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초등생들은 코로나가 덮치면서, 또 오미크론의 폭증으로 인해 같이 모여서 우당탕탕 노는 문화가 거의 사라졌다. 주로 폰으로 대화하고 게임하고 사진 찍고 공유한다. 조카는 그림 그리기를 아주 좋아하고 패드로도 그림을 곧잘 그린다. 그래서 포토샵을 가르쳐 주었다.


미래소년 코난이라고 있었단다, 한 섬에 사는 코난에게 라나라는 소녀가 블라블라. 나에게는 미래소년 코난의 피규어가 있어서 사진으로 담아서 코난 만화의 배경과 합성을 해보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와꾸, 와끼, 그러니까 틀을 따야 하니 집중도 상승이다.


배경에 스며들듯 합성을 하려면 코난과 라나를 사진으로 담을 때 너무 위에서 아래로 찍어도 안 될 것이며 밑에서 위로 찍어도 안 된다. 배경이 정해졌으면 그에 맞게 촬영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여러 사진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배경에 합성을 한다. 와꾸를 열심히 따서 배경에 스며들듯 집어넣는다. 멀리는 아웃 포커싱이 되고 가까이 있는 것들은 심도를 맞추어서 합성을 한다. 다행히 조카는 포토샵을 하는데 너무 재미있어했다. 그러다 보면 시간에 훌쩍 간다. 안 그래도 시간이 화살촉이라 천천히 갔으면 좋으련만. 코난과 라나 버전이 끝났으면 포비도 한 번 합성해본다.


코난은 라나를 위해서는 뭐든지 한다.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건 만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코난은 라나가 위험에 처하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 아니다,를 생각하기 이전에 몸이 먼저 반응을 한다. 라나의 위험이 감지되면 그대로 돌진한다. 팔딱팔딱 뛰는 숭어처럼.


어떤 방해 요소도 두렵지 않고 무서움도 모른다. 어른이 훌쩍 되어서 보는 코난의 사랑은 더 감동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어른이 된 미야자키 하야오가 코난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보는 만화도 전부 아이의 마음을 지니고 있는 어른들이 만든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 만화를 보면 감동을 더 느끼는 경우가 많다. 미래소년 코난은 원작 소설이 있다. 알렉산더 케이의 ‘남겨진 자들’이 원작이다. 하지만 소설은 너무 암울하고 디스토피아적이라 하야오가 수정을 엄청 했다. 라나도 코난과 함께 하면 그저 좋다. 하야오는 후에 코난과 라나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어서 라퓨타에서 시타와 파즈를 만들고, 아시타카와 모노노케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미래소년 코난은 다이스 선장과 몬스키가 결혼을 하면서 끝난다. 아주 기분 좋다. 악마 같았던 몬스키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천사 같은 모습으로 다이스와 나란히 함께 한다.

이번 합성 버전은 팔코 디오라마를 연출했다. 팔코의 착륙 버전인데 팔코의 비행 버전도 피규어로 나는 가지고 있다. 몬스키와 부하들이 라나를 납치하고 코난이 창 하나 들고 라나를 지키기 위해 팔코 위에서 발가락으로 날개를 부여잡는 장면은 코난을 좋아하는 모든 이들이 압도적으로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다.

조카는 처음에 갈매기들이 라나를 쪼사 먹는 줄로 ㅋㅋ


캡처는 팔코와 기간트의 차이를 비교하기 위해

코난에서 비행선이 몇 종류 나오는데 저기 팔코가 있고 어마 무시하게 거대한 기간트 비행선이 있고 라나 할아버지를 찾았을 때 모두가 같이 타고 탈출하는 비행선이 있다.


미래소년 코난의 시대적 배경은 2008년이다. 좀 벗어난 얘기지만 빽 투 더 퓨처의 미래는 2015년이었다. 그래서 15년도에 빽 투 더 퓨처를 기념하는 행사가 미국에서 열리기도 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나이키 신발이라든가, 코카콜라라든가. 영화처럼 실제로도 많은 부분이 발전을 했지만 현실은 영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그리고 블레이드 러너의 암울한 시대적 배경은 2018년이었다. 70년대 만들어진 블레이더 러너에서 미래에는 일본이 세계의 대국으로 표현되는 거 같은데 그 판도가 사실은 많이 바뀌었다.


미래소년 코난 속 2008년에는 지구가 대 지각변동으로 폭삭 망하고 만다. 라나의 할아버지 리오 박사가 연구한 태양 에너지를 갈취하려는 인더스트리아의 국장 레프카가 라나를 납치해서 리오 박사의 연구를 손에 넣으려고 한다. 그런데 그만 거기에 코난이 끼게 된 것이다. 이상하지만 코난은 더빙으로 보는 게 더 맛이 난다.

이 장면은 미래소년 코난 중에서 가장 기분이 좋은 장면이다. 인더스트리아에서 그 개고생을 하고 라나를 구해서 라나의 할아버지와 포비와 함께, 그리고 다이소가 아닌 다이스 선장도 같이 그곳을 탈출해서 꿈의 섬 하이하바로 가는 장면이다. 아이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기뻐하고 절대 웃지 않던 리오 박사도 라나가 품에 안기니 하하하하 웃는다. 포비와 코난은 얼싸안고 있다가 주먹으로 한 대 복부를 가격하고 포비는 읔, 하며 포비가 코난을 맞받아친다. 두 녀석의 장난이 마음에 드는 장면이다.


아이와 함께 볼 때 어른이 진정으로 좋아해서 그걸 표현하면 아이도 오래된 만화지만 푹 빠지게 된다. 아이가 질문을 하고 대답을, 아는 한 마음껏 해주고. 그리고 같이 코난의 디오라마를 합성하고 만들어 간다. 그런 과정이 아이와 어른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그저 하나의 재미에 빠지게 된다.


포비가 라나를 처음 만났을 때 코난의 친구라는 걸 알고 자신이 가장 아끼는 개구리 뒷다리(도마뱀 꼬리인지)를 준다. 라나는 먹지 못하지만 그래도 고맙게 받는다. 그런 장면들이 많다. 재미있고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깃든 그런 장면들 말이다. 포비가 아기돼지들과 어울리는 장면도 내가 좋아하는 장면이다. 포비는 사람 빼고는 다 잡아먹는데 돼지를 돌보며 동물들에 대한 애정을 알아간다. 포비는 새끼 돼지와 함께 잠을 자기도 하며, 그 새끼 돼지는 영리해서 쓰러진 라나 곁을 맴돌기도 하고 코난을 찾아내기도 한다. 암울하기 짝이 없는 미래지만 마지막은 밝게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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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2-02-16 15: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처음 사진 보고 3D로 출시된 줄 알았네요.

대학교 운동시합할때 최고의 응원가가 미래소년 코난 이었다고 하면 믿어줄까요? 이제는 유치원생도 안 부르는 만화주제가를 복학생 포함 대학생들이 목청 터져라 불러제끼는 모습을...

교관 2022-02-17 10:43   좋아요 0 | URL
어린이들 앞에서 코난 주제곡 매일 들으면 또 따라 부르더라구요 ㅋㅋㅋ 신나잖아요!
 





1920년대 단평은 그 시기에 드물게도 자신의 오페라 무대를 가지고 자신이 만든 노래로 자신의 공연을 했다. 삭막하고 차가운 중국 땅에 뜨거운 오페라를 알리고 싶었던 단평.


오페라는 인간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 같은 것이었다. 얼었던 마음을 녹여주고 외로움을 안아 줄 수 있는, 인간의 사랑을 말해주는 것이 오페라였다.


단평은 무대에서 그런 오페라를 불렀다. 온 마음을 다해 저 사람에게 나의 마음이 전달할 수 있게 노래를 불렀다.


단평을 좋아하던 운언은 단평의 공연을 늘 보러 왔다. 단평도 운언을 사랑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사랑은 꽃보다 아름다웠고 태양보다 뜨거웠다. 단평은 사랑하는 운언을 위해 ‘야반가성’을 작곡하려 하지만 완성에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언젠가 꼭 ‘야반가성’을 완성해서 당신 앞에서 불러 주겠소. 단평은 운언에게 약속한다.


단평과 운언의 사랑은 아름다웠지만 신분을 넘은 사랑을 했기에 두 사람의 사랑은 너무 위험했고, 너무 험난했지만 너무 사랑했다. 사랑이란 절대로 불가능할 것 같았던 두 사람을 아름답게 위태위태하게 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사랑은 나날이 뜨겁게 불타올랐다.


하지만 운언은 집에서 점찍어 놓은 곳으로 혼인을 가게 되었다. 운언은 그게 싫어 도망가려다가 붙잡히고 만다.


그날 밤, 한 무리들에 의해 단평의 극장은 불에 타고 단평은 죽는다.


팔려가다시피 시집간 운언은 그 집에서 처녀가 아니라는 이유로 남편에게 폭력을 당한다. 때리고 또 때리다가 운언을 쫓아내고 만다. 운언은 불타버린 극장에 매일 와서 단평을 기다리다 미쳐간다.


그렇게,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흐른다.


10년 후 1936년이 되어 다 쓰러져가는 극장에 새롭게 나타난 극단이 공연을 하려 하지만 그들의 실력이 엉망이었다. 실력이 검증되지 않으니 사람들에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었다.


공연에서 주인공 역의 위청은 노래 실력 때문에 고민이 많다. 그때 위청에게 의문의 남자가 암막 뒤에 나타나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연하라고 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릴 것이다.


그 의문의 남자는 죽은 줄 알았던 단평이었다. 단평은 10년 전 불에 타 죽은 게 아니라 한 무리의 남자들이 운언과 단평의 사랑을 방해하기 위해 단평의 얼굴에 염산을 뿌리고 극장에 불을 냈던 것이다. 단평은 염산 때문에 얼굴의 반이 흘러내렸지만 죽지 않고 극장에 숨어 ‘야반가성’을 완성시키고 있었다.


위청은 대면하지 않았던 단평의 말대로 로미와 줄리엣을 공연하면서 고음이 되지 않는 부분은 단평이 무대 뒤에서 대신 불러주었다. 단평이 노래를 부를 땐 운언을 생각하며 슬픔을 가득 채워 설움과 그리움을 담아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부르며 단평은 눈물을 흘린다. 얼굴의 반이 없는 단평은 매일 미친 여자의 모습으로 극장에 나타나는 운언 앞에 나타날 수가 없었다. 반이 흘러내린 얼굴로 앞에 나설 수 없어서 죽고 싶었지만 그것마저 여의치 않았다. 운언에게 한 약속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단평은 얼굴의 반이 날아가 버렸고 운언은 정신의 반이 날아가 버렸다.


위청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운언은 위청을 죽은 단평으로 착각한다. 사랑에 눈이 멀어 미쳐갔지만 운언 앞에 모습을 보일 수 없었던 단평은 위청을 통해 운언에게 야반가성을 들려 주려했다.


그런데 이 모든 걸 못마땅하게 여겼던, 단평의 얼굴에 염산을 뿌린 조 씨가 운언에게 총을 쏜다. 총을 맞고 쓰러진 운언을 보고 그들 앞에서 단평은 절규한다. 마침내 운언 앞에 나타난 단평은 반이 없는 얼굴로 10년 동안 운언을 위해 만든 ‘야반가성’을 불러준다.



밤이 깊어서야 나와 당신은 비로소

영혼을 활짝 열고 꾸밈없는 마음을 내어 놓습니다

부드러운 입맞춤은 한밤중에

음악이 되어 당신의 마음에 다가갑니다

별님에게 간청합니다

달님이 증인이 되어 주세요

일생을 다해서라도 기다리겠습니다

언젠가는 제 소망이 이루어져서

당신과 함께 영원을 찾아 날아갈 것입니다


반만 살아있는 얼굴의 단평과 두 눈이 보이지 않는 운언은 세상의 고통과 불행을 다 짊어지고 행복한 길을 떠난다.


사랑은 그런 거라고 알려 주었던 단평과 운언의 사랑이야기 ‘야반가성’이었다.


https://youtu.be/SaVIEThrg_M

유튜브 목소리큰겁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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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wsMro6_1BqA

엽천문-천취일생. 유튜브 진이삼춘 채널



첩혈쌍웅은 제니와 아쏭의 안타까운 누아르 영화였다. 누구나 다 킬러와 형사의, 남자들의 이야기라고 소개를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사랑 이야기다.


자신의 실수 때문에 실명을 한 여자 가수를 지켜주는 한 킬러의 이야기.

제니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버려버린 아쏭의 아픈 이야기.

비싼 가격에 사람을 죽여 실명한 제니의 눈을 수술해 주고픈 한 남자, 아쏭의 이야기.

그리고 그를 쫓는 한 형사의 또 다른 이야기.


아쏭은 제니를 떠올리며 하모니카를 분다.

하모니카는 바이올린만큼 슬픈 영혼의 소리를 실처럼 뽑아낸다.

제니는 눈이 멀어도 계속 노래를 부른다.

자신의 노래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 들릴 수 있도록.

서글프고 구슬픈 노래지만 제니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통해 나오는 노래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고픔을 말한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 제니.

자신의 눈을 그렇게 만든 사람을 위한 노래를.


이 이야기는 슬프고 슬픈 사랑 이야기다.

자신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 제니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아쏭이 할 수 있는 건 오직 사람을 죽이고 또 죽이는 것뿐.

두 사람은 너무나 가까이 있는데 찾지 못하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큰 눈에

만화에서 갓 나온 듯한 표정을 짓는,

곁에 있어 줘야만 할 것 같은 제니.


박정대 시인의 '삶이라는 직업'이라는 시집에서,

예뻐서 늘 쳐다보는 달력 속의 여자가 제니 같은 여자가 아닐까.

제니는 사랑해선 안 되는 남자를 사랑하기에 오늘도 노래를 부른다.





유체 이탈자

얼마나 사랑했으면, 이 사랑이 얼마나 간절하고 절실했으면 강이안은 자신의 잠든 육체를 벗어나 다른 이의 몸으로 들어가 사랑하는 진아를 구하려고 했을까. 그 사랑의 깊이가 바닷속만큼 깊어서 강이안은 사랑하는 이가 죽음으로 가는 걸 막아야 했다.


유체를 이탈해가면서까지 진아를 지키고 싶었던 이안을 보면 예전의 고스트가 된 샘이 떠오른다. 그렇게나 사랑하는 몰리를 두고 죽어버린 샘은 몰리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몰리는 크게 두 번 눈물을 흘린다. 동전이 공중 부유하여 손에 쥐어질 때 샘의 존재를 확인하고 눈물을 흘리고 마지막 샘과 헤어질 때 눈물을 흘린다.

말도 안 되는 사랑 이야기.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이야기. 이상하고 또 이상하고 그저 이상한 이야기. 하지만 사랑이란 그렇다. 답답하고 미칠 것 같다가 평온하고 빡치고 애타고 죽을 것처럼 보고 싶고, 설명할 수 없이 황당한 게 사랑이다. 내 생각대로 되지 않고 뚜렷한 답도 없어서 갑갑하다. 비난을 각오하고서라도, 사회에서 매장이 될지언정 사랑은 그 모든 것을 모래성처럼 무너트려 버린다. 당황스럽고 이상하고 미쳤고 말도 안 되는 것이 불같은 사랑이다. 사랑 그 하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릴 수도 있다.


몰리는 사랑하는 샘에게서 정말 사랑받았다는 그 느낌,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샘이 없는 이 험한 세상에서 아마도 다른 이들에 비해 잘 헤쳐가리라. 그런 몰리를 지켜주지 못해서 샘은 죽은 뒤에도 끊임없이 노력을 한다. 사랑은 노력이 필요하다. 두 사람이 마지막 헤어질 때 몰리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 그리고 마지막 대사가 영화를 말해준다.

사랑해 몰리, 언제나 사랑했어.

동감이야,라고 몰리는 대답 한다.


유체 이탈자의 이안과 진아도 그런 과정을 지나 더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려는데 그만 죽음 직전으로 내몰리고 만다. 몰리가 샘에게 사랑받았다는 그 느낌을 이안과 진아에게서도 봤다. 영화는 분명 액션인데 내 눈에는 너무나 애틋한 사랑 이야기로 보였다.


윤재근 감독이 스토리보드와 스트립터로 참여한 영화 ‘선물’을 나는 좋아한다. 얼마 전에도 봤다. 죽어가는 아내를 두고도 공연에서 사람들에게 웃음을 줘야 하는 삼류 개그면의 처절한 이야기. 너무나 예쁜 이영애와 너무나 일반인처럼 나오는 이정재의 너무나 아픈 사랑 이야기. 나는 그래서 유체 이탈자가 액션 영화가 아니라 너무나 사랑하는, 사랑이 깊어 절대 지키고픈 한 남자의 이야기로 보였다.


그래서 오늘은 선곡은 장국영의 최애. 최고의 사랑이다.


https://youtu.be/W9jq62-MIUE



학창 시절 사진부 암실에서 선배들에게 허벅지를 난도질당하고 아픈 다리를 주무르고 있을 때 한 선배가 장국영을 들어보라며 주고 갔다. 겨우 일어나 암실 창가에 앉았다. 햇살이 창을 투과해 다리에 녹아 내려앉았다. 욱신거리는 다리 위에서 햇살에 비친 먼지들이 춤을 추었다. 앨범을 그 위에 올리고 ‘최애’를 들었다.


노래를 듣고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가 있을까 생각했다. 넋을 놓고 듣고 또 들었다. 햇살에 반짝이는 하얀 눈이 떠올랐고 그 속에서 빛처럼 부서지는 내 몸도 보였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정말 너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 초라한 존재가 아니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그동안 나를 스쳐갔던 소중한 사람들과 소중한 시간들. 지나간 것들을 기억하고 추억한다는 건 그 순간을 눈물을 흘리며 몇 백번이나 떠올렸을까.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도 나에게는 최고의 순간이었을 그 어느 때. 그때를 기억하는 건 나에겐 찬란하고 빛나는 자산이다.


그때 맞이했던 포근한 온도와 나른한 햇살과 아카시아 꽃과 같은 향을 앞으로 만나지 못할지라도 나의 추억 속에서는 그 장소, 그 공간 그 시간이 그대로 우뚝 서서 나를 타이른다. 그리고 그곳에는 장국영이 열심히 무대 위에서 땀을 흘리며 ‘최애’를 부르고 있다. 넌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고 하면서, 너 자체가 사랑이라고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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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학창 시절에 다운타운에는 음악감상실에 두 곳이 있었다. 한 곳은 규모가 꽤 되고, 지방의 라디오 디제이들이 돌아가면서 음악을 틀어주는 곳으로 주로 머라이어 캐리, 휘트니 휴스턴, 조지 마이클 같은 세계적인 팝 가수들의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틀어주었다. 비교적으로 맨트와 음악적 소개가 전문적이었고 떠들썩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그곳에 가면 뮤직비디오를 영화관처럼 큰 대형 화면에서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에어로 스미스의 ‘겟 어 그립‘ 앨범의 곡들 뮤직비디오를 볼 때면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쌍벽을 이루었던 건스 앤 로지스의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우리끼리는 누구의 뮤직비디오가 더 좋은지 내기를 하기도 했다.

 

에어로 스미스의 '겟 어 그립'의 앨범 뮤직비디오는 모든 노래의 뮤직비디오가 이어진다. 그래서 영화와 비슷했다. 아니 영화였다. 뮤직비디오 속에는 주인공 알라시아 실버스톤이 나온다. 당시 최고의 하이틴 인기 배우였다. 그리고 리브 타일러도 나온다. 근래에는 리브 타일러는 꾸준하게 활동을 하지만 알라시아 실버스톤은 인스타그램에서만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리브 타일러는 에어로 스미스의 스티브 타일러의 딸인데, 리브 타일러가 훌쩍 큰 다음 티브 속에서 노래를 부르는 세계 최고의 록스타가 자신과 너무 닮아서 찾아가서 따져 묻고 이런저런 우당탕탕 해보니 스티브 타일러의 딸이 맞더라, 그래서 그 후로 스티브 타일러는 리브 타일러의 길을 열어 주었다? 같은 이야기를 음악 감상실의 디제이 입을 통해야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기억이 생생한 걸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디제이들의 입을 통해서 쏟아져 나왔다.

 

미국 록 스타들에게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하면 머틀리 크루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더 디트’를 보면 당시 미국 록그룹 들은 미국 투어만으로 1년에 100회 이상 공연을 한다. 세계를 돌면 엄청난 공연을 하는데 그들의 공연하는 스타일이 밤 10시에 공연해서 새벽 2시까지 미친 듯이 노래를 부르고 연주하고 3시부터 광란의 술 파티다. 그 속에는 여자 팬들도 있고 난장판이다. 누가 누구와 자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눈 뜨면 오후 5시 정도. 그리고 밥 좀 먹고 밤 10시가 되면 또 미친 듯이 공연을 하고 새벽에 광란의 약과 술 파티를 한다. 그들의 피지컬은 한창 20대 초반이며 이 모든 것들을 감당할 체격과 체력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 너의 자식이 저기 어디, 막 브라질 같은 곳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근래에는 록 스타뿐 아니라 호날두 녀석의 아들도 그렇게 얻었다.


그리고 또 한 군데가 중앙시장에 있는 한 군데 음악 감상실이다. 이곳은 경남에서 가장 많은 앨범을 보유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했다. 디제이도 전문적인 디제이들이 하지 않고 고등학교에서 음악을 좀 좋아하는 녀석들이 돌아가면서 했다. 그러다 보니 더 재미있었다. 엉망진창이지만 시끌벅적했고 난장판 같았지만 우리는 그곳을 거의 집처럼 들락거렸다.


그곳은 보통의 음악이나 록에서 벗어난 음악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노르웨이의 데쓰 메틀이라든가, 요컨대 바쏘리의 음악이나 판테라, 알파타우루스 같은 깊이가 꽤 되고 기기묘묘한 록들을 들을 수 있었다. 거기서 알게 된 뮤지션이 히데였다. 묘하지만 히데의 노래가 나오면 따라 부르게 되는데 얼굴도 모르고 처음 보는 이들과 함께 히데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으면 알 수 없는 어떤 연대가 느껴졌다.


히데는 나방 같았다. 마치 불 속으로 뛰어들어 오늘 타버리고 나면 더 이상 미련도 없을 것처럼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보니 학창 시절에 어딘가 폭발해버릴 것 같은 마음을 대변해주기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히데는 액스재팬의 기타였고 더불어 액스재팬의 음악도 그곳이 아니면 들을 수 없었다. 히데의 노래를 들으면 뭔가 마음 저 밑에서 두구두구두구 하며 드럼을 치며 무엇인가가 올라오는 것이 느껴진다.

 

그렇게 듣게 된 히데의 음악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좀 우습게 들리겠지만 히데의 음악, 히데의 스타일, 히데의 개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나면 아직 히데는 여기 현실에 어떤 끈을 남겨두어 우리가 그 끈을 잡을 수 있게 한다는 말들을 하곤 했다.


일본에서는 히데의 유전자를 이어받으려는 노력을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의 음악이나 그의 개성 같은 것들. 음악적으로는 일본의 어떤 그룹이나 가수가 히데의 유전자를 이어가는지 모르겠지만 히데의 얼굴은 일본의 배우 나리야마 히로키가 닮았다. 어떤 각도에서 보면 흡사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히데와 얼굴이 가장 닮은 사람은 슈주의 김희철이다. 김희철은 아직까지도 소년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메이크업을 한다면 히데의 얼굴과 거의 같아진다. 또 스타일과 목소리(긁어서 내는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이런 목소리는 20대까지 밖에 하지 못한다)는 지드래곤이 아주 닮았다. 지드래곤의 탁월한 스타일을 보면 자연스럽게 히데가 떠오른다. 지드래곤은 이대로 60까지 나이가 들면 아마도 데이빗 보위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음악적으로 닮은 유전자는 서태지다. 액스재팬의 베이스였던 타이지의 기타가 현재 서태지에게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진실인지는 모른다. 그만큼 서태지가 정현철이었던 시절 액스재팬의 스타일을 동경했을 것이다. 시나위 4집 활동 당시 김종서와 함께 베이스로 서태지가 있었는데 흡사 액스재팬의 이미지가 있다.

 

가수라는 건 노래를 잘 불러야 하지만 노래만 잘 불러서는 슈퍼스타는 될 수 없다. 가창력? 기타 연주? 물론 중요하지만 자기만의 매력이 있어야 한다. 히데의 여러 노래 중에 다우트라는 노래가 있다. 뮤직비디오를 보면 알겠지만 이게 20년이 넘은 스타일이라고? 그렇게나 된 노래라고?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이 강력한 해비 메틀은 서태지의 탱크를 들어보면 이 강력함이 서태지의 버전으로 또 나타나는 것 같다. 뭐 이건 물론 나만의 생각일 뿐이다.

 

밑으로는 내가 그려본 히데의 그림과 다우트 뮤직비디오를 올려본다.


https://youtu.be/2fv812v6TQ4

이렇게 목을 긁어서 내는 소리는 굉장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30대를 넘어가면 이런 목소리가 대부분 사라진다. 본 조비도 이런 목소리였다가 이제 나이가 들면서 이런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대부분의 록그룹이 그렇다. 하지만 이렇게 아직도 매력적인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서태지와 지드래곤이다. 하지만 한계가 온다. 사람이니까. 그때까지는 실컷 듣자라는 주의다.


히데의 큐포스켓


두근거리는 거야. 굉장히 두근거렸지. 보들레르에 취하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어. 다른 노래도 그렇지만 말이야 다우트를 부를 때 히데는 뭐랄까 카타스트로프적인 섹시함을 지니고 있어. 마치 양의 하얀 뇌로 만든 카레를 떠먹는 기분이 드는 거지


류가 그랬어. 양의 뇌로 만든 카레는 입과 혀와 목을 자극하면서 매끄럽게 내려가서 내장 전체를 뜨겁게 달군다고 말이야. 그리고 위장에 가서야 서늘하게 느껴지지. 아주 사치스런 불쾌함 말이야. 히데의 다우트는 마치 그래. 그런 느낌이라구. 두근거리게 만들어


아주 두근거렸어. 히데의 다우트를 듣는다는 건 말이야. 첫 시작부터 데커던스적이지. 히데는 섹시해 섹시해. 속살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섹시해. 그런 속살이 아니야. 날에 베이면 벌어지는 살갗의 속살에 빠져드는 거야.  벌어진 살 속에 농염하게 숨어있는 붉은 형질의 표피와 세포 말이야. 농축된 섹시함을 히데는 다우트를 부르며 물처럼 흘려버려


히데스라는 토플리스 바에 가면 바의 상단에서 히데의 다우트가 퇴폐적으로 나왔어. 그곳에 오는 손님 중에는 이빨이 하나도 없는 여자도 있고 혀에 피어스를 24개 한 게이도 있어. 그리고 혈액과 골수 소스 위에 놓은 터키를 좋아하는 50살의 남자도 있어. 채찍으로 너무 맞아서 옷이 맞지 않아 항상 큰 사이즈의 옷을 입고 오는 외국인도 있어. 모두가 히데의 다우트를 들으며 데쳐진 시금치처럼 몸을 흔들어


자기혐오의 젤리 피시와 머릿속에서 소리치는 쌍둥이와 산산조각 나버린 카오스를 목에 쑤셔 넣으라고 히데는 노래를 불러. 다우트 다우트. 두근거릴 수밖에 없어. 나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서태지의 테이크 시리즈와 탱크에서 다우트의 오마주를 느꼈더랬지


97년까지 퇴폐적 섹시함으로 무장을 하고 다우트를 불렀어. 5월에 카오스로 가버리다니. 살이 부러지고 뼈가 줄어드는 기분이야. 너무 크게 틀었나 봐. 옆에서 욕을 하네. 히데는 어딘가를 향해,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향해 다우트라고 크게 소리를 질러  


- 히데의 다우트를 듣고 든 기분을 적었다. 히데에게는 퇴폐미라는 것이 있다.


이제부터는 허리 고 라운드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히데의 다큐영화다. 일본의 20대 청년의 배우가 히데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히데를 추억한다. 그러면서 히데가 죽기 직전까지 히데와 관계한 사람들이 등장해서 히데와의 일화를 회상한다.


히데의 다큐는 거의 다 봐서 이거 뭐 별거 있을까 싶지만 팬심으로 보다 보면 또, 늘 그렇듯이 마지막에 가면 영화 속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과 비슷한 감정에 휩싸인다.


이 영화는 히데가 죽은 지 20년이 되던 해, 2018년에 제작이 되었고 일본의 청년 배우 야모토 유마라는 녀석이 히데의 자취를 따라 과거로 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허리 고 라운드는 히데의 마지막 노래이며 가사가 묘비에 새겨져 있다. 야모토는 히데가 활동할 당시 욕 들어가며 일을 배우던 히데의 로드 매니저인 히데의 동생(현 히데 소속사 대표)을 찾아가 히데가 엘에이에 머물며 음악 작업을 했던 곳으로 가게 된다. 그러면서 히데가 다녔던 거리를 현재의 야모토가 걸어간다. 그런 장면에 교차 편집되어서 나온다.


핑크 스파이더를 촬영했던 골목을 찾아가서 회상을 하다가 그 골목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히데가 다니며 남긴 끈을 찾아서 추억여행을 한다.


히데의 이전 다큐들을 보면 히데가 장난기 가득한 모습으로 엘에이에서 음악 작업을 하며 술을 마시고 지내는 모습이 가득하지만 이 다큐는 교차편집으로 과거와 현재를 히데의 끈으로 이어준다.


히데가 좋아하던 바 ‘랠리’에 다시 모여 히데가 죽기 전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모습은 정말 옆에서 히데에 대해서 조근조근 말해주는 것 같아 좋았다.


마지막에 가면 야모토에게 한 통의 메일이 오고 거기에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히데의 허리 고 라운드의 오리지널과 다른 버전이 들어있다. 20년 동안 누구도 듣지 못하고 잠들어 있던 노래, 히데의 목소리로 부르는 다른 버전의 허리 고 라운드를 팬들에게 들려주라며 끝이 난다, 그리고 그 노래가 나온다.


히데를 좋아한다면 볼만한 다큐영화 ‘허리 고 라운드’였다. 가사의 말미에는 봄에 다시 만나요, 봄에 만나요, 봄에 만나요.라는 후렴구가 있는데 봄이 되면, 5월이 되면 히데를 다시 만나게 된다.https://youtu.be/mwriPOK3Tw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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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택트는, 조디 포스터의 눈을 관통하는 우주는 그야말로 존재론적으로 관철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콘택트를 봤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칼 세이건도 몰랐을 때였다. 콘택트를 다시 보았고 그때서야 소름이 돋았고 조금 불편했지만 조디 포스터가 보는 우주, 그 속에 몸을 던진다고 해도 어쩌면, 정말 어쩌면 괜찮은 사멸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좀 더 흘러,

알폰소 방식의 우주를 산드라 블록의 눈을 통해서 바라보았다.


그래비티를 내식으로 한 줄로 표현하면 '시야에 들어오는 감각에 대한 도취'라고 하고 싶다.


점 같은 인간이 모여 사는 거대한 행성, 헬멧에 손바닥만 하게 비칠 때 다시 오래 전의 존재론적 인식에 대해서 떠올려보았다.


나는 스톤 박사와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 놓은 적이 있었나.


인생에 있어서 1년은 간호 때문에 병실에서 난 창밖을 바라보며 크리스마스를 보냈고 그다음 해는 중환자실 복도에 난 작은 창밖을 보며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그리고 죽음을 옆에서 지켜봤다. 상황이 생각 밖으로 펼쳐지면 대체로 판단이 흐려지게 된다.


쥐가 뱀에 쫓겨 필사적으로 도망을 다닌다. 그렇게 도망을 다니다가 궁지에 몰리면 발악을 하지만 그 경계를 넘어서고 나면 뱀의 아가리에 들어가는 순간 쥐는 이루 설명할 수 없는 쾌락을 추구하게 된다. 죽음이 곧 나르시시즘 절정에 이르는 순간.


스톤 박사는 그 절망의 끝에서 서서히 딸의 곁으로 다가가려 한다. 경험에 대한 기준치도, 오감을 통한 감각적인 통념의 선이 허물어지려고 한다. 그때, 매트가 나타나 보드카를 들이대며, 자식을 잃는 것보다 큰 슬픔은 없지, 하지만 가기로 했으면 계속 가야 해. 두 발로 딱 버티고 서서 살아가는 거야.


스톤은 그때 깨닫는다. 오늘 죽으면 더 이상 내일부터 죽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내가 두 발로 땅을 밟고 서서 살아가는 것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 그 죽음에 당당하게 악수를 청할 수 있다는 것을.


진짜로 절망에 빠지면 나 힘들다는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절망의 끝에 희망이 살을 찌울 수 있는 동력이 있다. 그래서 우리들, 인간은 두발로 땅을 디디고 서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염원하는 아름다운 우주에서 두 발 없이 유영하는 것보다 훨씬 값지기 때문이다.


그래비티란 그런 것이다.

영원불멸의 우주로 살아가기보다 비록 소명이 다해서 죽어 버릴 지라도 한 인간으로 사는 게 값진 것이다.

애드 아스트라를 보면서 브래드 피트의 눈동자는 지구가 아닌가, 그리고 영화 속 아버지인 토미 리 존스의 눈동자는 우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독하고 한 없이 떠도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우주에서 인간의 낙관적인 세포는 점점 소멸해가는 것 같다. 토미 리 존스의 눈동자는 광대하고 넓고 끝을 알 수 없는 고독한 우주를 닮았다.


그에 비해 브래드 피트의 눈동자는 전 우주의 고독이 주는 욕망보다 내가 잡을 수 있는 행복이 있는 지구를 닮았다. 중력이 끌어당기고 안간힘을 써야만 움직일 수 있는 지구가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저항 없이 유영을 할 수 있는 멋진 우주보다 아름답고 살만하다는 것을 기이하게도 마지막 장면 브래드 피트의 눈동자가 말을 하는 것만 같다.


제목의 뜻을 찾아보니 ‘별까지”라는 말인데 뜻은 “어려움을 뚫고 별까지”다. 여기서의 어려움은 현재 우리 인간생활 전반에 깔린 어려움과는 다른 질을 말하고 있다.


영화 속 시대는 지금보다 미래이다. 그것이 멀던 가깝던 지금보다 훨씬 앞선 미래다. 영화 속 태블릿이나 우주 해적이나 우주 정거장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거기서 죽 커가고 있거나. 그런 먼 미래에도 지구에서 우주의 한 지점으로 가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간단하게 비행선에 올라 슝하고 갈 수는 없다.


브래드 피트는 참 멋있다. ‘멋있다'라는 건 배우, 진짜 배우 같다는 말이다. 피지컬이나 말투나 얼굴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 그래 보인다. 정말 스크린 속에서만 존재할 법한 사람 같다. 브래드 피트는 영화 ‘옥자’도 기획했다. 브래드 피트도 참 알 수 없는 인간이다. 그런 알 수 없는 인간들이 모여 사는 지구가 광활한 우주보다 훨씬 낫다는 말이다.


우주로의 발걸음이 빨라진 요즘, 너도나도 우주에 대한 관심이 깊지만 영국의 윌리엄 윈저 왕세손의 말처럼 우주로 가는 것도 좋지만 자본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망가져가는 지구에게 좀 더 시선을 돌리는 게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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