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희망, 미래 - 아시아의 빌 게이츠 스티브 김의 성공신화
스티브 김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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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남들은 "아시아의 빌 게이츠"라고 추켜 세우지만 정작 자신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스티브 김], 그의 한국 이름은 김윤종이다. 경영을 전공한 적도 그렇다고 배운 적도 없었지만 좌충우돌 식으로 부딪히며 체득한 경험으로 깨닫고, 그리고 항상 남에게 배우려고 노력했단다.

 

"김회장님, 미국에서의 성공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강연회에서 누군가 질문을 하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 아마, 미국이었다는 것이 첫 번째 요인이 아닐까 합니다." 그는 얼마전 백척간두의 위기에 놓여 있던 상장법인 하이닉스의 전문경영인 공개모집에 응모했다가 불합리한 한국식 연고주의 때문에 인터뷰 한번 못해보고 보기좋게 낙방했던 탓에 이런 답변을 한 듯하다. 그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창업한 회사 파이버먹스가 첫 수주한 실적이 미항공우주국(NASA)였는데, 자신은 NASA와 전혀 연고가 없었음을 강조했다. 한국 사회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학연, 지연 풍토와 접대문화가 기업을 경영하는데 큰 부담으로 작용함을 꼬집고 있었다.

 

지난 2007년, 渡美한지 30년 만에 한국으로 귀국한 김윤종씨는 서울 장교동에서 1949년 11월에 태어나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한후 엔지니어가 되어 미국의 대기업에 취직하겠다는 포부로 1976년 이민길에 올랐다. 수중엔 단돈 2천달러 뿐이었다. 1977년에 결혼한 아내를 위해 청소원, 창고지기 등으로 생활비를 마련하고 야간 대학원을 다니며 정보통신학 석사학위를 거머 쥐었다. 주경야독인 셈이다.

 

그는 미국 회사에 취직하여 잘 다니다가 회사의 모습에 실망을 한다. 회사의 주업무는 군 방위 통제시스템을 만드는 일이었고, 워낙 큰 조직이라 자신의 능력을 펼치기엔 너무도 정체된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입사한 지 겨우 1년 반만에 이직을 결심한다. 지역 신문 구직광고를 보고 직원 30명의 통신 시스템 개발회사 페일로로 자리를 옮겨 광섬유 통신 시스템 개발에 진력을 다한다. 비록 규모가 작은 회사였지만 첫 직장의 연봉에 비해 두 배나 되는 5 만 달러를 받을 정도로 회사내에서 능력을 인정 받는다.

 

두번째 직장, 페일로의 월급쟁이 사장 딕 배스는 전형적인 마케팅 전문가로 기술에 대해선 감각이 부족했다. 그래서, 스티브 김은 친분이 있던 다른 회사 출신 엔지니어 3명과 의기투합하여 10 만 달러의 자본금으로 창업을 시도한다. 차고가 회사의 사무실이었다. 밥먹고 잠자는 시간 말고는 오로지 일만 했다. 밤낮으로 일한 1 년만에 시제품이 탄생했지만 창업자금 10 만불은 이미 동이 났다. 당시엔 벤처 캐피탈이 활성화되기 전이라 투자자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궁여지책으로 그는 딕 배스를 찾아 이를 상의했다. 딕이 회사의 15% 지분을 보장받고 영업과 마케팅 담당으로 참여하면서 30만 불의 투자자를 데려 온다. 이렇게 시작된 회사가 파이버먹스였고 첫 수주가 바로 NASA의 10 만불짜리 홈런이었다. 그의 회사는 6 년간 놀랄만한 고속 성장을 했다. 아라크 전쟁사태로 나스닥 상장이 연기되자 그는 최초 투자자들에게 25배의 이익을 남기는 회사매각을 결정한다.

 

파이버먹스의 창업에서 성공한 경험을 살려 그는 1993년 로스엔젤레스에서 컴퓨터 네트워크 시스템을 구축하는 회사 자이렌을 설립하여 3년만에 나스닥에 상장했다. 미국 국내외에 60여 개의 지사망을 거느리며 연간 매출 3억 5천만 달러를 달성한 후 1999년 프랑스의 세계적 통신회사 알카텔사와 인수합병을 맺고 20억 달러에 매각함으로써 억만장자의 반열에 올랐다.

 

" 가난했기에 절대 실패할 수 없다는 각오로 임했습니다. 기업 경영은 전쟁과 마찬가지입니다. 분기별로 실적이 나오고 미진할 경우 곧바로 주가에 반영되지요. 두 개 회사를 경영한 15년, 60분기 동안 단 한 번도 목표를 못 맞춰낸 적이 없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베스트 세일즈맨"이라 부른다. CEO도 현장에서 발로 뛰어야 고객의 불만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면서, 1주일에 2 - 3개 지사를 방문했고 방문때마다 하루에 주요 거래처나 바이어 3 곳과 미팅을 약속했다고 한다. 부지런함은 역시 성공인의 덕목 중 하나임을 느낄 수 있었다.

 

현재 나이 만 60세,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미국에서 "스티브 김 재단" 을 설립하고 장학사업을 시작하다가 2007년 한국으로 영구 귀국한 뒤 투자회사 SYK글로벌과 사회복지법인 "꿈,희망,미래 재단" 을 설립했다. 장학사업과 사회복지사업에 연간 20억원을 쓰고 있다.

 

" 돈이 없어 공부를 중단해야 할 처지에 있는 학생 한 명을 도우면 사람 하나만 살리는 게 아니라 그 가족을 살리는 거니까요."

 

모교인 서강대 MBA 과정 초빙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향후 강의와 저술, 각종 강연에 주력할 계획이란다. 그의 성공스토리가 움추린 우리들의 어깨를 펴게 해준다. 그의 강연이 끝나자 힘찬 박수소리가 한동안 강연회장을 떠나질 않았다.

 

" 꿈과 희망을 갖고 열심히 살면 반드시 보상이 옵니다. 제가 가진 것을 사회와 나누며, 미력하나마 '행복전도사' 가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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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 밀레니엄 북스 39
루쉰 지음, 우인호 옮김 / 신원문화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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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근대 소설은 1917년 매일신보에 연재되었던 이광수의 [무정]이며, 비로소 한국 근대 문학의 장이 열렸다. 중국에는 루쉰이 있었다. 1918년 최초의 근대 소설 [광인일기]를 발표하면서 중국 문학계에 커다란 충격을 던졌다.

루쉰은 1881년 중국 절강성의 선비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 났다. 아버지가 중병에 걸려 갑자기 집안이 몰락하는 불운을 당하기도 했다. 남경에 위치한 강남수사학당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가 강남육사학당으로 전학했고 이후 일본으로 유학을 갔지만 의학전문학교를 자퇴하고 문예지 [신생]을 창간하려다 실패하고 1909년 귀국하여 학교 선생님이 된다. 이 책 첫머리에서 만나는 [자서]와 책말미의 작가연보를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아Q는 未莊이란 마을에 살고 있는데 이름과 본적이 애매하며, 그의 행적도 분명치 않은 인물이다. 조씨집에 얹혀 지내며 집안의 허드렛일도 맡아서 한다. 기거는 동네 祠堂에서 해결한다.
그러나, 아Q는 자존심이 강해서 마을사람 따위는 안중에도 없으며 또한 城內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경멸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나창파(부스럼으로 생긴 대머리)라는 신체적 결함이 있어서 대머리를 연상시키는 그 어떤 말에도 화를 내었고 심지어는 욕을 하거나 기운 약한 놈은 때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마지막엔 그가 항상 당했다. 한마디로 동네에선 왕따 신세였던 것이다.

이런 아Q가 어느 날 마을 유력 인사인 조 나리에게 따귀를 맞고 난 후 유명해졌다. 이후 여러 해 동안 그는 우쭐거리는 행동을 했다. 그도 사람이기에 매우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거지 왕털보와 전 나리의 장남이었다. 전 나리의 아들은 서양학교에도 다녔고 일본 유학생 출신이라 그런지 변발을 짤라 버렸다. 그래서 아Q는 그를 양놈의 앞잡이라고 불렀다.

아Q가 한번은 女僧을 놀리면서 그녀의 볼을 꼬집고는 묘한 감정을 느낀다. 바보인 그가 비로소 여자를 알게 된 사건이었다. 하루는 조 나리댁에서 하루 종일 쌀방아를 찧다가 식모인 오마에게 수작을 걸었다가 이 때문에 혼찌검을 당했다. 이 사건 이후 마을 사람들의 행동에 변화가 생겼다. 마을 여자들이 아Q를 보기만 해도 도망치고, 남자들도 이상한 눈초리를 보내며, 술집에선 외상술도 주지 않았다. 더욱 심한 것은 친하게 지냈던 사당지기조차 자신을 내쫓으려는 것 같았다. 이젠 동네 날품일도 뚝 끊겨 버렸다. 할 수없이 그는 城안으로 들어갈 결심을 한다.

아Q가 다시 未莊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중추절 직후였다. 마을에선 볼 수 없는 귀한 물건을 갖고 나타났기에 동네 여인들은 이 물건에 흥미를 느끼며 그를 만나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가 좀도둑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잠시 동안의 인기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1911년 9월 14일, 조씨댁 나루터에 한 척의 배가 들어 왔다. 혁명당을 피해 몰래 들어온 성내의 실력자 거인 나리의 배였던 것이다. 아Q도 혁명당이란 말은 벌써부터 듣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혁명당을 무서워하기에 그는 막연히 혁명당이 자신의 편일 것으로 생각한다. 동네 인심은 나날이 안정돼 갔다.

아Q는 혁명당에 가입하려고 전씨의 아들, 가짜 양놈을 찾아간다. 그런데, 그날밤 조씨 나리의 집이 누군가에게 약탈을 당했다. 아Q는 자신을 내쫓은 조씨에게 좋은 감정이 있을리 만무다. 그는 약탈현장을 실컷 구경만 했다.

未莊 사람들 대부분 통쾌해 하면서도 두려웠다. 아Q도 마찬가지였다. 나흘 후 그는 조씨댁을 약탈한 장본인이라는 누명을 쓰고 밤중에 체포된다. 조사중 그는 생전 처음 붓을 들고 서명 대신에 동그라미를 그린다. 형장으로 끌려 가면서 그는 구경꾼 무리속에서 오마의 모습을 발견한다. 총살형을 당한다.

여론에 의하면, 아Q의 죽음에 대해 미장에서는 별 이의가 없이 한결같이 "나쁜 놈"이라고 욕을 했다. 그러나, 성안의 여론은 반대로 나빴다. 그들 대부분은 총살에 불만이었다 한다.

루쉰은 어리석고 불쌍한 아Q를 통해 근대화 과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국 민중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일본 유학 기간에 학업을 중단하고 문예지를 통한 계몽활동을 펼치려 한 그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 그 필름을 본 뒤부터 의학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리석고 약한 국민은 비록 체력이 튼튼하고 오래 산다 해도 고작 보잘 것 없는 본보기나 구경꾼 노릇만 할 뿐 아닌가. " (12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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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내일 - 쓰레기는 어디로 갔을까
헤더 로저스 지음, 이수영 옮김 / 삼인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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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헤더 로저스의 독특한 이력이 눈길을 끈다. 그녀는 언론인이자 작가이며, 그리고 영화제작자이다. 2002년 [쓰레기의 숨겨진 한살이(Gone Tomorrow : The Hidden Life of Garbage)] 란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한 후 못다한 이야기를 이 책에 담고 있다.

 

미국 뉴욕시 남서부 끝에 위치한 프레시 킬스(Fresh Kills) 는 지난 53 년 동안 쓰레기를 묻어 온 매립지이다. 미국은 지구 자원의 30 %를 소비하며 전체 쓰레기의 30 % 를 생산하고 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미국인 1 인당 매일 2 킬로그램 넘게 쓰레기를 버리고 있다. 가히 미국은 세계 최고의 쓰레기 생산국임이 분명하다. 이 책은 생활쓰레기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고발하고 있다.

 

17 - 18 세기 미국 이민자의 대부분은 너무도 가난해서 거의 아무 것도 버리지 않았다. 음식찌꺼기는 밭으로 버려 밭에서 썩게 했다.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는 그대로 썩어 가거나 아니면 돌아 다니던 개, 너구리, 돼지 등의 배를 채워 주었다.

 

쓰레기가 생기기 전의 시대엔 사람과 짐승의 분뇨가 제일 큰 쓰레기였다. 똥은 기름진 흙을 만들어 주는 비결이었지만 도시에서는 毒이었다. 도시에서 만들어진 분뇨는 외곽의 농부에게로 자연스레 순환되는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이후 도시의 거주자들의 농작물 수요가 급격히 늘어 나면서 농부들은 흙의 건강을 유지하고자 비료에 의지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자본주의 농업의 첫 장을 열면서 이러한 순환 과정이 소멸되었다. 자연히 쓰레기 처리에 있어서 농촌과 도시의 불균형이 시작된 것이다.

 

남북전쟁은 엄청난 경제적, 기술적 변화를 이끌어 내었다. 대량 생산 시스템이 가동되면서 미국내의 쓰레기의 양과 질 모두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 났다.

戰後 1950 - 1960 년대에 합성수지 생산자들은 플라스틱을 양산하며 소비자들에게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1960년 플라스틱은 알루미늄을 누르고 미국 최대의 산업으로 성장했다.

 

미국의 쓰레기 변천사와 함께 늘어나는 쓰레기의 수거를 1950 년대 중반부터 민간업체로 이관하자 초기엔 마피아가 카르텔을 형성하여 뉴욕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독점적으로 처리하면서 고객들에게 엄청난 바가지를 씌우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나, 폭력조직 활동에 대한 경찰의 단속과 쓰레기 산업의 재편으로 1990년 대에 들어 마피아의 뉴욕 독점이 사라졌다. 이제 자치단체와 계약을 체결한 수거업체들은 매립지 확보가 골칫거리였다. 매립지 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처리해야 할 쓰레기 매립 용량은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쓰레기 처리 조직들은 이제 새로운 지역으로 수출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버린 쓰레기가 순식간에 지구 남반부에 버려진다. 미국 내의 엄격한 환경 규제때문에 엉뚱한 곳에서 피해를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쓰레기 처리 방법이 매립이나 소각에 의지했지만, 이것이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자 대안으로 쓰레기 재활용이 등장했다. 미국의 재활용시장에서 수거된 전자폐기물의 50 - 80 퍼센트가 중개인에게 팔리며, 중개인은 이를 개발도상국에 수출하여 폐기처분한다는 보고서도 있다. 중국 광동성 구이유시에서 이민노동자들은 山積한 컴퓨터 부품을 해체하고 녹이며, 나머지는 인근 논, 관개수로 또는 운하에 버리곤 한다. 이 지역의 지하수는 이미 오염되어 30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물을 길어다 먹고 있다. 또한 버려진 휴대폰도 중국 어디에서나 플라스틱 부품에서 브롬계 난연제를 배출하여 지하수와 토양을 오염시키고 있다.

 

20 세기의 대표적인 쓰레기인 플라스틱은 결코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는 쓰레기이다. 재활용은 불과 5 퍼센트 미만이며, 버려지는 대부분이 해양에 불법 투기하고 있다. 이제 태평양은 바다가 아니라 플라스틱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바다에 가라앉은 플라스틱의 독성물질이 우리에게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정확한 해답을 주지 못한다.

 

쓰레기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 비단 미국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도 매일 쓰레기를 방출하고 있다. 일회용 컵, 생수 페트병 등 수 없이 많다. 남태평양 작은 섬의 주민들이 정체 불명의 쓰레기와 점점 높아가는 해수면때문에 밤 잠을 설친다면 이는 모두 우리의 잘못일 것이다. 분리 수거의 실천이 결코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고도의 산업화가 우리에게 남겨준 생활쓰레기는 결국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손에 남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이 가슴을 찡하게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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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수기업열전 - 국내 최강 기업의 라이벌전 그리고 비하인드스토리
정혁준 지음 / 에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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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경제연구소가 2005년 발표한 [한국기업 성장 50년의 재조명]이란 보고서가 눈에 띄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1955년 매출액상위 100 대기업 중 현재까지 100 위권 안에 남아 있는 기업은 CJ(舊, 제일제당), LG화학, 현대해상(舊, 동방해상보험), 한진중공업(舊, 대한조선공사), 대림산업, 한화, 한국전력 등 7 개 회사에 불과했다. 19955년 1 위였던 삼양사, 1965년 1 위였던 동명목재는 이미 100 대기업에서 빠졌고, 1975년 1 위였던 대한항공은 24 위로 밀렸으며, 1985년 1 위였던 삼성물산은 18 위로 떨어져 있었다. 반면, 1975년 27 위였던 삼성전자가 1 위에 올라 있는 것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최근엔 글로벌 경제 한파의 영향으로 미국 자동차의 자존심 GM이 파산신청을 한다는 소식도 있었다. 이와 같이 영원한 부와 성공을 누릴 것만 같았던 여러 기업들의 흥망성쇠를 보노라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떠 올리지 않을 수 없다. 경영도서 [꿀벌과 게릴라]의 저자이며, " 핵심역량 " 으로 유명한 게리 하멜 교수는 그 원인를 세 가지에서 찾아 설명하고 있다.

 

첫째, 물리적 원인(규모, 성장, 수익성)이 기업에 문제를 가져 온다.

기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기업의 성장은 더딜 수 밖에 없다. 매출의 성장도 영원할 수 없으며, 가격 경쟁이 심화되면서 수익도 감소하는 국면에 직면하게 됩니다.

 

둘째, 전략이 종말되기 때문입니다.

기업 경영에 필요한 전략이 수립되는 그 순간부터 서서히 그 효과는 약화됩니다. 물론 약화되는 속도를 늦출 수는 있습니다만, 그 전략이 종말됨은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셋째, 끊임없는 변화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비즈니스는 변화에 그 기반을 두고 탄생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모든 기업들은 이런 변화에 의해 서서히 침몰당하는 운명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게리 하멜 교수는 기업이 영원한 생명력을 유지하려면 경영 DNA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며 본질적인 혁신을 하지 않고선 이 문제에 대처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맞수기업열전]은 대한민국 52 개 선두 기업의 생존 경쟁을 총망라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겨레21] 경제팀장을 맡고 있는 저자는 이들 기업의 경영이야기를 맞수란 측면에서 맛깔스럽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맞수란 말 그대로 마주 상대하는 상대방입니다. 맞수가 없는 형국을 무적이라 표현합니다. 우리는 맞수를 여러 분야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프로권투 헤비급의 무하마드 알리와 죠 프레이저 , 삼국지에서 지략대결을 펼치는 제갈공명과 사마의, 트로트 가요계의 남진과 나훈아 등은 멋진 맞수들입니다.

 

저자는 대표적인 맞수 기업을 기업가 정신의 법칙, 위기 극복의 법칙, 게임의 룰 전환 법칙, 경쟁 우위의 법칙, 진화의 법칙, 스토리텔링의 법칙, 그리고 여성의 법칙이라는 일곱 가지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한국의 대표기업인 삼성과 LG를 포함한 많은 기업들의 탄생 비밀과 기업가 정신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독방에 따로 갇힌 두 죄수가 심문을 받으면서 둘 다 죄를 부인하면 무죄, 둘 다 죄를 인정하면 5년 刑, 한쪽만 인정하고 다른 쪽이 부인할 경우 고백한 죄수는 무죄로 석방되고 부인한 죄수는 10년 刑을 받는다면, 두 죄수는 결정을 위해 딜레마에 빠질 것입니다. 소위 " 죄수의 딜레마 " 로 비유되는 게임이론을 거론하면서 각 분야에서 1 위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맞수 기업의 게임의 법칙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업사에서 사라진 대우그룹과 조흥, 한일, 상업 등 시중은행의 아픈 추억을 보면서 영원한 승자가 없음을 한번 더 느낍니다.
[종의 기원]의 저자 찰스 다윈은 " 살아 남는 種는 강인한 種도 아니고 지적 능력이 뛰어난 種도 아니다. 변화에 가장 잘 대응한 種이 살아 남는다. " 고 말했습니다. 무한 경쟁의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는 물론 맞수 기업들도 생존을 위해서는 패러다임에 빨리 대처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함을 이 책은 시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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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통신 - 지상의 별, 반딧불이 이야기
한영식 글, 홍승우 그림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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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는 外柔內剛의 곤충이다. 꺼질 듯하면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 불빛은 끈질긴 생명의 상징이다. 그러나, 술집, 모텔, 관광시설 등이 반딧불이의 사랑 장소를 점령하면서 반딧불이를 만나기 어렵다. 그 많던 반딧불이는 다 어디로 갔을까?

반딧불이는 세계적으로 2100 여 種인데, 우리나라엔 늦반딧불이, 애반딧불이, 운문산반딧불이, 꽃반딧불이, 파파리반딧불이, 갈색반딧불이, 북방반딧불이, 그리고 왕꽃반딧불이의 8 種이 있단다. 일본은 더운 지역인 오키나와에만 44 種이 있다니, 이 곤충은 열대지방에 더 많이 서식함을 알 수 있다.

형광빛을 發光하는 반딧불이는 배우자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빛을 깜빡인다. 암수 둘은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은밀한 곳에서 짝짓기를 치른다. 비록 곤충이지만 백주에 사랑 행각을 벌이는 인간에 비하면 훨씬 예절(?)스럽다. 짝짓기 사랑을 마치고 나면 이후 곧 죽음을 맞이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빛을 發光한다고 모두 반딧불이는 아니다. 뉴질랜드 노스섬에 있는 와이모토 동굴은 "반딧불이 동굴" 로 알려진 名所이다. 그러나, 이 동굴 속에서 초록빛을 내는 애벌레는 빛버섯파릿科의 곤충일 뿐이다. 멕시코에 살고 있는 방아벌레도 배에서 주황빛을 發光한다고 한다.

반딧불이의 이름은 어떻게 변했을까? 16 세기의 한자 자습서 [훈몽자회]엔 "반도" 로, [청구영언]엔 "반되" , "반되불" 등으로 기록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1968 년 한국동물명집이 편찬되어 반딧불에 接尾語 이字를 합쳐 반딧불이란 정식 곤충명을 기록했다. 한편,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개똥벌레라고 부른다. 두엄 근처에 모여 있는 반딧불이를 보고서 개똥이 변해서 벌레가 된 것으로 착각했던 듯하다. 그래서, 강원도에선 개똥벌기, 충북에선 개똥버러지, 전남에선 개동벌가지, 경북에선 개똥벌갱이, 경남에선 개동벌갱이, 황해도에선 개동파리 등으로 불려졌던 것이다. 중국 고전 [禮記]에도 "腐草爲螢"이란 용어가 등장하는데, 腐草란 거름더미이고 螢이란 개똥벌레란 의미이다. 반딧불이는 영어로 firefly, 일본어론 호타루로 불린다.

반딧불이는 俗談이나 逸話가 있을 정도로 우리의 생활에 매우 친숙한 곤충이었다. "반딧불이가 높이 날면 바람이 불지 않는다" 는 속담은 마치 반딧불이가 기상캐스터인 듯한 느낌을 준다. 반딧불이의 飛行力이 신통치 않기에 바람이 많이 불면 높이 날 수가 없음을 시사한다. "개똥불로 별을 對敵한다" 는 속담은 마치 달걀로 바위치기 格처럼 어리석은 행동을 빗댄 말이다. 또한, 조선朝 수양대군도 어릴 적 반딧불이의 追億을 잊지 못해 백성들에게 이를 잡아 오라고 한 다음 경회루 앞 뜰에 수 백마리를 풀어 그 장관을 감상했다고 한다.

반딧불이하면 가장 먼저 떠 올리는 것이 "螢雪之功" 의 故事이다. 중국 진나라 효무제 시절, 車胤이란 인물이 어려운 가정 환경탓에 낮엔 일하고 밤엔 명주 주머니에 반딧불이를 넣어서 등불 삼아 공부하여 벼슬에 오른다. 같은 시기에 孫康도 너무나 가난해서 등불을 밝히지 못하고 밖에 쌓인 눈 빛에 책을 비추며 공부하여 관직에 오른 두 인물에 얽힌 이야기이다. 반딧불이의 불빛은 한 마리에 3 럭스 정도란다. 사무실의 밝기가 대개 500 럭스임에 비한다면 반딧불이 200 마리면 충분히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래서, 저자는 그 가능성을 직접 실험해 본다. 어두운 방에서 반딧불에 의지해 성공적으로 소설을 읽었다는 저자의 실험정신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많았던 반딧불이들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반딧불이가 많이 살던 곳이 채석장으로 변한 곳도 있다. 사람들은 개발이란 명목으로 반딧불이 서식처를 쉽게 파괴한다. 반딧불이의 애벌레는 알려진 대로 청청수에만 살고 있는 다슬기를 먹으면서 성장한다. 청정수가 흐르는 江과 개천이 사라지면서 다슬기의 생태가 파괴되면 자연히 반딧불이도 사라지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무주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반딧불이 축제 행사를 개최하면서 생태보존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 다행이긴하다. 그러나, 얼마전 무주 반딧불이 축제에 참관했던 나의 소감은 답답했다. 반딧불이 구경은 못하고 오히려 노래자랑, 장기자랑, 먹거리 장터 등의 소란한 행사만 구경한 기분이어서 너무도 안타까웠다.  

대학 재학생이던 1996년 6월 반딧불이를 처음 관찰하면서 시작된 저자의 반딧불이 사랑이 이 책에 소록히 담겨 있다. 모두 열 두편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반딧불이의 일생을 모두 관찰하면서 알, 애벌레, 번데기, 성충의 네 단계를 거쳐 완전 변태하는 과정을 일일히 소개하고 있다. 반딧불이의 꽁무니엔 루시페린이라는 발광물질이 있어서 빛을 낸다며 반딧불의 비밀을 밝히면서 시작한 이야기가 螢雪之功의 故事로 끝이 난다. 이 책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반딧불이 연구황동과 생태계 복원사업 추진에 微力하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말이 가슴 한 구석을 찡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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