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를 털어 찌개를 끓였는데, 오래전 새벽에 찾아 들어간 갈비탕 집에서 먹었던 육개장 냄새가 났다. 육개장 냄새는 겨울의 냄새와 동일했다. 후추와 간의 조미가 많이 된 냄새. 안에 들어 있던 당면이 풀어지는 냄새. 싸구려 수입 고기가 두 번 떠먹으면 없어질 만큼 들어있던 육개장을 맛있게도 먹었다. 새벽이었고 몹시 추운 겨울이었으니까.

촉각이 제일 먼저 닳아 없어지고 기억이 그다음으로 사라진다고 한다. 그리고 시각이 사라지고 후각이 아주 긴 시간 동안 지나간 기억회로를 되살려준다. 언제였던가, 야간 행 서울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고 5시간이나 걸리는 밤의 긴 시간을 기차의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보냈다. 잠도 아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창밖의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보이는 건 저 멀리 작은 불빛이 내 쪽으로 다가올수록 조금 커졌다가 다시 멀어지며 작아져가는 모습뿐이었다. 나는 그 행렬에 숫자를 매겼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몇 까지 헤아렸는지 잊어버리면 혼자서 소심하게 한탄을 하고 다시 숫자를 세었다. 그때보다 더 어렸을 때에는 아버지와 야간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어디로 가는지 전혀 기억은 없지만 아버지와 함께 중간 간이역에 정차했을 때 우동을 사 먹기도 했다. 나는 어릴 때 아버지 껌딱지로 아버지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는데 어쩌다가 아버지와 소원해졌을까.

사춘기에 접어들며 자연스레 아버지와 거리가 생겨 버렸다. 늘 같이 가던 동네 목욕탕에 혼자 가게 되면서 아버지와의 거리는 점점 더 벌어졌다. 아버지와 앉아서 프라모델을 만드는 것보다 친구와 꿀벌들 같은 잡지책을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학창 시절에 겨울방학이 되면 홀로 서울로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친지들과 교류가 없었기에 중간에 내가 어물쩍 끼어 서로 간에 소식을 전달해주기도 했다. 아버지 쪽이고 어머니 쪽이고 친지들은 전부 서울에 살고 있어서 한 번 돌고 나면 주머니가 두둑해져서 나쁘지 않았다. 사춘기에 죽을 만큼 싫은 서먹서먹한 분위기도 참을 만했다.

고등학교 때 사진부 활동을 하면서 어쩌다가 백남준의 예술세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서울에 가면 언제나 백남준의 전시를 보러 다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백남준의 예술세계를 이해한다거나 아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미치도록 백남준의 예술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너무 안 되는 것이다. 그때 도슨트를 따라다니며 질문을 많이 했는데, 쉬는 시간에 도슨트가 나를 부르더니 도슨트 자신도 백남준의 예술을 이해하거나 알지는 못한다고 했다. 눈으로 보이는 그것 너머의 마음으로 보고, 만약 보이는 그 예술이 이상하다면 이상한 대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즐겁게 관람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때 나의 또 다른 자아는 아! 하게 되었다.

그런 일이 후에도 한 번 더 있었는데 노순택 작가의 ‘얄읏한 공’ 시리즈를 보러 갔을 때 도슨트에게 질문을 했는데 그때 그 도슨트가 도슨트의 일을 시작한 지 첫날이었다. 그래서 너무 긴장이 된다며 미술관 관장님을 데리고 왔다. 맙소사. 그러나 덕분에 관장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관장님은 나에게 김밥도 사주었다. 미술관 야외에 앉아서 김밥을 같이 먹고 다시 들어가서 사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있다.

또 최민식 사진가가 살아있을 때에도 부산의 고은 미술관인가? 거기서 직접 사진을 설명해 주는 것을 듣고 이런저런 질문을 했었다. 최민식 사진가는 6, 70년대의 암울한 서민들의 사진을 적나라하게 담아서 전두환 정권 때 탄압까지 받았던 사진작가였다. 모든 사진이 너무 처절하고 비현실적이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전쟁으로 인해(아마 그럴 것이다) 한쪽팔과 한쪽다리를 잃은 채 한 손으로 신문을 팔러 다니는 외다리 신문팔이의 모습이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방학에 왜 그렇게 서울에 가냐고 물었지만 딱히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냥”이 제일 좋은 답이었다. 기차는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어둠의 행로를 갔다. 기차가 내는 소리는 밤하늘에 울리고 시끌시끌하던 사람들도 새벽으로 치달을수록 잠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나는 브라이언 아담스의 노래를 들으며 갔다. 어두운 밤의 풍경을 눈으로 삼키며 브라이언 아담스의 노래를 5시간 동안 들었다. 덜컹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면 몸과 분리될 것처럼 고개를 꺾어서 까무룩 잠이 들기도 했다. 눈을 떠 보지만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도 없었다. 기차 안에 번지는 사람들의 숨냄새가 떠돌아다닐 뿐이었다. 창가에 앉아 있어서 소변을 봐야겠다며 일어날 생각도 없었다. 음악이 없었다면 오로지 머릿속 상상만으로 긴 시간의 운행에 동참했을 것이다.

5시간이 걸려 새벽 4시에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차가운 기운이 몸을 엄습했다. 아직 전철이 다니지 않아서 인지 사촌누나는 마중을 나오지 않았다. 외투를 여미고 가방을 메고 모자를 눌러쓰고 나는 근처에 문을 연 식당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몸에 닿는 음식점의 열기와 조미의 냄새가 몸을 무장해제 시켰다. 적당한 자리에 앉아서 가방을 내려놓았다. 물 컵을 들고 누군가 왔다. 갈비탕을 한 그릇 주문했다. 학생은 멀리서 왔나 봐? 근데 갈비탕이 안 되는데 육개장 먹어.라고 하고선 주방으로 가서 육개장 하나요.라고 했다. 나는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데 어쩔 수 없었다. 육개장은 빨리도 내 앞에 나왔다. 역 근처의 식당에서는 빠르게 조리해서 내온다. 테이블에 나온 육개장은 갈비탕과 흡사했지만 뻘건 색이었다. 이 냄새였다.

오래된 시간의 냄새.

짭조름하고 달큼한 향이 가득한 육개장의 냄새.

순식간에 허기를 불러일으키는 냄새.

불쾌한 감정을 물리게 하는 냄새.

머릿속 사고를 멈추게 하는 냄새.

간간한 국물 속에 반드시 밥을 말아야 할 것 같은 냄새.

숟가락으로 떠서 한 입 먹었다. 위에서 말한 냄새의 집합적인 맛이 위장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간이 밴 당면이 입안으로 말려 들어올 때는 정신도 없다. 그때부터는 밥을 말아 고개를 그릇에 박은 채로 육개장을 떠먹을 뿐이었다. 식당 안에 갈비탕과 육개장이 세월을 지나면서 흡착시켜 놓은 냄새에 또 한 번 덧입혀졌다. 그렇게 먹고 나면 윗도리에 육개장을 먹었다는 티를 내게 된다. 상관없었다. 커다란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긴 국물까지 양손으로 다 마신 다음 내려놓고 정신을 차리면 여기저기서 후루룩 거리며 육개장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추억의 냄새를 찌개를 끓였더니 폴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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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 2023-02-01 1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정적인 학생이셨네요. ^^ 육개장 좋지요. 뜨끈한 국물 떠 먹다가 꼭 밥 말아서 먹게 하는 냄새. 오늘 육개장 끓여야겠네요.

교관 2023-02-02 12:00   좋아요 1 | URL
다시 추워진 오늘 뜨거운 육개장 한 그릇 땡기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