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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 - 하루 일과로 보는 100만 년 시간 여행
그레그 제너 지음, 서정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알파벳은 고대 페니키아인들이 만든 원형이 선사시대 동굴 벽화에 처음 사용되면서 신성문자와
설형문자를 새긴 밀랍판에 이르는 의사소통 전통을 따라 발전한 것이다. 냉장고 속에는 지금은 세계인이 즐기지만 과거에는 아즈텍 사람들만 먹던
음식이 들어 있다. 옷장에는 5,000년 전에 고대 인도에서 재배를 시작한 식물 섬유로 만든 옷이 있다. 침대에는 오래 전 청동기시대 에
투탕카멘왕이 입던 아마포 속옷과 많은 점에서 비슷한 침대보가 깔려 있다. 나는 현대인이 어느 토요일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일상적으로 겪을 일들의 역사와 유래를 이 책에 담았다. - '서문' 중에서
우리들은 어떻게 지금과
같은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책의 저자 그레그
제너는 다양한 역사 스토리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영국의 대중 역사평론가. BBC 인기 방송 프로그램인 '무서운
역사(Horrible Stories)' 시리즈의 자문역으로, 저자는 요크대학을 졸업한 후 박사가 되려는 계획을 포기하고 10년 동안 역사
다큐멘터리와 TV 드라마를 제작하는 데 전념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보고 먹고 입는 것들에 숨겨진 흥미롭고 대단한
역사를 특유의 유머러스한 문체로 담아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불가피한 배설 행위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처리했다. 배설물에 역겨움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변을 처리하는 문제는 인류 역사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였다. 문명사회가 가장 처음 부딪힌 큰 문제는 '얼마나 멀리 떨어진 곳에 그 많은 대변을 버려야 탈이 없을까'
였다.
기원전 2600년 경
인더스 강 계곡에 세워진 선진적인 도시문명 하라파에는 변기 시트에 앉아 볼일을 보면 바로 하수도로 떨어지고 오수를
멀리 떨어진 곳으로 흘려보내는 장치까지 있었다. 물론 이는 상류층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다. 반면에 수천 년이 지난 17세기 프랑스 베르사유
같은 화려한 왕궁 곳곳에 악취를 풍기는 대변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루이 14세는 진홍색 휘장을 치고 바로 그 자리에서 볼일을
보곤 했는데, 다른 귀족들도 마찬가지였으며, 심지어 변기에 앉아 식사를 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시간을 초, 분, 시간, 일, 주, 월, 년 등 표준화된 단위로 엄격하게
구분하지만, 이러한 구분은 만고불변의 진리는 아니며, 혼돈을 피하고자 인간이 수세기에 걸쳐 사용해온 약속이자 관례일 뿐이다. 1793년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프랑스를 장악한 급진주의 지식인들은 프랑스 사회를 백지 상태에서 재설계했다. 이들은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부터 지금까지도 확고한
진리로 받드는 24시간제를 폐지하고 하루를 10시간으로 표시하는 10진법 혁명을 단행했다. 하지만 이 혁명은 18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관련자
전원에게 수모를 안겼다.
감자, 악마의 음식에서
구황식품으로
1596년 스위스의 식물학자
카스파 바우힌은 감자에 솔라눔 투베로숨 에스쿨렌툼이란 학명을 붙였지만, 자신의 저서에 감자를 기괴하게 묘사한
스케치와 퉁퉁배, 음란한 생각, 나병 등을 일으킨다는 악의적인 내용을 실었다. 남사스러운 상황을 유발하여 로맨틱한 만남을 확실히 망칠 수 있는
3대 요소다.
그가 왜 이같은 결론에 이르렀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옹이가 지고 울퉁불퉁한 감자의 겉모습을 보고 나병 환자의 문드러진 사지를 떠올렸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일어난 광우병
사태로 영국산 쇠고기의 신뢰도가 추락했듯이 그의 끔찍한 묘사 때문에 감자의 평판은 땅으로 떨어졌고, 사람들은 제 아무리 극심한 기근이 닥쳐도
감자만은 절대로 먹지 않았다.
프랑스의 식품학자
앙투안 오귀스탱 파르망티에는 프로이센의 전쟁 포로로 잡혀 있을 때 말에게나 먹이는 감자를 식량으로 배급받았다.
3년 동안 포로로 지내면서 비천한 음식으로 취급받던 감자만 먹었는데도 그는 튼튼한 몸이 되어 풀려났다. 결국 그는 감자가 악마의 음식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일반인들에게 감자가 방귀를 유발하며 사지를 썩게 하는 최음제가 아니라 훌륭한 빵 대용품임을 알리려고
노력했다.
오늘날 감자 요리법에 그의 이름이
붙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 되었다. 전분이 많은 감자가 영양학적으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 말 사료에서 기근을 이겨낼 구황식품으로 서서히
승격된 데도 그의 노력이 컸다. 하지만 흉년에나 먹던 감자가 아일랜드에선 주식主食이 되고, 결과적으로 병충해에
약한 감자가 한꺼번에 고사하자 대기근이 발생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끊는 비극의 연출가가 되기도 했다.
고양이, 요물에서
애완동물로
요즘 들어 인터넷 문화 때문에 고양이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이 도를 넘어섰지만 이집트인은
한 술 더 떠서 고양이가 죽으면 미이라로 만들어 신성한 도시 부바스티스에 묻었으며,
고양이가 죽을 때마다 눈썹을 밀고 애도하는 등 고양이를 진정으로 숭배했다. 고양이는 여신 바스테트를 상징했기
때문에 한 마리라도 죽인 사람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리스의 작가
디오도로스 시켈리오테스는, 전차를 몰고 가다 실수로 고양이를 깔아 죽인 로마 병사가 분노한 폭도에게 폭행을 당해
죽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그 정도로 이집트인의 고양이 숭배는 대단했기에 페르시아의 황제 캄비세스2세는 병사들에게
펠루시움 전투에 고양이를 데리고 나가라고 명령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야옹거리는 고양이들을 들고 있으면 상대편인 이집트 병사들이 죄책감 때문에
화살을 쏘지 못하리라고 계산했기 때문이다.
중세인들은 대부분 고양이를 매우
싫어했다. 독일의 수녀원장 힐데가르트 폰 빙엔은 고양이가 자신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에게만 충성하기 때문에 털가죽을 뒤집어쓴 용병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또 고양이를 매춘과 결부하는 저술가가 많았다. 흑사병이 나돌 때마다 그 책임을 뒤집어썼고, 마녀사냥이 벌어졌을 때도 악마 숭배와
이단과 관련이 있다며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이런 주기적인 숙청에도
불구하고 고양이는 끈질지게 살아남아 점차 애완동물로 인기를 끌게 되었다. 아이작 뉴턴은 고양이를 친구처럼
좋아했으며, 작가 마크 트웨인은 자기가 키우는 고양이들에게 사워 매시(위스키의 원료), 아폴로나리스(로마의
순교자), 레이지(게으름뱅이), 애브너(구약성서 속의 이스라엘 장군), 프로일라인(아가씨를 뜻하는 독일어), 버펄로 빌(미 서부 개척시대의
총잡이), 패민(굶주림), 클리블랜드(오하이오주의 도시명) 등의 이름을 붙여주며 좋아했다.
중세시대에도 브래지어를
착용했다?
오스트리아 동 티롤의 렝베르크 성은 흰색 회칠, 비스듬한 회색 지붕, 네모반듯한 구조가 특징이며 울창한 계곡 분지에
방어용 둔덕을 쌓고 그 위에 세운 12세기 궁전이다. 외관만 보면 사진이 예쁘게 찍히겠다는 인상이 들지만 그 안에는 사람들을 경악에 빠뜨린
물건들이 숨겨져 있다.
2012년 복원 공사에 참여한
인부들은 15세기에 만든 바닥 널을 수리하다가 그 밑에서 비밀 금고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시간의 풍상과 좀의 공격을 이기고 오랫동안 살아남은
옷감과 옷이 보관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는 어깨끈이 달린 중세 브래지어 네 벌이 있었는데, 왕의 유해와 성배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흥밋거리가 아니었지만 복식사학자들은 뛸 듯이 놀랐다. 그때까지는 브래지어가 20세기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브래지어는 끈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가슴을 감싸는 형태였다. 14세기에 의사 앙리 드 몽드빌은 "어떤 여자들은 가슴을 보정하고 꽉 조이기 위해 드레스
안에 주머니 두 개를 넣는다. 매일 아침 그 주머니에 넣고 거기에 달린 밴드로 가능한 만큼 조인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따라서 여성의 가슴을
모으고 끌어올려주는 원더브라가 600년 전에 존재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맥주는
'액체빵'
맥주를 만드는 법은 문자의 발명 덕분에 잊히지 않고 전승되었다.
수메르의 기록만 보더라도 알코올의 중요성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실제로 인류 최초의 문서 가운데는 맥주
생산에 관한 행정 기록이 있다. 수메르어로 맥주는 '액체 빵'을 뜻했는데,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는 노동자들이
날마다 맥주를 배급품으로 받았다.
맥주는 고대 이집트에서는
상류층이 마시는 귀한 술이었지만, 고대 지중해 문화권에서는 긴 바지를 입고 숲속에 살며 문명사회의 가장자리를 배회하면서 위협을 가하는 야만인이나
마시는 술로서 악명을 떨쳤다. 그러나 게르만 종족 중에서도 로마인에게 한 번도 정복된 적이 없는 유럽 북부 종족은 계속해서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들은 맥주 외에도 벌꿀술인 미드를 매우 좋아했고, 미드는 맥주와 더불어 훗날 바이킹과 앵글로색슨으로
불리게 된 종족의 정치와 사회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실제로 이 벌꿀술이 얼마나 중요하게 취급되었는지는 정치 권력의 집결지인 연회장이
미드홀mead hall로 불렸다는 데서 짐작할 수 있다.
조지 워싱턴이 마약
중독자?
조지
워싱턴과 폴 리비어는 미국 독립전쟁(1775-1783)에 참전한 독립 영웅으로 유명하지만, 두
사람이 치의학이라는 고리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리버어는 재능 있는 은세공인이며 프랑스 이민자의 아들로서 포샤르의 뒤를
이어 치과 치료법을 고안하고 버터, 빵, 설탕, 화약 등으로 치약을 만들었다.
워싱턴은 브라질
호두를 치아로 깨는 버릇 때문에 이가 하나만 남고 모조리 빠졌다고 한다. 그래서 필라델피아의 치과의사가 특별 제작한 조잡한
의치를 착용할 수밖에 없었다. 상아, 다른 사람의 치아, 금, 납으로 만든 의치 덕분에 음식물을 씹고 나라의
운명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필요한 말을 할 수는 있었지만 의치로 인한 지독한 통증을 달래기 위해 아편틴크(아편으로
만든 약물)에 의존했다. 이는 헤로인과 비슷한 마약을 상용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워싱턴을 미국의 독립 영웅이라는 기존 이미지 대신
극심한 치통에 시달리거나 마약에 취한 모습으로 관점을 수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현대인의 생활방식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이와같은 궁금증을 가졌던 저자의
탐구열로 인해 이 책이 탄생할 수 있었다. 우리들은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 가고 아침을 먹고 세면을 하고 옷을 골라 입고 일터로 가거나 약속
장소로 나간다. 이후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함께 식사하고 술을 마신다. 일과를 마치고 나면 이를 닦고 잠지리에 든다. 이를 마치 의식처럼
되풀이하는 게 바로 우리들의 일상이다.그냥 지나칠 수 있는 우리들의 일상에 얽힌 문화사를 줄줄이 읊어주는 저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