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인류에게 남긴 업적을 보자면 에일리언이 그렇고, 이티가 있고, 뱀파이어가 그렇다. 공룡도 있지만 앞의 것들은 완전히 영화적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인류의 업적이다. 뱀파이어는 이전부터 내려오는 민담 같은 이야기 속 존재이지만. 그래서 뱀파이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뱀파이어는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이 리메이크되었고 여러 버전이 있고, 드라마로도 시리즈가 계속 나왔다. 뱀파이어는 인류가 탄생하지 않았다면 존재하지 않을 종족이다. 인간의 피가 없으면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뱀파이어는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뱀파이어가 영화를 통해 나오게 되면 전 세계의 사람들은 주머니의 돈을 꺼내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극장으로 달려가서 숨을 죽이며 뱀파이어가 나오기를 두려워하면서도 기다렸다. 사람들이 뱀파이어를 기다린 이유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뱀파이어는 아름답고 잘생겼고 예쁘고 늘씬하고 탄탄한 신체와 미모 그리고 젊음을 가진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이 세대를 거쳐 이어지면서 어떤 인간들은 뱀파이어를 추종하기도 했다. 인간으로 삶에 허덕이며 처절하게 내몰리며 사느니 뱀파이어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뱀파이어가 되면 하얀 피부에 가장 아름다운 시기의 모습을 유지하며 불멸한다. 아름다운 몸과 얼굴로 이성에게 접근이 용이하며 인간의 최대 희열인 성적인 욕구 역시 서로 충족이 된다. 그러니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뱀파이어를 피하기보다 뱀파이어가 되고 싶어 했다. 뱀파이어 입장에서는 기분이 좋다기보다 인간이 뱀파이어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받아들여졌다. 뱀파이어가 주춤하는 사이 그 공간을 어느 날 좀비가 파고들어 왔다.
인류를 위협하는 좀비. 영화 28주 후와 28일 후에서 좀비들은 인간에게 달려들었다. 윌드 워 Z에서 좀비들은 격렬하며 빠르게 뭉쳐서 인간을 덮쳤다. 뱀파이어와는 전혀 달랐다. 썩어 문드러진 얼굴과 신체, 생각이 없고 뇌가 없어진 듯한 움직임으로 낮밤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인간을 물어뜯는다. 좀비들은 좁은 공간에서도 격렬하다. 부산행에서도 좀비들은 자신의 신체가 떨어져 나간다는 느낌, 생각, 의식이 없어서 마구 뭉쳐서 달려든다. 이렇게 어느 날 나타난 좀비는 인간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좀비가 세상에 도래하기 전에는 뱀파이어가 있었지만 뱀파이어는 이제, 지금 현재 좀비에게 영화적 업적을 다 물려주고 말았다. 명분도 없어졌고, 나와 봐야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 도대체 왜 좀비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을까.
좀비는 뇌가 없다. 좀비가 가지고 있는 것은 오직 의지뿐이다. 하나의 목표가 생기면 의지만 가지고 달려든다. 먹이도, 잠도, 옷도 필요 없다. 멋지고 화려하고 예쁘게 옷을 입은 뱀파이어와는 너무 다르다. 좀비는 지저분하고 썩어 문드러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든다. 좀비가 되느니 사람들은 죽는 게 낫다고 생각을 했다. 뱀파이어가 사라진 이유 중에는 현재 인간의 피가 예전만큼 신선하지 않다. 산소포화도가 예전 같지 않아 진 것이다. 술과 담배, 마약 종류 - 각종 합성 약물로 인해 사람들의 피가 깨끗하지 않고 더러워진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 세계를 점령하던 뱀파이어들이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더니 좀비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뱀파이어는 인간이 사육이 불가능하지만 좀비는 사육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 결정을 내린 곳이 군부[軍部]였다. 좀비를 군인으로 키운다면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게 된다. 좀비는 먹지도 않고, 잠도 자지 않고, 옷도 필요 없다. 그 말은 군인 1명을 1년 동안 훈련시키는데 들어가는 식비, 군복, 막사 비용을 완전히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맥스 브룩스의 '세계 대전 Z'를 보면 좀비의 앞에 구멍을 파고 그 안에 쥐를 넣으니 좀비는 그 쥐를 잡기 위해 구덩이에 머리를 박고 3일 동안 으르렁 거렸다고 나와 있다.
이 책은 좀비가 전 세계를 휩쓸고 간(내용을 담은 영화가 월드 워 Z) 후 몇 년이 지난 각 나라의 사정에 대해서 인터뷰 형식을 취한 일종의 보고서 같은 소설책이다. 이 책이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좀비라는 카테고리에 핵을 집어넣어도 세계 각 나라의 대체 방법에 대해서 알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소름 돋는 건 지금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고 간 현재 각 나라의 바이러스 대처법에 대해서 정치적으로 외교적으로 보이는 형태가 오래전에 나온 저 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로 이제 영화 역사에서 좀비가 언제까지일지는 모르나 업적을 계속 쌓아 갈 것이다. 좀비는 괴물이며 이는 사회의 여러 곳에 적용이 된다. 거대한 은행을 좀비에 비유하기도 하며, 조이스 캐럴 오츠의 좀비를 읽어 보면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속 현대사회에 좀비가 어떤 형태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끔찍하며 소름이 돋는다. 사람을 죽이는데 이유 없이 그저 죽이는 살인자들도 좀비에 속한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엄청난 일이며 대단한 심적 부담이 있으며 피가 역류하는 듯한 몸의 변화도 온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총기 사용이 금지되어 있어서 원거리에서 총을 쏴서 사람을 죽일 수 없으니 근거리에서 칼이나 가위 같은 날카로운 흉기로 사람을 죽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피가 낭자하는데 코피 정도밖에 경험이 없던 인간이 끈적하고 뚝뚝 떨어지는 피가 흥건한 곳에서 제정신 일리가 없다.
하지만 그런 것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이유 없이 사람을 그저 죽이는 살인자들이 있다. 98년에 전과 14 범인 황영동이 그렇다. 여자들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십만 원을 달라고 하고 없다고 하면 그저 죽이는 것이다. 또 그해 9월 23일 대전의 한 가정집에 들어가 부녀자에게 십만 원을 달라고 해서 십만 원을 받는다. 하지만 그냥 칼로 찔러 죽인다. 10월 1일에는 한 다방에 들어가 여주인에게 20만 원을 빼앗고 칼로 찔러 죽이고 만다. 그때 칼로 사람을 38번이나 찌른다. 10월 10일에 한 할머니도 그렇게 죽이고, 마지막 10월 16일에 한 식당에서 맥주와 고기를 실컷 먹고 6만 원이 나왔지만 음식 값을 내지 않겠다며 거부를 하다 여주인을 칼로 마구 찔러 죽이고 만다. 그 여주인은 34살로 임신 6개월이었다. 23일에 한 공중화장실에서 한 여성을 성폭행하려다 옆에서 공사 중이던 인부들이 달려와 격투 끝에 붙잡혔다. 이때 달려들었던 23살 대학생 아르바이트생은 칼에 찔려 병원에 입원을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어떤 누구라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렇게 성폭행범에게 달려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같은 인간인데 한 공간에는 이렇게 다른 인간이 살아가고 있다. 98년의 일이라지만 지금도 똑같다.
세상에는 좀비 같은 인간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많아졌다. 앞으로는 더 많아질 것이다. 좋은 차를 몰고 다니지만 차를 따라가지 못하는 주인을 우리는 많이 봤다. 좀비가 너무 많다. 인류 영화 역사적으로 가장 큰 업적은 좀비다.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좀비. 시체이나 살아 움직이는 존재. 살아있되 살아있지 않은 인간. 겉으로는 멀쩡하게 움직이나 생각할 수 있는 뇌가 없어서 몸이 먼저 반응하는 인간. 우리는 이들을 좀비라 부른다. 어느 날 이보다 더 멋진 뱀파이어가 나타나 다시 영화적 위협을 가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