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에 따르면, 스파이더맨, 에릭 사티, 하루키, 존 레넌, 커트 코베인, 에밀리 디킨슨, 라이너 마이너 릴케, 헤르만 헤세, 카프카, 서태지의 공톰점은 다 외톨이라는 것이다. 서태지는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에 어딘가에 틀어막혀 외톨이로 음악을 만들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3집이 나왔을 때 우리는 열광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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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정말 최고였다. 가슴을 때리는 스피드 메탈이 백그라운드에 흘렀고 ‘매번 내 혼을 팔아버렸어’라는 가사는 마치 다자이 오사무의 글의 늪처럼 우리를 빨아들였다. 기존 대중가요에서는 전혀 들을 수 없었던 스피드한 헤비메탈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오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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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왜 열광했냐 하면 우리는 어릴 때부터 시나위 4집을 좋아했다. 머틀리 크루가 미국에 있다면 한국에는 시나위가 있었다. 기타에 신대철, 보컬에 김종서, 베이스에 정현철이었다. 정현철이 서태지였고 록 앤 롤, 헤비메탈, 펑키, 블루스 록에 미쳐 있었는데 서태지와 아이들3집에서 잘하는 음악을 찾았고 잘하는 음악의 옷을 입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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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첫 인트로가 심장을 두드렸다. 강렬하고 강하게 드럼을 두드리고 기타를 치며 앨범의 서막을 연다. 헤비메탈의 반주에 서태지와 아이들은 춤을 춘다. 이런 강한 록에 춤을 추며 대단한 인기를 얻는 밴드가 일본의 베비메탈이다. 꼭 그럴 필요는 없지만 서태지는 하여가 때 꽹과리 등 민속 악기와 함께 협연을 하여 대중가요를 만들었다. 한국적인 음악이 아닌 록에 한국 적인 음악의 옷을 입혀서 대중화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베비메탈의 ‘메기츠네’를 들어보면 무척 강하고 빠른 스피드 메탈인데 들으면 일본?이라는 느낌이 아주 강하다. 그런데 대중화를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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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비메탈의 2018년 노래 ‘스타라잇’에는 한 명이 탈퇴를 하고 이인 체재로 부르는 베비메탈의 노래인데 더 깊어진 메탈의 진수를 보여준다. 베비메탈이 음악을 발표하면 웃긴 현상은 전 세계의 언더에서 활동하는 메탈밴드들이 커버를 하여 전부 유튜브에 올린다는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전 세계 팬들이 따라 부르는 영상을 올리는 것과는 좀 다른 점이라면 대체로 베비메탈의 음악을 커버치는 사람들은 활동하는 밴드들이라는 것이다. 그런 현상이 2013년부터 죽 있었다. 그건 서태지가 ‘아침의 눈’을 발표했을 때 마찬가지로 전 세계의 밴드들이 서태지의 아침의 눈을 커버 쳐서 유튜브에 올린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왓 에버 유 고의 더 콜링도 서태지의 아침의 눈을 커버 쳐서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더 콜링 녀석들 음악 꽤 좋았는데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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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집에 본격적으로 안흥찬이 투입이 되어 서태지와 같이 메탈의 대중화를 알리기 시작한다. ‘널 지우려 해’의 후렴부에서는 본격적으로 목을 긁어서 그로울링으로 샤우팅을 한다. 아마 이때부터 몇 년 후의 울트라맨이야,의 앨범을 생각하거나 제작하고 있었지 않았나 싶다. 3집에서 서태지는 미성과 목을 긁는 창법을 오고가고 백 보컬에는 안흥찬의 악마의 소리가 약한 부분을 뒷 받침 해준다. 베비메탈을 심오하게 들어본 사람이라면 역시 아? 서태지가 했었던? 같은 느낌을 받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나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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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를 하고 테이크 시리즈가 있는 서태지 1집을 내고 후에 서태지 2집을 발표했는데 정말 대중적과는 거리가 먼 고출력에 강하고 시끄러운 음악이었지만 대중은 서태지를 받아들이는 분위기를 가졌다. 정말 터져버릴 것 같은 사운드는 몸을 아코디언처럼 접었다 폈다 하기에 충분했다. 헤프라는 드러머의 박살 날 것 같은 드럼 연주와 중저음의 깊이가 큰 기타의 소리가 서태지의 목소리와 어울리는 것이 신기했다. 이 앨범을 내기 위해 얼마나 외톨이로 고독하게 연습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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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탱크’는 세계를 잡고 있던 강한 록 그룹의 음악보다 더 강하고 쇼킹했다. 서태지는 korn의 조난단과 친분이 있었는데 조나단이 태지가 하는 거라면 나는 무조건 오케이야,라고 했다. 콘의 조나단이 누군가. 지구에서 가장 강한 록을 하던 음악을 씹어 먹을 듯했던 보컬이 아닌가. 탱크의 가사는 상당히 철학적이다. 바로 듣고 아하, 할 수는 없다, 동격화, 정신적 학대, 같은 단어들이 마구 튀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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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렬한 탱크라는 곡을 듣고 있으면, 그러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게도 히데의 ‘다우트’가 생각난다. 히데는 일본에서의 활동은 제약이 있다며 외국인 멤버 두 명과 함께 지르츠를 만들어 다우트를 불렀는데 그 속의 다우트는 생 날 것, 바로 피가 드러날 것만 같은 노래지만 스튜디오 버전은 또 다르다. 도대체 이런 음악을 90년대 초에 만들었다니. 정말 빠져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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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음악이 강국이다. 70년대 초에 카펜터즈부터 풜 뭬콱틔뉘는 5번이나 공연을 했고 90년대 초에 지구에서 잘 나가는 메탈 밴드는 전부 일본에서 공연을 했다. 스키드 로우는 몇 번이나 공연을 했다. 록의 탄생지에서 록의 불모지 같은 일본으로 간 록스타들은 처음에는 우습게 봤겠지만 일본에 가서 보니 작은 사람인데 엄청난 록을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곡을 직접 쓰고 편곡을 하고 기타를 들고 무대를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노래까지 지치지 않고 한다. 무엇보다 무대를 씹어 삼킬 것 같은 압도적인 분위기에 외국 록 스타들이 놀라고 말았다. 어쩐지 히데 덕분인지 록 스타들도 일본을 우습게 보지 않게 되었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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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음악과 이런 퍼포먼스와 이런 스타일과 이런 스튜디오 작업이 90년대 초에 이루어졌다니 이게 믿어지는 일이냐고.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일처럼 서태지가 등장하면 히데가 떠오른다. 이 글 첫 줄에 어떤 책에 따르면,라고 되어 있는데 거기에 히데도 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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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외톨이고 고독하고 고독해서 음악 밖에 할 수 없었던 히데는 그렇게 가버렸지만 이렇게 대중들의 가슴에는 깊게 파고 들어 있다. 서태지가 공연할 때 그런 말을 종종 했다. 대중문화를 사랑하는 여러분이 예술가라고. 톨스토이의 글은 당연하지만 좋다, 위대하고 높고 거창하고. 그렇지만 우리가 톨스토이의 글보다 도스토옙스키의 글을 더 좋아하는 것에 이유는 분명하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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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쉽고, 듣기 편하고, 기분 좋게 그린 그림이 바로 외톨이로 고독을 깎아서 만들어낸 창조물이라는 것을 대중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대중은 이미 그것을 흡수할 스펀지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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