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읽는 고시조
임형선 지음 / 채륜서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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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를 중심에 두어 설명하지 않고, 시조에 얽힌 사연과 역사적 배경을 이야기로 풀어 나갔습니다. 그 이야기를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에 얽힌 시조를 만나게 됩니다.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배경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시조를 만나게 됩니다. 그냥 편안하게 이야기를 읽는다고 생각하고 이 책을 본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조를 익힐 수 있을 것입니다. - '우리의 고시조를 맛보기 전에' 중에서

 

 

역사적 배경을 통해 시조를 읽는다

 

저자 임형선은 1987년 <현대시조>를 통해 등단한 이후, <월간문학>과 부산 MBC에서 주최한 문학상에 당선되었으며, 1988년부터 1989년까지는 덕성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에 출강하여 문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16년간의 절필 후 2014년 <시조의 이해>를 출간하더니 2016년 <이야기로 읽는 고시조>를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말없이 마주보며 유란을 주노라
오늘 하늘 끝으로 떠나고 나면 언제 돌아오랴
함관령의 옛 노래를 부르면 무엇하랴
지금도 비구름에 청산이 어둡나니

 

이는 고죽 최경창<송별送別>이란 한시다. 고죽은 기생 홍랑에게 난초를 주며 이렇게 한시를 지어주었다. 이는 예전에 홍랑이 묏버들을 주며 그에게 시조를 지어주었던 것에 대한 일종의 답가였다. 이 한시에는 살아생전 이제는 다시 못 만날 것을 예감한 고죽의 애타는 심정이 잘 그려져 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신분과 나이 차를 극복햇으니 참으로 대단하다 하겠다.  

 

기생 홍랑은 황진이, 이매창과 더불어 조선 3대 기생 중의 한 사람이다. 홍랑은 어떤 인물일까? 어린 소녀가 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의 상태가 위독하자 집에서 80리나 떨어진 용한 의원 집을 걸어서 찾아갔다. 효심에 감동한 의원은 바로 그녀를 나귀에 싣고 그녀의 집에 당도해 보니 이미 어머니는 숨져 있었다. 천애의 고아 신세가 되자 의원이 그녀를 거두어 친딸처럼 아끼며 공부를 시켰다. 양부모의 지극한 보살핌과 천부적인 시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얼굴은 늘 어두웠다. 결국 양부모를 떠나 기생의 길로 접어들었다. 당시 12살, 그녀는 함경도 경성 땅의 관기가 되었다.

 

고죽 최경창이 경성에 발령받아 부임했을 때 홍랑이 그를 시중들었다. 고죽은 학문과 문장이 뛰어난 인물로 이미 그 명성이 중국에까지 알려져 있을 정도였다. 조선 중기의 팔문장八文章에 손꼽히는 인물이 시적 재능이 뛰어난 어린 기생을 만났던 것이다. 당시 고죽의 나이 34살, 홍랑은 겨우 12살이었다. 그럼에도 고죽은 교육을 받아 품위를 갖춘 어린 기생과 사랑을 나누었다. 하지만 임기가 곧 끝나 다음 해에 서울로 떠나게 되자 이별이 아쉬웠던 홍랑은 영흥까지 따라나섰다가 여기서 결국 이별하게 되었다. 이별 후 비내리는 늦은 밤 묏버들을 꺾어 한 수의 시조를 인편에 고죽에게 전달했던 것이다.

 

묏버들 갈해 것거 보내노라 님의손대

자시는 창창박긔 심거주고 보쇼셔

밤비예 새닙 곳 나거든 날인가도 너기쇼셔

 

님을 그리는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이런 홍랑이 아니었다면 고죽의 작품이 지금까지 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7년 간의 임진왜란으로 전국토가 왜인들에 의해 황폐화되고, 여자들이 능욕을 당하던 그 긴 기간 동안 어떻게 살아남아 고죽의 작품과 유품들을 고이 간직할 수 있었을까. 사랑의 힘은 정말로 대단하다. 홍랑이 끝까지 지켰던 고죽의 작품들은 지금 <고죽집>이라는 책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으니 말이다.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다율리에 위치한 홍랑의 무덤

 

 

초당草堂에 일이 업서 거믄고를 베고 누워

태평성대太平聖代를 꿈에나 보려타니

문전門前에 수성어적數聲漁笛이 잠든 날을 깨와다

 

초당에 할 일이 없어 거문고를 베고 누워 잠이 들어
태평성대를 누렸던 세종조의 시대를 꿈에서나 보려고 하였더니
문 밖에서 나는 어부들의 피리소리가 잠든 나를 깨우는구나

 

얼핏 이 시조는 한가한 자연의 풍경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거문고를 베고 누워 낮잠을 자는 한가한 선비의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참맛을 알려면 이 시조의 작가를 알아야 제한다. 작가는 바로 사육신 중의 한 사람 유성원이기에 이는 일종의 저항시인 셈이다.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을 비난하는 속셈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시대적, 역사적 배경을 모른다면 작가가 한가하게 자연의 풍경을 그린 시라고 평가할 것이다.

 

 

가마귀 검은아 단아 해海올이 희나 단아
황黃새다리 긴아 단아 올희다리 기쟈른아 단아
평생平生에 흑백장단黑白長短은 나는 몰라 하노라

 


까마귀 검든지 말든지, 해오라기가 희든지 말든지
황새 다리가 길든지 말든지, 오리의 다리 길이가 짧든지 말든지
평생에 검고 희고 길고 짧음은 나도 몰라 하노라

 

아전인수我田引水식의 표현이 바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것이다. 당쟁黨爭으로 500년 세월을 허비한 조선이나 지금의 한국 정치판이나 똑같다. 추태를 보이는 국회 모습이 이를 잘 대변한다. 국민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려는 행동 뿐이다. 똑같은 일을 두고 자기네 당이 추진하면 잘하는 것이고, 다른 당이 추진하면 트집을 잡는다. 위선과 허위로 가득 찬 말바꾸기가 극에 달했다. 남이 하면 불통이라며 화합은 뒷전이고 오직 대통령 한번 해 먹겠다는 생각뿐이다. 낡고 낡은 조선시대의 유물이 아직까지 내려오고 있으니 한심하기만 하다.

 

위 시조엔 까마귀, 해오라기, 황새, 오리 등 네 마리의 동물이 등장한다. 까마귀는 검은 짐승의 대표이며, 해오라기도 겉은 희지만 속 검은 음흉한 짐승으로 표현되고 있다. 황새와 오리는 평범하지만 이 또한 누가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서로 자기들만 잘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꼴사나운 모습이다. 종장을 보면 작가 또한 시시비비를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렇듯 정치는 중상모략이 난무하는 곳이라 서로 물어뜯고 상대를 끌어내리려고 안달이다. 이런 정치색을 띄는 시조의 작가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오직 무명씨이다. 얼굴 없는 네티즌이다.

 

 

 윤선도의 향취가 남아있는 보길도 세연정 

 

 

내 버디 몃치나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東山의 달 오르니 긔 더옥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삿 밧긔 또 더하야 머엇하리

 

이는 윤선도<오우가五友歌>중 첫 번째 수인 '서시序詩'다. 그의 벗은 물, 돌, 소나무, 대나무에다가 달까지 다섯이라고 고백한다. 윤선도의 유배생활은 총 18년이나 된다. 자연과 함께 지내다 보니 사람보다는 자연이 더 믿을 만한 친구라고 느낀 것 같다. 특히,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할 경우 이런 마음이 더할 것이다.

 

그는 첫 번째로 '물'을 꼽는다. 구름처럼 먹구름이 되지도 않고, 바람처럼 불엇다 그치는 변덕쟁이도 아닌,늘 한결같이 흘러내리는 물이 가장 좋다고 말하고 있다. 다음엔 '돌'을 꼽는데, 그 이유는 꽃은 피자마자 지고, 바람 불면 꽃잎이 떨어지고, 계절이 바뀌면 시들지만 돌은 변함없이 한결같이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소나무'를 꼽는데, 이는 아무리 추워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모습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이어서 '대나무'를 꼽는데, 사계절 내내 푸른 것을 모든 사람들이 다 좋이하고 스스로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달'을 꼽는데, 이는 캄캄한 밤중에 온 세상을 밝게 비추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힌다. 그 시조를 읽다보니 나의 참된 벗이 누구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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