지쳐서 모든 언어가 모래처럼 흘러내렸던 건지도 모른다 .




그 당시 방송이나 신문에서는 정말 그렇게 말했다 . 광주에 불순분자가 선동해 난동을 부리고  있다고 . 그래서 우리 귀신 잡는 해병이 투입되어 그들을 진압하고 있으니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고 .....

아마도  나처럼 서울이나 경기 출신 시민들은  전라도 사람들이 불만이 많아 김대중을 대통령 시키려고 그러나보다고  혀를 두드렸던 것  같다 .




그런데  당시에 광주의 어느 지하도에서  “영균” 이가 총에 맞아 죽었던 것이다 .  착하고 사려 깊으며 근면한 영균이가 ‘이름없는’ 존재로 죽어갔다 . 영균이는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 지나 알고 있었을까 ? 그 순하고 가여운  청년이 새 운동화와 새 바지를 입고   총에 맞는 순간은 호강하고 살아온 육십대의 그 세월에 맞먹게 안타깝고 가슴 저미는 사건이다 .  영균이는   부지런히 일하고 공부해서 대학 졸업장도 받고  좋은 데 취직해서 동생을 보살피고 어머니 월산댁을 잘 모시고 싶었다 .  그러나 그 ‘힘든 날’ 이후로 영균은 이 지상에서 가졌던 그 짧으나 짧은  삶 전체를 관통하는 서러움으로 혼이 되어 버린 것이다 .




도대체 이런 어이없는  죽음에 대해 이 원통한 죽음에 대해 누가 책임을 지고 있는 건지 묻고 싶다 . 영균의 죽음은 가난하고 착하게만 살았을 월산댁과 역시 형처럼 살아갈  동생의 살아있는 죽음을 예고하는 셈이다 . 다른 어미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월산댁은  호의호식 못 시켜준 영균의 죽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 혼을 놓고 사는 게 월산댁에게는  훨씬 말이 되는 상황인 것이다 .나는 월산댁이 그렇게 넋을 놓고 철물점으로 학교로 영균을 찾아다니던 심정을 100% 이해 한다 . 만일  착하고 가엾게 산  어린 딸이 그렇게 비명에 갔다면 더구나 그것이 자국의 군대에 의한 사살이었다면 제 정신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내지 못 했을 것이다 . 




가끔 사람들이 이제 지나간 일은 잊고 경제에 힘써야지 이 정권은 왜 그렇게 과거사에만   매달려있느냐는 불평하는 걸 듣는다 . 나는 이 정권이 경제에도 당연히 힘써야하지만 이런 정도로 과거사를 해결하는 걸로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 한다 . 도대체 누가 이 가여운 영균이, 또 “영균이들”의 넋에게 답변을  해줄 수 있단 말인가 ? 무엇 때문에 아무 죄 없는 시민들에게 총을 쏘고 명예를 짓밟았는지 시원한 답변을 하지 않은 채 가해자들 혹은 방관자들이 과거를 잊자고 말해서는 안 된다 .

이 책을 읽으면서  영균이 걸어갔을 그 뜨겁고 혼란한 광주 금남로 시내, 그리고 그 시내와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무등산이 떠올랐다 . 그때 무덤을 파서 영균의 관 속에 썩고 있는 아들 시신을 보고 혼절한 월산댁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가슴이 먹먹해진다 . 그 어머니는 어떻게 살아갈까 ? 그 어머니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왔을까 ? 해마다 5 월이 되면 그 어머니들은 어떻게 그 꺼멓게 썩은 가슴을 쓸어내릴까 ? 그 어머니들은  통장에 29만원 밖에 없다는  도살자 얼굴이 텔레비전 화면에 비치면  어떻게 견뎌낼까 ?   만지기도 아까운 그 죄 없는  자식을  폭도로 몰아 살육한 사람들은 도대체 누가 처벌받았다는 건지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 그래서 그냥 사회책에 적힌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영균과  월산댁을 통해 육성으로 만나는 작품이라고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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