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이 세상에서 가장 기묘한 장소다. 집이라는 건 사람이 들락날락거리면 깨끗하게 유지가 되는데 사람이 며칠 비워두면 먼지가 쌓이고, 한 달 이상 비워두면 퀴퀴한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피기도 한다. 형태를 가진 어떤 물품이든 가만 두면 더 오래가고 깨끗한데 집은 그 반대다.
요즘처럼 추운 겨울날 오들오들 떨며 밖에 있다가 집에 들어가면 아늑하고 따뜻한 방에서 편하게 잠들 수 있다. 그래서 집을 구입하려고 우리는 평생 노동을 한다. 집을 꾸미며 생활의 활력을 얻는 사람도 있고 집에서 먹는 라면이 가장 맛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집에 있으면 몸을 말고 있는 태아가 된 것처럼 편안하고 포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멀리 떠나가고 싶어 한다. 집에서 며칠만 머물면 어떻게든 집을 나가고 싶어 진다. 집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집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우리가 집에 대해서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집에 하루 종일 머물러 있는 경우가 없다. 적어도 십 년은 넘게 아침에 집에서 나와서 일을 하고 저녁에 집으로 들어간다. 매일 그렇게 하고 있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나오거나, 조금 일찍 들어가는 경우는 있어도 아침이면 어김없이 집을 나와서 저녁이 되어서 집으로 들어간다. 집은 내가 가장 게으르게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그래서 하루 종일 게으르게 있지는 않지만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다.
뉴질랜드 영화를 한 편 봤다. 영화에는 잘생긴 남자 배우도, 늘씬한 여자 배우도 없다. 주인공이라 불리는 리키(데드풀 2의 러셀)는 뚱뚱하고 이모부 헥은 늙었고 이모인 벨라는 덩치가 크다. 또 다른 주인공, 리키를 쫓는 사회복지사 파울라 역시 산만한 덩치에 비포장도로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이 영화 속에는 흥행에 도움 될만한 캐릭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묘하게도 홀딱 빠져서 보게 된다.
추운 뉴질랜드의 기후에 따뜻한 핫팩처럼 느껴지던 벨라 이모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리키와 헥은 졸지에 또다시 고아가 되어 버린다. 벨라는 가족도 없는 헥과 리키를 줍다시피 해서 가족의 울타리 안에 넣어준 사람이었다. 리키에게 짧은 시간 동안 사격도 가르쳐주고 무엇보다 따뜻한, 그 안온 감을 느끼게 해 준 사람이었다.
이 영화는 제목처럼 장엄한(영화를 보면 이 단어에 리키와 헥의 옥신각신? 이 나오는데 그 부분이 너무 좋다) 뉴질랜드의 숲 속을 누비며 특별한 여행을 한다. 정말 특별한 여행이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생존을 위해, 그러다 자신을 알아가며 여행을 한다. 여행을 죽 따라가면 썩 웃기지 않은 것 같은데 큭큭 하며 웃음이 나오고, 요컨대 리키가 말에서 굴러 떨어져 땅바닥에 철퍼덕 붙어버리는 착지와 리키를 잡으러 다니는 사회복지사 파울라와의 설전, 같은 것이 웃음을 나오게 만든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벽 너머의 숨어 있는 그 무엇을 알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영화 속에 나오는 거의 모든 캐릭터가 가족이 없거나 가족 중 누구 한 명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내가 그래서 그런지 영화 속 캐릭터들에게 이입이 되었다. 소년원에 가야 할 판인 리키와 다시 노숙자가 되어야 할 헥은 숲 속을 같이 자니며 서로를 알아간다.
모든 걸 ‘시’로 말해버리는 리키의 시를 듣고 헥은 문맹이었는데 글자를 알고 싶어 한다. 리키와 헥이 숲 속에서 만난 사람들 역시 혼자 지내는 사람이거나 엄마를 잃은 가족이거나 그렇다. 거대한 숲을 배경으로 했는데 이 숲이 한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이라는 게 가장 작은 단위의 집합이지만 그 속에서는 엄청나고 희귀하고 괴랄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집이 어쩌면 숲 같을지도 모른다. 목사로 나온 감독이 설교한 대목이 있는데 그 부분이 이 영화를 가장 잘 말해주는 것 같다.
-가끔씩 인생에는 출구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죠. 마치 늑대의 덫에 걸려버린 양처럼 말이에요. 우리에겐 항상 선택의 문이 두 개 있어요. 첫 번째 문을 통과하면 이건 통과하기 쉬운 문인데 그 너머에는 수많은 보상들이 여러분들에게 기다리죠. 판타, 도리토스, L&P, 버거링, 제로 로크, 그런데 또 다른 문이 있어요. 버거링 문도 판타 문도 아니죠. 그 문은 통과하기 까다로운데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채소?-
집이란 무엇일까.
오래된 작은 초등학교의 복도를 걸었다. 아직 나무로 된 복도였다. 걷다가 삐거덕 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물밀듯이 밀려오는 작은 기억들. 삐거덕 거리는 소리가 좋아서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면서 삐거덕 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가끔 그런 소리가 있다. 잊고 지냈던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소리. 그것도 강력하고 강렬하게.
집에 관한 다큐영화를 봤다. 오래된 집만 보여주는 이상하고 참 재미없는 영화였다. 재미는 없는데 보다 보니 그만 빠져들게 되는 묘한 영화였다. 재미없는 인간이 재미없는 영화를 보니 재미없는 시간이 모순적으로 다가왔다.
집에 관한 다큐는 오래된 연립주택에 사는 오래된 집주인이 오랫동안 살아온 자신의 집에 대해서 중요하지 않을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뿐이다. 정말 재미없다. 집주인이 집의 거실에 앉아서 보면 창문 밖으로 여름에 느티나무가 보이고 바람이 불면 느티나무가 움직이며 그 뒤의 숲이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소리가 마음을 확 잡아 끄는 것이다.
쏴아아아아아.
쌀을 씻는 듯한, 몽돌이 파도에 휩쓸려 가는 듯한, 시골의 개울가에 깨끗한 빗물이 쏟아지는 듯한 소리가 거실에 앉아 있을 때 바람이 불면 들리는 것이다. 강력하고 강렬하게.
그 집의 다 큰 아들은 외지에 나가 있다가도 가끔 집에 오면 그 소리를 듣는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어느 시점의 과거로 가 있다. 가방을 울러 매고 뛰어서 학교로 등교할 때 라든가, 먹던 하드를 땅에 떨어트려 울던 때 라든가.
집은 오래되고 오래되었지만 주변의 고즈넉한 풍경과 어울려 마음을 차분하게 해 준다. 집은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을 닮았다. 인간이 만든 물품 중에 유일하게 사람의 들숨과 날숨이 오고 가고 손때가 묻어야만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것이 집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집은 몇 개월 동안 비워 놓고 여행이라도 다녀오면 퀴퀴하고 곧 곰팡내가 퍼질 것처럼 죽어버리게 된다. 모든 물품이 사람의 손이 타면 망가지지만 집 만은 유일하게 사람의 손이 타야만 유지가 된다. 내 집에 앉아서 가만히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덜 불행한 것 같다.
집은 우리에게 너무 힘들면 요만큼 기운을 내봐,라고 한다. 절대 이만큼 힘내라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들어오면 수고했다며 편하게 잠들라고 한다. 나에게 집은 그런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