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도 없고, 그래픽도 뭐 그렇게 막 정교하지도 않고 내용도 크게 없는데 보다 보니 울컥하네. 별거 없는데, 고양이 한 마리의 움직임으로 모든 생각과 의미가 드러나는 게 신기할 정도다.

플로우는 저거지? 뜻은 흐르는 것지만, 저거 뭐더라 바다에 노랗게 떠 있는 그거. 해수욕장에서 바다에 그 이상 나가지 말라고 띄워 놓은 노란 그거. 아님 말고.

세상에 대 홍수가 나서 작은 배에 고양이와 함께 여러 동물이 타서 그냥 끝없이 항해를 하는 이야기다. 고양이는 물을 싫어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고양이는 물속에 들어가야 하고 받아들인 다음 물속에서 물고기도 직접 잡아 온다.

의인화가 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배의 돛을 조종한다던가, 밧줄로 카피바라를 구하려 한하는 모습은 의인화가 되었다. 수줍은 물수제비 같은 고양이에 비해 마냥 어린이 같은 댕댕이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는 것은 재미있다.

위태로운 조각배 위에는 고양이를 위해 무리에서 싸우면서 맞서던 새, 댕댕이, 안경원숭이, 카피바라 이렇게 생판 보고 듣도 못하던 동물들이 모여서 항해를 하면서 서로에게 적응을 하는 모습이 이상하게 마음을 건드리네.

고양이는 온 세상이 홍수로 물바다가 되어서 움직일 수 있는 곳은 고작 조각배 위인데 물속에서 고래가 마음껏 자유롭게 다니고 있는 모습을 본다.

영화는 몹시 신비로운 음악이 고양이가 움직일 때마다 흐른다. 그리고 몹시 신비로운 빛의 향연이 이어진다. 시간이 갈수록 고양이가 너무 기특하게 느껴진다. 하찮은 것에 대해서 동화가 된다.

고양이가 따르던 새가 빛으로 가버리고 난 후 이 세상에 혼자만 남은 듯한 고양이가 저 멀리 가버린 배와 친해진 동물들을 애타게 부르지만 배는 더 멀어진다. 고양이는 플로우에 올라타 배를 향해 가는데, 느닷없이 홍수가 난 것처럼 느닷없이 물이 다 빠지며 아름다운 지상의 세계가 펼쳐진다.

우여곡절 끝에 동물 친구들을 만나는 장면도 아름답고, 마지막 이 아름다운 세계가 펼쳐졌는데 고래가 땅 위에서 숨을 할떡 거리며 죽어가고 있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 장면은 이렇게 아름다운 곳 자체가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세상은 항상 아름다운 세계인 동시에 폭력의 세계다. 그 속에서 견디며 버티는 고양이가 우리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뭐야!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할 영화, 아이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너무 빠져들 영화 ‘플로우’였다. 뭐 그렇다고 내가 아이의 마음이 있다는 건 아니지만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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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팬들아 하루키 단편 소설 ‘코끼리의 소멸’ 좋아해? ㅋㅋ 나는 이 소설이 이상하게 그렇게 좋더라. 하루키 식의 초자연, 초현실을 아주 잘 그리고 있다고 생각해

소설이 짧아서 더욱 강하고 깊게 잔상을 남겨. 코끼리의 소멸을 보게 된 주인공은 알 수 없는 상실감을 느껴. 코끼리의 소멸을 보게 된 후 적극성이 몸에서 빠져나가 버려. 우선순위가 사라지는 거야. 회사에서 사장이 시킨 중요한 일보다 눈앞에 보이는 쓰레기통을 치우는 일을 먼저 해 버리는 것처럼 말이야

어느 날 도시의 한 동물원에서 코끼리와 사육사가 사라지는 거야. 신문과 뉴스에 보도가 되는 거지. 코끼리가 문을 통해 빠져나간 흔적도 없고 사육사가 끌고 나간 흔적도 없는데 깜쪽 같이 사라진 거야

동물원의 배경과 코끼리가 어떻게 이 동물원에 들어오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도 소설에 나와. 그런데 이 소설의 주인공이 코끼리와 사육사가 사라지는 광경을 목격하게 돼. 사육사는 코끼리와 아주 친밀한 관계처럼 보였지. 동물을 오랫동안 돌보다 보면 그런 관계가 되잖아. 마치 가족처럼 말이야

주인공은 어느 날 작은 구멍으로 보이는 동물원의 모습 속 코끼리와 사육사가 점점 작아지는 것을 봐. 원거리에 있어서 작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코끼리와 사육사의 물리적인 크기가 작아져서 없어지는 모습을 보는 거야. 주인공은 그 이후 옳은 일이라고 선택을 하는 것도 힘겨워지고 상실의 깊고 깊은 터널 속으로 빠져 들어가지

코끼리의 소멸을 본 주인공이 가지는 상실의 공백은 몹시 폭력적이야. 이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이 전혀 모르는 사실을 주인공 혼자 알고 있다는 진실이 주인공을 폭력의 세계로 서서히 밀어 넣어. 그로 인해 주인공은 조금씩 자신도 코끼리와 같이 실오라기처럼 소멸해 간다는 걸 느끼게 돼

주인공은 결국 파티에서 만난 여성에게 이 모든 사실을 털어놔. 우리는 가끔 자신이 떠안고 있는 사실이 힘겨워할 때가 있잖아.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육사의 이름이 와타나베 노보루야. 하루키 팬들은 다 알지? 단편 패밀리 어페어에 등장하는 여동생 애인의 이름도 와타나베 노보루, 태엽 감는 새에 나오는 아내의 오빠는 와타야 노보루, 또 어느 에세이인가? 고양이 이름이 와타나베 노보루

와타나베 노보루라는 이름은 하루키의 단짝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본명이야. 다 알지? 하루키는 아무래도 미즈마루 씨를 만나고 나서 소설을 쓰면서 그의 이름이 내내 맴돌았지 않았을까. 어디 한 번! 같은 마음으로 ㅋㅋ

안자이 미즈마루 씨는 항상 젊은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분위긴데 여자들에게는 하루키를 소개해줄게,라고 하지만 한 번도 하루키에게 젊은 여성들을 소개해준 적이 없는 안자이 미즈마루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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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스트들아 이상과 하루키가 만나는 이야기를 한 번 써봤어. 지난번에 한 번 올렸는데 바뀐 내용도 있어서 한 번 올려봐 ㅋㅋ  

카페에는 라디오 헤드의 Let down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김해경 선생을 

라바짜 커피 전문점으로 안내했다. 이곳은 커피가 맛있습니다.라는 말에 

김해경 선생은 알았다며 핼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에스프레소에 

레몬을 띄우시는 거 맞으시죠?라고 나는 김해경 선생에게 물었다. 그렇다고 

김해경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물이 탄 커피를 마시고 김해경 선생은 레몬이 들어간 에스프레소를 

단숨에 한잔 마셨다. 라디오 헤드의 노래를 가만히 듣던 김해경 선생은 

고개를 미세하게 살짝 움직였다. 이 음악은? 같은 표정에 나는 라디오 

헤드의 노래에 대해서 잠시 설명을 했다. 김해경 선생은 미세하지만 흥미 

있다는 표정으로 나의 설명을 들었다.


김해경 선생은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역시 커피에 대해서 학식이 

높다고 생각이 들 때 우리가 앉은자리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왔다.


내가 먼저 하루키를 알아보고 이쪽으로 안내했다. 모던보이라 불리는 

이상은 멜빵을 하고 체크무늬의 넥타이를 하고 한껏 멋을 냈지만 핼쑥했다. 

그런 김해경 선생에게 하루키는 손을 내밀었다. 전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합니다. 하루키가 잡은 김해경 선생의 손이 유약했고 아주 작았다. 


김해경이라 하오. 모두들 나를 ‘이상’이라 부르오. 

하루키는 자신의 가방에서 두부를 꺼내서 이상에게 권했다. 

커피와 잘 어울릴 겁니다. 우레시노의 두부라서 꽤 부드럽고 입안에서 

골고루 퍼집니다. 간장을 찍어 먹을 필요도 없습니다.


이상은 고개를 끄덕하며 두부를 한 젓가락 떠먹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살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하루키 씨가 나를 보자고 했소?라고 

쉰 목소리의 이상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어렵게 부탁을 했습니다, 저는 

소설을 씁니다, 이제 얼마나 더 쓸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만, 그래서 김해경 

선생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혹시 지금 나오는 이 노래를 하루키 씨도 아시오?라고 김해경 선생이 

물었다. 저는 라디오 헤드의 음악을 좋아해서 그들의 앨범 KID A를 제 

소설에서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삶과 죽음, 폭력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음악입니다. 


이상은 자세를 좀 더 하루키 쪽으로 당겼다. 부탁이라는 건?라고 이상이 

읊조리듯 물었다. 김해경 선생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를 제 소설에 좀 

쓰고 싶습니다. 음, 하는 쇳소리가 이상의 다문 입에서 새어 나왔다. 


전 또스또에쁘스끼를 좋아하오. 그 사람의 글을 아주 많이 읽었다오.라고 

이상이 말했다. 저도 악령 정도는 아주 좋아합니다. 도스토옙스키가 

사회주의자여서 사형선고까지 받고 시베리아 유형 동안 그 자신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악령의 근본은 니힐리즘에서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라고 하루키가 천천히 말했다.


자멸적 궤변과 괴변이 니꼴라이 쁘레볼로또비치 스따브로낀에 있었는데 

말이오. 리자, 리자는?라고 이상이 말했다. 리자가 말했습니다. 있었던 일이 

있었지 뭐, 그건 가혹하다, 너무도 가혹하다.라고 하루키가 말했다.


침묵이 흘렀다. 질척이고 무거운 침묵이었다. 그 사이를 라디오 헤드의 

‘Let down’이 흘렀다. 하루키 씨? 나는 이미 죽었소,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시오?라고 이상이 물었다. 하루키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턱을 한 번 만진 다음 이상에게 겸손하게 대답했다.


모든 격렬한 싸움은 상상력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싸움터입니다. 우리는 거기서 이기고, 거기서 패배합니다. 물론 우리는 

누구나 유한한 존재고 결국은 패배합니다. 하지만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간파한 것처럼 우리의 인생은 어떻게 이기느냐, 하는 이기는 방식보다 

어떻게 지느냐 하는 패배하는 방식에 따라 최종적인 가치가 정해집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 못지않게 어떻게 죽느냐에 따라 인생의 

가치가 결정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은 하루키의 말을 듣고 마른 몸을 의자의 등받이에 기대고 자신 앞에 

앉아있는 일본의 한 소설가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앞으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소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Let down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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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스트들아 안녕 ㅋㅋ 오늘은 하루키 에세이 중에 <에스콰이어> 오십 주년과 스콧 피츠제럴드 비화에 대한 이야기야


하루키는 여러 에세이에서 언급했지만 피츠제럴드를 좋아하잖아. 대중은 헤밍웨이를 더 좋아할지도 모르지만 하루키는 헤밍웨이 보다는 피츠 제럴드 쪽이지. 인간적으로도 글도 스콧 피츠제럴드 쪽이야


노인과 바다에서도 말했지만 헤밍웨이는 인간은 파괴될 수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고 했지. 근데 자신이 패배했다고 생각하여 총구를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긴 헤밍웨이 보다 말년에 처절하고 나락으로 떨어졌을지라도 다락방에서 끝끝내 글을 쓰다가 숨을 거둔 피츠제럴드 편에 하루키는 섰다고 생각해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가 절친이라는 건 다 알잖아.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헤밍웨이는 파티에 미쳐있는 젤다와 그녀에게 빠져있는 피츠제럴드를 찾아가서 “너를 망치는 것은 저 여자야!”라고 하는 장면이 있잖아. 이 영화 속에는 거투르트를 비롯해서 살바도르 달리, 콜 포터, 마크 트웨인, 조세핀 베이커, 피카소와 모딜리아니, 마티스도 나와. 게다가 전부 실물처럼 보여 ㅋㅋ 시대가 뒤죽박죽이지만 우디알렌은 한 시대에 전부 집합시켰지. 몹시 재미있어


하루키가 좋아해 마지않는 위대한 개츠비는 ‘다시 젤다에게’로 포문을 열어. 20년대 피츠제럴드는 미국이 가장 사랑하는 글쟁이였지. 출판사들은 그의 글을 내고 싶어 안달복달했고. 피츠제럴드는 그런 미국인들의 기대를 충족시켰어. 생긴 것도 잘 생겼잖아. 영화에서는 톰 히들스턴이 피츠제럴드를, 젤다는 봉 감독의 설국열차에서 임신해서 총 난사하던 그 언니


육군소위로 장교복을 입고 있는 피츠제럴드는 누구나 반할 만큼 멋있었다. 그러나 1차 대전이 끝나고 군복을 벗어버리자 한낱 볼품없는 청년의 모습이었지. 광고 회사를 다니며 소설가 꿈을 키웠는데, 프린스턴 대학을 성적 하락으로 중퇴하고 광고 문구를 만들면서 소설을 썼지


하지만 그의 글은 출판사에서 언제나 퇴짜를 맞았어. 그런 생활 속에 일생에 한 번 사랑에 빠질만한 여자가 나타났으니 그녀가 바로 조지아 주와 앨리배마 주에서 가장 미인이었던 젤다 세이였지


젤다는 발랄했고 기가 세고 승부욕이 강한 여성이었어. 무엇보다 예뻤지. 젤다도 피츠제럴드를 사랑했지만 가난한 남자와 사는 것은 그녀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어. 그녀는 명문가 집안의 딸로 부족함 없이 자랐고 원하는 것은 가질 수 있는 여자였어. 그런 젤다는 가난한 삶을 사느니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지


데이지는 젤다의 모습을 그대로 빼닮았잖아. 피츠제럴드가 제다를 안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글밖에 없었지. 그녀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세상이 놀랄만한 글을 써야 했어. 젤다는 피츠제럴드와 약혼을 파기하고, 그는 점점 압박감에 시달리지. 자신이 자신에게 바늘로 찌르는 압박감이었어


고통 끝에 펴낸 자신의 첫 소설 ‘디스 사이드 오브 파라다이스’ 덕분에 출판 일주일 후에 젤다는 자신의 품으로 돌아와. 그리고 바로 그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펴내지. 당시 피츠 제럴드는 제목을 원래 그냥 ‘개츠비’로 하고 싶었어 ‘위대한’을 삽입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지. 그러나 젤다와 출판사의 권유로 ‘위대한 개츠비’가 된 거야


그 뒤로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 돈으로 담뱃불을 피울 정도로 두 사람은 미국 상류사회의 셀럽이 되고 매일 파티를 하고 그의 단편소설은 엄청난 돈으로 팔려나가지. 그러나 미국의 사조가 바뀌면서 점점 나락으로 떨어져


방탕하고 호화로운 생활은 십 년 만에 비극을 맞이해. 젤다도 사람들의 비난대상이 되고, 알코올 중독에 우울증과 정신병에 시달려. 1940년에 피츠제럴드가 죽고 정신병원을 오가던 젤다는 병원의 화재로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잖아


이 에세이에 이런 이야기가 자세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고 있으면 눈앞에 풍경이 펼쳐지면서, 아무튼 재미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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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스트들아 오늘은 하루키 단편 소설 ‘침묵’에 대해서 얘기해 줄게 ㅋ 이 소설은 뭐랄까 하루키 식 공포야. 폭력을 다루고 있어. 흔히 주먹다짐의 폭력이 아니라 언어적 폭력과 가짜뉴스의 폭력을 말하고 있어.


폭력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하루키의 장편소설이 있는데 ‘어둠의 저편’이야. 사실 따지고 보면 하루키의 모든 소설이 어쩌면 폭력을 다루고 있는지도 몰라.


소설 ‘침묵’은 주인공 나에게 오자와,라고 하는 회사 동료가 자신의 고등학교 때의 일을 들려주는 이야기야. 오자와는 어렸을 때부터 내성적이고 책을 좋아했어. 아이가 집에만 있는 것이 걱정이 된 부모님이 친척이 운영하는 복싱장에 보내게 돼. 복싱을 배우게 된 오자와는 복싱이라는 운동은 상당히 고독하고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게 하는 운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 그리고 복싱을 배우는 사람들은 링 밖에서는 사람을 때려서는 안 된다는 철직을 가지고 있었어.


그런데 복싱을 배우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오자와가 다른 사람을 때리는 일이 발생하고 말아. 바로 동급생인 아오키라는 친구를 때리게 돼. 아오키는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은 아이였어. 하지만 친해지기 전에도 오자와는 아오키에게 느껴지는 거부감 같은 것이 있었어.


그건 아오키가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은 것이 딱 집어낼 수는 없지만 거짓처럼 보였기 때문이야. 말하자면 아오키는 진짜로 하지 않고 허울과 껍데기뿐인 위선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오자와는 느끼고 있었어.


그러던 중 복싱을 하면서 학교의 어떤 시험이든 일등을 하면 무엇인가를 사주겠다는 부모님의 약속 때문에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영어시험에서 오자와는 일등을 해버려. 영어 시험은 아오키가 늘 일등을 하던 과목이었어. 일등을 빼앗긴 아오키는 그 뒤로 소문을 퍼트리고 다니기 시작해.

오자와가 커닝을 한 것이라고 해. 소문은 돌고 돌아 오자와의 귀에 들어와. 화가 난 오자와는 사람을 때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아직 수련이 덜 된 오자와는 아오키와 말다툼을 하던 끝에 때리는 일이 발생하고 말아.


하지만 그 뒤로 생활은 조용하게 흘러가.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어. 떨어져 있다가 다시 같은 반이 된 아오키와 오자와. 어느 날 같은 반의 마쓰모토라는 친구가 지하철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하게 되는 일이 발생해. 학교의 분위기도 안 좋아지지.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말아. 아오키는 오자와에게 맞았던 그 일을 잊지 않고 지내고 있었어.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아오키는 몇 가지 ‘사실’만을 이야기해.


첫째, 마쓰모토는 왕따를 당했고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다.

둘째, 오자와는 오랫동안 복싱을 배워왔다.

셋째, 나는(아오키는) 중학교 때 오자와에게 맞은 적이 있다.


이런 몇 가지 사실을 흘리게 돼. 그 뒤로 사실이 진실에서 벗어나게 되거든. 마치 복싱을 배운 오자와가 마쓰모토를 때리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차가운 시선과 냉대, 집단 따돌림을 당하게 되지. 오자와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지만 누구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어.


어느 날 오자와는 아오키를 같은 지하철에서 만나게 돼.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치지. 오자와는 제대로 아오키의 눈빛을 봐. 후에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소설 속에는 이런 대목이 나와.

내가 정말 무섭다고 생각하는 건, 아오키 같은 인간이 내세우는 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그대로 믿어버리는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주제에, 입맛에 맞고 받아들이기 쉬운 다른 사람의 의견에 놀아나 집단으로 행동하는 무리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뭔가 잘못된 일을 저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한 무의미한 행동이 누군가에게 결정적인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고는 짐작도 못하는 무리들이지요. 그들은 그런 자신들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정말 무서운 건 그런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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