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는 집에 가는데 비가 너무 쏟아져서 불안하고 무서웠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지더니 좀 비가 줄어드나 싶더니 다시 엄청나게 하늘에서 쏟아졌다. 집으로 가는 30분 정도가 완전히 긴장의 연속이었다. 해안도로는 비가 이렇게 쏟아지면 한 차선에 물이 가득 들어차서 차들이 다른 차로로 옮긴다고 거북이 운행이고 해안도로 옆의 바다는 곧 들이닥칠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이번을 비롯해서 세 번 정도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에 고립되거나 도로 위에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에도 엄청난 비 때문에 도시가 물난리가 나고 전국이 떠들썩했는데 어제처럼 무섭거나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한 번은 비가 도심지를 집어삼킬 만큼 내렸을 때 움푹 파인 도로에 빗물이 가득 고여 있는데 그곳을 지나가다가 차가 그대로 퍼지고 말았다. 그때 차는 사촌형이 차를 구입하기 전에 몰아 보라고 던져 준 중고차였다. 수동기어에 고장도 잘 나지 않아서 잘 몰고 다녔다. 붕붕 가다가 빗물이 고인 도로에 그대로 멈추고 말았다. 시동은 걸리지 않고 보험사에 전화를 하니 전부 출동을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말만 들었다.


그러나 무섭거나 두려운 마음이 별로 들지 않았다. 좀 외진 곳이라 도로에 나밖에 없었지만 도심지 안이고 보험사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오겠지 같은 생각 때문인지 그냥 차 안에 가만히 있으면서 문자나 주고받고 있었다. 그런데 한 40분 정도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서 바퀴가 물에 잠기고 차가 둥둥 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미련한 건지,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창밖으로 펼쳐지는 비가 쏟아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내가 있는 도로의 중간이 밑으로 움푹 파여서 그렇지 여기만 벗어나면 도로로 나갈 수 있고 주위는 전부 아파트 단지고 곧 보험에서 출동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또 한 번은 남이섬으로 가는 도중에 억수 같은 비가 쏟아졌다. 그때는 일행과 함께 여행 중이었고 가평인가, 아무튼 어딘가에서 남이섬으로 이동을 하는 중이었다. 오전이었고 산속에 난 길을 따라 이동을 하는데 엄청난 비를 맞이했다. 비가 차 천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드럼소리처럼 컸다. 산 중간을 관통하는 구불구불한 도로 옆의 개울이 막 흘러 넘 칠 정도로 비가 많이 왔다.


옆 자리에서 일행은 너무나 겁을 집어 먹고 있었고 불안해해서 나까지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냥 이대로 도로만 잘 나가면 마을이나 뭔가가 나올 것 같았다. 내비게이션도 10분 정도만 가면 식당들이 있는 곳이라고 해서 뭐 그다지 크게 불안하지 않았다. 엇 그런데 산에서 토사가 흘러내려 도로를 막은 것이다. 지금까지 한 시간 넘게 구불구불한 도로를 달렸는데 공포영화에서처럼 지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내려서 치워볼 요량으로 차밖으로 나오자마자 물벼락을 맞아서 그야말로 다 젖어 버렸다. 차 안에 들어오니 에어컨 때문에 춥고, 에어컨을 끄자니 성애가 가득 끼고. 옆에서 일행은 무서워서 곧 울음이 터지기 일보직전이고. 아무튼 어쩔 수 없이 차를 돌려 다시 왔던 길로 나와야 했다. 그때를 생각하니 또 짜증이 나네.


나는 조깅을 할 때에도 갔다가 반환점에서 돌아올 때 더 먼 거리라도 절대 왔던 길로 되돌아오지는 않는다. 아무튼 갔던 카페에 가고, 읽었던 책을 읽고, 먹었던 음식을 먹는 회귀성이 강한 인간인데 조깅을 하면서 왔던 길로 되돌아오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한 시간이나 달려서 왔던 산속의 구불구불한 도로를 다시 돌아 나와야 했다.


일행 때문에 운전도 조심조심해야 했다. 비가 앞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쏟아졌기 때문에 위험했다. 만약 지금 그랬다면 나는 정말 그대로 울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그때에는 한 시간을 다시 돌아 나오다 보니 빗줄기가 좀 줄어들었고 들어올 때는 보지 못했던 식당 하나를 발견하고 그대로 그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식당은 아직 장사를 하지 않는 분위기였고 주인내외가 나왔는데 우리의, 아니 나의 몰골을 보더니 테이블에 앉게 하더니(테이블이 홀에 두 개가 있고 옆에 신발을 벗고 올라가는 방처럼 생긴 그런 곳에 우리를 앉게 했다) 물을 갖다 주었다. 그리고 지금은 반계탕 밖에 안 되는데 괜찮냐는 것이다. 우리는 반계탕을 달라고 했다.


반계탕 두 그릇을 주문했는데 만두까지 주인내외가 주었다. 반계탕 국물이 들어가니 비와는 상관없이 몸이 확 풀어졌다. 닭고기의 살을 뜯어먹고 일행은 호기롭게 소주까지 한 잔 마셨다. 그제야 일행은 안심을 하는 표정이 되었다. 그때 우리는 식당을 둘러봤다. 식당은 들어오는 문 반대편으로는 개울로 나가는 문이 크게 있었다. 개울로 나가면 발도 담글 수 있고 평상도 있고, 그렇게 예쁘게 되어 있었다.


우리는 반계탕을 다 먹었는데도 주인내외는 비가 줄어들 때까지 있다가 가라고 했다. 그래서 개울이 있는 곳으로 나와서 비막이 밑에서 운치를 즐겼다. 주인내외가 자식들을 다 키우고 둘이서 작은 식당을 하는데 여러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갈 때 다시 들려서 반계탕을 먹자고 했는데 그러지는 못했다. 그때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는데 무서운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 몇 해 전부터는 무서운 것들이 많아졌다. 엊그제는 오후부터 비가 엄청나게 왔다. 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조깅이고 뭐고 평소보다 일찍 나왔다. 일찍 나오는 것도 바로 나오지 않고 창으로 이렇게 보다가 빗줄기가 조금 줄어들었을 때 나왔는데 10분 정도 차를 모는데 그야말로 쏴아 쏟아졌고 30분이나 그대로 지속되었다. 내가 예전과 다른 것은 너무 무섭고 불안하다는 것이다. 나는 어쩌다가 이지경이 되었을까.


어린 시절부터 바닷가에 살면서 바다에도 늘 들어가서 빠지기도 하고, 헤엄을 쳐서 그런지 바다에 대한 무서움 같은 건 1도 없었는데, 언젠가부터는 바다에 발가락도 담그지 않게 되었다. 운전하는 걸 좋아하고 서울 가는 것을 좋아해서 몇 해전까지만 해도 부웅 고속도로를 타고 열심히 생생 달려 서울로 가서 백남준 아트전을 꼭 보고 내려왔다. 하지만 이제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도 싫고, 사람이 많은 곳에 가는 것도 별로다. 백남준? 이전에 나만큼 본 사람도 없을 테니까 지금은 인터넷으로 보면 된다는 식이다.


폭포수처럼 내리던 비가 그치고 그 자리에 무지개가 떠 올랐다. 무지개는 보통 금방 없어지는데 좀 지켜보고 있으니 옆에 작은 쌍무지개도 떴다. 그러더니 무지개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무지개 본연의 색을 다 버리고 밝게,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밝게 빛나는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이 황홀하기도 또 불안하기도 했다. 무지개가 이래도 돼? 할 정도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무지개는 시인들이 시에도 많이 적용시킨다. 무지개가 일곱 가지 컬러를 버리고 밝게 빛나는 걸 보니 누군가 무지개 밑에서 일곱 가지 색만 빼가서 무지개가 화가 나서 저렇게 빛을 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일곱 가지 색을 떡에 넣어서 무지개떡으로 만들고, 하나씩 컬러를 떡에 넣어서 갖가지 색이 나는 송편을 만들기도 했다.


무지개는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오래도록 머무르다 그렇게 사라졌다. 지금은 소강상태지만 아직 비가 완전히 물러간 건 아니다. 이번 사태를 보니 비가 많이 와서 물이 차오르는 차에 있으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울까. 어른이 되니까 강해지는 게 아니라 점점 약해지고 불안이 주위에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같다.





오성인 시인의 말


나이를 먹는 일은 진화의 일종일까.

어른이 되려면 슬픔을 먼저 이해해야 했다.

슬픔을 외면한 대가로 불면에 시달릴 때마다 아직 꺼내 놓은 적 없는 죄책감들을 뒤적였다.

잠은 죽음에서 파생된 말이라고 생각했다.


2023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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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는 맨홀 2023-07-20 14: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무지개 보기 힘들었는데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