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 싫은 소리가 있다면 그건 타인의 웃음소리다. 나에게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웃음소리. 음산하면서 마치 나를 향해 깔보는 말들을 흘려보내는 것 같은 웃음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무라카미 류는 무의식 중에 들리는 웃음소리는 폭력에 가깝다고 했다. 히히히히, 킥킥 킥킥, 크크크크 같은 웃음소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근처에서 계속 들린다면 아마도 누구라도 돌아버릴지도 모른다. 꼭 나에게 하는 지랄 맞은 말 같아서.


우리는 그런 웃음을 티브이 뉴스를 통해 보기도 한다. 가해자가 법정으로 가기 위해 몸이 포승줄에 꽁꽁 묶여서 가고 있음에도 피해자들을 향해 짓는 웃음이 그렇다. '2AM: The Smiling Man'이라는 4분짜리 단편 영화를 보면 타인의 기괴하고 기묘한 웃음이 사람에게 얼마나 공포를 주는지 알 수 있다.

https://youtu.be/_u6Tt3PqIfQ




"씨발, 나는 해미를 사랑한다구요."

종수가 애타게 말을 하지만 벤은 큭큭큭큭 웃으며 대마를 피운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으니 안 그런 척 하지만 나 이외의 사람들은 멸시당해도 지극히 당연하다는 웃음. 킥킥 킥킥 거리며 웃는 소리는 귀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피부를 통해서, 내 얼굴에 뚫려 있는 구멍을 통해서 기어 들어온다. 마치 벌레처럼.



종수는 복수를 하는 것이 아니다. 종수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종수가 말했다. 나는 아버지를 미워한다고, 아버지는 분노조절장애가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한 번 터지면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다고 말이다. 종수는 그런 아버지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걸 알고 있다.


가진 게 없어도 재미를 위해서 여행을 가고 팬터마임을 배우는 해미는 재미를 위해서 무엇이든 하는 벤과 어울리지만 종수는 낄 수 없다. 공항에서 곱창집으로 가면서 벤은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우수한 DNA를 이어받았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종수가 가지지 못한 엄마와 웃음을 난타한다.


종수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종수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분노조절로 구치소에 간 것처럼 자신도 그런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는 것을. 해미 이전의 해미들이 벤의 서랍 속에서 사라져 갔다는 것을. 유전자는 내면의 호러인 것을.


사람들은 버닝이 미스터리하고 애매해서 어렵다지만 실은 버닝은 시처럼 구체적이어서 어려울지도 모른다. 모든 장면과 대사가 구체적이고 구체적이어서 구체적으로 다 나타난다. 단지 너무 가까이 있어서 구체성을 사람들이 찾지 못해서 어려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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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2-04 1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버닝> 강렬했던 영화! 마지막 문단 너무 소름돋네요👍

교관 2021-02-05 12:28   좋아요 2 | URL
영화 정말 좋았어요. 이창동 감독이 소설가여서도 그런지 영화가 꼭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메타포로 꽈악 짜여진 듯 했습니다. (엄지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