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나구


.


.


 


오만하고 


제멋대로인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죽은 자가 품은 이야기는


살아 남겨진 사람을 위해 존재했으면 한다


사실이 어떻든 간에


지금 눈앞에 있는 


할머니의 떨림을 멈추기 위해


.


 


남은 사람에게는 


타인의 죽음을 짊어질 의무가 있다


.


 


잃어버린 사람을


자신을 위해 


살리는 일이 되더라도


일상은 흘러가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


.


 


남겨져서 살아가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제멋대로


이기적이 될 수밖에 없다


.


 


슬프더라도


뻔뻔하더라도


그러니까


.


 


내 눈앞에서 사라진 소중한 사람들


단지


내 눈에는 보이지 않을 뿐


늘 곁에 있다


.


영화 속에는 이런 멋진 문장이 가득하다.


감상이 아닌 경험으로 얻은 문장이다.


영화를 보면서 죽은 사람 중에 나는 만나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누구일까.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내가 만나고 싶어 하는 죽은 그 사람은 과연 나를 만나고 싶어 할까.


역시 그런 생각이 든다.


영화에는 기분 좋은 일본 할머니 키키 키린이 나온다.


키키 키린이 마지막에 멋진 문장을 말한다


.


.


 


이 세상 최고의 도는?


즐거운 마음으로 나이를 먹고


일하고 싶어도 쉬며


말하고 싶어도 침묵하고


실망할 것 같은 때에 희망하고


순종하고 평정하며


자기의 십자가를 짊어진다


젊은이가 혈기 왕성 건강하게


신이 가르친 길을 걷더라도 시샘하지 말라


남을 위해 일하기보다도


겸허하게 남의 도움을 받고


쇠약하여 더는 


남을 위해 도움이 안 될지라도


친절하고 온화하게 있을 것


늙은이의 무거운 짐은 


신의 선물


허름해진 마음에 이로써 마지막을 단련한다


진정한 고향에 돌아가자


.


.


#영화#영화그램#츠나구


#우리의모든만남은우연일까필연일까


#성찰이라는단어에대해서생각해봄


#만남은인연이며언젠가어떤식으로인연은깨어지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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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온통 불만인, 어른도 아이도 그렇다고 제대로 된 청소년도 아닌 여중생 미라이는 여름방학에 마지못해 동생인 초등 저학년인 유우키를 데리고 가기 싫은 로봇 전시회를 갔다가 그곳에서 일본의 여러 도시를 덮어버린 8.0의 대지진을 만나게 되고 기능을 상실한 도시 속에서 부모님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

 

도시 폐허와 질서 파괴 속에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더 이어진다.

만화인데 사실적으로, 만화 같은 현실 드라마이며 츤데레 같은 영화였다. 

그림체나 시작으로는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았는데 슬픔과 감동이 지진처럼 밀려와 버렸다. 

약속은 깨질 수 있기에 약속이기도 하지만 하찮은 약속일수록 지키기로, 지켜주기로 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4시간 가까이 된다.

인간이 긴 시간을 들여 이루어 놓은 문명을 자연은 한순간에 파괴하지만 사람들은 조금씩 원래대로 되돌린다

.

 

현실 부정과 재난 속에서 동생 유우키는 터무니없지만 줄곧 희망적이다. 

그런 모습이 시작부터 절망적인 영화 속 여러 부분에 붙어 버린다. 

사람들에게 소중한 것이 있고 사람들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키려 한다.

그렇지만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눈이 부셔 오히려 숨 막히는 하루 같은 영화다

.

 

나의 욕심과 원하는 것을 바라지 않고,

소중한 사람이 무사히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을 나는 가질 수 있을까

.

.

#영화#이야기#영화그램#애니메이션

#도쿄매그니튜드8

#마리상이히나만나는장면은찡했다

#만화주제에너무슬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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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영화에 대한 편견이 있다. 


그리고 영화배우에 대한 편견도 있다. 


김혜리 기자가 배우에 대한 편견을 이야기했다. 


조연이 주연보다 연기를 잘 거라는 생각은 편견이다. 


대학로의 연극 출신 연기자가 연기를 잘 할 거라는 생각도 편견이다. 


패션모델 출신의 연기자가 연기를 못 할 거라는 생각도 편견이다. 


기성세대의 모든 연기자가 연기를 아주 잘 할 거라는 생각도 편견이고, 편견을 편견이라고 생각하는 건 궤변이다


.


 


마찬가지로 해피 버스데이를 보며 뻔한 이야기라는 생각도 편견이다. 


우리는 뻔한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뻔한 이야기 속을 살아가는 우리는 뻔하지 않기에


뻔한 이야기라도 우리는 영화에게 기댄다


.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이 영화가 가지는 너무 예쁜 점이다.


한 번쯤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있다.


만약 


그때


그 시간으로 간다면,


그곳에서 


그 사람에게


그렇게 말을 하지 않았다면,


.


.


 


그렇기에 우리는


가끔 영화에


신세를 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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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상처투성의 악마’다. 

킬러들의 수다, 조용한 개그맨, 태연한 인생, 즐거운 악몽

처럼, 그럴 수 없는 것이 그럴 수밖에 없게 된 것들.

인생이 태연할 리 없으며, 악몽이 즐겁고, 시끄러운 킬러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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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서 일진이었던 카사이 마이는 도쿄에서  오다기리 시노를 따돌리고 괴롭힌다.

고등학생이 되어 시골로 이사를 오게 된 카사이는 그곳에서 오다기리를 만나고,

오다기리는 시골의 학생들과 함께 카사이를 따돌리고 괴롭히게 된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이야기.

다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이야기.

악마였지만 그 사이에서 상처로 뒤덮이는 이야기.

 

따돌림은 유전자처럼 인간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다닌다. 유치원에서부터 학교, 군대에서도 따돌림은 역병처럼 퍼져 있고 미용실의 직원들, 회사, 심지어는 형제가 많은 한 부모에게 난 아이들에게서도 따돌림은 나타난다.

 

눈에 드러나게 나타날 때까지 따돌림이 서서히 올라오는 경우는 방관자들 때문이기도 하다. 따돌림을 막아야 하고 적극적으로 개입을 해야 하는 사람, 영화에서는 담임으로 나오는 사람마저 방관하고 방치하게 되면 따돌림이라는 것은 세력이 커지고 부풀어 올라 눈에 보이게 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그럼 방관자가 아니었던가, 또는 나는 방관자가 아닐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하지만 결론을 내리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마 나 역시 방관하거나 또는 괴롭히는 아이들 틈에 끼여 멀리서 지켜보는 인간이었을 것이다

.

 

하지만 나와 친한 척은 말아줘, 그러면 아이들이 날 타깃으로 잡거든.

 

영화 속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방관자가 되면 모든 게 편하다. 귀찮을 일이 없고, 나에게 손가락질을 할 사람도 없다. 무엇보다 내가 괴롭힘을 당하는 피해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오늘 뜬 기사 중에는 종로 방화범에 관한 뉴스가 하나 있었다. 난 하루하루가 지옥인데, 종로 여관 방화범은 아들 결혼식 얘기,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가해자가 소주를 마시고 정신이 없는 가운데 불을 질러서 세 모녀를 잃은 아버지는 하루아침에 인생이 망가졌다. 사형을 시켜달라고 청와대 청원을 넣었지만 아마도 사형은 집행뿐 아니라 검찰에서도 구형조차 내려지지 않을 것이다.

 

피해자 아버지는 가해자가 반성문을 읽는 것을 법정에서 들을 수 있는데, 가해자는 울면서 반성문을 읽었다고 한다. 그에 피해자 아버지는, 살인자가 어디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유가족들 앞에서 본인 아들 결혼식을 이야기하는가? 내 삶은 하루하루가 지옥이다,라고 말했다

.

 

이런 일이 터지고, 기사가 나면 우리는 대체로 방관자의 입장이다. 그저 기사를 읽고 사진을 보고 뉴스를 접할 뿐이다. 그것에 안타까워할 뿐이지만 나에게 직접적인 타격이 오는 것이 아니다. 지금으로서 모두 먼 세계의 사건이자 생면부지 타인에게 일어난 일이다. 연민은 느끼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 어떤 방식으로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나에게도 이런 일이 터지면 사람들이 그저 방관자의 모습으로 나를 쳐다볼 뿐이라는 걸 인지하면 무섭다고 느끼게 된다.

 

영화에서 카사이는 마지막에 말한다. 괴롭히는 아이도, 또 옆에서 같이 따돌리는 아이도, 방관하는 당신도 모두가 죄를 짓고 있는 것이라고. 옳지 못한 것보다 옳은 것이 때에 따라 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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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리로디드를 오랜만에 다시 봤다. 매트릭스가 나왔을 때 정말 두 명만 모이면 매트릭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다. 굉장하다, 고 생각한 영화였다

매트릭스란 수열처럼, 아주 잘 짜인, 정해진 세계를 말한다. 이런 매트릭스를 누가 만들었냐고 하면 인공지능이 만들었다. 수십, 수천, 수만 가지의 경우의 수를 설정해놓고 거기에 맞게 움직이는 세계. 그것이 매트릭스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매트릭스의 세계를 알려면 매트릭스 시리즈의 영화보다 매트릭스의 애니메이션을 먼저 봐야 한다. 거기에 매트릭스의 세계가 왜 도달했는지 알게 된다. 인간은 위험과 정확성과 신속성, 향락을 위해 인공지능을 만들어내기 시작하고, 인간이 해야 하는 위험한 일은 인공지능이 하기 시작한다. 인공지능이란 말 그대로 생각을 하는 지능을 가진 인간이 아닌 로봇을 말한다. 인공지능은 자신들이 인간의 노예와 같다고 생각을 한다. 그러던 중 한 인공지능이 주인을 살해하는 일이 발생하고 인간들은 인공지능을 전부 없애기 시작한다. 그에 위협을 받은 인공지능은 인간과 전쟁을 하기 시작하는데 인간들은 인공지능의 발화원, 태양열을 없애기 위해 대기에 오염물질을 뿌려 태양열이 인공지능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인간은 인공지능에 지고 만다. 인공지능은 태양열 대신 인간의 역전류(등과 머리에 호스를 꼽아 뭔가를 빨아먹는 것)을 모아 인공지능을 유지한다. 하지만 생명이 짧은 인간이 소멸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매트릭스를 만들어 그곳에서 인간들이 안전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게끔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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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로디드를 보면 매트릭스를 만든 아키텍처도 완벽한 매트릭스에서 오류를 자꾸 발견한다. 아키텍처 역시 인공지능으로 생각이 높은 인공지능이 생각을 가장 최적화하게 만든 것이 아키텍처이므로 생각으로 만들어진 매트릭스가 완벽해야 하는데 오류가 자꾸 나타난다. 그게 바로 인간의 ‘마음’ 때문이었다.

 

당시 매트릭스를 보면서 하루키가 내내 떠올랐는데(정확히는 하루키가 아니라 하루키의 소설 속 주인공들-이런 것을 보면 홀든 녀석 보다 셀린저가 떠오르고, 뫼르소보다 카뮈가, 병수보다는 김영하가 떠오르는데, 아서 코난 도일보다는 홈즈가 먼저 떠오르니 아서 코난 도일은 불행한 사람임에는 분명하지 싶다) 매트릭스 속에는 하루키가 말하는 이데아의 본질? 같은 것이 대사에 많이 나온다.

 

매트릭스 1편에서 모피어스와 도복을 입은 네오가 훈련을 할 때 모피어스가 그런 대사를 한다. 넌 실은 이것보다 빠르다, 생각을 하려고 하지 마라, 인식을 하려고 해라,라고.

 

그리고 숟가락을 휘게 하는 초능력을 가진 동자승도 네오에게 생각을 하려고 하지 마라, 진실을 보려고 해라,라고.

 

하루키의 여러 소설에 많이 나온 말이지만 최근 버닝에서 가장 잘 나왔다고 본다. 해미의 대사. 없는 귤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귤이 여기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거야, 중요한 건 귤이 먹고 싶다는 거야, 이제 진실을 이야기해봐.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 보일드, 원더랜드에는 마음이 소멸한 인간들이 사는 저쪽 세계가 나온다. 그곳이 매트릭스다. 이미 정해진 대로 움직이고 눈물이 없고 시간과 장소에 맞게 행동하는 것. 그것이 마음이 사라지고 나면 사람들이 해야 하는 것이다. 즉 사랑이라는 것을 할 수 없는 곳, 그런 곳이 바로 매트릭스다.

 

매트릭스라는 영화와 하루키의 세계가 말하는 것은 이런 매트릭스의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조직이 있는 곳, 단체 즉 회사에서는 마음을 드러내고 질문이 많고 호기심은 좋지 못한 것, 규율에 어긋나는 것, 범우주적인 것으로 치부된다. 대체로 마음으로 움직이는 아이에서 어른이 되면 생각에 맞게 행동을 해야 한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맞춰진 인간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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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당신에게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가,라고 대놓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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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가 어렵다면 그건 추상적이라 어려운 게 아니라 아주 구체적이라 그럴 수 있다. 대놓고 말해도 못 알아듣는 것은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너무 가까이 있으면 놓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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