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렇게 편지를 하게 되었습니다. 편지라는 건 한 번 쓸 때 다시는 쓰지 않으리라 같은 마음으로 쓰게 됩니다. 쓰고 나면 편지 따위 쓰지 않을 거라고 생각을 다짐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며 조금 놀라기도 합니다. 사실 편지를 쓸 때가 글이 잘 써집니다. 당신이라는 대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허공에 하릴없이 주절주절 적는 글보다는 당신께 이렇게 쓰는 편지가 저는 마음에 듭니다.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식당에 가는 일이 드물어졌습니다. 집 밖으로 나가면 맛있는 음식이 천지에 깔렸습니다. 모두가 협동 단결하여 살찌는 것에 누가 누가 잘하나 내기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편의점에만 가도 산해진미가 가득합니다.


맛있는 음식 중에는 돈가스가 있습니다. 가난했던 어릴 때 아버지는 동생과 나에게 꼭 한 달에 두어 번 정도는 경양식 돈가스를 사주었습니다. 기묘한 색의 소스와 돈가스에 딸려 나오는 밥과 빵. 그리고 먹기 전의 야채수프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버렸습니다. 고개를 돌리면 나 같은 아이들이 엄마 아빠와 함께 경양식 돈가스를 먹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의 얼굴은 온통 행복해 보였습니다.


돈가스를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돈가스를 컵라면처럼 혼자서 급하게 먹는 사람도 드뭅니다. 돈가스 집에 가면 마주 보고 앉아서 천천히 꼭꼭 씹어서 즐겁게 돈가스를 잘라서 먹습니다. 그 돈가스 집에는 언제나 음악이 흐르고 있습니다. 운이 좋으면 리처드 클레이더만의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도 들을 수 있습니다.


청소년을 벗어난 어느 날 경주에 있는 동화 같은 돈가스 집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근처의 학교에서 나온 여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여고생 두 명이 아이라인에 대해서, 좋아하는 가수와 담임과 친구들에 대해서 즐겁게 이야기하며 돈가스를 먹습니다. 돈가스는 그렇게 먹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저에게 돈가스는 찾아서 먹는 음식에서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 말은 나이가 든 사람이 나이가 들지 않은 사람에 비해 훨씬 나쁜 사람이 많다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좀 웃긴 말이지만 정치인들이 모여 앉아 돈가스를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맛있는 돈가스 집에 가면 아이들이 많고 음악이 있고 포크와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가 있습니다. 가끔 투덜거리기는 하지만 집에서 아이를 위해서 엄마가 돈가스를 만듭니다. 그저 튀기기만 하면 되는 돈가스도 있지만 한 번은 아이를 위해 좋은 재료를 사용해서 직접 만들어 돈가스를 먹이려 합니다. 주방은 기름 천지가 되지만 아이가 맛있게 한 입 먹는 그 장면을 엄마는 보고 싶은 겁니다. 이런 엄마에게 나쁜 모습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재능은 때때로 과대평가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재능은 꼭 돈가스와 비슷한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당신에게 돈가스 집에 가자고 하면 아무 말하지 않고 먹으러 갑시다. 남긴다면 그건 제가 다 먹겠습니다. 그럼 오늘도 아무쪼록 열심히 하루를 보내겠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얄라알라 2022-02-19 1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일러스트레이션이 분명 돈가스를 나타낸 것일텐데, 갑자기 엄청 큰 초콜릿 덩어리가 먹고 싶어졌습니다 ㅋ

교관 2022-02-20 11:53   좋아요 1 | URL
나이프로 숭덩숭덩 썰어 먹는 초콜릿 상상만으로도 좋은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