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재즈 시대 이야기 ㅣ 울림 2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마이너스 옮김 / 해밀누리 / 2025년 11월
평점 :
'재즈 시대'라는 이름은 스콧 피츠제럴드 자신이 명명한 시대의 이름이다. 이는 주로 1920년대 미국의 사회, 문화, 경제적 격변기를 일컫는 용어였다. '표효하는 20년대'라고도 불린 이 시기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종전 직후부터 1929년 뉴욕 대공황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짧지만 격렬했던 황금기였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사진, 책표지)
이 소설의 저자 피츠제럴드는 미국 태생으로 제1차 세계대전 참전 후 출판계로 방향을 돌려 <낙원의 이쪽>(1920)을 발표하며 일약 문단의 스타가 되었다. 소위 '잃어버린 세대'의 대표적 인물로 부상한 그는 제2차 산업혁명 이후 번영을 구가하던 미국 사회의 허영과 낭만, 그리고 몰락의 정서를 탁월하게 묘사했다.
<재즈 시대 이야기>는 저자의 문학적 개성과 시대 인식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단편집인데 3부(마지막 플래퍼들, 환상들, 분류되지 않은 걸작들) 에 걸쳐 젤리빈, 낙타의 등, 메이데이, 도자기와 분홍색,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행복의 앙금, 산골소녀 제미나 등 총 11편의 단편소설을 싣고 있다.
마지막 플래퍼들
또한 이 시기엔 플래퍼가 등장했다. 단발로 머리를 짧게 자르고 직선형의 짧은 드레스를 입고, 공개적으로 춤을 추고 담배를 피우는 젊은 여성들은 전통적 여성상을 거부하며 여성 해방의 상징이 되었다. 라디오와 영화, 광고 산업이 일상을 바꾸며 도시가 팽창했고, 젊은 세대는 과거의 윤리보다 현재의 쾌락을 더 중시했다.
'젤리빈'이란 말은 옛 남부 연합 지역에서 '한평생 게으름이란 동사를 1인칭으로 활용하며 사는 사람'을 뜻한다. 즉 '나는 빈둥거린다. 나는 빈둥거려왔다. 나는 앞으로도 빈둥거릴 것이다'라는 식으로. 북부 사람들의 무심한 표현을 빌리자면 '거리의 한량閑良'이었다.
짐 파월은 젤리빈이었다. 짐은 초록빛 모퉁이에 서 있는 하얀 집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싸움 중에 총상을 입고 죽었는데, 당시 짐은 고작 다섯 살이었다. 이후 하얀 집은 한 여인이 운영하는 하숙집이 되었다. 짐은 그녀를 '메이미 아주머니'라고 불렀는데, 매우 싫어했다.
열여덟 살에 전쟁이 터지자 해군에 입대해 찰스턴 해군 조선소에서 일 년 동안 놋쇠를 닦았다. 브루클린 해군 조선소에서 또 일 년 동안 놋쇠를 닦았다. 전쟁이 끝난 스물한 살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동네의 한 정비소 위층에 방 하나 얻어 지내며 오후엔 차 손보는 일을 도와주며 지내고 있었다.
4월 어느 저녁, 파티 초대를 받았다. 마을 최고의 인기남이자 짐의 같은 반 친구 클라크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컨트리클럽 파티에 초대했다. 짐은 여자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무도회장 구석의 외딴 소파에서 구경만 하는 조건으로 클라크와 함께 파티장에 들어갔다.
"그곳엔 다 모여 있을 것이다. 그 옛 무리들, 오래전에 팔려나간 하얀 집과, 그 벽난로 위에 걸려 있던 회색 군복 차림의 장교 초상화로 보건대, 짐 역시 본래는 그 무리에 속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 무리들은 소녀들의 치맛자락이 해마다 조금씩 길어지고, 소년들의 바지가 어느 날 갑자기 발목까지 내려왔던 것처럼,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단단한 소집단으로 자라났다.
이름만 부르면 다 통하는 그 친밀한 사회, 이미 잊힌 첫사랑들로 엮인 그 작은 세계 속에서, 짐은 철저한 외부인이었다. 가난한 백인들과 어울려 다니는 사람. 남자들은 그를 알고 있었지만, 언제나 약간의 우월감이 섞인 태도로 대했다. 그가 모자를 벗어 인사하는 여자아이들은 세 명, 많아야 네 명. 그게 전부였다." - '젤리빈' 중에서

(사진, 젤리빈)
재즈 시대는 1920년대와 1930년대 초 재즈 음악과 댄스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시기다. 이는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아프리카계系 미국인 문화에서 유래해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시기엔 연 평균 9%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며 호황기를 누렸던 미국에선 중산층이 증가함에 따라 자동차가 대대적으로 보급된 '마이카 시대'가 열렸다.
'젤리빈'은 남북전쟁에서 패배한 남부의 젊음을 짐 파월이란 인물을 통해 재즈 시대의 도취와 허무를 보여준다. 이어서 작품 '낙타의 등'은 낙타로 분장한 남자의 우스꽝스런 오해 속에 사랑과 체면이 뒤엉킨 희극이며, '메이데이'는 1차 세계대전 후 혼란에 바진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상류층의 환락과 퇴역 군인들의 절망이 교차하는 모습을 그린다. '도자기와 분홍색'은 욕조 속의 한 여인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도발적인 희곡극을 보여준다.
영화에 출연해도 결코 손색이 없을 만큼 매력적인 여성 베티 메딜은 톨리도 태생의 스물여덟 살 변호사 페리 파크허스트를 사랑했다. 그리고 또 사랑하지 않았다. 너무 즐거운 인생을 보내고 있었기에, 결혼이라는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그들의 비밀 약혼은 이미 너무 길어져 언제든 무너질 듯 위태로웠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작은 키의 남자 워버튼이 페리를 부추겼다.
“그녀에게 초인처럼 굴어! 혼인 허가증을 받아서 메딜 집에 가. 지금 당장 결혼하자고 하든가, 아니면 영원히 끝내버리라고 말해!” - '낙타의 등' 중에서
전쟁은 승리로 끝났고, 승전국의 거리는 개선문으로 가로질러졌으며 흰색, 붉은색, 장밋빛 꽃들이 뿌려져 환희로 물들었다. 길고 긴 봄날 내내, 귀향한 병사들은 둥둥거리는 북 소리와 유쾌하고 울려 퍼지는 금관악기 소리를 뒤따르며 주요 도로를 행진했다. 그동안 상인들과 사무원들은 말다툼과 계산을 멈추고, 창문으로 몰려나와 창백한 얼굴로 밀집해 지나가는 군대를 엄숙하게 바라보았다. - '메이데이' 중에서

(사진, 고든 스테릿의 권총 자살)
환상들
이 파트는 네 개의 작품들이 소개된다. '리츠 호텔만큼 큰 다이아몬드'는 엄청난 부富를 감추고 있는 한 가족의 이야기인데, 미국식 욕망과 허영을 상징하는 탐욕과 파멸을 다룬다. '벤저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노인으로 태어나 점점 어려지는 벤저민 버튼의 생애를 통해 인생의 아이러니와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일깨워주는 우화이다.
이어서 '치프사이드의 타르퀸'은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 런던의 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로 누군가에게 쫓기는 친구를 숨겨주면서 벌어지는 풍자극이다. '오 루셋 마녀!'는 평범한 서점의 점원인 멀린 그레인저가 평생 한 여인을 멀리서 바라만보다가 기회를 놓치고 마는 이야기다.
나는 벤자민 버튼이 열두 살에서 스물한 살 사이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길게 이야기할 생각은 없다. 그 시절은 ‘정상적인 역성장’의 세월이었다는 것만 기록해두면 충분할 것이다. 열여덟 살이 되었을 때, 벤자민은 마치 쉰 살 남자처럼 꼿꼿했다. 머리숱은 더 많아졌고, 색깔은 짙은 회색으로 변했다. 걸음걸이는 단단했고, 목소리에서는 더 이상 노인의 떨림이 사라지고 건강한 바리톤의 울림이 났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를 코네티컷으로 보냈다. 예일대 입학시험을 치르게 하기 위해서였다. 벤자민은 시험에 합격했고, 신입생으로 등록되었다.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중에서

(사진, 벤저민 버튼)
분류되지 않은 걸작들
마지막으로 이 파트엔 세 편의 단편 작품이 소개된다. '행복의 앙금'은 사랑과 시련 속에서도 끝내 남겨지는 감정의 잔향殘香을 그린, 깊은 여운을 남기는 비극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미스터 이키'는 世俗化된 가족과 물질만능 사횔를 향한 풍자를 담은, 이키 가족의 기묘한 희극이며, '산골 소녀 제미나'는 격렬한 집안 싸움에 휘말리는 산골 소녀와 도시 남자의 비극적인 운명을 다룬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그녀를 돌봐주고 싶어 미칠 남자들이 한둘이 아닐 거에요.” 실제로 그랬다. 여기저기서 어떤 남자들은 그녀에게 다가왔다. 희망으로 시작해 경외심으로 끝났다. 그녀의 마음에는 사랑이 없었다. 단, 이상하게도 ‘삶’에 대한 사랑만은 남아 있었다. 세상 사람들에 대한, 거리에 나앉은 부랑자에게 나눠주는 빵 한 조각에서부터, 그녀에게 싼 고기를 건네는 정육점 주인에게까지 닿아 있는 사랑이었다. 다른 형태의 사랑은 이미 봉인되어 있었다. 그것은 늘 빛을 향해 고개를 돌린 채, 마치 나침반 바늘처럼 움직이지 않는 시신 속 어딘가에 묻혀 있었다. 그는 그저 마지막 파도가 심장을 덮칠 때를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 '행복의 앙금' 중에서

다시 피츠제럴드를 읽는 이유
우리들에게 널리 알려진 '위대한 개츠비'가 그랬던 것처럼, 그가 묘사했던 시대는 이미 지나간 것이 아니라 그 리듬이 여전히 우리의 삶 속에서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욕망, 허무, 그리고 사랑과 상실은 시대를 초월한 것으로 같은 박자를 연주한다. 그가 남긴 문장들은 지금도 재즈처럼 우리들 내면에 흐르고 있다.
#미국 #재즈시대 #재즈시대이야기 #피츠제럴드 #소설 #책추천 #요즘읽는책 #위대한개츠비 #벤저민버튼의시간은거꾸로간다 #해밀누리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