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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소에 겨울이 오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무엇보다 사방으로 올라가는 영치품들이 바뀌고 과일이 겨울 과일로 바뀐다. 싱싱하고 맛있는 사과와 귤이 잔뜩 사방으로 오르기 때문에 우리는 사방을
순찰하면서 재소자들에게 귤과 사과를 이만큼 얻어서 내려온다. 하지만 정말 맛있는 것은 소시지다. 크고 굵은 소시지를 가득 받아서 막사로
내려오면, 컵라면에 물 받아 먹는 큰 찜통에 넣어서 삶아 먹는데 술안주로 기가 막힌다
.
짬밥이 되면 저녁 점호가 끝난 뒤 피엑스에 난로를 피워 소시지와 소주를 마신다.
마시다 보면 소대장도 오고 교무과에 근무하던 근무자도 냄새를 솔솔 맡고 내려와서 한잔한다. 남은 소시지는 나무젓가락에 끼워 난로 위에서 살살
돌려가면서 궈 먹는데, 그 냄새가 막사 저 밖으로 동초 근무자에게까지 날아간다. 잘 구워진 소시지를 처음 입에 넣어서 씹으면 툭 하며 터지는데
소시지의 육즙이 입안으로 죽 들어오면서 소주를 부르게 한다. 소시지 일 뿐인데 겨울은 그런 맛을 낸다
.
나는 어쩌다 부대 마크를 디자인했는데 그것이 채택되면서 겨울에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드는 병력으로 차출이 되었다. 잠자는 것 이외에 모든 근무에서 열외 되어서 오로지 카드만 만드는 것이다. 카드를 만들어서 구치소 내 직원들에게
판매를 하여 그 돈으로 회식을 한다. 그러니까 샘플로 몇 개를 만들어서 구치소 직원들 휴게실에 걸어두면 주문이 들어오는데, 같은 크리스마스를
손으로 일일이 몇 백 장씩 만들어야 한다. 거의 초주검에 가깝다
.
하지만 하다 보면 요령이라는 게 생긴다. 단순한데 예쁘고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왕창
나는 카드를 몇 백장 만들 수 있는데, 붉은 카드용지 위에 도안을 한 눈 사람이나 산타를 대고 스프레이나 물감으로 틀 안을 칠해주기만 하면
된다(이게 무슨 똥 같은 설명이지??). 글자는 금색의 사인펜으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꼬부랗게 쓰면 된다
.
샘플 몇 개를 잘 만들어 놓고 그것을 대고 차출된 쫄다구들은 반복적으로 채색만
하면 된다. 너는 흰색 물감으로 이것만 하고, 너는 글자만 쓰고, 너는 테두리만 그려라.라고 지정해 준다. 나는 이런 것을 재미있어 하는 것
같다. 뭔가 일을 꾸미고 그것을 총괄하고 책임지고 뭐 이런 것들. 그 때문인지 여러 번 일을 꾸며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었다. 몇 해 전에는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관리실 앞에서 아파트의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아 액자로 만들어서 게릴라 전시회를 했었다. 그때 어머니들의 어머, 하며
괜찮은 반응이 나왔는데 재미있었다. 부녀회장이 그 사진들을 다 달라고 해서 줬는데 얻다 써버렸는지 모르겠다
.
아무튼 쫄다구들은 반복된 일, 그것만 하면 되는데 잠을 못 자다 보니 엉망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나도 화를 낸다. 돈을 받고 하는 것이기에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힘든 것은 내 쪽이다. 샘플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뭔가를 처음 만드는 것은 꽤 난처한 일에 봉착을 하게 되는데, 그 샘플이 채택이 안 될 경우도 있고, 사람들의 반응을 일일이 체크해야 하고,
주문이 적게 들어온 카드와 많이 들어온 카드의 배분을 나눠야 하는 것을 조정해야 하는 것이 퍽 힘이 든다
.
하지만 작업실 안에서는 음악을 계속 들을 수 있다. 막사의 저녁 점호시간에
칼바람이 불고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들려도 이 안에서는 모두가 자유롭다. 엎드려서 잠을 자도 되는 세계, 과자를 막 먹어도 되는 세계, 저녁 점호
총원 몇 명, 열외 4명 같은 보고로 우리는 지옥 같은 세계에서 제외된 것이다. 그것만으로 우리는 기쁘고 좋았다
.
제대하고 그 해 겨울 군고구마를 팔았는데 그때에도 오전에 농산물 시장에서
군고구마를 떼와서 저녁에 장사를 하기 전까지 낮에는 카드를 만들었다. 학원가에서 장사를 했는데 그때 아이들이 군고구마를 사러 오면 군고구마를
하나 더 줬고 여자 손님이 오면 직접 만든 크리스마스카드를 줬다. 그것이 먹혔는지 소문이 소문을 물고 저 끝까지 퍼졌다. 지난번에도 이야기했지만
아파트 단지에는 군고구마를 배달을 했다. 배달을 해주면 집 안에서 뜨거운 군고구마를 먹을 수 있다. 그런 것이 먹혀든
것이다
.
한 기수 밑의 쫄다구와 같이 했는데 서점 집 아들래미라 서점 앞에서 장사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 책을 많이 봤는데 책이 잡지책이었다. 그때 잡지책의 세계에 대해서 또 눈을 뜬 것 같다. 소설과 시와는 다른
세계가 잡지책의 세계였고 그 세계에서도 굉장한 읽을거리와 볼 거리가 있었다. 그 후로 이충걸이 편집장으로 있는 지큐와 황경신이 편집장으로 있는
월간 페이퍼, 김혜리 기자가 있던 씨네 21을 열심히 구독해서 보기도 했다. 그들의 글을 매달 본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
군고구마 장사를 할 때 통이 두 개였다. 군고구마계에서 부르주아였다. 만든 카드를
천막 앞에 죽 걸어놓고 학원 강사님이나 약사님이나- 물론 여자들- 서점을 찾는 여자 손님이 군고구마를 사러 오면 어떤 카드를 드릴까요, 해서
이거라고 하면 그 카드에 글을 슥슥 적어서 줬었다. 생각해보면 호감이 있으니 내일 다시 오라느니, 꼭 다시 들러달라느니, 연락처 같은 것을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저 뭔가 시적인 문구와 메리 크리스마스를 썼었다. 바보 같은 걸까. 겨울의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