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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 도시로 읽는 독일사 - 철학과 예술과 과학이 살아 숨 쉬는 지성의 나라 독일 이야기 ㅣ 30개 도시로 읽는 시리즈
손선홍 지음 / 다산초당 / 2025년 2월
평점 :
독일은 신성 로마 제국, 중세 해상 무역의 강자 한자 동맹, 루터의 종교 개혁 운동, 30년 전쟁과 베스트팔렌 조약, 나폴레옹을 물리친 라이프치히 전투, 비스마르크의 독일 통일과 독일 제국 수립, 제1,2차 세계대전, 히틀러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인권 유린, 나치 전범 재판, 동서독으로 분단, 베를린 장벽 붕괴에 이은 통일 등 굵직한 역사를 써 내려 왔다. 독일의 역사지만 세걔사이기도 하다. - '책머리에'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 손진웅은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공부하며 독일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후 주독일대사관과 주스위스대사관 등에서 근무한 바 있으며 '독일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에 파견 근무하며 독일 통일 문제도 연구했다. 정년 퇴임 후 외교부 국립 외교원 명예 교수를 거쳐 현재 '독일 정치,문화 연구소'를 운영하며 한반도 통일 문제 관련 강연과 글쓰기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책은 총 8부로 구성되어 로마 제국의 서부 도시들, 로마 제국의 군사 기지였던 라인강변의 도시들, 중남부 지역의 도시들, 남부 바이에른주의 도시들, 자유와 한자 동맹의 북부 도시들, 중북부 지역 도시들, 동부 독일 지역 도시들, 프로이센 정신이 담긴 독일 정치의 중심지들 순으로 모두 서른 개 도시들의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시대 순서가 아닌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도시 위주로 풀어 간다.
트리어
라인란트-팔츠주州
인구 11만 2737명(2023년 12월 기준)
'작은 로마'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기원전 17년에 세워진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등 여러 로마 황제들이 체류했다. 이 도시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포르타 니그라 등 다수의 로마 시대 건축물이 있다. 또 예수의 성의聖衣를 간직한 트리어 대성당도 있다.
쾰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州
인구 108만 7353명(2023년 12월 기준)
로마 제국의 도시, 대성당의 도시, 카니발의 도시
쾰른은 로마 제국의 속주 '저지低地 게르마니아'의 수도였다. 쾰른 대성당은 쾰른의 상징이자 독일의 자랑이다. 쾰른 대주교는 황제를 선출하는 선제후로 지배자이기도 했다. 카니발 축제로도 잘 알려진 쾰른은 라인강변의 도시 중에서 가장 크다.
라인강은 로마 제국에게도 매우 중요한 강이었다.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국경선을 라인강 건너 동북쪽 엘베강까지 확장하려 했다. 라인강 건너 게르마니아 지역도 지배해야 로마가 안전할 것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토이토부르크숲 전투'가 불가피했다.
하지만 숲이 울창하고 이곳 지리에 생소했던 로마군은 미리 매복하고 있던 게르만 전사들의 기습 공격에 추풍낙엽 신세였다. 이 전투의 대승으로 인해 독일은 로마의 지배를 피할 수 있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로마군을 격퇴한 서기 9년을 독일 역사가 시작된 해로 본다.

(사진, '토이토부르크숲 전투'의 영웅 헤르만 동상)
토이토부르크숲에서의 대패에도 불구하고 이후 로마군은 강을 건너 여러 차례 게르만 부족을 토벌하며 복수했다. 그렇지만 강력한 로마군에 기죽지 않고 항전하는 게르만족의 저항이 너무나도 거세어 게르마니아 지역의 완전 장악이 힘들다고 판단한 로마의 후임 황제 티베리우스(재위: 14~37년)는 결국 라인강을 국경선으로 삼았다. 이는 집권 말기 11 년을 카프리섬에서 지냈던 티베리우스의 소극적인 성격 탓이었다.
마인츠
라인란트-팔츠주周
인구 22만 2889명(2024년 12월 기준)
구텐베르크의 도시
마인츠는 라인간과 마인강이 만나는 곳으로 로마 제국의 군사 기지였다. 마인츠 대주교는 신성 로마 제국의 제2인자였다. 이 도시에서 구텐베르크가 유럽 최초로 금속 활자 인쇄술을 발명했다고 잘못된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의 역사학계는 발명이 아니라 고려 인쇄술을 베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직지直指)'이다. 이는 고려 우왕 3년(1377년)에 청주 흥덕사에서 상하 2권으로 발간한 불교 서적이다. 현재는 하권만 대한민국이 아닌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유네스코는 이를 세계 기록 유산으로 인정했다.
'직지'보다 70여 년 늦게 구텐베르크가 금속 활자로 인쇄한 '42행 성서'가 나온 것이다. 아무튼 금속 활자 인쇄술은 중세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수백 개의 인쇄소가 세워졌다. 책값이 저렴해지고 지식 보급이 빨라졌다. 60여 년 후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이 널리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금속 활자 인쇄본의 보급 때문이었다.

(사진, 구텐베르크 동상과 '42행 성서')
마인츠에는 구텐베르크 박물관이 있다. 구텐베르크 출생 500주년을 기념하여 1900년에 시민들이 세운 박물관이다. 박물관 최고의 소장품은 역시 '42행 성서' 4권이다. 필사본 2권과 인쇄본 2권이다. 1282쪽인데 무게 때문에 두 권으로 나누어 제작했다. 책 모서리의 문양은 구매자의 요구에 따라 추가로 작업한 것이다. '42행 성서'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게 인쇄된 책으로 꼽힌다. 인쇄본 180권 중 오늘날 49권만 남아 있다.
뮌헨
바이에른주州
인구 151만 378명(2023년 12월 기준)
정치와 문화의 중심 도시
뮌헨은 13세기 중반 이후 바이에른 공국에서부터 현재까지 바이에른 지방의 정치와 문화 중심지다. 아돌프 히틀러가 정치적 기반을 마련한 곳이며, 세계 최대의 맥주 축제가 열리고 있는 도시이다.
독일은 맥주의 나라다. 맥주 제조에 오직 홉, 보리, 물만 사용해야 한다는 '맥주 순수령'(1487년 바이에른 공작 알브레히트 4세가 제정함)을 따르고 있다. 이 순수령이 공포된 4월 23일을 '맥주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맥주 축제인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가 열리고 있다. ‘10월 축제’라는 뜻의 옥토버페스트는 1810년 10월 바이에른 왕자 루트비히Ludwig의 결혼을 축하하는 승마 대회에서 유래했다. 5일 동안 계속된 축제에서 참가자들에게 음식과 맥주가 무료로 제공되었다. 이후 해마다 옥토버페스트라는 이름으로 축제가 열리고 있다. 맥주 소비가 점점 감소하는 추세라서 앞으로 이 축제의 모습도 변할 듯하다.
포츠담
브란덴부르크주州
인구 18만 7119명(2023년 12월 기준)
프리드리히 대왕의 도시
포츠담 회담의 도시
포츠담은 프로이센 왕국의 전신인 브란덴부르크 변경백이 시작된 곳이다. 프리드리히 대왕이 세운 상수시 궁전과 황제 빌헬름 2세가 세운 체칠리엔호프 성城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이 성에서 포츠담 회담이 열렸다. 현재 브란덴부르크주의 수도이다.
포츠담은 하벨강과 공원으로 인해 자연 환경이 좋고 여러 성城과 교회 등 문화 유적이 많다. 이로 인해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제정되었다. 변경백이란 국경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한 변경 주州의 제후란 뜻이다. 1157년 작센 공작 알브레히트 1세가 포츠담을 정복하여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을 세웠다.
포츠담에 여름 궁전이 있다. 프리드리히 2세가 기초 설계를 하고 건축가 크노벨스도르프가 1747년에 완공한 로코코 양식의 상수시 궁전이다. 상수시란 '근심없다'는 뜻의 프랑스 말이다. 프리드리히 2세는 매년 4월말~10월초까지 이 궁전에서 집무했다. 이곳에서 당대 최고의 계몽주의 사상가인 볼테르(1694~1778년) 등 프랑스 문인들과 자주 어울렸다.
1786년 8월 17일 프리드리히 2세는 74세에 상수시 궁전의 집무실 의자에서 숨졌다. 프리드리히 대왕의 유언은 200여 년이 지난 1991 년 8 월 17일에서야 이루어졌다. 그의 유해는 유언대로 한밤중에 상수시 궁전의 반려견 무덤 옆에 묻혔다. 봉분이나 비석도 없이 평평한 돌 위에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프리드리히 대왕)’이란 글만 있다. 독일이 강한 이유 중 하나는 정치인들의 이러한 검소함이다. 상수시 궁전은 1990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 됐다.

(사진, 체칠리엔호프 성 안의 회담장)
1945년 5월 8일 독일은 무조건 항복했다. 전후 유럽과 독일 문제를 처리한 회담이 7월 17일부터 포츠담의 체칠리엔호프 성에서 열렸다. 이 성은 황제 빌헬름 2세가 황태자비 체칠리에를 위해 세웠다.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수상이 참석했다. 중요한 회담이었지만 베를린은 완전 파괴되어 회담 장소는 물론 대표단의 숙소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등 13개 항도 담고 있었다. "일본의 주권은 혼슈, 홋카이도, 쿠슈, 시코쿠와 우리가 결정하는 작은 섬들에 국한될 것이다"라고 하여 한국의 독립을 간접적으로 언급한 셈이라 우리에겐 매우 의미있는 회담이었다. 학창시절 시험에도 자주 출제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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