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스트들아 이상과 하루키가 만나는 이야기를 한 번 써봤어. 지난번에 한 번 올렸는데 바뀐 내용도 있어서 한 번 올려봐 ㅋㅋ  

카페에는 라디오 헤드의 Let down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김해경 선생을 

라바짜 커피 전문점으로 안내했다. 이곳은 커피가 맛있습니다.라는 말에 

김해경 선생은 알았다며 핼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에스프레소에 

레몬을 띄우시는 거 맞으시죠?라고 나는 김해경 선생에게 물었다. 그렇다고 

김해경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물이 탄 커피를 마시고 김해경 선생은 레몬이 들어간 에스프레소를 

단숨에 한잔 마셨다. 라디오 헤드의 노래를 가만히 듣던 김해경 선생은 

고개를 미세하게 살짝 움직였다. 이 음악은? 같은 표정에 나는 라디오 

헤드의 노래에 대해서 잠시 설명을 했다. 김해경 선생은 미세하지만 흥미 

있다는 표정으로 나의 설명을 들었다.


김해경 선생은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역시 커피에 대해서 학식이 

높다고 생각이 들 때 우리가 앉은자리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왔다.


내가 먼저 하루키를 알아보고 이쪽으로 안내했다. 모던보이라 불리는 

이상은 멜빵을 하고 체크무늬의 넥타이를 하고 한껏 멋을 냈지만 핼쑥했다. 

그런 김해경 선생에게 하루키는 손을 내밀었다. 전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합니다. 하루키가 잡은 김해경 선생의 손이 유약했고 아주 작았다. 


김해경이라 하오. 모두들 나를 ‘이상’이라 부르오. 

하루키는 자신의 가방에서 두부를 꺼내서 이상에게 권했다. 

커피와 잘 어울릴 겁니다. 우레시노의 두부라서 꽤 부드럽고 입안에서 

골고루 퍼집니다. 간장을 찍어 먹을 필요도 없습니다.


이상은 고개를 끄덕하며 두부를 한 젓가락 떠먹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살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하루키 씨가 나를 보자고 했소?라고 

쉰 목소리의 이상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어렵게 부탁을 했습니다, 저는 

소설을 씁니다, 이제 얼마나 더 쓸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만, 그래서 김해경 

선생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혹시 지금 나오는 이 노래를 하루키 씨도 아시오?라고 김해경 선생이 

물었다. 저는 라디오 헤드의 음악을 좋아해서 그들의 앨범 KID A를 제 

소설에서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삶과 죽음, 폭력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음악입니다. 


이상은 자세를 좀 더 하루키 쪽으로 당겼다. 부탁이라는 건?라고 이상이 

읊조리듯 물었다. 김해경 선생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를 제 소설에 좀 

쓰고 싶습니다. 음, 하는 쇳소리가 이상의 다문 입에서 새어 나왔다. 


전 또스또에쁘스끼를 좋아하오. 그 사람의 글을 아주 많이 읽었다오.라고 

이상이 말했다. 저도 악령 정도는 아주 좋아합니다. 도스토옙스키가 

사회주의자여서 사형선고까지 받고 시베리아 유형 동안 그 자신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악령의 근본은 니힐리즘에서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라고 하루키가 천천히 말했다.


자멸적 궤변과 괴변이 니꼴라이 쁘레볼로또비치 스따브로낀에 있었는데 

말이오. 리자, 리자는?라고 이상이 말했다. 리자가 말했습니다. 있었던 일이 

있었지 뭐, 그건 가혹하다, 너무도 가혹하다.라고 하루키가 말했다.


침묵이 흘렀다. 질척이고 무거운 침묵이었다. 그 사이를 라디오 헤드의 

‘Let down’이 흘렀다. 하루키 씨? 나는 이미 죽었소,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시오?라고 이상이 물었다. 하루키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턱을 한 번 만진 다음 이상에게 겸손하게 대답했다.


모든 격렬한 싸움은 상상력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싸움터입니다. 우리는 거기서 이기고, 거기서 패배합니다. 물론 우리는 

누구나 유한한 존재고 결국은 패배합니다. 하지만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간파한 것처럼 우리의 인생은 어떻게 이기느냐, 하는 이기는 방식보다 

어떻게 지느냐 하는 패배하는 방식에 따라 최종적인 가치가 정해집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 못지않게 어떻게 죽느냐에 따라 인생의 

가치가 결정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은 하루키의 말을 듣고 마른 몸을 의자의 등받이에 기대고 자신 앞에 

앉아있는 일본의 한 소설가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앞으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소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Let down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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