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이었다. 지금처럼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하고 낮동안은 더운 날이었다. 초여름의 새벽하늘은 저녁 하늘보다 좀 더 회화적이었다. 유리 막으로 본다면 초현실 영화에나 나올법한 하늘 같았다. 구름이 기묘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노을이 다 사라지지 않고 여운을 남겨놓고 여지를 두는 것 같았다. 새벽하늘에서 해 질 녘의 노을을 느꼈다.
초여름이지만 새벽은 긴팔을 입지 않으면 피부가 도돌도돌 반응이 올 정도로 서늘했다. 그날은 어쩐 일인지 밤을 꼴딱 새우고 새벽에 작업이 끝나서 사무실을 나섰다. 새벽 4시의 길거리는 오후 4시의 길거리와는 달랐다. 새벽 3시까지 수북이 쌓인 곳곳의 쓰레기들이 새벽 4시부터 깨끗하게 치워지고 있었다. 공기의 밀도도, 흐름도, 시야도 오후 4시와 다른 새벽 4시의 모습이었다.
나는 집으로 오는데 전통시장의 통닭집 골목을 가로질러 천천히 걸었다. 시장의 통닭집들은 전부 꿰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보였다. 50년 이상 된 통닭집들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고치고, 세우고, 다시 벽지를 바르고 해서 지금까지 버텼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닭을 튀기고 아직까지는 그런 맛이 그리워 사람들이 통째로 튀긴 닭을 먹으러 시장으로 찾아왔다. 그러나 세상을 차지한 치킨 전문점 앞에서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겨우 견디고 있는 것이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통닭집들은 지치고 힘들어 잠이 들어 보였다. 불은 다 꺼지고 정작만이 골목을 이루고 있었다.
천천히 걷고 있는데 골목의 귀퉁이 부분 기둥 뒤에서 일상에서는 쉽게 들을 수 없는 신음소리가 들렸다. 신음소리는 기이했고 조금은 불안했고 어딘가 닿지 못하는 연약한 소리였다. 그 소리는 벽에 부딪혀 힘을 잃고 새벽의 공간 속에서 소멸했다. 조금 겁이 났지만 나는 그 기둥 쪽으로 조용하게 다가갔다. 그 기둥 앞에는 머리가 떡 진 사내가 서서 수음을 하고 있었다. 그 남자는 나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가느다란 신음을 내며 수음에 열중했다. 나는 기둥에 몸을 숨긴 채 그의 수음하는 장면을 지켜봤다. 호기심도 아니었고 그에게 난처함을 주려고 한 것도 아니었다. 조금 이상한 말이지만 그 풍광이 목가적으로 보였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랬다. 아주 자연스러웠고 프로테우스적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작 은 골 목 의 여 인 숙 입 간 판 이 세 워 진, 건 물 기 둥 에 서 머 리 가 떡 진 사 내 가, 서 서 수 음 하 는 장 면 은, 목. 가. 적. 이 었 다.
어딘지 어울리지 않고 일그러진 것 같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수음을 하던 사내는 초등학교 나와 같은 반 친구였다. 알고 지내다가 친하게 지내게 된 녀석이었다. 녀석의 이름은 혁민이다. 어릴 적 그 녀석은 탁구부였다. 작은 체구의 초등학생이 가슴께까지 오는 테이블 위에서 작은 세계의 탁구공을 재빠르게 받아넘기고 하는 장면은 우리들에게 부러움을 가지게 만들었다. 아직 변성기를 지나지 않는, 물소리 같은 소리로 악악하며 작은 세계를 받아서 저쪽으로 넘겨냈다. 혁민이는 학교 내에서 탁구를 제일 잘했으며 학교 배 대회나 시대회에 나가서 학교의 이름을 전국에 알리는 주역이었다. 혁민이는 우리 집에도 자주 놀러 와서는 밥을 먹고 가기도 했다.
초등학생이라지만 운동부라는 활동과 어머니가 안 계시고 여동생과 아버지와 살고 있던 혁민이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못한 탓에 또래에 비해 훨씬 성숙했다. 아버지의 구타 때문에 혁민이의 얼굴에는 어두운 구석이 많았다. 늘 술에 취해있던 아버지는 엄마가 집을 나간 이유를 혁민이에게 돌렸다. 혁민이는 가난했지만 단란했던 나의 집을 부러워했고 놀러 와서 밥을 먹고 실컷 놀다가 나의 아머니가 싸준 반찬을 들고 집으로 가곤 했다.
그런데 갑자기 기억의 공백이 크고, 시간이 비행기처럼 지나가버렸다. 혁민이는 아버지를 따라 타 지역으로 간다며 마지막을 눈물이 고인 눈으로 눈물은 끝끝내 흘리지 않고 떠났다. 그 뒤로 연락이 끊겼다.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변변찮은 사무실에 다니던 무렵 새벽의 이곳 전통시장의 통닭 골목에서 우연히 혁민이와 마주했다. 하지만 그 녀석은 오래전 혁민이가 아니었다. 얼굴은 조금 커버린 얼굴이었지만 노숙자 같은 모습으로 양손에는 하얀 목장갑을 끼고, 머리를 며칠 동안 감지 못했는지 머리카락은 방향성을 잃은 어린 강아지처럼 볼품없었다.
나는 다가가서 반갑게 아는 척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혁민이가 수음을 다 할 동안 기둥 뒤편에 쪼그리고 앉아 기다렸다.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다. 바지를 올리는 소리가 났고 나는 조용히 혁민에게 가서 반갑게 아는 척을 했다. 하지만 그 녀석은 나를 알아보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 녀석의 눈은 처음으로 코뿔소를 대하는 모습의 눈빛이었다. 나를 적대시하면서 묘하고 깊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눈으로 잠시 동안 바라보더니 “백 원만”라고 말을 했다. 다른 말은 전혀 하지 않은 채 백 원만, 백 원만, 백 원만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나는 주머니를 뒤져 오백 원짜리 하나를 건넸다. 혁민이는 목장갑을 낀 손바닥 위의 오백 원을 쳐다보더니 바닥에 버리고는 어딘가로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백 원만 백 원만 하는 소리만 했다. 혁민이는 걸을 때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쳐져 걸었다. 나중에 시장 상인들에게 들은 이야기로 아버지에게 얼마나 심하게 구타를 당했던지 뇌를 다쳐서 그렇다고 했다. 압제, 강압에 뇌가 파괴당하고 나를 비롯한 어린 시절의 기억과 자신의 과거를 몽땅 봉인해버렸다. 후에 시장의 통닭 골목에서는 혁민이가 행인들을 상대로 백 원만을 쫓는 앵벌이 장면을 왕왕 볼 수 있었다. 그 녀석이 나오는 날은 산발적이라고 상인들은 말했다.
혁민이가 통닭 골목에 나타나는 날이면 거리의 아이들이 나무 꼬챙이 같은 걸 들고 혁민이의 다리나 엉덩이를 찌르며 백 원만 백 원만 따라 하며 놀려댔다. 왼쪽 뇌가 파괴된 그 녀석을 지금은 볼 수가 없다. 상인들에게 퍼진 소문은 허다했다. 방파제 근처에서 앵벌이를 하다가 파도가 삼켰다는 소문도 있었고, 자동차에 치여 죽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 소문에는 자동차에 치여 바닥에 머리가 갈려 피를 흘리면서도 백 원만을 소리 냈다고 했다.
초여름 새벽녘의 기둥에서 수음을 진심으로 하던 그 녀석은 지극히 목가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