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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다닐 때 있던 일이다. 여자 회사원이 하나 입사했을 때, 그녀에게 관심을 갖는 남자는 별로 없었다. 아주 밉상은 아니라해도 솔직히 미녀는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애가 너무 말라서 글래머스러운 매력이 없었기 때문. 이효리처럼 허리는 가는데 가슴은 큰 그런 스타일이면 외모가 처져도 섹스어필할 수 있을테고, 다리도 마르기만 한 게 아니라 육감적인 모양을 갖춘다면 청치마 정도를 입고다니며 남자들 혼을 빼놓았을 텐데, 빼빼 마르기만 한 그녀는 그저 나무토막에 불과했다. 하지만 오래 보다보면 정을 붙이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 스캔들 한번 내지 않았던 그녀의 학교 선배 K는 어느날 그녀와 결혼한다는 청천벽력같은 발표를 했다. 발표 내내 그녀는 알듯 모를듯한 미소를 지으며 그 발표가 사실임을 입증해 주고 있었다.


그러자 난리가 났다. “어떻게 몇 살이나 더 어린 후배를 유혹할 수가 있냐”느니 “남자가 봉잡았다”느니. 아니, 그렇게 괜찮은 여자라면 지들이 접근할 일, 남의 떡은 커보인다는 진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꼭 이와 같은 경우라고 하긴 뭐하지만, 최근 몇 년간 최희섭을 보면서 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1. 에릭 캐로스

박찬호가 다저스에 있던 시절, 캐로스를 좋아한 사람은 하나도 없을거다. 결정적 챤스에서 맨날 병살타만 치지, 수비도 못하지, 그러다 점수차가 커져 승패가 확연히 갈리면 그제서야 홈런을 펑펑 치는 그런 선수였으니까. 그의 기록은 외형상으로는 화려하다. 92년도, 타율은 .257에 불과했지만 20홈런에 88타점을 기록하며 신인왕에 올랐던 캐로스는 95년 .298에 홈런 32개를 치며 전성기를 맞는다. 박찬호가 풀타임 메이져리거가 되던 96년부터 2000년까지도 한해를 제외하고는 서른개 이상의 홈런과 100타점 이상을 기록하는 저력을 보이는데, 아까도 말했듯이 이 홈런들은 대개가 별 영양가 없는 거라는 게 문제다. 무사 2루에서 삼진, 주자가 1, 2루에 있으면 병살타. 앞날을 예언하는 데 별 소질이 없던 나지만 캐로스가 타석에 들어섰을 때는 용한 점쟁이였다. 다저스가 예나 지금이나 FC(football club, 즉 축구 스코어만큼 득점력이 약하다는 뜻) 다저스로 불리우는 데는 중심타자였던 캐로스의 닭질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스윙 크기로는 타이거 우즈 못지 않던 몬데시도 한 축을 담당했지만 말이다. 99년 유일하게 3할을 넘기며 마지막 불꽃을 태웠던 그는 2000년 2할5푼, 2001년 .235를 기록하며 본격적인 쇠락 기미를 보이는데, 그때 찬호 경기를 보면서 얼마나 캐로스를 미워했는지 모른다.


박찬호가 텍사스로 이적했을 때, 난 다저스의 물방망이가 뿜어내는 답답함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특히 캐로스같은 1루수 때문에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마냥 기뻤다. 하지만.


최희섭이 2003년 풀타임 메이져리거로 자리잡으면서 캐로스와의 악연은 시작된다. 최희섭이 신통치 못한 활약을 보이자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렸던 시카코가 캐로스를 데려온 것. 전성기가 지나도 한참 지난 캐로스는 하지만 시카코에서 펄펄 날았다. 초창기만 해도 안타 대비 타점이 극히 낮은 그다운 모습을 보이다가 후반기 들어서, 특히 최희섭이 캐리우드랑 부딪혀 머리를 다친 뒤부터는 쳤다 하면 결승홈런이고, 적시타였다. 300승을 노리던 클레맨스의 꿈을 좌절시키는 역전 홈런을 비롯해서 연일 알토란같은 활약을 펼친 그는 결국 최희섭에게 크나큰 심적 압박을 가했고, 머리부상에서 돌아왔을 때 그의 자리는 더 이상 없었다. 물론 최희섭이 그 후 잘했으면 모르겠지만, 심약하기 그지없어 챤스에도 속절없이 약했던 최희섭은 그 긴장감을 이겨내지 못했다.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하마터면 우승까지 할뻔하는 등 커브스가 근래 들어 보기드문 성적을 올리는 순간, 최희섭은 벤치에서 그 광경을 봐야 했다. 캐로스가 기록한 성적은 타율 .286에 홈런 12개, 40타점. 시즌의 절반만 나와서 거둔 성적이다. 2001년과 2002년, 두배나 많은 타석에 들어서 각각 홈런 15-63타점, 홈런 13-73타점에 그친 선수 치고는 보기드문 활약이다. 그를 보면서 난 한탄했다. 찬호 던질 때는 그리도 못하더니, 왜 하필 지금이냐고.


2. 올메도 세인즈

플로리다에서 준수한 활약을 펼치다 다저스로 온 최희섭은 극심한 마음고생에 시달린다. 중량감 면에서 캐로스와 비교할 수 없는 숀 그린과 플래툰을 해야 했기 때문. 2001년 49홈런을 치기도 한 그린은 최희섭보다는 분명 한수 위의 타자였다. 천만 다행으로 숀 그린이 애리조나로 가면서 최희섭은 주전 1루수로 자리잡을 기회를 얻었는데, 트레이시 감독은 최희섭의 좌투수 대처능력을 신뢰하지 않았다. 결국 최희섭은 올메도 세인즈와 플래툰을 해야 하는 신세에 놓였다. 세인즈는 통산타율이 270이 안되고, 홈런을 가장 많이 친 게 99년의 11개라는 데서 보듯, 숀 그린은 물론 캐로스보다도 못한 타자, 최희섭이 주전 1루수를 따내는 건 시간문제인 듯 보였다. 하지만 최희섭은 초반에 너무도 못했다. 3-4게임마다 하나씩 안타를 쳤다. 타율은 1할대를 넘나들었다. 최희섭을 플래툰으로 계속 기용해 주는 게 고마웠을 정도. 반면에 세인즈는 지나치게 잘했다. 타수가 좀 적긴 해도 4월을 마친 그의 타율은 .355, 4월 막판에 4안타를 치며 2할을 겨우 넘긴 최희섭과 여러 모로 비교가 되었다.


딱 한번 2할대로 내려간 걸 제외하면 세인즈는 시즌 내내 3할대를 지키고 있고, 영양가 있는 홈런도 곧잘 쳐냈다. 그가 중요한 챤스에서 홈런이나 안타를 칠 때마다 내 한숨은 늘어만 갔다. 그의 타율은 현재 .303, 최희섭보다 6푼 이상 높다. 또한 최희섭보다 타석 수가 40개나 적음에도 타점은 더 많다는 점(세인즈 32, 최희섭 31), 그리고 자신의 역대 최다 홈런이 11개인 선수가 지금까지 7개의 홈런을 쳤다는 것은 올해 그의 페이스가 심상치 않음을 보여준다. 오늘 기사에도 나왔지만 클러치 상황에서 최희섭의 타율이 .161에 불과하며, 3연타석 홈런을 치던 날에도 경기 막판 찾아온 1사 1, 2루 찬스에서 특급좌완도 아닌 멀홀랜드에게 삼진을 당하는 장면은 세인즈와의 플래툰이 시즌내내 계속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심어준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거다. 세인즈가 진작부터 이런 모습을 보여줬다면 다른 팀에 가서 주전 자리를 차지했지 않았겠느냐. 좌완 전문이라 해도 3할타자를 썩혀둘 팀은 별로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왜 평소 못하다가 최희섭이랑 경쟁하는 상황이 되니까 갑자기 잘하는 건가. 제발 인간이 되자. 평소에 잘해야지, 남이 잘되는 꼴을 못봐주겠어서 젖먹던 힘까지 내는 건 옳은 길이 아니다. 천천히 가려다 막상 추월하려면 갑자기 악셀레이터를 밟는 운전자들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캐로스나 세인즈를 난 이해할 수 없다.


* 참고로 난 벨트레가 FA 계약을 앞둔 작년에 48개의 홈런을 친 것에 대해 비난하지 않는다. 그것도 재주라면 재주고, 더 중요한 건 그게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지 남에게 딴지를 거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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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이.박, 어쩌다 마, 등이 주류를 이루는 우리 프로야구에 비해, 미국 야구에는 수많은 성이 존재하며, 성만으로도 충분히 특정선수를 지칭할 수 있다. 예컨대 '스몰츠' 하면 모두 애틀란타의 존 스몰츠를 떠올릴 테고, 가니에 하면 다저스의 철벽 마무리 에릭 가니에를 말할 것이다. 성이 같다고 한집안은 아니겠지만 어느 성이 가장 잘하나를 한번 따져봤다. 심심해서.

1. 오티즈(Ortiz) 家: 한때 명문이었는데 몰락의 징후가 보이는 가문
-러스 오티즈(애리조나): 2003년 21승을 거두며 전성기를 맞았지만, 작년엔 15승, 올해는 4승6패로 점점 밑천을 드러내고 있다. 방어율이 무려 5.88

-라몬 오티즈(신시내티): 그래도 15승 투수였는데 작년부터 슬슬 맛이 가더니-5승 7패-올해는 3승5패에 방어율이 6점대다. 나이도 서른둘밖에 안된 사람이 그럼 쓰나.

-데이비드 오티즈(보스톤): 보스톤서 뛰어 우리에게 친숙한데, 그는 내가 아는 선수 중 표정이 가장 무섭다. 초창기엔 눈빛만 무서웠는데 2년 전부터 드디어 거포로 등극했다. 2002년부터 홈런 숫자가 32-39-41개, 올해도 지금까지 19개를 치고 있다. 오티즈 가의 마지막 희망이랄까.


2. 존스(Jones) 家: 꾸준한 면이 돋보이지만, 특출난 선수가 없었던 게 약점.
-치퍼 존스(애틀란타): 통산타율이 .303일 정도로 정확한 타자. 98년부터는 홈런도 30개 이상을 치다가, 작년도 20개로 주춤했다. 애틀란타의 간판선수지만 카리스마가 부족해 보인다.

-앤드류 존스(애틀란타): 야구 천재로, 중견수 수비가 굉장히 좋은 선수다. 홈런 서른개 정도는 언제라도 때릴 수 있는 선수...인줄만 알았는데, 올해 홈런 24개로 메이져리그 전체 1위다. 이런 추세라면 50개도 가능할 듯. 존스 가에도 드디어 카리스마를 갖춘 선수가 등장한 것 같다.

-토드 존스(플로리다): 보스톤 있을 때도 봤지만 뭐 그렇게 대단한 선수란 생각은 안들었다. 그런데 올해, 플로리다의 마무리를 책임지며 13세이브(방어율 1.45, 블론세이브 2)를 올리고 있다.


3. 마르티네스(Martinez) 가: 명문 중의 명문으로 알려진 가문.
-페드로 마르티네스(보스톤): '외계인'이란 별명이 붙는 현역 최고의 투수. 사이영 상만 3번을 받았고, 통산 방어율도 2.72이다. 지구인으로 귀화했다는 설이 있었으나 메츠로 간 올해 다시 외계인 모드로 복귀했다. 8승2패에 방어율 2.71. 마르티네스 가의 가장이라 할만하다.

-티노 마르티네스(양키스): 양키스 시절, 김병현에게 극적인 9회 2사후 동점홈런을 친 선수. 3할 타율은 한번도 기록하지 못했지만, 30홈런, 100타점은 언제나 올릴 수 있는 선수. 67년생이니 이제 은퇴할 때가 된 것 같은데, 다시 양키스로 가서 홈런 13개를 치며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

-빅터 마르티네스(클리블랜드): 작년도 2할8푼에 23개의 홈런을 치며 주전 자리를 확보한 28세의 포수. 두명만 쓰면 허전하니 써봤다.

-에드가 마르티네스(전 시애틀): 통산타율이 3할을 넘는 대단한 선수였다. 브렛 분, 이치로와 더불어 시애틀이 단일 시즌 최다승 기록인 116승을 올릴 때 맹활약했었다. 명예의 전당에는 글쎄, 힘들 것 같은데?

4. 라미레스(Ramirez) 가: 전통의 명문가로, 올해도 잘 나가고 있다.
-매니 라미레스(보스톤): 클리블랜드 시절 타점기계로 명성을 떨쳤다. 98년 145개, 99년 165개를 기록했다. 보스톤에 와서도 여전히 잘하고 있고, 부진하다던 올해도 홈런 19개에 66타점을 기록 중이다. 라미레스 가의 맹주.

-호라시오 라미레스(애틀란타): 봉중근을 제끼고 선발 자리를 차지해 내가 좀 얄밉게 생각하는 선수. 뭐 그렇게 위력적인 볼을 던지는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12승 정도는 언제라도 할 수 있다. 올해 7승 4패에 4.75의 그저그런 방어율을 기록 중인 카리스마 없는 선수.

-아라미스 라미레스(커브스): 새롭게 떠오르는 라미레스가의 총아. 피츠버그 있을 때는 그저그런 선수인 줄 알았는데, 시카코로 온 뒤부터 정말 잘한다. 세상에, 그 투박한 외모에서 .318의 정교함이 있을 줄이야! 홈런도 작년 36개, 올해도 17개를 기록 중이다. 2년 전 챔피언쉽 시리즈에서 커브스 관중이 이 선수의 이름과 ‘Thanks to Pittsburg!'라는 글귀를 써놓은 걸 보고 최희섭도 저렇게 사랑받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안타까움을 느꼈었다. 이제 겨우 27세니 앞으로 더 커나갈 선수.

5. 윌리암스(Williams) 가: 최고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군소명문 정도는 차지할 수 있는 집안이었는데, 노쇠화로 몰락 위기다.
-우디 윌리암스(샌디에고): 최희섭이 이선수만 만나면 번번히 삼진을 당하곤 했는데, 폭포처럼 떨어지는 변화구가 아주 위력적이다. 2003년 세인트루이스에서 18승을 올리기도 했지만, 마흔 가까운 나이 탓인지 작년부터 영 성적이 신통치 않다. 작년 11승, 올해는 3승5패에 방어율이 4점대다.

-버니 윌리암스(양키스): 타격왕을 차지한 경력이 있는 양키스의 간판타자. 중견수로 수비범위도 아주 넓다. 68년생이라 그런지 2003년부터 2할6푼대에 머물고 있고, 그러다보니 통산타율도 3할에 턱걸이하고 있다. 올 시즌이 끝나면 은퇴하지 않을까 싶은 선수. 챔피언반지를 많이 꼈으니 은퇴해도 여한이 없을 듯.

-제로미 윌리암스(커브스): 샌프란시스코에서 키우려고 해봤는데 기대에 못미쳤는지 커브스로 보내버렸다. 지난 시즌 10승을 올렸고 스물네살로 성장 잠재력은 있어 보이지만, 잠재력이 있다고 다 프라이어처럼 되는 건 아니다. 올해 1승2패, 방어율 4.91.

-매트 윌리암스(전 애리조나): 박찬호랑 싸우기도 했던 선수인데, 샌프란시스코 시절 강타자로 빛나는 활약을 했었다. 은퇴해서 명문가 합산하는 데는 들어가지 못함.

-마이크 윌리암스(피츠버그): 피츠버그가 그다지 야구를 잘하는 팀은 아니지만, 이선수가 있어서 그래도 뒷문은 든든했다. 2002년이 전성기여서, 무려 46세이브를 올렸다. 필라델피아에서 한번 써볼까 하고 데려갔지만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다. 작년부터 던진 적이 없는데 아직 은퇴는 안한 것 같다. 뭐, 그렇다고 점수에 크게 보탬이 되지는 못하지만.

6. 로드리게스(Rodriguez) 가; 대표적인 명문가로, 최고명문가 후보다. 조선시대로 따지면 정승을 여럿 배출한 그런 집안.
-알렉스 로드리게스(양키스): 로드리게스 가의 적자. 수비도 좋고, 타격도 뛰어날 뿐 아니라 도루능력도 갖췄다. 지터보다 수비가 더 좋지 않을까 했는데 양키스로 간 뒤 지터에게 밀려 3루수를 보고 있고, 양키스에 간 후유증으로 작년 시즌 가장 부진했다. 서른살인데 401개의 홈런을 치고 있고, 해마다 40개 이상은 치고 있으니 행크아론의 기록에 도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작년 챔피언쉽 시리즈 때 손을 써서 스타일을 구겼지만, 올해는 .332에 20개의 홈런을 치면서 양키스를 이끌고 있다.

-이반 로드리게스(디트로이트): 피아자와 더불어 최고의 공격형 포수로, 9년 연속 3할 이상을 기록했다가 2003년 .297로 아깝게 10년 연속에 실패했다. 터프한 외모를 보면 홈런 40개는 칠 것 같은데, 의외로 홈런이 20개가 안된다. 이렇게 훌륭한 선수가 왜 자꾸 팀을 바꾸는지, 그리고 왜 하위팀인 디트로이트에 가 있는지 이해가 잘...

-펠렉스 로드리게스(양키스): 한때 샌프란시스코와의 경기는 7회까지 뒤집지 못하면 못이긴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게 다 얘 때문이다. 8회를 얘가 막고, 9회를 롭 넨이 막았으니까. 시속 100마일에 가까운 강속구를 뿌리는데, 주무기가 그거 하나다 보니 서서히 한계를 드러내, 필라델피아로 간 작년부터는 아예 맛이 갔다.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올해는 방어율이 무려 5,40, 2001년 1.68의 방어율을 올리던 시절은 이제 아련한 추억이 되고 있다. 나이도 서른셋밖에 안됐는데 은퇴하면 뭐하려고 그러는지... 직구는 그만 가다듬고 변화구를 익히라고 조언해 주고 싶다.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애너하임): 2002년 월드시리즈 때, 이선수만 나오면 애너하임 관중들이 열광했다. 삼진을 어찌나 잘 잡는지 별명이 'K-rod'였을 정도. 통산 202이닝에서 269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볼이 무시무시하게 빠르고, 떨어지는 변화구도 죽이는 수준. 퍼시벌이 떠난 애너하임의 마무리를 책임지고 있는데, 그게 좀 부담스러웠는지 작년엔 13개의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며 28세이브밖에 못올렸지만, 올해는 제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나이가 겨우 스물세살이라 알렉스와 더불어 로드리게스가의 영광을 책임질 것으로 보인다.

7. 영(Young) 가: 최고의 정승이었던 싸이 영을 배출한 집안이다. 하지만 지금은 특출난 선수가 없어 참가에 의의를 둔 가문이되었다.
-크리스 영(텍사스): 26세로 ‘영 가’에 걸맞는 선수다. 키만 컸지 별볼일 없는 선수라고 생각했는데, 올해 7승 4패에 방어율 3.21로 2선발 역할을 다해주고 있다.

-마이클 영(텍사스): 유격수의 수비부담을 안고서도 2003년부터 200개 이상의 안타와 3할 타율을 올리고 있다. 지터나 에이로드보다야 카리스마가 떨어지지만, 올해도 .320로 꾸준한 활약을 보이는 중. 박찬호 소속팀이라 친근감이 드는 선수죠. 29세로 이선수가 있는 한 텍사스에서 유격수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 듯.
-에릭 영(샌디에고): 다저스에서 박찬호랑 같이 뛰던 시절이 엊그제같은데, 벌써 서른여덟살이 되었다. 2003년에 1할대를 치며 은퇴하나 했는데, 작년도 텍사스로 와서 거짓말처럼 부활했다. 올해도 3타수 1안타로 3할대를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은퇴할 듯싶다.

-드미트리 영(디트로이트): 신시내티 시절 3할도 여러해 쳤었는데 디트로이트 와서는 그냥 5번타자 정도의 활약을 펼쳐주고 있다. 무섭게 생겨서 투수들이 쪼는데, 외모에 비해선 홈런 수나 타율이 높지 않다.

8. 곤잘레스(Gonzalez) 가: vlad 님의 조언을 듣고 급조되어 참가한 가문. 가문간의 결속력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만만치 않은 가문이다.
-루이스 곤잘레스(애리조나): 김병현과 같이 뛰었던 선수라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성격이 좋아 보이는 얼굴과 달리 홈런 57개를 때리기도 했지만, 3년 전부터 외모처럼 부드럽게 살기로 한 것 같다. 2002년부터 홈런 숫자는 28-26-17개.

-알렉스 곤잘레스(플로리다); 수비는 좋지만 타격 하나만 놓고 봤을 때 과연 메이져리그 선수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 최희섭이 플로리다서 뛸 때 그렇게 느꼈었는데, 올해는 왜 2할8푼을 치고 있지? 이 페이스만 유지하면 공수를 겸비한 선수가 되는데...

-또 알렉스 곤잘레스(탬버베이): 커브스 시절 플로리다의 곤잘레스와 동명이인 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이 선수 역시 수비는 좋은데 타격이 돈트렐 윌리스보다 못하다. 올해 플로리다 알렉스가 철든 것처럼, 이 선수도 타율 .262로 커리어 하이를 기록 중이다.

-후안 곤잘레스(클리블랜드): 한때 곤잘레스 가를 혼자 이끌었던 선수로, 타점머신이다. 2001년까지 100타점은 기본으로 했고, 기분 나쁠 땐 157타점도 기록했던 무서운 선수. 작년부터 노쇠 기미가 역력한데, 이제는 루이스한테 가장 자리를 넘겨줘야 할 듯. 근데 루이스도 올해 삽질을....
9. 리(Lee) 가: 갑자기 떠오르는 신흥명문으로, 올해 명문가를 뽑는다면 단연 최고다.
-카를로스 리(밀워키): 76년생으로 화이트삭스에서 기대하는 유망주였고, 2년 전부터 활짝 꽃을 피우고 있다. 데뷔 첫타석에서 홈런을 쳤으며, 데뷔 2년째인 2000년 3할을 넘겼고 2년 전부터는 30홈런 이상을 계속 치고 있을 정도로 성장이 빠르다. 밀워키로 옮긴 올해는 단연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는데, 홈런 20개에 타점이 무려 69점이다. 얼마 전 ‘Lee의 전쟁’을 벌였던 데릭 리와 더불어 리 가를 이끄는 쌍두마차다.

-트래비스 리(탬버베이): 아마 때 명성이 자자했던 백인 1루수라 신생팀이던 애리조나가 1천만달러의 계약금을 선뜻 지불했다. 애틀란타 올림픽서 주전 1루수로 .382의 타율을 올렸고, 케리 우드, 토드 헬튼에 이어 전체 3순위로 지명된 유망주지만, 데뷔 후에는 그들과 정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다 알다시피 천만달러가 선수의 성적을 보장해 주는 건 아닌지라, 첫해 기록했던 .269의 타율조차 유지하지 못하고 죽을 쑤다가 결국 트레이드됐다. 탬버베이로 간 뒤 자기 자리를 찾나 싶었는데, 쓸데없이 양키스로 갔다가 완전히 망했다. 99년 박찬호에게 데뷔 첫 만루홈런을 기록해 내 눈밖에 난 바 있다.

-데릭 리(플로리다): 세명의 '리' 중 가장 못생겼지만, 일본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레온 리의 아들이니 뼈대있는 집안의 후손이라 할 수 있다. 해마다 .280의 타율에 30개의 홈런을 칠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했는데 올시즌 활약은 그야말로 경이적이다. 타율 .388, 타점 64, 홈런 22개. 잘만 하면 트리플 크라운이다. 이 선수랑 최희섭을 바꿨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 서른살을 맞아 기량이 만개한 걸까, 아니면 벨트레처럼 한해 그러다 마는 건지 계속 지켜볼 필요가 있다.

-클리프 리(인디언스): 작년 시즌 14승을 올리며 일약 선발진에 진입한 선수로 올해는 3점대 방어율에 8승을 거두고 있다. 스물일곱밖에 안됐으니 앞으로 리 가의 핵심인물이 될 듯.

-이상훈(전 보스톤): 자료를 뒤지다보니 이상훈의 이름도 올라 있다. 2000년 보스톤에 가서 11.2이닝에 4자책, 3.09의 방어율을 남긴 채 퇴출된 그, 어깨가 싱싱했던 95년에 메이져리그에 갔다면 랜디 존슨까지는 안되더라도 알 라이터 정도는 되었을 텐데. 3년 전 한국시리즈 때 3점차의 리드를 못지키고 이승엽한테 석점 홈런을 맞을 땐 정말이지 마음이 아팠다.

10. 에르난데스(Hernandez) 가: 역시 전통의 명문이라 불릴 수 있다.
-리반 에르난데스(워싱턴): 플로리다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기도 했던 이 선수는 가문의 마당쇠라 불릴 만하다. 던졌다면 최소한 8회까지는 가고, 15승에 200이닝 이상을 책임져 줄 선수다. 아무리 무리해도 탈이 안나는 듯, 혹시 이 선수 고무팔 아닐까? 꽤 오래 본 것 같은데 이제 겨우 서른살이란다 (쿠바 애니 그보단 더 많겠지?)

-올랜도 에르난데스(화이트삭스): 69년생이라지만 사실은 마흔이라는 설이 있다. 공은 느린데 왜 타자들이 못치는지 모르겠고, 양키스 시절 포스트시즌에서 맹활약한 기억이 난다. 투구폼이 특이하기로 유명한 이 선수는 올해 시삭스에서 7승을 올리며 시삭스 돌풍에 기여했다.

-라몬 에르난데스(샌디에고): 카리스마는 없지만 2할7푼에 홈런 스무개 정도는 칠 수 있는 포수.

-로베르토 에르난데스(메츠): 구대성의 불펜 라이벌인데, 요즘은 워낙 잘나가서 라이벌이라고 우기기가 미안하다. 빠른 볼을 가지고 있으며, 1.99의 방어율이 말해주듯 불펜투수로 그 정도면 최상급이다. 5월 말부터는 아예 자책점이 없을 정도.

결론: 내가 뽑은 최고의 명문가는, 시점이 올해인만큼 당연히 리 가다. 데릭리와 카를로스 리만한 타자가 없고, 트래비스 리가 점수를 깎아먹었지만 클리프 리가 투수에서 받쳐줘 최고 명문가로 등극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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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아 2005-06-28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구 관련 페이퍼는 알라딘에서 처음 보는 것 같네요. 흥미롭게 잘 봤습니다. 재미있는 분석이네요. 저는 진짜 야구 집안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베리 본즈 집안이나 포수 3형제로 유명한 몰리나 집안이나 칼 립켄 주니어 집안 등등 말이죠. 추천 들어갑니다.

니콜키크더만 2005-06-28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빈현님/허접한 제 서재를 방문해 주시고 추천까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재 만들고 나서 처음 받은 추천과 댓글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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