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냄새 중에는 시골 냄새가 있다. 시골 냄새라고 한다면 시골에서 나는 냄새를 말하고, 시골에는 할머니가 있다. 그래서 시골 냄새라고 하면 할머니가 해주던 음식 냄새, 시골집에서 나던 냄새, 시골의 개울가에서 나는 냄새를 통틀어 시골 냄새라고 할 수 있다.


나의 시골이라는 개념은 외가밖에 없다. 친가와는 왕래가 끊긴 지 오래되었고 대부분 돌아가셔서 길거리를 지나가면서 스쳐도 서로 모를 정도다. 그에 비해 외가의 사람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큰 이모의 장례식 때문에 다 같이 모이기도 했다. 내 기억 속의 시골 냄새는 불영 계곡 더 안쪽으로 들어간다. 솥 냄새, 알이 작은 감자가 익어가는 냄새, 맑은 개울에서 나는 비린내, 하나밖에 없는 초등학교에서 강하게 났던 나무 냄새, 그리고 외할머니와 큰 이모의 체취가 묻어있는 외가의 냄새다.


논과 논 사이를 졸졸 흐르는 개울물에 떠 있는 개구리밥, 그 밑에서 노니는 송사리들을 지나 개울물로 내려가면 물이 맑아 가재도 잡을 수 있었다. 개울에서 낚시로 고기를 잡으려면 동네 슈퍼에서 낚시 줄과 바늘만 구입해서 긴 나뭇가지에 줄을 달아서 미끼를 끼워서 물에 던지면 된다. 미끼는 집적 잡아야 한다. 개울물에 잠긴 좀 큰 돌 같은 것을 들면 꾸물꾸물 장구아비처럼 생긴 벌레가 있는데 그걸 잡아서 바늘에 끼워서 낚시를 하면 된다.


처음에는 그 벌레가 몹시 징그러워 손에 만지지가 무척 힘들지만 일단 한 번 바늘에 끼우게 되면 바위에 붙어 있는 그 벌레를 잡는 재미도 있다. 벌레를 검색을 해도 이름을 모르니까 찾을 수가 없네. 그래서 바늘에 끼워서 물에 던지면 고기들이 요래 오래 와서 달려드는 모습이 보인다. 다리를 걷고 물에 들어가서 낚시를 해도 되고 그냥 수영복을 입고 아예 물(이 맑아서 잘 보이니까)에 풍덩 들어가서 낚시를 해도 된다. 그래서 미끼를 물면 잡아서 끌어올리면 된다. 그러면 피라미들을 낚을 수 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피라미들을 잡아서 개울가에서 매운탕을 직접 끓여 먹었다. 정말 맛이 없었다. 그렇게 놀다가 외가에 들어가면 외할머니와 큰 이모가 국수를 비벼 주기도 했고 시래기 무침을 만들어서 밥에 비벼 주기도 했다.


시래기 무침은 지친 마음을 달래준다. 큰 이모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시래기 무침을 전혀 먹지 못하다가 근래에 먹게 되었다. 너무 맛있어서 밥에 비벼서 허겁지겁 먹고 나서야 내가 그동안 지쳐있었다는 걸 알았다. 시래기는 사 계절 중에 겨울에 어울린다. 시래기 된장국도 뜨근하게 먹으면 언 몸이 녹아내리고 시래기 국수도 겨울에 먹는 별미다. 어릴 때 살던 곳에서 엄마를 따라갔던 전통 시장에 연기를 폴폴 나는 작은 국숫집이 있는데 육개장 국물에 시래기를 넣고 푹 삶아서 거기에 국수사리를 넣어서 후루룩 먹는다. 양도 많고 국물을 우려내는데 삼천 원이다. 그래서 이른 아침에 시장을 여는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시래기 국수를 호로록 먹는다. 고등학교 때는 사진 부여서 주로 전통시장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는데(딱히 전통 시장의 치열한 삶을 담아야 한다는 신념보다는 치열한 무엇인가를 사진으로 담아가지 않으면 선배들에게 많이 맞았다) 일요일 오전에 사진을 찍다가 허기가 지면 시래기 국숫집에 들어가서 시장 사람들 틈에 끼어 국수를 호로록 먹었다.


시래기는 그만큼 서민에 가까운 음식이다. 시래기 무침은 또 주로 여름에 많이 먹었다. 그 이유는 여름에 외가에 놀러 가서 개울에서 실컷 놀다가 집에 들어오면 외할머니와 큰 이모가 이렇게 만들어서 밥에 비벼 주었다. 어릴 때 시래기 따위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먹다 보면 맛있어서 많이 먹게 된다. 나에게 있어 시래기 무침 같은 음식은 추억과 기억으로 점철된 추상적인 음식 이외에 좋은 이유는 무엇보다 소화가 잘 된다는 점이다. 더 기분 좋은 건 많이 씹지 않아도 된다. 다른 음식은 소화 때문에 그만큼 씹기 싫어도 많이 씹어야 하는데 시래기 무침은 그렇게까지 많이, 우걱우걱 씹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나는 좋다.


추억으로도 맛으로도 위로가 되는 시래기 무침이다. 어린 시절에는 절대 먹기 싫은 시래기 무침. 이게 여름에 땀을 쭉 흘리고 난 후 샤워를 하고 나서 밥에 슥삭슥삭 비벼 먹는 맛은 왜 그리도 좋을까.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어 몸은 늙어가도 머리는 낡아지지 말자. 그렇게 하자. 그리고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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