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종식되면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이 될까. 팬데믹 시기를 끔찍하게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기회로 삼고 도약해서 행복한 기억으로 가득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쉽게도 나는 후자에는 속하지 못한다. 좋은 기억도 있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호러블 한 시기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어린이들에게는 어떻게 기억이 될까. 이 시기에 2년제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은 학교에 한 번도 나가지 않고 졸업을 하는 기묘한 경험을 하고, 조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초등생들은 만나서 거의 놀지 못하고 폰으로 대화를 하며 폰이 없이는 친구들과 사귀지도 못하는 생활이 되었다.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현상이라 사람들은 우왕좌왕하고 어딘가에서 구멍이 나고 그 구멍에 빠지기도 했고 거기서 그만 나오지 못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하지만 사람들은 적응해가면서 팬데믹을 일상으로 받아들였다. 또 역사적으로는 어떻게 기록이 될까. 아마도 수치로 모든 것이 기록이 될 것이다. 기간, 걸린 사람들, 이동, 사망자 등등. 모든 것들은 수치로 기입이 되고 후세의 사람들은 역사를 들여다보며 숫자로 지금의 펜데믹을 간접 경험할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군고구마를 먹었다. 군고구마에는 일가견이 있다. 제대 후 돌아오는 겨울에 군고구마 장사를 했다. 그에 따른 이야기를 한 번 올린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1148


군고구마 장사를 호기롭게 가스통 두 대나 놓고 팔아치웠다. 그때 군고구마를 왕창 팔아서 그 돈으로 7번 국도를 타고 여행을 갔다. 친구 두 명과 함께 갔는데 녀석들이 돈이 없다고 해서 경비를 고구마를 판 돈으로 갔다. 군고구마는 생각 외로 너무나 많이 팔렸고 매일 바빴는데 친구들이 도와줬다. 본문에도 적었지만 아파트 단지 근처에서 고구마를 팔았는데 구워놓으면 바로바로 팔려서 아파트에 배달을 했다. 그게 먹혀들었다. 뜨거운 군고구마를 집에서 받아서 먹으면 그렇게 맛있다고 했다. 친구들이 도와줬다. 고구마를 농산물 시장에서 떼 오는 것도, 운반하는 것도, 아무튼 장사를 하면서 나는 자질구레 한 이벤트를 했는데 주위에서 다 도와주었다. 재미있었다. 그런 친구 두 명과 7번 국도를 타고 여행을 갔다. 7번 국도를 타는 일은 늘 신났다. 고속도로와는 다르다. 외가가 불영계곡에 있어서 어릴 때에도 7번 국도는 나에게 신나는 도로가 되었다. 바다가 계속 보이고 국도 변에 있는 아담하고 기분 좋은 휴게소도 고속도로 휴게소와는 달랐다.


여행은 친구의 차를 타고 갔다. 친구는 해남 땅끝 마을에 동행했던 친구였다.https://brunch.co.kr/@drillmasteer/2292


나의 여행 스타일은 뚜렷한 목적지가 없다. 그냥 4일이라는 시간이 있고, 그 시간 동안 7번 국도를 타고 오르다가 마음에 드는 장소가 보이면 그곳에서 머무르는, 그런 재미없는 여행을 하는 것이 나의 스타일이고 친구들도 거기에 기꺼이 동참을 했다. 올라가다가 포항에 도착을 하면 우리는 포항공대로 들어가서 식당 밥을 먹었다. 요즘은 모르겠지만 포항공대 식당은 유명한 곳이었다. 뷔페식이며 반찬이 아주 맛있다. 밥을 먹고 포공 캠퍼스에서 사진을 찍어도 멋지게 잘 나온다.


포항에는 사촌 누나가 살고 있고 사촌 누나의 남편이 목사님이라 친구와는 고등학생 때에도 포항으로 가서 사촌 누나 집에서 신세를 지곤 했다. 그때는 아직 목사님이 되기 전이고 학생 신분으로 신학을 열심히 공부를 할 때였다. 포항이라고 하면 너무 광범위하니까 사촌 누나의 집은 청하에 있었다. 공기도 좋고, 경치도 좋은 곳에 작은 교회가 있고 교회 정원 한쪽에 아담한 집이 있고 우리는 거기서 잠을 잤고 저녁에는 교회의 다락방 같은 곳에서 거기 여고생들과 이야기를 하며 지내곤 했다. 나는 사진부라 늘 카메라를 들고 다녔는데 친구 녀석과 여고생을 같이 사진을 찍어 주기도 했다. 토요일에 사진을 열심히 찍고 일요일에 인화된 사진을 다 같이 보는 재미가 있었다.


여하튼 제대를 하고 고구마를 판 돈으로 우리는 7번 국도를 타고 올라갔다. 우리의 특징은 휴게소가 보이면 전부 들어가서 오줌을 싸고 음식을 사 먹었다. 7번 국도를 따라 나오는 휴게소는 대체로 바다가 보이기에 들어가 앉아서 음료를 마시고 컵라면 같은 것을 먹으며 바다를 볼 수 있었다. 물론 한 1분 정도 바다를 볼뿐 주로 헤헤 거리며 이야기를 했다. 목적지가 없어서 몇 시까지 도착해서 그곳의 무엇을 즐겨야 한다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아주 느긋하다. 휴게소가 보이면 들어가서 닥치는 대로 먹었다. 배가 늘 부른 채로 여행을 하는 것만큼 사치스러운 여행도 없다. 7번 국도에 있는 참새방앗간 같은 망향휴게소에는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 계단 밑으로 내려가서 보이는 탁 트인 바다는 우리가 사는 곳의 바다와는 느낌이 다르다. 바다는 늘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시어머니 같아서 한 번 화가 나면 걷잡을 수 없다. 혀를 한 번 날름거리면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


친구 두 명 중에 운전을 하는 친구를 친구 1이라 하자. 친구 1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지난번에 해남 땅끝 마을에 같이 갔던 친구이고, 친구 2는 고등학교 2학년, 3학년을 같은 반으로 보낸 친구로 뭐랄까 그냥 막사는 느낌이 드는 친구였다. 친구 2는 형도 두 명인가 있고 누나들도 있는 가정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발로 뻥 차면 떨어지는 지점에 누워서 그대로 쿨쿨 잠드는, 그런 친구였다. 며칠씩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어머니가 "한창 때잖아요, 가만 두면 집으로 기어 들어와요"라고 우리 어머니에게 말할 정도였다. 친구 2는 낚시도 못하면서 자주 낚시를 다녔고 낚시하는 꾼들 옆에서 이것저것 간섭을 많이도 했다. 하지만 그 간섭을 기분 나빠하는 꾼들은 또 없었다. 고기 한 마리도 낚지 못하는 낚시를 끝내고 단골 곱창전골 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친구 2는 겁 없이 티브이를 낚시채널로 돌린다. 녀석은 잡아 본 적도 없는 감성돔에 대해서 아는 척을 한다. 그러면 모르는 테이블에서 밥과 술을 마시던 아저씨들도 전부 한 마디씩 한다. 모두가 감성돔을 낚시만 하면 잡는 사람처럼 이야기를 한다. 참 이상한 도미노 현상이다.


그런 녀석들과 휴게소마다 들러서 뭔가를 배에 집어넣으며 이야기를 하면 재미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시간과 대화가 쓸데없을 것 같은데 아마도 하루 중 가장 재미있는 대화가 아닐까 싶다. 요컨대 여자 친구와 함께 어딘가 여행을 가서 일박을 보내고 아침 해 뜨는 걸 보기 위해 일찍 나와서 해돋이를 보고 난 후 근처의 따뜻한 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잠시 이야기를 나눈다. 다시 들어가서 한 숨 잠을 청하기로 하고 아주 편안 마음으로 대화를 한다. 그때 잠시 한 대화가 아마도 여행 중에 가장 깊고, 담백하고, 느긋하며 편안하고 재미있는 대화일지도 모른다.


휴게소마다 들러서 그렇게 뭔가를 배에 집어넣었음에도 작은 휴게소가 보이면 들렀다. 경상북도를 벗어나 강원도로 접어들면 어쩐지 정말 여행지에 온 기분이 든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의 국도를 타다가 설렁탕을 파는, 식당 겸 휴게소가 있기에 또 들어가서 설렁탕을 한 그릇씩 먹었다. 가위바위보 해서 운전하는 놈은 운전을 하고 나머지 두 명은 소주를 마셨다. 꿀맛이다. 어딘가 집 떠나서 마음 편하게 낯선 곳에서 마시는 술은 이상하게 맛있다. 일탈인 것이다. 일탈 속 술맛은 버터 칩보다 달콤하다. 아마도 강원도도 술과 설렁탕의 재료에 속해서 더 맛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운전하는 놈도 생각해야 하니 딱 한 병만 건드린다. 우리는 또 붕 하며 위로 올라간다. 기분 좋은 해수욕장이 나오면 들어갔고, 그 근처가 마음에 들면 그곳에서 숙소를 잡고 그대로 일박을 했고, 시간을 보내다가 아직 해넘이 직전이면 또다시 출발했다.


동해에서 일박을 했는데 동해는 좋은 기억이 있다. 도시가 깨끗했고 숙소를 잡고 들어가서 술을 마신 곳에서는 주인이 너무나 말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친절했고 여행객인 우리에게 이것저것 챙겨주었다. 나는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은 처음 봤다. 마치 이탈리아 인 같았다. 하루 일과를 꼼꼼하고 촘촘하게 보고하는 사람처럼 다다다 다다 말을 쏟아냈다. 친구 1과 친구 2가 주인에게 붙어서 오 그렇지요? 맞습니다, 아니고 말고요,를 경상도 사투리로 대꾸를 했다. 맞심더, 아잉교? 그랬더니 더더욱 말이 많아졌다. 멜리사 맥카시 주연의 영화 스파이에서 이탈리아 첩보원 알도 역으로 나온 피터 세라피노윅 같았다. 정말 하하하. 그때 잠시 느낀 건 동해도 강원도 같은데 사투리를 거의 들어보지 못한 것 같았다. 젊은 사람들은 표준말을 사용하고 – 그건 강릉에서도 그렇고 – 흔히 알고 있는 강원도 사투리를 잘 들을 수 없었다.


주인이 우리를 좋아하게 된 건 아무래도 우리는 목적지가 뚜렷한 여행 노동자 같은 여행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말 중에 자신의 여행 경험담이 많았다. 우리는 그렇게 술과 사람에 취했다. 이렇게 술과 사람에 취할 수 있는 날이 영원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시간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그걸 보통 당시에는 알지 못한다. 시간이 훌쩍 지나 지금에 와서야 그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깊고 깊은 밤으로 취해 들어갔다.


친구 2는 쓸데없이 일찍 일어나는 버릇이 있다. 친구 2가 으 하며 일어나 우리를 깨웠다. 전부 구울 같은 모습으로 으 하며 일어났다. 대사는 없고 그저 의성어인지 으 하는 소리만 짧거나 길게 내뱉으며 뭉그적 일어나 그대로 십 분 정도 앉아 있는다. 세상에서 가장 이상하고 똥 멍청이 같은 모습이다. 누구도 씻을 생각은 없다. 여기서 으 하면 저기서 으 하고, 저기서 좀 길게 으,,, 하면 여기서 좀 길게 으 할 뿐이다. 이상하지만 그러면 소통이 된 것이다. 모두가 구울 같은 모습에 옷만 걸치고 일어나서 숙소를 나왔다. 숙소라고 해봐야 그 전날 여인숙 같은 여관처럼 보이는 모텔이다. 그것도 친구 2가 카운터에 붙어서 수건을 쓰지 않을 것이다, 샤워도 않을 것이다, 같은 말을 시전 하면서 숙박비도 조금 깎았다. 오전 8시에 우리는 나왔다. 도대체 우리는 몇 시간을 잔 것일까. 허기 때문에 아침밥이 되는 곳을 찾았다. 친구 1은 속이 쓰려서 찌개가 먹고 싶다고 했다. 어딘가 해안 쪽을 걷다가 아침식사가 된다는 아주 작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나이가 많은 할머니처럼 보이는 분이 식당을 하는, 주력으로 하는 음식이 따로 정해지지 않은, 간판도 잘 보이지 않고 문 열고 싶을 때 열어서 닫고 싶을 때 닫는, 그런 동네 선술집 같은 작은 식당이었다. 우리는 찌개 3인분을 주문했다. 찌개가 나왔다. 찌개는 정말 김치가 가득 들어있는 그런 찌개였다. 두부가 숭덩숭덩 빠져있고, 좋게 말하면 집에서 만드는 그런 찌개의 맛이지만 식당에서 내놓을 만한 맛은 아니었다. 육수를 우려내서, 같은 것은 생략된 맛이었다. 묵은 김치를 그대로 끓이고 그 안에 햄을 넣고 비계가 많은 부위의 돼지고기가 좀 들어가 있는 찌개였다. 그리고 고춧가루가 엄청 많았다. 하지만 녀석들은 아주 잘 먹었다. 찌개는 참 맛없는데 아주 맛있었다. 녀석들은 얼굴을 파묻고 찌개를 밥에 비벼서 전투적으로 먹었다. 묵은 김치에서 나오는 매콤함에 고춧가루의 칼칼함이 더해져서 나에게는 너무나, 몹시, 아주 매워서 가까이 갈 수 없었는데 녀석들은 콧등에 땀이 나오는데도 숟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친구 1은 얼굴 전체가 땀으로 범벅이 되더니 콧물까지 시원하게 흘렸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해치우는 것이다. 배가 좀 부르니 그제야 서로의 몰골에 대해서 간섭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어라는 걸 했고, 미친 친구 1은 소주가 당기는데, 같은 말을 내뱉었다.


무엇보다 기가 막혔던 건, 친구 1은 덩치는 크지만 밥을 그렇게 많이 먹지 않는데 밥을 한 공기 더 달라했고, 주인 할머니는 잘 먹네, 라면서 찌개를 더 끓여 줄까?라고 해서 3분 1 정도 남았을 때 찌개 냄비를 들고 가서 그 안에 다시 가득 채워서 내주었다. 맛을 떠나 나는 매워서 거의 손을 댈 수 없었는데 친구 1과 친구 2는 무표정으로 땀을 흘리며 그 찌개를 퍼 먹었다. 그 모습이 마치 ‘허니와 클로버’에서 어떤 맛이라도 아무런 표정 없이 먹어치우는 모리타의 모습과 닮았다. 그렇다고 모리타만큼 멋진 건 절대 아니고. 그러고 보니 곧 봄이다. 봄이 되면 ‘허니와 클로버’ 1기는 늘 챙겨서 봤는데. 그 시리즈 1기는 정말 열 번은 넘게 본 것 같다. 세상에 그런 애니메이션이 존재하다니. 드라마 연애시대도 그만큼 많이 본 것 같다. 일 년에 한 번씩, 어떤 계절이 돌아서 오면 그에 맞게 연애시대를 꺼내 본다. 이제 곧 봄눈이 팡이 팡이 터지는 봄이오니 또 허니와 클로버를 펼쳐봐야겠다. 첫 회에서 하구미를 보며 사랑에 빠지는 타케모토, 그런 모습을 보는 마야마, 그리고 자신 때문에 남편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하라다 리카, 그런 리카를 사랑하는 마야마, 그리고 그런 마야마를 사랑하는 야마다. 사랑이란 늘 쌍방향이 아니고 한 방향으로 흐르는 걸까. 이런 힘들고 애매한 첫사랑들의 이야기.


디자인과 건축, 미대생들의 첫사랑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모습에 나는 그만 마음을 빼앗겨 버린 후 지금까지 지치지 않고 보고 있다. 라면을 먹으며 불안해하는 타케모토에게 마야마는 가만히 듣다가 주인아주머니에게 튀김 하나를 주문해서 타케모토 라면에 올려 준다. 이 장면이 정말 좋다. 아직 2학년인 타케모토에게 초조해하지 말고 뭐든 해 보라고, 조금이라도 흥미가 있으면 뭐든지, 손을 움직이다 보면 쉽게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마야마는 말해준다. 타케모토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는 마야마 같은 선배가 있다는 건 정말 복 중에 축복이다. 좋은 음식, 좋은 물건만큼 좋은 게 좋은 사람이니까.


한때는 오프닝곡과 엔딩곡을 다 따라 불렀는데 시간이 지나니 그것도 까먹게 된다. 시간이란 그런 것이다. 늘 다시 보면 20년 전의 주인공들은 그 모습 그대로 사랑에 고민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시간의 간섭을 받았다. 시간이란 정말 그런 것이다. 허니와 클로버의 드라마 버전도 좋았지만 아오이 유우가 나오는 영화는 또 별로였다. 2시간 안에 이 긴 이야기를 때려 넣으려다 보니 뒤죽박죽인 것이다. 오프닝곡은 목소리가 아주 특이한데 주디 앤 마리의 보컬 유키가 부른다. 주디 앤 마리,,, 이 이야기는 이쯤에서 관두자. 아무도 모를 테니.


어떻든 친구 1과 친구 2는 그 많은, 맛이 없는 찌개를 아무쪼록 맛있게 먹고 난 후 약국에서 가스활명수와 훼스탈을 입에 때려 부었다. 그래도 말이야, 여행 와서 이렇게 배가 빵빵하게 부른 느낌은 좋다고. 라며 다시 7번 국도에 올랐다.


우리는 속초로 가기로 했다. 속초에는 예쁜 진경이가 살고 있다. 친구들은 한 껏 들떴다. 현지인이 있다는 건 그만큼 편하다. 페달을 밟아라, 붕붕 달려가 보자. 브라이언 아담스의 워킹 업 더 네이버 앨범을 들으며 7번 국도를 타고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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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렇게 편지를 하게 되었습니다. 편지라는 건 한 번 쓸 때 다시는 쓰지 않으리라 같은 마음으로 쓰게 됩니다. 쓰고 나면 편지 따위 쓰지 않을 거라고 생각을 다짐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며 조금 놀라기도 합니다. 사실 편지를 쓸 때가 글이 잘 써집니다. 당신이라는 대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허공에 하릴없이 주절주절 적는 글보다는 당신께 이렇게 쓰는 편지가 저는 마음에 듭니다.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식당에 가는 일이 드물어졌습니다. 집 밖으로 나가면 맛있는 음식이 천지에 깔렸습니다. 모두가 협동 단결하여 살찌는 것에 누가 누가 잘하나 내기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편의점에만 가도 산해진미가 가득합니다.


맛있는 음식 중에는 돈가스가 있습니다. 가난했던 어릴 때 아버지는 동생과 나에게 꼭 한 달에 두어 번 정도는 경양식 돈가스를 사주었습니다. 기묘한 색의 소스와 돈가스에 딸려 나오는 밥과 빵. 그리고 먹기 전의 야채수프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버렸습니다. 고개를 돌리면 나 같은 아이들이 엄마 아빠와 함께 경양식 돈가스를 먹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의 얼굴은 온통 행복해 보였습니다.


돈가스를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돈가스를 컵라면처럼 혼자서 급하게 먹는 사람도 드뭅니다. 돈가스 집에 가면 마주 보고 앉아서 천천히 꼭꼭 씹어서 즐겁게 돈가스를 잘라서 먹습니다. 그 돈가스 집에는 언제나 음악이 흐르고 있습니다. 운이 좋으면 리처드 클레이더만의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도 들을 수 있습니다.


청소년을 벗어난 어느 날 경주에 있는 동화 같은 돈가스 집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근처의 학교에서 나온 여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여고생 두 명이 아이라인에 대해서, 좋아하는 가수와 담임과 친구들에 대해서 즐겁게 이야기하며 돈가스를 먹습니다. 돈가스는 그렇게 먹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저에게 돈가스는 찾아서 먹는 음식에서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 말은 나이가 든 사람이 나이가 들지 않은 사람에 비해 훨씬 나쁜 사람이 많다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좀 웃긴 말이지만 정치인들이 모여 앉아 돈가스를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맛있는 돈가스 집에 가면 아이들이 많고 음악이 있고 포크와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가 있습니다. 가끔 투덜거리기는 하지만 집에서 아이를 위해서 엄마가 돈가스를 만듭니다. 그저 튀기기만 하면 되는 돈가스도 있지만 한 번은 아이를 위해 좋은 재료를 사용해서 직접 만들어 돈가스를 먹이려 합니다. 주방은 기름 천지가 되지만 아이가 맛있게 한 입 먹는 그 장면을 엄마는 보고 싶은 겁니다. 이런 엄마에게 나쁜 모습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재능은 때때로 과대평가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재능은 꼭 돈가스와 비슷한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당신에게 돈가스 집에 가자고 하면 아무 말하지 않고 먹으러 갑시다. 남긴다면 그건 제가 다 먹겠습니다. 그럼 오늘도 아무쪼록 열심히 하루를 보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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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2-19 1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일러스트레이션이 분명 돈가스를 나타낸 것일텐데, 갑자기 엄청 큰 초콜릿 덩어리가 먹고 싶어졌습니다 ㅋ

교관 2022-02-20 11:53   좋아요 1 | URL
나이프로 숭덩숭덩 썰어 먹는 초콜릿 상상만으로도 좋은데요 ㅎㅎ
 


봄날의 그것이 겨울의 틈을 비집고 들어왔는데 그만 다시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다. 겨울이 심통이 났다. 심술을 부린다. 아직 나는 갈 생각이 없는데 왜 나를 싫어하냐며, 나를 내쫓으려 하냐며 겨울은 화가 났다. 아마 겨울도 알고 있다. 언제나 사람들 곁에 있고 싶지만 때가 되면 봄에게 자리를 내줘야 한다는 걸.


날이 차가워지면 날이 따뜻할 때보다 대기층의 막이 걷혀 맑은 날이 된다. 미세먼지 같은 것들이 사라진다. 그래서 시야각이 좋고 창 안에서 창밖을 보면 그저 평온하고 깨끗한 날이다. 푸른 하늘의 오래된 노래를 들으며 커피를 홀짝이는 지금 이 시간만큼은 리추얼을 가동하지 않아도 될 만큼 좋은 시간이다.


아니 왜 이렇게 촌스러운 음악을 들어요?


촌스러운 사람이 촌스러운 음악을 듣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실 푸른 하늘의 음악은 촌스럽지 않다. 가사를 보면 대체로 ‘시’에 가깝고 리듬도 좋다. 누군가는 변화 없는 음악을 꾸준히 내는 게 싫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푸른 하늘의 이 기류가 좋다. 앨범 표지도 초현실 디자인으로 전혀 촌스럽지 않다. 단지 오래된 노래라서 촌스럽다면 그건 좀 이상하다. 브랜드는, 명품은 오래될수록 그 가치가 올라간다.


하긴 나는 소심한 사람이기 때문에 촌스럽다, 소심함과 촌스러움 사이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알 수는 없다. 대담한 사람은 여러 사람들을 이롭게 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나 같은 소심한 사람은 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 애쓴다. 이 소심함이 어쩌면 매일을 기록하고 달리게 하는 동력원일지도 모른다.


이 소심함으로 그렇게 애를 써도 그 사람의 마음을 사는 건 쉽지 않다. 돈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을 사고 싶었다. 그렇지만 영화 속에서도 돈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사람의 마음 하나도 돈으로 어쩌지 못한다. 하긴 나는 돈이 없다. 돈이라도 많아야 마음이라도 사고 싶다고 말이라도 할 수 있을 텐데. 돈을 벌기 위해 이를 몽땅 뽑아버린 중국 여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불법으로 매음굴에서 일하는 그녀는 이를 몽땅 뽑아 버렸다. 그런 탓에 씹어 먹는 음식을 먹지 못한다.


나는 피를 뽑아 그녀에게 나눠주었다. 그 중국 여자는 피로 혈관도 채우고 위장도 채웠다. 그녀는 나의 피를 맛있게 받아먹고는 취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중국어로 말을 했다. 그녀는 취해서 열심히 말을 하더니 이내 눈에서 보란 듯이 눈물이 뚝 떨어졌다. 울고 싶어서 우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눈물이 나왔다. 눈물은 그렇게 나온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중국 여자는 나에게 말했다. 넌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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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일 밀리의 서재를 통해 단편 소설집이 출간 되었다.


9월부터 교정 작업을 통해 2월에 나오게 되었다.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구걸 합니다. 굽신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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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2-02-17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베스트셀러되시길...

교관 2022-02-18 10:5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

stella.K 2022-02-17 1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멋, 축하해요! 대박 나시길!^^

교관 2022-02-18 11:00   좋아요 1 | URL
ㅎㅎ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요즘 초등생들은 코로나가 덮치면서, 또 오미크론의 폭증으로 인해 같이 모여서 우당탕탕 노는 문화가 거의 사라졌다. 주로 폰으로 대화하고 게임하고 사진 찍고 공유한다. 조카는 그림 그리기를 아주 좋아하고 패드로도 그림을 곧잘 그린다. 그래서 포토샵을 가르쳐 주었다.


미래소년 코난이라고 있었단다, 한 섬에 사는 코난에게 라나라는 소녀가 블라블라. 나에게는 미래소년 코난의 피규어가 있어서 사진으로 담아서 코난 만화의 배경과 합성을 해보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와꾸, 와끼, 그러니까 틀을 따야 하니 집중도 상승이다.


배경에 스며들듯 합성을 하려면 코난과 라나를 사진으로 담을 때 너무 위에서 아래로 찍어도 안 될 것이며 밑에서 위로 찍어도 안 된다. 배경이 정해졌으면 그에 맞게 촬영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여러 사진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배경에 합성을 한다. 와꾸를 열심히 따서 배경에 스며들듯 집어넣는다. 멀리는 아웃 포커싱이 되고 가까이 있는 것들은 심도를 맞추어서 합성을 한다. 다행히 조카는 포토샵을 하는데 너무 재미있어했다. 그러다 보면 시간에 훌쩍 간다. 안 그래도 시간이 화살촉이라 천천히 갔으면 좋으련만. 코난과 라나 버전이 끝났으면 포비도 한 번 합성해본다.


코난은 라나를 위해서는 뭐든지 한다.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건 만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코난은 라나가 위험에 처하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 아니다,를 생각하기 이전에 몸이 먼저 반응을 한다. 라나의 위험이 감지되면 그대로 돌진한다. 팔딱팔딱 뛰는 숭어처럼.


어떤 방해 요소도 두렵지 않고 무서움도 모른다. 어른이 훌쩍 되어서 보는 코난의 사랑은 더 감동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어른이 된 미야자키 하야오가 코난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보는 만화도 전부 아이의 마음을 지니고 있는 어른들이 만든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 만화를 보면 감동을 더 느끼는 경우가 많다. 미래소년 코난은 원작 소설이 있다. 알렉산더 케이의 ‘남겨진 자들’이 원작이다. 하지만 소설은 너무 암울하고 디스토피아적이라 하야오가 수정을 엄청 했다. 라나도 코난과 함께 하면 그저 좋다. 하야오는 후에 코난과 라나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어서 라퓨타에서 시타와 파즈를 만들고, 아시타카와 모노노케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미래소년 코난은 다이스 선장과 몬스키가 결혼을 하면서 끝난다. 아주 기분 좋다. 악마 같았던 몬스키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천사 같은 모습으로 다이스와 나란히 함께 한다.

이번 합성 버전은 팔코 디오라마를 연출했다. 팔코의 착륙 버전인데 팔코의 비행 버전도 피규어로 나는 가지고 있다. 몬스키와 부하들이 라나를 납치하고 코난이 창 하나 들고 라나를 지키기 위해 팔코 위에서 발가락으로 날개를 부여잡는 장면은 코난을 좋아하는 모든 이들이 압도적으로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다.

조카는 처음에 갈매기들이 라나를 쪼사 먹는 줄로 ㅋㅋ


캡처는 팔코와 기간트의 차이를 비교하기 위해

코난에서 비행선이 몇 종류 나오는데 저기 팔코가 있고 어마 무시하게 거대한 기간트 비행선이 있고 라나 할아버지를 찾았을 때 모두가 같이 타고 탈출하는 비행선이 있다.


미래소년 코난의 시대적 배경은 2008년이다. 좀 벗어난 얘기지만 빽 투 더 퓨처의 미래는 2015년이었다. 그래서 15년도에 빽 투 더 퓨처를 기념하는 행사가 미국에서 열리기도 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나이키 신발이라든가, 코카콜라라든가. 영화처럼 실제로도 많은 부분이 발전을 했지만 현실은 영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그리고 블레이드 러너의 암울한 시대적 배경은 2018년이었다. 70년대 만들어진 블레이더 러너에서 미래에는 일본이 세계의 대국으로 표현되는 거 같은데 그 판도가 사실은 많이 바뀌었다.


미래소년 코난 속 2008년에는 지구가 대 지각변동으로 폭삭 망하고 만다. 라나의 할아버지 리오 박사가 연구한 태양 에너지를 갈취하려는 인더스트리아의 국장 레프카가 라나를 납치해서 리오 박사의 연구를 손에 넣으려고 한다. 그런데 그만 거기에 코난이 끼게 된 것이다. 이상하지만 코난은 더빙으로 보는 게 더 맛이 난다.

이 장면은 미래소년 코난 중에서 가장 기분이 좋은 장면이다. 인더스트리아에서 그 개고생을 하고 라나를 구해서 라나의 할아버지와 포비와 함께, 그리고 다이소가 아닌 다이스 선장도 같이 그곳을 탈출해서 꿈의 섬 하이하바로 가는 장면이다. 아이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기뻐하고 절대 웃지 않던 리오 박사도 라나가 품에 안기니 하하하하 웃는다. 포비와 코난은 얼싸안고 있다가 주먹으로 한 대 복부를 가격하고 포비는 읔, 하며 포비가 코난을 맞받아친다. 두 녀석의 장난이 마음에 드는 장면이다.


아이와 함께 볼 때 어른이 진정으로 좋아해서 그걸 표현하면 아이도 오래된 만화지만 푹 빠지게 된다. 아이가 질문을 하고 대답을, 아는 한 마음껏 해주고. 그리고 같이 코난의 디오라마를 합성하고 만들어 간다. 그런 과정이 아이와 어른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그저 하나의 재미에 빠지게 된다.


포비가 라나를 처음 만났을 때 코난의 친구라는 걸 알고 자신이 가장 아끼는 개구리 뒷다리(도마뱀 꼬리인지)를 준다. 라나는 먹지 못하지만 그래도 고맙게 받는다. 그런 장면들이 많다. 재미있고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깃든 그런 장면들 말이다. 포비가 아기돼지들과 어울리는 장면도 내가 좋아하는 장면이다. 포비는 사람 빼고는 다 잡아먹는데 돼지를 돌보며 동물들에 대한 애정을 알아간다. 포비는 새끼 돼지와 함께 잠을 자기도 하며, 그 새끼 돼지는 영리해서 쓰러진 라나 곁을 맴돌기도 하고 코난을 찾아내기도 한다. 암울하기 짝이 없는 미래지만 마지막은 밝게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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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2-02-16 15: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처음 사진 보고 3D로 출시된 줄 알았네요.

대학교 운동시합할때 최고의 응원가가 미래소년 코난 이었다고 하면 믿어줄까요? 이제는 유치원생도 안 부르는 만화주제가를 복학생 포함 대학생들이 목청 터져라 불러제끼는 모습을...

교관 2022-02-17 10:43   좋아요 0 | URL
어린이들 앞에서 코난 주제곡 매일 들으면 또 따라 부르더라구요 ㅋㅋㅋ 신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