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에 구멍이 나도록 달렸다. 그렇다고 해서 숨이 끊어질 것처럼, 야생마처럼 달린 건 아니고 매일 조금씩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의 시간을 들여 달렸다. 달리다가 힘이 들면 걷기도 하고, 중간중간 쉬면서 근력 운동도 했다. 그러니까 열심히 달렸지만 전문 러너처럼 달린 건 아니다. 그저 꾸준함으로 달렸을 뿐이다. 이렇게 달린 지도 10년이 넘어가고 있다. 그동안 바닥에 구멍이 나서 없어진 운동화도 여러 켤레다. 코로나가 도래한 이후, 20년에는 5일 정도를 못 뛰었고 작년에는 4일인가 6일인가를 제외하고 매일 조금씩 달렸다.
글쓰기에는 재능이 큰 부분을 차지할지 모르나 달리기를 하는 것에 있어서는 재능보다는 꾸준함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전문 러너라면 모를까 일상적으로 조깅을 하는 것에 있어서는 꾸준하게, 매일, 일정한 시간을 내서 일정한 거리를 달리는 게 중요하다. 조깅을 하면서 습관을 들인 꾸준함은 일상의 여러 곳에 적용을 시켜도 좋다. 먹는 것도, 가는 곳도, 말하는 것, 모든 것에 꾸준함을 대입을 하면 재능 그 이상을 발휘할지도 모른다. 역시 달리면서 몸의 일부처럼 되어버린 꾸준함을 글쓰기에도 적용을 시키면 나쁘지는 않다. 이슬아 작가도 말했지만 ‘꾸준함 없는 재능이 어떻게 힘을 잃는지, 재능 없는 꾸준함이 의외로 얼마나 막강한지 알게 되어서다’라고 했다.
브런치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는 작가들이 한동안 바람처럼 나타나서 재능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사라진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꾸준했다면 더욱 막강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재능과 함께 꾸준함을 가지고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런 사람은 그리 세상이 많지 않다. 글이야 잘 써야 하고 잘 쓴 글을 보면 주눅이 들거나 질투를 하기도 하지만, 글을 꼭 잘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기대치가 있어서 잘 써야 해,라고 하는 생각도 어쩌면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잘 쓴 글은 세상에 널렸다. 거대 출판사에서 이미 잘 쓴 글은 종이책으로 다 출간을 했다. 잘 쓴 글을 보고 싶은 사람은 출판사에서 나온 좋은 책을 구입해서 이미 다 읽고 있다.
나의 이야기를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비록 재능에서 멀어졌을지라도, 꼭 잘 쓴 글이 아닐지라도 꾸준하게 글을 쓰다 보면 그중에 하나는 괜찮은 글이 있겠지. 그러면 사람들이 공감하고 그 글에서 위로를 받을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생활에서 느껴지는 건 계획 없이 움직이는 건 지친다. 그리고 계획 따위 그렇게 필요하지도 않다. 매일 조금씩 달리는 계획을 잡을 뿐 어디로 어떻게 달리는지는 그날그날, 날씨나 컨디션에 따라 다리를 움직이면 된다. 달리는 코스는 비슷할지 모르지만 3월이 되고 자연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걸 눈으로 보고 바뀐 향을 코로 맡아보고 달리진 강의 풍경을 기록한다.
어제는 옆 가게에서 하루키를 좋아하니까 매일 조깅을 하는구나.라고 했다. 그러면 그냥 웃고 넘어가지만 하루키를 좋아하는 것과 매일 달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하루키를 좋아해서 하루키의 소설을 매일 읽고는 있지만 하루키를 좋아하는 것과 조깅을 매일 하는 것은 다르다. 하루키를 좋아한다고 해서 어떻게 매일 조깅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조깅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조깅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조깅을 해서 얻는 기쁨이나 몸의 변화를 알지 못한다.
어떻든 전문가이든, 생활인이든, 한 인간을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영화 같은 마법은 반복되는 매일의 꾸준한 습관에 있다고 본다. 매일 조깅을 하는데 드는 비용은 없다. 고가의 자전거를 살 필요도 없다. 탁구처럼 탁구대가 필요하지도 않고, 야구처럼 인원이 많이 필요치도 않다. 그저 길과 운동화만 있으면 된다. 비가 와도 달릴 수 있고 여름에도 겨울에도 달릴 수 있다. 매일 신나게 달리려면 신나는 음악이 있으면 된다.
두꺼운 체육복은 이제 안녕
비가 오기 전
며칠 내내 비가 내렸다
비가 와도 조깅을 계속된다
영차영차 신나게
조깅이 끝난 후
그럼 오늘의 신나는 음악은 심플 플랜의 젯 렉이다. 여러 버전이 있는데 캐나다 가수 마리 마이와 함께 부른 버전이 좋다. https://youtu.be/HxtfFoFwr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