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근래에는 줄어들었다. 필시 코로나가 세계를 덮친 후 소확행이 줄어들고 있다. 나의 소확행은 정말 별거 아니어서 입으로는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이렇게 글로 적는다면 열심히 말할 수 있지만 구어로는 말하지 못한다. 나의 소확행은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이어지는 라디오를 듣는 것, 좀 더 정확하게는 10시부터 11시 30분까지는 집중적으로 라디오를 들으며 커피를 한 잔 마시는 것, 커피를 마시며 라디오를 들을 때에는 주위로부터 방해를 받지 않는 것이다. 라디오에서 지디(정지영 디제이)도 세상의 온갖 것들의 방해로부터 보호막을 펼치듯 멘트를 하고 노래를 들려주기 때문에 이런 소확행을 매일 느끼고 있다.


하지만 이런 소확행이 언젠가부터, 딱히 언제라고 말하기는 뭣하지만 근래에는 주위로부터 의식의 방해를 받는다. 두 팔로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들을 챙겨야 하는데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에 관한 문제라든가, 백신의 후유증이라든가. 후유증은 심해서 미접종자로 분류되어서 아예 식당이나 카페 근처에는 얼씬거리지도 않게 되었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지금, 오늘에 이르렀다. 백신을 맞고 부작용에 불편하다가 지금이야 괜찮아졌지만 언제 또 무슨 증상이 생길지는 모른다. 내 심장이 그렇게 몇 시간씩 쿵쾅거리고 요동을 치는데도 심박수는 80이고 검사에서도 이상이 없는 걸로 나오는 건 그저 내 생각일 뿐이지만 10년 넘게 매일 조금씩 조깅을 해서 심장을 단련시켜 그렇지 않을까. 단지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들뿐이다. 그러는 와중에 오늘 오전에는 지디도 가족의 코로나 문제로 인해 방송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저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 소확행을 느끼고 싶을 뿐이지만 생각처럼 안 된다. 24시간 중에 의식의 방해로부터 2시간 정도만 동떨어져 있어도 좋으련만.


개학을 앞두고 초등학생 방역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기사에 댓글이 수두룩했다. 교육부 장관을 나무라며 아이들을 위한 정책을 꼬집으며 윤은혜 장관은 뭐라 뭐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랬더니 그 밑에 윤은혜는 베이비복스의 멤버가 윤은혜이며 커피프린스 1호점 주인공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밑에 누군가 베이비복스의 노래 가사를 댓글로 달았고 누군가는 그 밑에 후렴구를 댓글로 또 달았다. 여러 사람들이 그 후렴구에 맞게 얼씨구 하며 리듬을 맞추었다. 그 밑의 또 다른 댓글에는 커피프린스의 이야기가 있었고, 그 밑에는 공유의 이야기가 있었고, 공유는 역시 부산행이지 하며 가지치기로 부산행의 이야기가 있었고 그 이야기가 우리 학교는 까지 이어졌다. 이런 세상에 살고 있어서 웃음을 잃지 않아서 다행이려나.


속보를 매일 접하다 보니 속보라는 단어에 둔감해졌다. 오늘도 어김없이 속보가 떴다. 오미크론과 전쟁과 대선에 관한 뉴스가 분당 단위로 전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코로나 시기에 피란길에 올랐다. 전쟁 때문에 집을 버리고 길을 떠나기에 피난민이 아니라 피란민이다. 전쟁이 나면 미사일이나 총을 맞아서 죽기도 하지만 그 외의 변수에 사람들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게 된다. 어느 책에는 그 나라에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동물원부터 폭발하라고 되어 있다. 굶주린 육식 동물들이 기어 나오게 되면 군인들의 전투력에 해를 끼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피란길에 오르면 굶주림과 추위, 그리고 그에 따른 질병과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서 전쟁이 끝이나도 후유증을 앓다가 목숨을 잃게 된다. 유튜브를 통해 피란길의 그들을 보게 되었다. 겁에 질린 얼굴과 힘이 없는 발걸음. 그 어디에서도 희망이라는 것을 엿볼 수 없었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과연 잘 견뎌낼 수 있을까. 겁을 집어 먹고 어딘가 도망이라도 가고 싶지만 그곳에서는 도망도 함부로 칠 수가 없다. 피란길에 코로나라도 걸리게 되면 이건 정말 치명타다. 코로나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누군가의 잘못으로 탓하고만 싶고, 전쟁을 일으킨 푸틴에게는 분노가 인다. 대통령이란 이렇게나 중요하다. 그걸 알지만 모른 채 지내다가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곧 대선이다.


인스타그램 중에 한 분은 암에 걸렸다. 그리고 그날부터 병상일기를 꼬박꼬박 올리고 있다. 병실에서의 처절하리만치 암과 고군분투하는 장면을 상세히 매일 올리고 있다. 풍성하던 머리숱이 정말 거짓말처럼 숭덩숭덩 빠지는 걸 보여주는데, 그러면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고 있다. 주위 사람들이나 가족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꼭 표현하려고 한다. 고통스러운 순간은 정말 그 고통이 보는 사람에게까지 전달이 되는 것처럼 고통스러워 보인다. 이 시기에 암에 걸려 항암치료라든가 수술을 받으며 보내다가 열이 오르면 코로나 검사까지 겸해야 하니 이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암 치료를 하면서 들러야 하는 진료과목은 늘어만 가고, 새로운 의사를 만나고, 간호사를 잘못 만나 팔이 온통 멍투성이가 되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 머리카락은 다 빠져버렸다. 그 마저도 유쾌하게 사진을 찍어 넘겨버린다. 그런 모습에서 인간은 비록 하찮은 존재지만 위대하고 대단하다고 느꼈다. 암에 걸려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으면서 스치는 모든 것들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고 짜증을 내지 않고 원래 가지고 있던 밝고 유쾌함을 낼 수 있는지. 이 코로나 시기라는 건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하다.


요즘은 뜨거운 밥을 마른 김으로 말아서 간장에 찍어서 먹는다. 어릴 때 맛있게 먹었던 기억 때문에 그렇게 먹지만 추억을 온전히 되살리기는 어렵다. 어릴 때는 그렇게 먹고 부른 배를 잡고 방바닥의 요만큼 볕이 드는 공간에 공벌레처럼 몸을 웅크리고 실컷 음악을 들었다.


예전에 느낀 소확행은 지금 느끼기에는 이미 시공간이 바뀌고 몸과 마음이 나이가 들어서 방해를 받고, 오전의 소확행은 주위의 방해를 받는다. 누군가는 그러겠지,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는 거야. 생각처럼 되지 않아서 재미있잖아,라고 할지도 모른다. 나는 삶이 재미없어도 상관없다. 꼭 재미있고 다이내믹하지 않아도 된다. ‘나’라고 하는 인간 자체가 재미가 없는 인간이라 꼭 재미있는 인생은 필요 없다. 매일 그 시간에 라디오를 듣고 매일 비슷한 음식을 먹고 그 사람과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약간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그만이다.


박연준 시인의 ‘김밥 예찬’을 읽어보면 김밥이란 누군가에게 소확행이다. 김밥에 대한 애정은 나도 여러 번 드러냈다. 김밥은 나에게 가장 이상적인 음식이다. 젓가락, 숟가락 질을 여러 번 해야 하는 귀찮음이 없기 때문이고 맛있기 때문이다. 한 손에 들고 먹으며 다른 한 손으로 뭔가도 할 수 있다.

김밥의 얼굴을 보려면 잘라야 볼 수 있다. 김밥의 얼굴은 태어난 곳에 따라 참 별나고 각각이다. 마치 인간의 얼굴과 흡사하다. 누구에게나 김밥에 대한 추억 하나씩은 있을 텐데 박연준 시인은 김밥 사면 떠오르는 장면에 대한 이야기도 털어놓았다. 나는 그 이야기를 읽으며 전혀 상관도 없는 김승옥 단편의 ‘차나 한 잔’에 나오는 이 형이 떠올랐다. 순간 파도처럼 생각이 났다. 아무튼 박연준 시인의 말마따나 특별해서, 평범해서, 슬퍼서, 기뻐서 더 어울리는 김밥이다.


김밥을 먹으며 라디오를 듣고 싶다. 존 쿳시의 말처럼 “힘든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라디오를 켜고 전에 들어보지 못한 음악이나 근사하고 지적인 대화를 듣는 일”라고 한 것처럼 매일 오전의 라디오를 듣는 건 나에게는 소확행인 것이다. 그런 소확행이 근래에는 줄어가고 있다. 누구나 자신만의 소확행에 있어서 방해받지 않는 하루가 되길 진심으로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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