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장은? 중대장 집에 갔어?]
[잘 모르겠습니다. 주말이면 보통 집으로 가는데 중대장 차 때문에 어제는 관사에서 잤나 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집으로 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커튼도 그대로고 인기척은 없습니다. 중대장 어차피 오늘 저녁에 다시 관사에 와야 하는데 집으로 갔는지 관사에 머무르는지 여기서는 잘 알 수 없습니다]
[차는? 중대장 차는?]
[차는 없습니다. 차는 아마 어제 카센터에 급하게 들어갔을 겁니다. 그래서 오늘 몰고 집으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행정병에게서도 뚜렷한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일단 이거 구워 먹기로 했으니까 출발하자]
[중대장한테 들키면 어떡합니까?]
[일단 짐은 애들 시켜서 청소하는 척하며 동초 뒤로 옮기고 우르르 몰려가지 말고 한 명씩 조용하게 가자]
그렇게 해서 우리는 철조망을 넘어 부대 뒤에 있는 호숫가로 갔다. 주말에 가끔 와서 고기를 구워 먹는 장소가 있다. 국방부의 일반 군인이 아니라 우리는 법무부 소속으로 군생활을 하고 있어서 육군과는 좀 달랐다. 중대장은 국방부의 중대장처럼 군인신분이 아니라 일반인 공무원이다. 그래서 관사에서 평일에 지내다가 주말에는 보통 집으로 간다. 소대장들 역시 일반 공무원으로 돌아가면서 바뀐다.
내가 완고여서 나를 꼬신 녀석이 있었다. 굴이 이만큼 있는데 일요일에 호숫가에서 글을 구워 먹자는 나보다 한 기수 밑의 녀석이 자꾸 나를 꼬셨다. 이 녀석 때문에 한 번은 대학교 앞까지 가서 맥주를 마시고 오기도 했다. 그때 여자 후배들이 거기까지 왔었다. 따지고 보면 탈영이었다. 몰래 나가서 한두 시간 맥주를 마시고 또 몰래 들어왔다. 들킨 적은 없었다. 들킬 리도 없었다.
날이 좋은 주말에 와서 닭도 구워 먹고 고기도 구워 먹는다. 온통 산이라 누가 올 리도 없고, 누군가 온다고 해도 이 부근의 농사를 짓는 사람들인데 우리는 그 사람들의 배농사를 도와주고 있어서 우리에게 나무라는 일도 없고 눈도 감아 주었다.
우리가 여기 오게 된 이유는 때마침 겨울이지만 날이 좋고, 통영 출신 희철이 부모님이 먹으라고 굴을 잔뜩 보내주었다. 굴이 너무 많아서 행정실에도 한 냄비 주고, 각 내무반에도 한 냄비씩 돌렸다. 그래도 한 박스나 남았다. 우리는 라면에 넣어서 끓여 먹다가 주말에 굴이나 구워 먹자는 의견이 나왔다.
보통 중대장은 주말에 집으로 가니까 왕왕 철조망 건너 호숫가에서 우리만의 주말을 만끽하곤 했다. 사실 중대장에게 걸려도 크게 나무라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바뀐 중대장은 규칙대로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날이 맑고 청아한 겨울날이었다. 호숫가에 비친 햇살이 튕겨 나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명당자리다. 구덩이를 파고 나뭇가지를 넣어서 불을 땐 다음 고구마나 닭을 포일에 싸서 넣어 두기만 하면 맛있는 요리가 되었다.
고기를 구워 먹을 때 같이 마실 요량으로 운전병을 시켜서 소주를 피티병으로 사 와서 쟁여 두었다. 피티병의 소주는 독해서 물에 조금씩 타서 마셨다. 불을 지피고 불판을 올린다. 그리고 그 위에 굴을 초장에 찍어서 올렸다. 초장은 이 세상 모든 소스를 통틀어 가장 맛있는 소스다. 굴의 겉면에 바른 초장이 불에 타들어가면서 단맛과 짠맛이 익어가며 굴에 스며든다. 잘 익은 굴을 하나 집어서 차가운 소주와 함께 먹으면 겨울에는 그야말로 별미다.
나이가 엇비슷한 애들이 군대라고 와서 계급으로 나뉘어 지내다 보면 기분 상하는 일이 비일비재다. 아예 구타를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특히 중대장, 소대장이 같은 군인신분이 아니라 일반 공무원인 경우 군대에서 당하는 부조리에 대해서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
그럴 때 고참이 수위조절을 해줘야 한다. 가끔 이렇게 호숫가에 나와서 소풍처럼 고기를 구워 먹으며 화합의 시간을 가진다. 여름에는 돌아가면서 배 밭에 거름을 준다. 농민들이 전부 나이가 많아서 대민지원을 꾸준하게 하고 있다. 호숫가가 배 밭 옆에 있어서 숨어서 소풍을 즐기기엔 안성맞춤이었다.
굴은 겨울에 먹는 굴이 최고다. 초장에 찍어 그대로 먹어도 맛있고 초장을 묻혀 불판에 직화로 구워 먹어도 맛있다. 굽는 족족 사라졌다. 뜨거운 굴이 입 안에서 바다를 느끼게 해 주었다. 그때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소주를 한 잔씩 마셨다. 희철이는 고참들이 주는 술을 넙죽넙죽 받아 마시고 기분이 좋아졌다. 희철이에게서 아버지의 굴 자랑이 이어졌다.
그때 행정병이 산으로 우리를 찾으러 왔다. [주, 중대장이 다 집합하랍니다. 중대장이 여기로 가는 걸 보고 있었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지금 중대 전부 운동장에 모여 있습니다. 불시 인원점검입니다]
큰일이 난 것이다. 내려가니 전부 연병장에 모여 있었다. 다른 내무반 아이들이 일요일에 불시 점검한다고 불려 나와 잔뜩 화가 나 있었다. 그날 중대장은 우리 모두를 영창을 보내려고 했다.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
아무튼 군대에서 몰래 나가면 탈영이다. 굴 한 번 구워 먹으려고 하다가 난리가 난 것이다. 굴은 요즘에 먹어도 맛있다. 굴 국밥도 맛있고, 라면에 굴을 넣어서 먹어도 맛있다. 김치에 들어간 굴도 맛있고, 초장에 찍어 먹어도 맛있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굴 그대로의 맛이 좋다. 굴의 비릿한 맛과 함께 터지는 굴속의 시원한고 명쾌한 맛이 좋다.
굴을 좋아한다고 숟가락으로 막 퍼먹지는 않는다. 굴은 하나씩 집어서 입 안에서 그 맛을 느끼면서 먹는 게 좋다. 굴은 아무튼 그런 매력이 가득하다. 굴을 저렴하게 자주 먹을 수 있는 삶은 행복한 삶이자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굴을 생산하는 사람들도 영차영차 열심히 일을 할 것이다.
중대장은 안 그래도 법무부 소속으로 군 생활을 하는 우리가 아주 마음에 안 들었는데 제대로 걸린 것이다. 그때 중대장에게 내가 다 벌린 일이니까 나 혼자 처벌을 받겠다고 했다. 애들은 야간 근무도 해야 하니 이 많은 인원이 전부 영창을 가면 중대에 지장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전부 뒤집어쓰겠다,라는 식으로 말을 했다.
이렇게 말을 하면 나를 꼬신 그 녀석(도 바로 내 밑의 투고이기 때문에 영창을 가도 된다)도 같이 무릎을 꿇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녀석은 아이들을 배경삼이 뒤로 슬쩍 물러갔다. 저 새끼, 저거 내가 죽이고 만다.
중대장은 나의 말을 듣고 더 노발대발했다. 예전에 잠시 행정업무를 맡아서 보게 되었는데 하필 그때 중요한 서류를 청에 보내야 하는데 그만 법무부장관에게 보낸 적이 있어서 중대장이 펄떡 띈 사건이 있었다. 중대장이 하루종일 어딘가에 전화를 해서 연신 굽신굽신거렸다. 그 모습이 얼마나 샘통이던지. 중대장은 안 그래도 나에 대한 미움이 컸다.
[그래, 좋아. 너 혼자 영창 가!]
아, 나는 망했다.
굴 한 번 맛있게 구워 먹으려고 하다가 이게 무슨 난리인가. 나를 궁지에 몰아넣고 뒤로 숨어버린 그 녀석은 내가 죽이고 만다. 그 녀석 때문에 부글부글했는데 소대장들이 중대장을 말렸다. 일요일에 잠깐 호숫가에 가서 고기를 구워 먹으려 한 것뿐인데 영창은 너무했다는 식으로 중대장을 달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막내들이 근무하는 동초근무 일주일로 끝낼 수 있었다. 동초 근무를 할 때 또 하필 사고가 터지고 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