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병은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 11월 13일 참극에 대한 고찰
알랭 바디우 지음, 이승재 옮김 / 자음과모음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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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먼저 어떤 심경으로 이 잔혹한 참극에 대해 말해야 할지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분명 여러분도 잘 알고 있듯, 또한 언론과 당국이 위험하게 난타하고 있듯, 정동情動과 민감한 반응의 기능은 이런 상황에서 불가피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11월 13일 참극을 살펴보다

 

알랭 바디우는  철학자, 극작가, 소설가이며 정치 활동가이다. 그는 젊은 시절 사르트르의 영향을 받았고, 1958년 알제리 전쟁에 반대하며 통합사회당(PSU)을 설립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이후 알튀세르와 교류했으나 68혁명 이후 마오주의 노선을 택하며 알튀세르와 결별한다.

 

1970년대에 마오주의 정치운동에 헌신했지만 마오주의의 쇠락과 1979년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침공 직후, 서구 좌파들과 더불어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대안을 사유하기 위하여 철학의 자리로 복귀한다. 그후 자신의 철학적 작업을 재구축한 저작인 <존재와 사건>(1988년)을 통해 철학적 가능성의 재생 속에서 새로운 정치적 사유의 지평을 마련했다.

 

그는 참혹한 파리 테러 직후에 마련된 특별 강연에서 정동情動의 압도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유의 운동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는 파리 테러라는 증상의 구조적 고찰을 진행하면서 폭주하는 글로벌 자본주의, 초국적 자본이 빚은 인류 최악의 과두정, 자본에 의해 무無로 산정된 '유목 프롤레타리아', 그리고 이같은 비극이 잉태한 파시즘의 주체를 넘어설 사유의 기반을 마련한다.

 

2015년 11월 13일 프랑스 파리 곳곳에서 총성과 폭발음이 들렸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조직인 이슬람국가IS가 바타클랑 공연장과 스타드 드 프랑스 축구장 등 파리 시민이 즐겨 찾는 곳을 골라 연쇄 테러를 저지른 것이다. 이 테러로 말미암아 무고한 시민 130명이 희생됐다. 이 책은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가 '파리 테러'가 발생한 지 열흘밖에 안된 때에 행한 특별강연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복수는 정의로운 행위가 아니라 항상 잔혹함이 반복되는 서막임을 상기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복수의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한다.

 

 

 

 

 

정의를 복수로 변질시키지 말라

 

불특정이든 특정인든 다수를 대상으로 한 이런 유형의 범죄, 즉 테러에 대해서 복수의 유혹은 자연스러운 충동이다. 일례로 항상 법치국가임을 자처하고, 사형을 거부하는 우리 서구에서 경찰은 지금 우리가 직면한 이 상황에서 어떤 소송도 없이 살인자를 발견하는 즉시 사살하고 있지만 이에 분노하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비극悲劇은 연극의 한 형식이다. 이런 의미의 비극은 인생을 정중하게 살고자 하는 주인공이 거부할 수 없는 힘과 대결해 결국엔 재앙을 맞게 되는 드라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비극'은 이런 드라마가 아니다. 인간이 자신도 모르게 맞이하는 갑작스러운 죽음이나 재앙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오늘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인 IS의 무지막지한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이 겪는 인생의 불행이 비극의 한 예다. 후자에서 말하는 비극엔 슬픔과 무기력함이 존재한다.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상연된 연극 장르로서의 비극은 슬픔이나 불행이라는 주제를 담은 특정한 연극이라기보다는 '연극' 그 자체다. 3월 말, 만물이 소생하기 시작하는 춘분에 맞춰 아테네의 명망 있는 극작가들은 자신들이 창작한 연극이 이 축제기간에 상연되도록 디오니시아를 주관하는 관리(아르콘)에게 경쟁적으로 제출한다.

 

그리스 비극이란 장르를 만든 아이스킬로스는 처음부터 극작가는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의 다른 철학가나 역사가들이 모두 그렇듯 그도 군인이었다. 그는 기원전 525년 아테네에서 서쪽으로 20km 떨어진 엘레우시스에서 태어났다. 엘레우시스는 농업의 신 데메테르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비밀스러운 의례가 1년에 두 번씩 거행되던 도시다. 아이스킬로스는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축제 연극에 대해 어려서부터 잘 알고 있었다.

그가 활동한 기원전 5세기는 아테네라는 조그만 도시가 그리스의 다른 도시들과 델로스 동맹으로 하나가 돼 '슈퍼 파워' 페르시아와 벌인 전쟁에서 승리해 지중해 세계의 맹주로 등장한 시기다. 그는 기원전 490년 마라톤 전쟁에 참전해 다리우스 대왕이 이끄는 페르시아 군인들과 싸웠는데 이 전쟁에서 동생 퀴네게리우스가 전사했다. 그는 10년 후 다리우스 대왕의 아들 크세르크세스가 침공한 살라미스와 플라타이아 해전에도 참전했다.

그는 스스로를 군인으로 여겼고 '명예'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았다. 말년에 이탈리아 시실리아 섬의 남부 도시 젤라에서 거주하다 일생을 마쳤다. 
그는 살라미스 해협에서 그리스인들과 페르시아 군인들이 목숨을 건 전쟁을 치를 때도 현장에 있었다. 그의 <페르시아인들>은 인류 최초의 비극 작품으로 살라미스 전투에 대한 유일한 목격담으로, 실제 전투 장면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이 비극은 기원전 472년 연중행사인 디오니시아 축제에서 처음 무대에 올랐다. 아테네 시민들은 8년 전 자신들이 참전한 살라미스 전투를 상기하며 이 비극을 관람했으며 18년 전 마라톤 들판에서 치른 전쟁도 기억했다. 이들은 마라톤 전쟁과 살라미스 전쟁 참전용사들이었다. 몇몇은 자신들이 전쟁을 치를 때 착용한 갑옷이나 방패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복수는 정의로운 행위가 아니라 항상 잔혹함이 반복되는 서막임을 상기해야 한다. 이미 오래전, 위대한 그리스 비극은 정의의 논리와 복수의 논리를 대립시켰다. 정의의 보편성은 가족, 지방, 국가, 정체성의 복수와 대립된다.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의 근본 주제가 그것이다. 비극에서 정체성의 충동은 살인자의 추적을 순수하고 단순한 복수의 추격전으로 파악할 위험이 있다. 

 

인간이 행한 것 중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없다

 

인간이 행한 것 중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없다. '이해가 안 돼', '결코 이해 못 해', '이해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은 언제나 패배를 뜻한다. 어떤 것도 사유 불가능의 영역에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사유 불가능하다고 단언한 것에 맞서기를 바란다면, 사유의 임무는 그것을 사유하는 것이다.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비이성적인 범죄임에도 '이해가 안 돼'라는 식으로 사유하기를 포기한다면 이는 결국 비이성적, 범죄적 행태의 승리로 이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절대적으로 비이성적, 범죄적, 병리적 행위가 있지만 이 또한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사유의 대상이며, 그에 대한 사유를 포기하거나 조치를 취하지 못할 것은 없다. 사유 불가능의 표명은 항상 사유의 패배이며, 사유의 패배는 항상 비이성적, 범죄적 행태의 승리였다.

 

 

새로운 제국적 행태

 

책의 제목은 프랑스 극작가 장 라신의 비극 <페드르>의 한 구절이다. 저자는 이를 패러디해 "우리의 병은 이민, 이슬람, 황폐해진 중동, 약탈에 굴복한 아프리카…보다 오래전에 시작됐다"고 말한다. 즉 우리 병은 공산주의의 역사적 실패에서 생긴 것이라고 단언한다. 마오주의 정치운동에 헌신했던 저자는 공산주의 실패, 반대로 이야기하면 글로벌 자본주의의 승리에서 문제의 연원을 찾는다.

 

우리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승리가 지배하는 현대 세계의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국가의 전략적 약화, 심지어 국가의 자본주의적 소멸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우리는 몇몇 경우 국가를 잘게 해체하거나 심지어 전멸시키는 것을 방관하고 조장하는 새로운 제국적 행태를 갖고 있습니다. 일례로 리비아 파병의 진정한 이해관계가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하면 우리는 이 가정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한 국가를 완벽하게 파괴했고, 모두가 반대하는 혹은 반대하는 듯한 하나의 무정부 지역을 만들었지만, 결국 미국인들은 이라크에서, 그리고 프랑스인들은 말리와 중앙아프리카에서 온갖 짓을 자행했습니다. - 37쪽에서

 

 

인구에 미친 영향

 

세계 인구의 1%가 전 세계 부의 46%를 소유하고 있다. 다수의 빈곤층 중 압도적인 다수는 바로 아프리카와 아시아인들이다. 빈곤층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서구적 생활양식을 수호하려는 중산층, 자본에 의해 마치 투명인간 같은 존재로 취급받는 20억 이상의 인구, 글로벌 자본주의가 양산한 이런 구도 속에서 복수와 파괴의 욕망으로 구성된 '허무주의적 주체성'이 생겨났다. 이와같은 출현은 파시즘이라는 죽음 충동으로 이어지고 테러의 주체들은 결국 파시즘적 주체성의 유산을 물려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현재의 승자는 자본이다. 자본이 승리했으므로 자본은 노동시간의 감축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고, 심지어 마르틴 오브리(전 노동부장관)가 제안한 빈약한 35시간도 용인하지 않는다. 자본은 이 틀 속에 들어갈 수 없었던 사람들을 대담하게 무無로 선포한다. 바로 이 때문에 이 세계에 무無로 산정된 대규모 집단이 있는 것이다.

 

 

현대적 파시즘

 

이런 주체성의 출현은 파시즘이라는 죽음 충동으로 이어지고 테러의 주체들은 결국 파시즘적 주체성의 유산을 물려받았을 뿐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자본주의에 의해 발생되고 촉발된 대중적 주체성을 일반적으로 '파시즘'으로 부를 수 있다. 왜냐하면 시스템의 심각한 위기(1930년대가 이에 해당)가 존재하고, 어쩌면 보다 근본적으로는 세계화로 인해 분명해진 자본주의의 구조적 한계가 보다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살인자들은 누구인가?

 

그들의 행위(맹목적 대량 학살)는 테러가 아니다. 테러는 점령군 나치와 페탱주의 공범자들에게 항거한 레지스탕스가 조직했고, 더 나아가 명예로운 러시아 민중주의자들이 차르를 죽이기 위해 꾸몄던 것이다. 실제로 11월 13일의 학살은 액면 그대로 보면 조직적, 군사적 사건이 아니다. 하나의 유혈극, 그러나 비열한 유혈극이다. 이는 젊은 파시스트들이 자신의 삶을 산정하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지배를 넘어서는 주체성 창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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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해부도감 - 인간과 자연이 빚어낸 결실의 공간, 농장의 모든 지식을 아름다운 그림으로 담다 해부도감 시리즈
줄리아 로스먼 글.그림, 이경아 옮김 / 더숲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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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을 작업하는 동안 자급하는 삶에 대해 많은 걸 배웠으며 남편 매트가 성장한 삶의 뿌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성장 배경이 된 삶의 가치 와 전통을 미약하나마 우리의 평범한 일상으로 가져오고 싶다. 매트는 우리가 다시 그곳 농장으로 돌아간다면 농부들이 써레질에 사용하는 스프링투스가 어떻게 생겼는지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도 있고, 이웃집에서 기르는 닭이 어떤 품종인지도 알아맞힐 수 있다며 끈질기게 졸라댄다. 물론 나도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머리말' 중에서

 

 

어린 시절 남편이 살았던 농장을 해부하다

 

책의 저자 줄리아 로스먼과학과 역사, 도시와 자연 등의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감각적이고 따뜻한 작품세계로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와 같은 미국 주요언론과 출판계, 독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인기 아티스트이다. 뉴욕 태생으로 지금까지도 고층빌딩으로 가득찬 브루클린에 살고 있지만, 그녀의 시선은 주위의 항상 볼 수 있는 자연과 일상적인 존재를 향해 있다.

 

따뜻하고 세심한 시선으로 그것들이 지닌 매력과 활기를 생생하게 담는다. 쓰고 그린 책으로는 <자연해부도감>, <음식해부도감>, <아티스트의 스케치북>, <헬로 뉴욕> 등이 있으며, 전 세계적인 인기 블로그 '북 바이 잇츠 커버'를 운영하면서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책과 일러스트를 소개하고 있다. 비록 도시에 살고 있지만 그녀의 자연을 탐험하는 여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총 7개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뼛속까지 뉴요커인 그녀가 어느 성탄절 날 남편 매트가 자랐던 시골 농장을 방문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인간이 자연의 보물을 얻고 살아가는

 

 

 

 

 

 

 

 

 

 

  

 

염소 우리

 

얼마 전에 끝난 미국 프로야구 월드시리즈, '염소의 저주'에서 풀려난 시카고 컵스가 무려 108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1945년 시카고 컵스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월드시리즈 4차전을 홈구장인 리글리필드에서 치를 때 홈 팬인 빌리 사이아니스라는 사람이 애완 염소를 데리고 구장에 입장했다가 구장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그 이유는 관람객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염소 냄새 때문이었다. 이에 염소 입장권까지 매입해서 입장했던 팬은 저주를 퍼부었다. 결코 우승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장장 100년이 넘도록 깨지지 않았던 유명한 저주가 바로 그것이다.  

 

염소에게는 비바람과 눈을 피할 곳이 필요하다. 아늑한 우리가 있으면 혹독한 추위에도 녀석들은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 하지만 무더운 날씨를 대비해 통풍이 잘 되고 그늘이 있어야 한다. 건초는 훌륭한 깔짚의 역할을 한다. 위쪽의 깔짚은 며칠마다 교환해주어야 하며, 봄가을에는 아래쪽의 오래된 깔짚을 말끔히 걷어내고 건초를 새로 깔아준다. 염소는 기어오르기 선수인 데다 아무리 작은 구멍이라도 뚫고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울타리를 단단히 쳐둘 필요가 있다. 경험이 많은 염소지기의 말을 빌리면, 물을 가둬 놓을 수 없는 울타리로는 염소도 가둬놓을 수 없는 말이 있을 정도다. 오래된 케이블 릴이나 트랙터 타이어는 염소들에게 재미있는 놀이기구가 된다.

 

염소 우리는 대개 본실과 별실로 구분된다. 별실은 분만실로 이용되거나 아픈 염소를 격리시키는 장소로 활용된다. 먹이는 호기심이 많은 염소가 올라가지 못하는 곳에 보관해야 안전하다. 여물통과 물통은 벽면의 다른 쪽에 자리를 잡는 겨우가 많다. 염소가 먹이를 엎지르거나 못 쓰게 만드는 일이 없도록 개폐장치를 갖추어둔다.

 

 1945년, 저지 당하는 애완 염소

 

 

 

명아줏과

 

논밭의 각종 작물을 살펴보면 비트와 시금치 등의 명아줏과, 아티초크, 상추 등의 국화과, 브로콜리, 방울다다기양배추, 양배추, 콜리플라워, 래디시, 루타바가 등의 십자화과, 오이, 호박 등의 박과, 콩, 완두 등의 콩과, 양파, 리크, 아스파라거스 등의 백합과, 옥수수 등의 볏과, 가지, 고추/피망, 감자, 토마토 등의 가짓과, 당근 등의 미나리과, 바질, 고수, 박하, 로즈마리 등의 허브, 보리, 조, 기장, 메밀, 귀리, 밀, 호밀 등의 곡류, 사과 등의 과일 등이 있다.

 

힘쎈 뽀빠이로 상징되는 시금치에는 사보이, 세미 사보이, 플랫리프 등의 다양한 품종이 있는데, 사보이는 주름이 많고 잎이 말려 있으며 짙은 초록색을 띄고, 세미 사보이는 사보이보다 잎이 덜 말려 있어서 씻기가 쉽다. 플랫리프는 잎이 매끄럽고 반듯한 시금치로 수프, 이유식, 통조림, 냉동용으로 이용되며 맛은 사보이보다 약간 부드럽다. 시금치의 주요 특징은 아래와 같다.

 
항산화제가 풍부하고 철분도 많다. 
추위에 강해 월동이 가능하다. 
생장속도가 빨라 40∼45일 만에 수확이 가능하다.

 

 

 

지하저장고

 

지하 저장고는 야채, 과일, 다양한 저장식품을 장기 보관하는 데 이용된다. 비트, 순무, 양파, 감자, 당근, 겨울호박, 사과 등은 적절한 조건만 갖추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 작물을 짚이나 젖은 모래 속에 층층이 쌓을 수도 있고 신문지로 둘러쌀 수도 있으며 그물망에 넣어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매달아놓을 수도 있다. 지하 저장고는 대개 시원한 지하실이나 언덕의 비탈진 곳에 땅을 파고 만든다.

 

햇빛을 피하려면 저장고는 언덕의 북쪽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무엇보다 서늘한 온도(섭씨 0∼5도)와 높은 습도가 유지되어야 식품이 여름에 상하거나 겨울에 얼어붙는 걸 막을 수 있다. 환기구는 따뜻한 공기가 배출되게 해주고 흙바닥은 일정한 습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런 모습을 통해 다시금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일깨워줌으로써 우리들의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도시인들을 위한 시골 생활 안내서

 

상세한 그림과 함께 시골 생활의 이모저모를 소개하는 유익한 백서이다.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라면 자녀들을 위한 교육용으로 이만한 교재가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물론 시골 농장의 규모가 땅이 넓은 미국이라 한국의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그 근본은 크게 차이가 없다. 미처 사진으로 볼 수 없었던 시골 농장의 모습이 정겨운 그림과 함께 우리들에게 쉽게 다가온다. 모든 이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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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오래가는가 - 보스와 통하는 47가지 직장병법
문성후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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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직장인에게 필요한 덕목으로 커뮤니케이션 능력, 팀워크, 네트워크, 팔로워십 등을 꼽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포장지를 벗겨내면 결국 핵심은 하나예요. 보스에게 잘해서 성과를 내라는 겁니다. 보스에게 충성해서 결국에는 보스 자리로 올라가라는 거예요. 너무 노골적이어서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을 뿐이지, 직장이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사람들은 모두가 보스와의 관계 맺기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회사 생활의 8할은 보스에게 달렸다

 

저자 문성후는 상위 1% 스펙과 다양한 전문직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직장 생활에서 통하는 전략은 스펙 쌓기가 아니라 회사와 상사를 자기편으로 만드는 '보스 전략'임을 강조하며, 회사 안 위아래 세대 차이를 허무는 소통의 아이콘으로 나섰다. 금융감독원의 사원으로 시작해 두산그룹, 포스코, 현대자동차그룹에서 과장, 차장, 부장을 거쳐 직장 생활 14년 만에 이사대우에 오르며 고속 승진했다. 이후 7년 동안 세아그룹 등 굵직한 기업들을 돌며 임원 커리어를 쌓

 

 

직장인에게 보스는 성과를 결정하는 '밥줄'이자 성장을 도와주는 '탯줄', 수명을 연장하는 '동아줄'인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3줄'인 보스와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손자병법>처럼 정리된 책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갈수록 상사와 후배들과의 격차는 벌어지는데 어느 누구도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도 없다.

 

이에 책의 저자는 지난 22년간의 직장 경험을 토대로 회사 내에서 고성과자가 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보스와 통하는 47가지 직장병법'을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우리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또한 부하직원들과의 소통을 어려워하는 상사들을 위한 깨알 팁도 덤으로 책 중간중간 소개하고 있다.

 

 

 

진짜 보스는 누구?

 

'보스'는 도대체 누구일까요? 아마도 대부분은 직속 상사를 떠올릴 것이다. 실제로 이런 경우가 많긴 하다. 하지만 보스와 직속 상사가 항상 동의어인 것은 아니다. 모셔야 할 진짜 보스는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막 떠올린 사람이 진짜 보스인지 알고 싶다면 다음 세 가지만 따져보면 된다.

 

첫째, 나의 성과를 공유하는 사람인가?

둘째, 나를 직간접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인가?

셋째, 나에게 힘이 되고 나를 키워주는 사람인가?


꿈을 이루는 꿈터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을 뿐, 생각보다 많은 직장인이 투덜이 스머프로 살고 있다. 겉보기엔 열심히 일하는 것 같았는데 막상 대화를 나눠보면 냉소주의와 패배주의가 물씬 풍기는 경우를 왕왕 접하게 된다. 스스로를 '월급쟁이'로 비하하면서 월급이 고작 300만원'밖에' 안 된다고 속상해하고,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면 지금 당장 그만두고 싶다고 말한다. 이처럼 자신의 일과 월수입에 대해 무척 저평가한다.

 

직장을 생계 수단으로만 보면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니 불만이 쌓일 밖에요. 그런데 회사를 돈을 버는 '일터'가 아니라 꿈을 이루는 '꿈터'라고 생각하면 조금씩 달라 보이기 시작한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이 회사가 원하는 일이고, 스스로 잘하는 일이 회사의 실적으로 이어지고, 스스로의 성공이 곧 회사의 성공이 된다. 이렇게 직장과 궁합이 잘 맞을수록 성과도 무한대로 늘어나는 법이다.

 

 

부하들이 공감하는 상사들의 공통점

 

소심하고 쫀쫀하다

변덕이 심하다

포커페이스를 싫어한다

디테일에 강하다

다른 면을 본다

성격이 급하다

눈치가 빠르다

체력이 좋다

흠이 있지만, 결정적인 한 방도 있다

주관이 뚜렷하지만, 자신을 낮출 줄도 안다

 

 

어떻게 배드 보스를 대처할까?

 

직장인들을 상담하다 보면 꼭 빠지지 않는 스트레스 주범이 있다. 바로 '배드 보스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아랫사람들에게 어떤 형태로든지 피해를 준다. 그 팀장 역시 온갖 공은 자기가 다 차지하고 모든 책임은 팀원에게 돌리는 전형적인 나쁜 상사였다. 얼마 전에도 P 대리가 한 달 내내 공들여 만든 기획안에 자기 이름만 올려서 보고를 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어떻게 하느냐. 일단 '극복'이라는 옵션은 치워야 한다. '정신적으로 이겨내자' 혹은 '맞서자'는 전략은 현실성이 없다. 남을 이용해먹는 데 능한 배드 보스들은 공통적으로 '실무 능력'은 부족하지만 '착취 능력'은 탁월하다. 자리 보존과 성공에 대한 탐욕이 키워낸 능력이지요. 그 능력을 '극복'이라는 방법으로 당해낼 수는 없다.

배드 보스라는 이유 때문에 호기롭게 죽자고 덤빌 경우 정말 죽을 수도 있다. 분노와 정의감으로 한번 해보자고 섣불리 덤비면 안 된다. 이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대신에 훗날을 기약하면서 이를 악물고 버텨야 한다. 좋은 새는 나무를 가려 둥지를 튼다. 조만간 자기자신을 키워줄 사람에게 둥지를 틀 날이 올 것이다.

 

배드 보스에겐 착취 매뉴얼이 있다. 회사에서 저성과자가 된다는 건 그만큼의 리스크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따라서 정말 악질적인 배드 보스를 만났을 때, 헤어지는 것 말고는 답이 없을 때 써야 하는 마지막 방법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호감과 신뢰, 동의어가 아니다

 

싹싹하고 붙임성 있는 데다 끼도 많은 K 대리는 그 팀의 분위기 메이커였다. 한마디로 '밤의 황제'라 불린 사나이였다. 그런 그를 P 팀장도 무척이나 좋아해서 술자리에서 끝까지 옆에 두고 함께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그런데 바로 그 P 팀장이,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부서로 K 대리를 보내버렸다. K 대리로선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것이다.

 

"맨날 '너밖에 없다'고 하더니

사지로 보낼 때도 '너밖에 없다'고 하는 이 인간, 절대 용서 못 합니다!"

 

퀭한 눈으로 머리를 쥐어뜯는 그는 한눈에 봐도 중증 환자였다. 직속 상사를 너무 믿었던 게 죄라면 죄일까요. 이런 사람을 볼 때마다 제가 꼭 묻는 말이 있습니다. "그는 당신을 좋아했을까요, 믿었을까요?" 대부분 "둘 다"라고 답한다. 연인 관계라면 두 사람의 뜨거운 호감은 곧 신뢰로 이어진다. 하지만 성과가 중심ㅁ이 되는 인간관계에선 호감과 신뢰가 동의어가 아닌 케이스가 많다.

 

 

보스에게 빙의하라

 

보스의 셈법대로 일하는 사람들은 출발부터 다르다. 자기 논리가 아니라 보스의 논리,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메시지가 아니라 보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메시지를 중심에 놓고 보고서를 설계합니다. 보스는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실행하길 원할까, 마치 빙의하듯 보스의 생각과 기준과 취향 등을 고려해서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감이 안 오면 윗사람에게 물어서 답을 찾고, 그래도 잘 모르겠으면 얼기설기 스케치라도 그려서 윗사람에게 재차 확인을 받습니다. 그 결과, 보스가 원하는 방향과 납기일 등을 정확히 파악해서 보스 마음에 쏙 드는 설계도를 만들어냅니다. 이게 바로 보스의 셈법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보고서 작성법이다.

 

 

귀하의 꿈은 무엇인가요?

 

입사 면접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단골 질문들이 있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우리 회사에 들어와서 꼭 하고 싶은 일은 어떤 건가요?", "앞으로의 계획은 뭐죠?" 말은 달라도 같은 질문이다. 꿈이 뭐냐는 것이다. 입사 후에도 잊을 만하면 꿈 질문이 튀어나온다. 윗분들이 후배들에게 즐겨 묻는다요. "자네는 꿈이 뭔가?"라고. 윗분은 꿈이 뭐냐고 왜 묻는 걸까? 확인하고 싶은 거다. 회사에 오래 남아 있을 사람인지 아닌지, 일에 대한 의지와 열정이 있는지 없는지, 먹고살려고 회사에 나오는 건지 아니면 면접 때 했던 말처럼 회사와 함께 성장하고 싶어서 출근하는 건지, 그 사람의 진짜 속마음을 알고 싶은 거다.

어느 날 한 후배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우리 회사 사장이 될 겁니다" 그다음부턴 그 후배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만 일을 열심히 해도 사장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구나 싶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 친구가 사장이 될 수 있도록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가령 사장이 되려면 영어를 잘해야 하는데 실력이 부족해 일부러 해외 출장을 자주 보냈다. 저도 모르게 그 친구의 꿈을 돕는 조력자 역할을 자임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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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읽는 고시조
임형선 지음 / 채륜서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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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를 중심에 두어 설명하지 않고, 시조에 얽힌 사연과 역사적 배경을 이야기로 풀어 나갔습니다. 그 이야기를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에 얽힌 시조를 만나게 됩니다.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배경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시조를 만나게 됩니다. 그냥 편안하게 이야기를 읽는다고 생각하고 이 책을 본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조를 익힐 수 있을 것입니다. - '우리의 고시조를 맛보기 전에' 중에서

 

 

역사적 배경을 통해 시조를 읽는다

 

저자 임형선은 1987년 <현대시조>를 통해 등단한 이후, <월간문학>과 부산 MBC에서 주최한 문학상에 당선되었으며, 1988년부터 1989년까지는 덕성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에 출강하여 문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16년간의 절필 후 2014년 <시조의 이해>를 출간하더니 2016년 <이야기로 읽는 고시조>를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말없이 마주보며 유란을 주노라
오늘 하늘 끝으로 떠나고 나면 언제 돌아오랴
함관령의 옛 노래를 부르면 무엇하랴
지금도 비구름에 청산이 어둡나니

 

이는 고죽 최경창<송별送別>이란 한시다. 고죽은 기생 홍랑에게 난초를 주며 이렇게 한시를 지어주었다. 이는 예전에 홍랑이 묏버들을 주며 그에게 시조를 지어주었던 것에 대한 일종의 답가였다. 이 한시에는 살아생전 이제는 다시 못 만날 것을 예감한 고죽의 애타는 심정이 잘 그려져 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신분과 나이 차를 극복햇으니 참으로 대단하다 하겠다.  

 

기생 홍랑은 황진이, 이매창과 더불어 조선 3대 기생 중의 한 사람이다. 홍랑은 어떤 인물일까? 어린 소녀가 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의 상태가 위독하자 집에서 80리나 떨어진 용한 의원 집을 걸어서 찾아갔다. 효심에 감동한 의원은 바로 그녀를 나귀에 싣고 그녀의 집에 당도해 보니 이미 어머니는 숨져 있었다. 천애의 고아 신세가 되자 의원이 그녀를 거두어 친딸처럼 아끼며 공부를 시켰다. 양부모의 지극한 보살핌과 천부적인 시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얼굴은 늘 어두웠다. 결국 양부모를 떠나 기생의 길로 접어들었다. 당시 12살, 그녀는 함경도 경성 땅의 관기가 되었다.

 

고죽 최경창이 경성에 발령받아 부임했을 때 홍랑이 그를 시중들었다. 고죽은 학문과 문장이 뛰어난 인물로 이미 그 명성이 중국에까지 알려져 있을 정도였다. 조선 중기의 팔문장八文章에 손꼽히는 인물이 시적 재능이 뛰어난 어린 기생을 만났던 것이다. 당시 고죽의 나이 34살, 홍랑은 겨우 12살이었다. 그럼에도 고죽은 교육을 받아 품위를 갖춘 어린 기생과 사랑을 나누었다. 하지만 임기가 곧 끝나 다음 해에 서울로 떠나게 되자 이별이 아쉬웠던 홍랑은 영흥까지 따라나섰다가 여기서 결국 이별하게 되었다. 이별 후 비내리는 늦은 밤 묏버들을 꺾어 한 수의 시조를 인편에 고죽에게 전달했던 것이다.

 

묏버들 갈해 것거 보내노라 님의손대

자시는 창창박긔 심거주고 보쇼셔

밤비예 새닙 곳 나거든 날인가도 너기쇼셔

 

님을 그리는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이런 홍랑이 아니었다면 고죽의 작품이 지금까지 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7년 간의 임진왜란으로 전국토가 왜인들에 의해 황폐화되고, 여자들이 능욕을 당하던 그 긴 기간 동안 어떻게 살아남아 고죽의 작품과 유품들을 고이 간직할 수 있었을까. 사랑의 힘은 정말로 대단하다. 홍랑이 끝까지 지켰던 고죽의 작품들은 지금 <고죽집>이라는 책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으니 말이다.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다율리에 위치한 홍랑의 무덤

 

 

초당草堂에 일이 업서 거믄고를 베고 누워

태평성대太平聖代를 꿈에나 보려타니

문전門前에 수성어적數聲漁笛이 잠든 날을 깨와다

 

초당에 할 일이 없어 거문고를 베고 누워 잠이 들어
태평성대를 누렸던 세종조의 시대를 꿈에서나 보려고 하였더니
문 밖에서 나는 어부들의 피리소리가 잠든 나를 깨우는구나

 

얼핏 이 시조는 한가한 자연의 풍경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거문고를 베고 누워 낮잠을 자는 한가한 선비의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참맛을 알려면 이 시조의 작가를 알아야 제한다. 작가는 바로 사육신 중의 한 사람 유성원이기에 이는 일종의 저항시인 셈이다.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을 비난하는 속셈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시대적, 역사적 배경을 모른다면 작가가 한가하게 자연의 풍경을 그린 시라고 평가할 것이다.

 

 

가마귀 검은아 단아 해海올이 희나 단아
황黃새다리 긴아 단아 올희다리 기쟈른아 단아
평생平生에 흑백장단黑白長短은 나는 몰라 하노라

 


까마귀 검든지 말든지, 해오라기가 희든지 말든지
황새 다리가 길든지 말든지, 오리의 다리 길이가 짧든지 말든지
평생에 검고 희고 길고 짧음은 나도 몰라 하노라

 

아전인수我田引水식의 표현이 바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것이다. 당쟁黨爭으로 500년 세월을 허비한 조선이나 지금의 한국 정치판이나 똑같다. 추태를 보이는 국회 모습이 이를 잘 대변한다. 국민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려는 행동 뿐이다. 똑같은 일을 두고 자기네 당이 추진하면 잘하는 것이고, 다른 당이 추진하면 트집을 잡는다. 위선과 허위로 가득 찬 말바꾸기가 극에 달했다. 남이 하면 불통이라며 화합은 뒷전이고 오직 대통령 한번 해 먹겠다는 생각뿐이다. 낡고 낡은 조선시대의 유물이 아직까지 내려오고 있으니 한심하기만 하다.

 

위 시조엔 까마귀, 해오라기, 황새, 오리 등 네 마리의 동물이 등장한다. 까마귀는 검은 짐승의 대표이며, 해오라기도 겉은 희지만 속 검은 음흉한 짐승으로 표현되고 있다. 황새와 오리는 평범하지만 이 또한 누가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서로 자기들만 잘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꼴사나운 모습이다. 종장을 보면 작가 또한 시시비비를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렇듯 정치는 중상모략이 난무하는 곳이라 서로 물어뜯고 상대를 끌어내리려고 안달이다. 이런 정치색을 띄는 시조의 작가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오직 무명씨이다. 얼굴 없는 네티즌이다.

 

 

 윤선도의 향취가 남아있는 보길도 세연정 

 

 

내 버디 몃치나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東山의 달 오르니 긔 더옥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삿 밧긔 또 더하야 머엇하리

 

이는 윤선도<오우가五友歌>중 첫 번째 수인 '서시序詩'다. 그의 벗은 물, 돌, 소나무, 대나무에다가 달까지 다섯이라고 고백한다. 윤선도의 유배생활은 총 18년이나 된다. 자연과 함께 지내다 보니 사람보다는 자연이 더 믿을 만한 친구라고 느낀 것 같다. 특히,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할 경우 이런 마음이 더할 것이다.

 

그는 첫 번째로 '물'을 꼽는다. 구름처럼 먹구름이 되지도 않고, 바람처럼 불엇다 그치는 변덕쟁이도 아닌,늘 한결같이 흘러내리는 물이 가장 좋다고 말하고 있다. 다음엔 '돌'을 꼽는데, 그 이유는 꽃은 피자마자 지고, 바람 불면 꽃잎이 떨어지고, 계절이 바뀌면 시들지만 돌은 변함없이 한결같이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소나무'를 꼽는데, 이는 아무리 추워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모습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이어서 '대나무'를 꼽는데, 사계절 내내 푸른 것을 모든 사람들이 다 좋이하고 스스로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달'을 꼽는데, 이는 캄캄한 밤중에 온 세상을 밝게 비추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힌다. 그 시조를 읽다보니 나의 참된 벗이 누구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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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절대지식 - 천만년을 버텨갈 우리 속담의 품격
김승용 지음 / 동아시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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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년 사이 일제의 치밀한 문화말살 정책과 한국전쟁, 서구와의 문화충돌로 속담에 담겨왔던 오랜 우리 문화는 부서지고 희미해졌다. 그와 함께 속담 역시 흐려지는 문화 뒤에서 암호가 또 화석이 되었다. '현대적'이란 관념에 사로잡혀, 이제 속담 따위는 케케묵은 고려 적 이야기가 되어 아이들 베끼기 숙제로나 남았다. 근 일 만을 헤아리는 속담 대부분이 존재도 모른 채 일상에서 사라지고, '시쳇말'로 살아남은 속담들조차 정작 물음표를 달고 생각하면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다. 그래서 글쓴이는 흔한 단답풀이가 아닌 '지나칠 만큼 친절한' 속담 책을 꼭 만들고 싶었고, 무식하게 용감하게 시작했다. - '머리말' 중에서

 

 

우리 속담 얼마나 많이 아시나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이는 우리의 속담으로 비록 짧은 문장이지만 촌철살인의 지혜를 품고 있다. 한 마디로 짧지만 강하다. 믿었던 사람이나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오히려 해를 입는 경우에 우리들은 이 속담을 사용한다. 이와같이 은혜를 배반하고 베푼 덕을 망각한 것을 한자성어로 배은망덕背恩忘德이라고 한다.

 

이 책은 이와같은 우리 속담을 마치 국어사전처럼 자세하게 다루는데,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속담을 가나다순으로 싣고 있다. 하지만 사전은 아니다. 편하게 찾아볼 수 있도록 형식을 사전식으로 취했을 뿐이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 사진들도 중간 중간에 배치하고 있어서 무척 인상적이다.

 

책의 저자 김승용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며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그는 국어학과 고전문학을 즐기며, 특히 전통문화의 탐구와 그 가치의 현대적 재발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이 책의 출간 동기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 속담에 대한 정보 부족과 무관심이 오해와 오용을 낳고 있다. 또한 올바른 이해 없이 그럴듯하게 지어낸 이야기들이 속담의 유래인 것처럼 난무하고 있다. 이에 단순한 쓰임의 나열만이 아닌, 속담 속 사물의 속성과 언어적 유희를 구체적으로 탐구하고 직관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속담이 우리 언어문화 속에서 더욱 살찌고 자랄 수 있는 바

 

책의 내용은 대표속담-한자성어-반대속담-현대속담-유사속담의 순서로 구성된다. 누구라도 쉽게 해당 속담의 의미와 유사한 다른 표현들을 확인할 수 있다. 체계적으로 정리된 속담들을 통해 우리들은 다양한 어휘와 표현을 배울 수 있다. 책의 뒷부분에는 '대표속담 찾아가기'와 '한자성어 찾아가기'가 수록되어 있어 유익한 참고자료가 된다.

 

 

 

가까운 무당보다 먼 데 무당이 용하다

 

일반적으로 남의 떡이 커 보인다. 그래서인지 평소 친숙한 것은 결점만 보이고, 잘 모르는 것은 왠지 좋은 것으로만 안다. 요즈음에는 덜한 편이지만 과거엔 외제 특히 미국제품이라면 모두 좋은 것으로만 받아들였던 적이 있었다. 물론 특별한 능력으로 남보다 더 앞날을 예측하는 무당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먼 곳에 있기 때문에 용하게 보인다는 것은 비논리적이다.

 

가계야치家鷄野雉라는 한자성어가 있다. 이는 집에서 키우는 닭은 천하게 여기고 들판에 사는 꿩은 귀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중국 진진나라 때 유익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의 필체를 배우려고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정작 그의 가족들은 왕희지의 서체를 배우려고 안달을 했다. 이는 그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잘 드러나 있다.

 

"애들이 집 안의 닭은 천하게 여기고 들판의 꿩은 귀하게 여겨 모두 왕희지체만 배우려 드니 가슴을 칠 노릇이다"

 

 

갈모형제

 

갈모는 비가 올 때 비싼 갓이 젖지 않도록 갓위에 엎어 씌우는 모자로, 기름 먹인 질긴 종이를 주름을 접어 원뿔 형태로 만든 것이다. 원뿔형이라서 위쪽은 뾰족하고 아래로 갈수록 넓게 퍼진다. 이 모양을 본떠 형이 아우보다 도량이나 그릇이 좁은 경우, 즉 아우가 형보다 나은 경우에 이렇게 부른다.

 

 

 

갈모가 넓게 펴질수록 꼭지는 상대적으로 더욱 작아 보이듯, 옹졸한 형은 동생이 잘나갈수록 더욱 시기하는 법이다. '아비는 자식이 자기보다 잘났다면 기뻐하고 형은 동생이 자기보다 잘났다면 시기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다. 일반적으로 '형만 한 아우 없다'고 말하지만, 이처럼 형이 아우만 못할 경우 이를 갈모형제라고 말한다.

 

 

횃대 밑 사내

 

 


횃대는 닭장에 가로질러진 긴 막대를 말한다. 시골에서 닭을 길러 본 사람이라면 이 횟대를 잘 안다. 닭은 야생 시절 천적으로부터 몸을 피하고 안전하게 수면을 취하기 위해 나뭇가지 위에 올라가던 습성이 있어 횃대처럼 다소 높은 곳에 앉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수탉이 이 횃대에 올라가 날개를 크게 퍼덕이며 큰 소리로 우는 것을 '홰를 친다'라고 한다. 날개가 횃대를 때리기 때문이다.


또한 옛날 방에 가로로 끈에 매단 옷걸이도 횃대라고 부른다. 횟대 밑 사내란 방 안의 옷걸이 아래 앉아 큰소리를 친다는 말이다. 수탉이라면 모름지기 횃대 위에서 크게 울어야 하는데 다른 닭의 기세에 밀려 횃대 밑에 내려와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처럼, 남자가 바깥세상에서는 큰소리를 못 내고 비굴하게 굴다가 집에 와서 되도 않게 식구들에게나 큰소리를 치니 그얼마나 졸렬한가. 이 속담은 능력 없이 집에만 처박혀 있는 남자에게도 썼다.

 

 

 

다시 긷지 않는다고 우물에 똥 누랴

 

이 속담은 언제고 아쉬울 때가 있을 수 있으므로 함부로 하지 말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옛날엔 우물이나 샘은 일반적으로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시설물이었다. 따라서 이곳에 오물을 투척한다는 것은 금기사항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살던 마을에서 내침을 당한다면 간혹 앙심을 품고 해코지를 하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

 

"다신 이 동네에 안 온다. 이 놈의 우물, 너내나 실컷 먹아라!"

 

하지만 사람의 앞 일은 어떻게 전개딜지 아무도 모르는 법. 다시 그 마을로 돌아와서 살아야만 할 경우도 생긴다. 이런 상황을 미리 대비하고 비록 떠나는 마당이라도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것이다. 회사를 불쾌하게 퇴직하는 사람이 종종 막말에다 상급자를 향한 쌍욕까지 하는 경우가 있다. 세상은 좁다. 이 상사가 새로 자리 잡은 그 직장으로 스카우트되어 올 수도 있다. 그러니 언행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이와 비슷한 속담으로 '시루에 물 붓기'란 말도있다. 이는 해내기 어려운 일 또는 공들여 일을 해도 성과가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콩쥐팥쥐>에 나오는 얘기로, 계모가 잔칫집에 다라가고 싶어하는 콩쥐에게 밑이 빠진 항아리를 주면서 물을 가득 채우고 오라고 한데서 유래된 것이다.

 

통상 항아리는 만들 때 우선 평평한 밑판을 만들고 그 위에 벽을 쳐 올려 만들어 굽는다. 바닥에 충격을 가하면 깨지거나 구멍이 난다. 이런 항아리에 어찌 물을 가득 채울 수 있겠는가 말이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 떡이나 씰을 찌는데 사용하는 둥근 질그릇인 시루는 바닥을 통해 증기가 올라올 수 있도록 큰 구멍이 뚫려 있다. 시루에 물을 부으면 당연히 새기 마련이다.

 

  

   

조바심하다

 

옛날엔 타작을 '바심'이라고 말했다. 조바심이란 조 낱알을 비벼서 떨어내는 모양이 손바닥을 맞대고 비비고 있는 모습인데, 이는 마음이 초조해지면 자기도 모르게 손바닥을 비비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더군다나 조는 여간해서는 낱알이 잘 떨어지지 않아 이리저리 마구 비벼야만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조를 바심하기 위해 손바닥에 놓고 마구 비비는 모습과 초조해서 손바닥을 이리저리 안절부절 비비는 모양을 연결시켜 표현한 속담이라 생각된다.

 

같은 속담으로 '조 비비듯 하다'라는 말이 있는 것과 국어사전에도 '조비비다'라는 말이 있으므로, 조를 마구 비벼 낱알을 떨구는 것처럼 손바닥을 이리저리 비비며 초조해하는 모양에서 유래한 말이 아닐까 싶다.

 

 

 

한 바리에 실을 짝이 없다

 

 

우리가 흔히 '바리바리 쌌다'라고 하는 말에서의 '바리'는 말이나 소의 등에 실을 정도의 짐을 세는 단위다. 그런데 말이나 소에 이런 바리 짐을 지울 때는 반드시 양쪽의 균형을 맞춰서 실어야 한다. 안 그러면 짐의 무게가 한쪽으로 치우쳐 제대로 나를 수 없기 때문이다. 왼쪽에 실은 짐이 이만한 무게라면 오른쪽 짐도 그만한 짝을 맞춰 실을 무게와 부피여야 한다. 이 속담은 '상대가 될 만한 대상이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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