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김치를 금방 담그는 자리에는, 특히 김장김치는 담그는 그 자리에는 수육이나 굴이 있다. 그래서 그 옆에서 아이들은 야금야금 받아먹는 재미가 있다. 나는 이상하게도 금방 담근 김치를 굴이나 수육이 아닌 그냥 밥과 함께 먹는 맛을 좋아한다.


익은 김치에게서는 절대 끌리지 않는 곡기의 유혹이다. 배추에 아직 양념이 스며들지 않고 겉에서 맴돌지만, 그 겉도는 맛이 밥과 함께 먹고프게 한다. 그래서 김치를 바로 담그면 다른 반찬은 필요 없다. 김장김치를 갓 담가 먹을 때에도 수육도 생굴도 전혀 필요 없다.


넌 참 특이하구나, 이 말을 어릴 때에도 들었는데 지금도 가끔 듣는 말이다. 이 말이 생각이 많아진 어른이 되었을 때에는 넌 참 이상하구나, 로 받아들였다. 어떻든 나는 특이하게도 갓 담근 김치에는 밥이 필요했다. 이렇게 밥에 척 걸쳐 먹는 맛이 좋다.


이런 맛은 김치를 갓 담갔을 때만 가능한 맛이다. 여기에 끼어들 수 있는 건 맥주뿐이다. 그 외에는 어떤 것도 서번트로 낄 수 없다. 식사를 할 때 반드시 자리에 앉아서 먹도록 우리는 배웠다. 그런데 나는 위에서 말한 대로 특이하게도 식탁에 밥과 김치만 꺼내 놓고 일어서서 김치를 밥에 말아서 후딱 먹는 걸 좋아한다. 일어나서 빠르게 먹으면 뭐가 어떻니 같은 말을 듣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앉아서 먹을 때보다 일어나서 먹는 게 위에 훨씬 덜 부담이지 않을까 싶다.


영화 속에서도 김치와 밥으로 아주 맛있게 먹는 장면이 있다. 영화 '똥개'다. 김치를 막 담그고 있는데 대득이가 쳐들어 온다. 영화 속 대사가 이렇다.

https://youtu.be/E25gzcJnLMk <= 영화 똥개 김치 먹방 영상출처: 돼지감자


똥개: 뭐고?

대뜩이: 니가 똥개가 난 대뜩이다. 니가 선배들이 개 잡아 뭇따꼬 선배들을 개패듯이 패뿟는거 맞나?

똥개: 뭐어?

뚱띠: 니가 하도 잘 친다캐서 실력의 자웅을 겨뤄보러 왔따.

똥개: 나는 싸움 안 한다.

대뜩이: 니는 그래 개판치고도 아버지가 짜바리라가 징역 안 갔다메.

똥개: 뭐라고?

대뜩: 니 엠제이케이라고 아나?

똥개: 그기 뭔데?

뚱띠: 니 맨크로 학교 댕기다가 짤린 아들끼리 맹그른 순수청년봉사단체다. 니가 지면 무조건 가입해야 되고 이기믄 안해도 된다. 우짤끼꼬.

똥개: 느그,,, 점심 무긋나.

뚱띠: (바로) 아직 안 뭇따. 와?

똥개: 그라믄 김치에다 밥 좀 묵고 하자. 어차피 싸움도 힘이 있으야 할 꺼 아이가.

[김치에 밥을 엄청 맛있게 먹는다]

원래 이름이 대뜩이가.

대뜩: 아니 대득이다 한대득. 그래도 그냥 대뜩이가 편하다.

똥개: 엠제이케이? 거 뭔 뜻인데.

대뜩: 으응 잉그리 약자다. 밀양 주니어 클럽



그리고 똥개가 갓 담근 김치를 매워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먹는다. 오직 밥과 김치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맛을 잘 안다. 갓 버무린 김치가 밥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영화 속에서 똥개가 김치를 담글 때 빨간 고무통에서 양념을 비빈다. 이 빨간 고무통이 정감이 있어서 김치를 담글 때 사용한다고 영화에 나오지만 사실은 음식이 묻으면 안 되는 아주 위험한 고무통이다.


예전에는 마당에서 여럿이 모여 김장을 할 때 큰 빨간 고무통에 김치를 담아서 양념을 버무리고 속을 채웠다. 이 빨간 고무통은 일종의 김장 공정에 빠져서는 안 되는 김장도구였다.


이 빨간 고무통이라는 건 만능이었다. 여름에는 물을 받아 물놀이도 했고, 김장을 담글 때에는 김치를 재우고, 씻고, 버무리고.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 빨간 고무통을 그렇게 사용하면 안 된다는 걸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무지했던 것이다.


열심히 일주일 동안 석탄을 캐느라 먼지 때문에 목이 칼칼한 서민들이여, 삼겹살을 구워 먹어라, 그러면 고기 기름이 먼지를 싹 내려줄 것이다.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들은 그 말을 철썩 같이 믿고 주말이 되면 집집마다 삼겹살을 구워댔다. 석탄의 먼지는 코로 들어가 폐로 가고, 고기는 입으로 들어가 위장으로 가는 것임을. 우리는 그 뻔한 이치를 모르거나 망각한 채 삼겹살의 기름이 몸속의 먼지를 씻겨 줄거라 믿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국군이 돌아와서 고엽제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다. 이는 성석제 소설 ‘투명인간’에 잘 나와 있다. 미군이 던져준 고엽제가 소독이 잘 된다며 머리에 뿌리고 얼굴에 크림처럼 발랐다. 이렇게 하면 베트남에 널려 있는 병균이 죽겠지. 이 철석같은 믿음은 후에 사람을 이유 없이 병균처럼 사망케 했다.


가끔 살균제의 겉면에 살균 100%라고 적혀 있으면 균을 100%로 죽인다는 말인데 그것이 인간에게도 좋을 리는 없다.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아가지만 종이가 들어갈 그 좁은 틈으로 무지는 들어와서 우리의 삶을 조금씩 망가트린다.


십여 년 전에 친구의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폐암 말기였다. 가족력도 없고, 주위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없고, 뭔가를 태우는 곳 근처에 살지도 않았다. 느닷없는 죽음이었다. 폐가 암으로 공격받아 검게 점령당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 텐데. 생각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의심은 김장을 담글 때 등장하는 빨간 고무통이었다.


긴 세월 동안 어머니는 빨간 고무통에 김치를 재워놓고 양념을 무치고, 물김치도, 동치미도, 음식의 대량화는 전부 빨간 고무통을 사용했다. 뜨거운 양념도 거기서 버무리고. 그 시간이 몇십 년이었다. 불과 2년 전 KBS 다큐 3일에서도 전통시장에서 순대를 만들 때 빨간 고무통에서 순대 양념을 버무리는 장면이 나온다. 링크를 걸고 싶지만 또 그분들 생계가 있으니까. 이 고무통은 음식을 직접 닿으면 안 된다. '식품용'라고 되어 있는 스테인리스 대야나 플라스틱 대야를 사용해야 한다.


빨간 양념의 김치를 대동해서 붉은 대야의 습격이 반 세기 동안 한국을 덮쳤다. 여기에 신파를 붙이면 빈익빈 부익부가 된다. 부자들은 이 죽일 놈의 빨간 고무통을 사용하지 않는다.


어떻든 갓 담근 김치는 맛있다. 총각김치가 있다면 물에 밥을 말아서 한 손에 깍두기를 들고 씹어 먹는 맛도 좋다. 보리차였으면 더 좋겠다. 보리차에 밥을 말아서 먹어본지도 까마득하다. 어릴 때 그렇게 밥을 먹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그게 무슨 맛일까 싶었지만 나중에 그렇게 먹어보니 아 정말 맛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단점이라면 맛있으니까 계속 먹게 된다. 총각김치 큰 깍두기에 젓가락 하나를 푹 꽂아서 보리차에 만 밥을 떠먹으며 우걱우걱 씹어 먹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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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11-16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교관님 김장하신 겁니까? 김치도 할 줄 아시나요? ㅋ
근데 영화 안 봤는데 고무 다라이에 김치 정말 오랜만에 보네요.
고무 다라이에 뭐 음식해 먹는 거 아니라는데.
옛날에 그런 게 어딨어요? 다 해 먹고 살았지.ㅋㅋ

교관 2022-11-19 12:01   좋아요 0 | URL
옛날에 그런 게 없었어요? ㅋㅋㅋ 스텔라님 저보다 옛날사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