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테라,라고 쓰면 카스텔라,라고 바꾸라고 나온다. 나는 카스테라다. 카스텔라는 싫다. 나처럼 소심한 사람이 '싫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카스테라는 카스텔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카스테라가 나의 삶에 부드럽고 뻑뻑하게 들어왔지 카스텔라는 머나먼 나라의 금발의 미네르바처럼 생소하기만 하다.
카스테라를 처음 맛본 그날, 그날이 확실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대단한 일이었다고 기억된다. 카스테라가 가진 그 촉촉한 감촉이라든가 입천장에 달라붙는 느낌이라든가. 왠지 처음에는 텁텁해서 우유와 궁합이 잘 맞다, 라든가.
카스테라를 처음 먹어보기 전의 빵에서 봐왔던 모양에서 벗어난 사각형의 모양에 어린 마음을 몽땅 빼앗겨버렸다. 그동안 카스테라를 모르고 잘도 어린 삶을 헤쳐 왔는지 모를 정도였다. 처음으로 카스테라를 맛 본 그날 루벤스의 그림이 머리 위에 떠오르고 어린 나의 작은 혼이 뭉크의 그림처럼 빠져나갔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지만 그 못지않은 경험이었다.
카스테라라는 이름도 그때 처음 들어서 생소했지만 어느샌가 입으로 카스테라, 카스테라,라고 되네 이다 보면 어느 순간 친구처럼 가까이 와 있었다. 묘한데 자꾸 말하게 되는 미지의 친구 이름 같았다. 이후로 집 앞 구멍가게에 가면 카스테라를 슬쩍 집어 들고 동전을 내밀고 볕이 드는 따뜻한 대문 밑에 앉아서 그것을 제대로 뜯어먹곤 했다.
카스테라는 어쩐지 겨울에 많이 먹었다. 그늘이 아닌 따뜻한 곳에 앉아서 뜯어서 먹고 있노라면 추운 겨울이라도 왠지 따뜻했다. 집에서 먹는다면 우유를 뜨겁게 난로 위에 데워서 같이 먹었다. 그러면 카스테라는 ‘겨울은 말이야, 카스테라와 함께 보낸다면 따뜻할 거야’ 하고 말해주었다. 그 보이지 않는 말에 기대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카스테라는 기억 속에서 점점 멀어지듯이 곁에서 사라졌다. 지금은 손만 뻗으면 카스테라보다 열 배는 맛있고 백배는 예쁜 카스텔라가 세계를 점령했다. 이후로 겨울은 그렇게 따뜻하지 않았다. 덥덥하거나 춥거나. 그런 겨울이었다. 그래서 겨울은 더 이상 기다리는 계절이 아니게 되었다.
겨울을 싫어한다고 해서 마음으로 밀어낸다고 해서 뒤늦게 온다든가, 오지 않거나 하지 않는다. 겨울은 낙엽 지고 비가 오고 나면 어김없이 입에서 입김이 후후 나오면서 옆에 와 있다.
크리스마스가 20여 일 앞으로 다가온 겨울의 밤은 어느 곳이나 반짝반짝 전구와 트리가 빛을 발한다. 언제부터인지 그 반짝거리는 불빛들 앞을 지나칠 때면 빛나는 전구들은 조금은 무서운 얼굴을 하고 ‘넌 행복하니? 그래서 넌 만족하냐? 네가 있는 곳은 어디냐?’라고 자꾸 물어온다. 그 대면이 껄끄러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반짝이는 전구를 피해서 다녔다.
카스테라 같은 여자가 있었다. 부드럽고 가만히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부서져 없어져버릴 것 같은 여자. 그녀는 느릿하게 움직이는 나를 달리게 만들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언젠가 그녀의 긴 속눈썹을 본 적이 있다. 달빛이 긴 속눈썹에 내려앉았을 때를 기억한다. 아름다운 모습.
세계는 묘해서 눈앞에 있는 것에 손을 뻗어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어서 빨리 그녀에게서 졸업하고 싶었다. 카스테라와 같은 그녀는 멀리 떠나가 버렸다.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 것이다. 예고도 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겨울비에 카스테라는 구멍이 나고 씻겨 비 비린내와 함께 없어졌다.
그녀에게서 졸업을 해버리고 나면 그동안 그녀를 좋아하고, 너무 좋아해서 미워했던 그 마음까지 모두 거짓말이 될까 봐 두려웠다. 가끔 생각한다. 요즘은 카스테라가 어디에 있을까. 다시 카스테라를 손에 움켜쥘 수 있을까. 입으로 다시 카스테라, 카스테라라고 한 없이 불러보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