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라는 건 참 어렵고, 너무 어렵고 복잡하고 애매하다. 특히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는 특별함과 동시에 속박과도 같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인간관계라는 말이 성립하려면 그 사람과 싫든 좋든 가까이 있어야 한다. 학교, 교실, 군대, 회사, 동네, 사무실, 학원 그리고 가족.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는 인간관계라는 말이 성립되기 애매하다. 멀리 있는 사람과는 인간관계가 복잡할 필요가 없다. 복잡하고 난해한 인간관계는 늘 나와 밀접하게 붙어있는 사람들이다.


세 자매 중 첫째와 막내는 부산 영도 본가에서 엄마와 함께 살고 둘째는 서울에서 방송국 작가로 일하다가 아버지 제사로 인해 고향으로 온다.


회사에 간 첫째, 학교에 간 막내 대신 둘째가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엄마는 자주 깜빡깜빡한다. 그러다가 엄마가 일하는 도시락 공장에서 실수로 불을 내고 만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지만 그 기회로 엄마의 치매 초기라는 걸 알게 된다.


너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언니에게 말하지만 언니는 퉁명스럽고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옆에서 잘해드리고 요양원이라는 말을 꺼낸다. 둘째는 그런 언니가 이해되지 않아서 요양원에 엄마를 보내지 말고 간병인 같은 말을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들의 관계를 이어주지 못한다. 모두가 일을 하고 와서 간병인 가고 난 후 누가 엄마를 밤새도록 캐어할 것이며,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같은 현재에 닥친 문제들. 관계에 있어서 나 하나만 생각할 수 없고 가족이라고 해서 어설프게 아는 척해서도 안 된다. 힘들다, 이 놈의 관계라는 건 왜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을까.


엄마는 일본에서 태어났고 일본 이름 하나코는 어릴 때 부산으로 와서 60년 동안 한 번도 일본에 가보지 못했다. 외할머니에게서 온 편지는 일본의 한 정신병원에서 의사가 써준 편지.


엄마는 자기 때문에 싸우는 딸들에게 마지막으로 교토에 가고 싶다고 한다. 이 영화는 엄마가 치매에 걸렸다고 해서 떠들썩하지 않는다. 치매가 천천히 인간의 뇌를 파먹듯, 영화는 조용하고 천천히 하지만 깊게 현실의 문제, 가족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죽고 못 살았던 내 새끼는 나중에 사랑하는 이를 만나 나를 떠난다. 형제자매는 피로 이어져 모든 걸 나누며 이해하는 관계일 것 같지만, 피로 이어졌다는 이유로 서로가 서로에게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기도 한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과의 관계는 편하면서 어렵고 이상한 관계. 인간은 참으로 알 수 없는 존재. 그런 존재가 모여 있다. 그러니 이상하고 또 이상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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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슴슴한 도다리국을 먹었는데 고요함이 입 안으로 확 들어오는 느낌. 도다리 매운탕만 먹었는데, 온통 축제 같은 분위기라 도다리의 맛은 뒷전이고 뻘건 양념 맛이 후려쳤는데 이렇게 고요한 맛이 묵직하게 입안을 채우다니, 너무 맛있는 거였다.


이 독립영화 ‘은하수’를 보고 나니 슴슴한 도다리 국을 먹은 느낌이다. 이런 영화라면 양팔을 벌려 격하게 환영하고 싶다.


영화는 가타를 잃어버려 그 기타를 찾으러 다니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나이가 많은 인디밴드 3인조 혼성 ‘은하수’는 자신들의 노래를 알아주는 곳을 찾으러 다니지만 그 어디에서도 받아주는 곳은 없다. 버스킹을 해도 아무도 듣지 않는다.


맏형 동은은 어린 시절 가정폭력에 집을 나와 펜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그곳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최호섭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가 두고 간, 사인이 된 그 기타를 아르바이트 비로 기타를 구입한다. 그 기타는 자신의 심장과도 같다.


하지만 그 기타는 어쩌다가 당근으로 팔려 나가고, 기타가 바뀌고, 다시 사채업자에게로 갔다가 어떤 할머니에게로 간다.


모두가 기타에 얽힌 사연이 하나씩 있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에게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고 싶고, 누군가는 태어날 아이를 위해 과거를 청산하고 노래를 만들어 주고 싶다. 또 다른 누군가는 30년 전에 실종된 기타를 치던 아들을 위해 기타를 준비한다.


기타라는 게 악기 중에서 가장 접하기 쉽다. 하지만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면 작은 오케스트라의 음을 낸다. 기타 하나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은하수는 노래를 부른다. 가사 중에 ‘우주 속 작은 빛이라도 의미가 있어’라는 부분은 우리 모두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먼지 같은 존재지만 먼지가 하찮지 존재는 하찮지가 않다.


이 영화에 카메오로 나오는 사람들이 대단하다. 노브레인의 이성우, 플라워의 고유진, 김현정과 박선주 등 마지막에는 최호섭도 나온다. 재미있었다.


영화의 유머를 장착한 대사도 겉돌지 않고 웃음이 나온다. 이 영화는 확고한 진실보다 흔들림이 많은 가능성이 훨씬 낫다고 말하는 것 같다. 밴드 은하수가 그렇게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 아주 따뜻하고 재미있는 영화 [은하수]였다.


고해형이 연기도, 게임도 잘하는데 노래까지 잘 부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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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가 대만, 중국 등 영화제에서 사람들이 밀려들어 티켓이 없어서 난리라고 한다. 파묘의 가장 큰 매력은 ‘공포’가 강력하다는 것이다. 공포영화의 초석이자 가장 기본이 되는 덕목이다.


중화권 공포영화들도 꽤나 무섭고 공포가 가득한 영화가 많다. 그러나 파묘가 이렇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공포의 질이 다르다는 것이다. 파묘가 보는 이들에게 공포를 준 건 영화 속 도깨비불이나 원흉이었던 사무라이 귀신이 아니다.


주인공으로 나온 배우들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이화림이 툭툭 하는 말투에서, 빙의 들린 윤봉길의 눈빛,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김상덕의 표정과 고영근의 달라지는 동작에서 굉장한 공포를 보았기 때문이다.


얼굴을 덜덜 떨며 빙의 들려 목이 꺾이는 박지용을 보는 김상덕, 최민식의 엄청난 연기에서 우리는 그만 공포가 몸을 덮어버리는 경험을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화림, 김고은의 평소 같은 말투로 툭툭 던지는데 그 안에서 소름이 돋았다. 이도현이 빙의되어 신들린 연기를 펼칠 때에도 공포가 화면을 뚫고 쏟아져 나왔다.


영화 속 공포를 주는 대상이 보통 공포영화의 주체가 되는 귀신인 경우가 많지만 파묘에서는 주체의 대상보다 피상적인 대상들이 공포를 느끼는 과정을 통해 보는 이들까지 공포를 주인공들과 함께 느끼는 체험을 한다.


작금에는 주체가 되는 공포의 대상이 포효하는 공포에 둔감해졌다. 영화가 세상에 도래한 이루 공포영화는 영화의 한 장르로 입지를 돈독하게 굳혔다. 하지만 공포영화는 한계에 돌입했다. 공포 마니아들은 어지간한 공포물에 공포를 느끼지도 못한다. 그리하여 공포물이 나오면 좀비나 드라큘라 또는 제이슨이나 프레디 같은 대상이 주인공인 영화에서는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조던 필이 그 어떤 무서운 대상을 대동하지 않도고 극한의 공포를 주었고, 아리 에스터의 유전에서 처음 느끼는 공포를, 미드 소마에서는 대낮이 밤보다 더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는 주인공들이 느끼는 공포를 우리가 동시공체로 느꼈기 때문이다.


파묘 역시 배우들의 힘이다. 과연 최민식, 유해진이야, 같은 말이 나오게 만들었다. 장재현 감독의 이전 작들을 봐도 그런 면모가 면밀히 보인다. 주인공들에게서 공포를 느끼게 된다.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 하는 말투, 대사, 심리에서 우리는 압도당하는 공포를 실감했던 것이다.


특수 분장이나 그래픽으로 중무장한 공포물은 앞으로는 공포보다는 징그러운 쪽으로 갈 것이다. 눈을 뜨고 보지 못할 정도로 징그러우면 공포와 연결이 될 수는 있으나 즉각적인 공포의 범주는 아니다. 징그러움이 이어지면 공포가 될 수 있다. 일본 만화 ‘식량인류’을 보면 그렇다.


인간이 인간을 잡아와서 배양하듯 살을 찌워서 어떤 존재의 먹이로 준다. 각종 호르몬제와 약물을 투여하여 이가 다 빠지고 몸이 문들어지는데도 가슴을 계속 커지고 성욕만 남아서 섹스를 갈구하고 아이를 계속 낳는다. 원작을 보면 알겠지만 처음부터 징그러움의 연속이지만 뒤로 가면 갈수록 너무 공포스럽다. 아주 무섭다.


즉 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대상은 바로 인간이다. 특히 어제까지 나의 곁에 있던 사람이 오늘 가장 공포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다. 어제의 온화한 내가 오늘 공포의 내가 될 수도 있다. 인간이 인간에게 공포를 주는 가장 공포스러운 존재라는 걸 우리는 영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있다.



식량인류 몇 장면




마이클 패스밴더가 나홍진 감독과 간장게장을 맛있게 먹는 장면이 포착 됐다.

어떤 공포물이 탄생할까. 기대를 해본다.


사진출처: 네이버 블로그 크리드포스트 https://blog.naver.com/rlqhstyle/22342490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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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다 잃은 시민덕희가 있다면 여기 기억을 다 잃은 윤덕희가 있다.

감독이 코로나 시기에 자본이 충분하게 조달되지 못해서 부족하다는 점을 말했는데 자본이 더 있었다면 좀 더 미스터리하고 좀 더 애절하고 좀 더 스릴러로 영상을 담아냈을 것다는 생각이 든다.

텔 미 썸딩은 당시 굉장했으니까.

당신이 잠든 사이는 그래픽이 확 줄어든 대신 주인공들의 연기로 주된 이야기를 끌고 간다.

미스터리한 스릴러와 멜로를 위해 이 영화는 영화적 허용을 조금 지나치게 사용을 했다. 한 가족에게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이란 비극은 총망라했다.

교통사고로 두 아들 중 한 아들을 잃고, 거기에 해리성 기억 장애 - 기억이 소실되었고, 아들은 친구가 대신 돌봐주고, 남편은 말기 암에, 기억을 잃은 아내를 위해 남편은 아픈 몸을 부여잡고 집안은 전부 리셋 시키고, 그리고 아내를 위해 아내를 위한 글을 쓰고 죽음으로 간다.

이런 엄청난 설정을 이무생과 추자현의 연기로만 끌고 가야 하니 아쉬운 부분들이 많이 드러난다. 그래픽이 들어가야 할 부분에는 과감하게 사용이 되어야 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교통사고 장면에 다 들어가 버린 것만 같다.

현실에서도 비극은 꼭 이렇게 소박한 사람들에게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 같다. 안 좋은 일, 나쁜 일은 늘 한꺼번에 몰려온다.

이무생은 시민덕희와 현피를 뜨더니 윤덕희와는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이무생의 장점은 악역을 하도 많이 해서 그런지 가만히 있으면 그런 분위기가 감돈다.

스릴러 미스터리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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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A 영화는 재미없을 것 같은데 보다 보면 영화라는 세상에 빠져들어 장면 장면을 놓치지 않고 보게 된다. 다큐를 보는 것 같은데 극한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고, 인간을 보는 것 같은데 인간 이면의 괴물을 보는 것 같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신들린 것처럼 연기를 한다. 아니 욕망에 찌들어 갈수록 고독해지는 신이 된다. 이처럼 묵직하게 빨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전반에 깔리는 음악은 뇌간을 긁고 지나간다. 이토록 팽팽한 긴장감을 주는 음악이 이야기 내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욕망의 근원으로 생겨났다는 것 낱낱이 까발려준다.

석유를 향한 강한 집착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종교에 빙의하여 미쳐 보이는 폴 다노의 광기가 마치 사자와 호랑이의 대치를 보는 것 같다.

거대한 야망으로 석유를 거머쥐지만 탐욕으로 쓸쓸하고 외롭게 나락으로 떨어진다.

PTA와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조합은 그냥 엄청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현대물보다는 시대극에서 늘 진가를 발휘한다.

다시 봐도 이런 느낌이라니 역시 PTA. 이 영화는 1927년의 소설 ‘오일!‘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석유재벌의 탄생, 그리고 재벌의 자본을 필요로 하는 광기의 종교 이야기다.

제목인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출애굽기에서 가져왔다. 피가 되리니, 저주의 문장이다. 피가 상징하는 하는 건 천국이기도 하지만 지옥이기도 하다.

남녀의 쾌락을 욕하지만 가장 신성한 생명의 잉태를 나타내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영화광들이여 PTA의 영화에 빠져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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