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습함, 이 무더움. 그래서 달리기 좋아


나는 책을 매일 읽는 편이고, 그러다 보니 책을 많이 읽는 편이다. 대부분이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며 편안 의자에 앉아서 책 읽는 것에 반해 나는 좀 불편하게 책을 읽는 편이다. 주로 이동할 때, 또는 바쁠 때 그 사이사이 틈을 벌려 읽는 게 잘 읽힌다. 여름에는 집 앞이 바닷가이니 오전에 옷을 훌러덩 벗어 버리고 해변에 앉아서 책을 좀 읽는다. 그때가 가장 집중이 잘 된다. 책을 읽고 나면 대체로 다 잊어버리는데 여름의 오전에 해변에서 읽었던 부분은 꽤 기억 속에서 오래 자리 잡고 있다. 책은 나의 하찮은 일상을 좀 더 입체적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피부가 까맣고 매일 조깅을 하기 때문인지 어떤지 몰라도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깜짝 놀라는 사람도 있다.


일상은 어제와 별반 다를 바 없고 올해 여름은 지난여름과도 전혀 다르지 않다. 아주 하찮고 하찮게 흘러간다. 그래서 싫으냐 한다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하찮은 일상이 좋은 이유는 더 이상 나빠질 일이 없기 때문에 작은 변화나 조그만 좋은 일에도 크게 기뻐할 수 있는 요지가 있다. 빨강머리 앤 소설을 좋아하는데, 앤과는 다른 이유로 하찮은 일상이 좋다. 앤은 아침에 눈을 떠 오늘은 또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같은 기대에 차 있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 기대가 없다. 내일도 크게 오늘과 다를 바 없을 테고. 그러다가 작은 변화에 허덕이거나 기뻐하거나 한다. 그렇기에 새벽 호텔 수영장의 수면처럼 잔잔한 일상이 나는 좋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는 일상도 하찮은 나의 일상이 되었다.


책을 아주 많이 읽는 사람은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이거나, 그쪽 계통의 일을 하거나, 딱히 친구가 없는 사람일 경우가 많지 않을까 싶다. 저는 아닌데요?라고 한다면 할 수 없지만. 나의 경우를 보면 친구가 없다. 친구들이 있지만 친구가 없다. 친구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며 노는 것보다 책을 읽는 게 훨씬 재미있어서 책을 택했다. 책은 어떻든 혼자 읽는 것이고 시간을 내야 한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친구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또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그쪽 계통의 일을 하지 않는다면 할 일이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책도 중독 같은 것이라 재미를 붙이면 계속 찾게 된다. 특히 소설 속 이야기에 매료가 되면 걷잡을 수가 없다. 그럴지 않을까. 책을 매일 읽고 있으니까 옆에서 책을 많이 읽으면 글을 잘 쓸 수 있냐고 하는데, 글쎄다. 변호사들은 책을 정말 많이 본다. 의사들도 그렇고, 또 건축사들도 책을 많이 봐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전부 글을 잘 쓰는 건 아니다. 그러나 글을 잘 쓰는 사람들 중에 대부분이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무시할 수는 없는 규칙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책일 읽는 것과 글을 잘 쓰는 것이 관계가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독서광들과 나의 차이점은 그들은 다독을 하고 나는 읽었던 책을 자꾸 읽는 편이다. 인스타그램에도, 블로그에도 한 달에 전투적으로 읽은 책들을 정리해서 올려놓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을 보면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 달에 스무 권을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회사에서 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의 경우 그게 정말 가능이나 할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책벌레들은 가능하다. 읽은 책의 내용을 잘 리뷰해서 정리까지 해 놓는다.


책을 많이 읽어서 좋은 점이라면 다른 곳에 돈을 쓰지 않아도 된다. 또 장소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읽을 수 있다. 강변 같은 벤치에 앉아서 읽어도 된다. 책을 읽고 있으면 그 누구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강변의 모습은 매일 조깅을 하면서 매일 담는다. 매일 비슷한 강변인데 매일 다르다. 여기는 폭우가 내리지 않아서 습하고 무더운 나날들의 연속이다. 여름이니까 각오해!라고 자연이 단단히 상기시키는 것 같다. 이런 습하고 무더운 날에 조깅을 하고 나면 땀이 나지 않는 곳이 없다. 신체의 모든 부분에서 땀이 나온다.


윗 지방에서 폭우가 내려 사람들이 실종되고 사망하기까지 했다. 그 와중에 비가 와서 사진이 잘 나왔으면 하고 말한 정치인이 있었다. 이런 사람도 정치인이 되기까지 책도 많이 읽었을 것이다. 물론 읽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정치인으로 오르기까지는 아마도 여러 권 책을 읽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봉사활동을 나간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한다는 건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나 인지하는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게다가 그 자리에서 정치인들은 모여서 여성 신발 사이즈가 크면 어떻니, 나 의원님 못 본 사이에  나잇값 어쩌고. 하며 희희낙락하고 있다가 한 주민이 짐 실은 차가 못 들어온다면서, 여기서 길 막고 뭐하냐고. 큰 소리로 항의를 하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이 책을 적게 읽었을까. 책을 적게 읽어서 타인에 대한 공감을 전혀 하지 못하고 생사가 오가는 현장에서도 헤헤거리고 있을까.


독서는 좋은 습관이나 책을 맹신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책만 보고 사랑을 못해본 사람이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던가, 책만 읽고 인간관계를 다 아는 것처럼 말을 한다던가. 오히려 전투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들의 성격이 날카로운 모습을 많이 봤다. 읽어야 하는 양을 채우지 못했을 때 화를 낸다. 대체로 방해를 하는 사람들은 가족 내지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라 더 화가 난다. 그래서 책은 그저 술렁술렁 손을 뻗어서 잡히는 대로 읽을 수 있다면 좋다고 생각한다. 문득문득 책을 많이 읽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한다. 특히 나 같은 경우는 머리가 너무 나빠서 읽고 나면 까먹고 만다. 올리버 색스의 ‘의식의 강’도 꽤 여러 번 읽어서 몇 개는 기억이 나는 정도다.


책 속에 파묻혀 지내다 세상을 떠난 이어령 작가(라고 하겠다. 많은 호칭이 있지만 작가라고 불리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싶다)에 대한 일화를 하나 말하며 끝내자. 이어령 작가는 1990년에 초대 문화부 장관까지 역임했다. 원래는 문공부 장관을 제의받았는데 문화 쪽은 알겠지만 공보행정에 관한 일은 모르니 싫다고 했다. 그랬는데 문화부와 공보처가 분리되면서 문화부 장관을 역임했다. 64년에 ‘무진기행’의 김승옥 문단에 나타나서 대한민국의 문학에는 일대 파란이 일어났다. 김승옥의 모든 단편소설은 승승장구였다. 그러다가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난다. 그때 김승옥은 그만 충격에 절필을 선언하게 된다.


하지만 그게 너무나 아까웠던 이어령 작가가 김승옥을 붙잡아서 호텔에 넣어서 제발 소설을 써라, 장편 소설 연재하던 것을 계속 쓰자, 응?라고 소설 쓰기를 강요와 부탁을 오가며 했다. 거기서 김승옥이 쓰던 소설이 ‘서울의 달빛’ 연작이었다. 그런데 김승옥은 광주에서 일어난 사태를 보며 도저히 앉아서 글을 쓸 수 없었다. 그래서 원래 1장, 2장, 3장 죽 이어져야 하는데 절필을 하는 바람에 단편 소설 ‘서울의 달빛 0장’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어령 작가는 죽기 직전까지 책을 읽고 글을 썼다고 한다. 책을 많이 읽는 모든 사람들이 이어령 작가 같을 수는 없지만 위에서 말한 정치인 같은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 정도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어령 작가의 마지막 말 “너무 아름다웠어요. 고마웠어요”라고 우리에게 말했는데 그건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이다.

비가 내리는 날에도 운동 중이신 어르신들 귀여우셔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속에 나올 법한 기묘한 빛의 색감



요즘 달리면 온통 땀 벅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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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2-08-14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고 나면 대체로 다 잊어버리는데>... 참 공감되는 부분입니다.
가끔 다 잊어버리는데 ˝왜 책을 읽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교관 2022-08-15 11:43   좋아요 0 | URL
잊어버리기는 해도 잃어버리지는 않으니까 계속 우리 읽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